민주주의의 완성, 대통령은 5년짜리 계약직 공무원
선진국은 자원이나 자본의 양으로만 결정되지 않습니다. 노르웨이의 사례는 이를 극명하게 보여줍니다. 노르웨이 지하철에는 검표원 직원이 한 명뿐입니다. 무임승차가 적발되면 평생 신용불량자가 될 각오를 해야 합니다. 산유국임에도 국회의사당에는 자동차 주차장이 없습니다. 오직 자전거 주차장뿐입니다. 신뢰와 정직이 사회적 비용을 낮춥니다. 노르웨이는 자원 부국이면서도 정치를 잘하고 민생을 챙겨 세계 1위 국가가 되었습니다. 반면 베네수엘라는 석유가 풍부하지만 정치가 부패했습니다. 민생을 뒷전으로 하고 정권이 자격 미달이 되어 국가 파산에 이르렀습니다. 자원의 풍요보다 리더십과 제도가 우선임을 증명합니다.

민주주의는 본질적으로 '종신'과 '타자에 대한 지배'를 최소화하는 제도입니다. 왕은 나라의 종신 주인입니다. 재벌 회장은 기업이라는 영주의 종신 주인입니다. 하지만 민주주의 체제 아래 대통령은 비정규직 공무원일 뿐입니다. 민주주의는 국민이 정치 지도자를 왕으로 투사하여 의존하려는 태도를 견제합니다. 구성원 개개인이 타자가 아니라 스스로의 주인이 되도록 환경을 최대화하는 과정이 곧 민주주의입니다. 이는 고정된 상태가 아니라 끊임없이 노력하고 나아가는 역동적인 과정입니다.
김영삼 전 대통령에 관한 일화는 민주주의의 가치를 다시 생각하게 합니다. 그는 당선 후 구순의 아버지에게 인사드리러 갔는데 한 노인이 그를 "나랏님" 혹은 "임금님"이라 불렀을 때, 그는 자신은 임금이 아니라고 참모들 앞에서 되뇌었습니다. 그에게는 군사정권과의 야합이나 경제 위기 같은 치명적 과오가 있습니다. 하지만 민주주의 가치에 대한 기초적인 인식은 확고했습니다. 리더를 왕으로 모시는 순간 민주주의는 작동을 멈추고 권위주의가 싹트기 때문입니다.
이와 관련하여 서울대 법대 한인섭 교수는 대통령에 대한 권위주의적 환상을 걷어내야 한다고 강조합니다. 그는 SNS를 통해 대통령은 5년 임기의 국민 집사이자 머슴이라고 정의했습니다. 집사나 머슴이 엉뚱한 짓을 하면 5년 안에도 바꿀 수 있다는 것이 민주주의의 핵심입니다. 한 교수는 청와대나 관저가 권부의 상징이 아닌, 잠시 머무는 전셋집일 뿐이라고 말합니다. 회의는 지시 사항을 받아쓰는 자리가 아니라 치열하게 토론하는 자리여야 합니다. 공금은 주인이 없는 공돈이 아니라 시민의 세금입니다. 자신의 밥값과 커피값을 스스로 계산하는 당연한 상식이 실천되기까지 우리 사회는 70년의 세월을 보냈습니다.
이러한 원칙은 시민사회 영역인 NPO와 NGO 조직 활동가들에게도 무겁게 다가옵니다. 공익을 추구하는 활동가들은 자칫 '도덕적 우월성'이라는 함정에 빠지기 쉽습니다. 조직 내에서 리더가 종신 주인처럼 군림하고 있지는 않은지 살펴야 합니다. 구성원들을 수동적인 타자로 머물게 하고 있지는 않은지 돌아봐야 합니다. 민주주의적 리더십은 구성원 모두가 조직의 주인으로서 주체성을 회복하도록 돕는 것입니다. 지배가 아닌 지원이 리더의 본분입니다. 수직적인 위계가 아닌 수평적인 연대가 조직의 동력이 되어야 합니다. 에이브러햄 링컨은 모든 일에 실패해 본 사람만이 정치를 하거나 교육을 할 수 있다고 말했습니다. 실패의 경험은 리더에게 겸손과 성찰을 가르칩니다. 자신의 한계를 아는 리더만이 타인을 지배하려 들지 않습니다. 시민의 머슴으로서 본분을 다하고 구성원들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일 수 있습니다. 실패를 통해 다듬어진 리더십은 조직의 투명성과 민주성을 담보하는 기초가 됩니다.
대통령은 권력을 가진 자가 아닙니다. 국민에게 고용된 '5년 계약직 공무원'입니다. 국민의 머슴이라는 표현을 포함하여, 이러한 언어와 인식이 국민들에게 자연스러워져야 합니다. 권력을 누리는 자가 아니라 소임을 맡은 대리인이라는 자각이 보편화될 때, 우리는 비로소 전근대적인 '조선'의 유산을 극복할 수 있습니다. 민주공화국이라는 대한민국의 정체성은 바로 그 지점에서 완성됩니다. 리더를 바라보는 우리의 시선이 바뀌고, 그 인식이 일상의 언어로 뿌리 내릴 때 민주주의는 비로소 우리 곁에 온전히 머물게 될 것입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