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주주의라는 뼈대에 시민참여라는 생명력을 입히는 일
조직 활동에서 의사결정은 늘 고민의 지점입니다. 혼자 결정하는 것은 빠르고 편하지만, 함께 결정하는 과정은 느리고 피곤합니다. 효율성만 따진다면 '혼자결정'하는 것이 빠르겠지만, 비영리 조직은 어느 정도라도 '함께결정'하는 문화를 기반으로 하는 조직입니다. 민주주의의 가치는 효율이 아닌 '함께'에 있기 때문입니다. 피로를 줄이고 속도를 높이는 비결은 따로 존재하지 않습니다. 오직 '민주적 역량 강화'라는 정공법뿐입니다. 왕도는 없습니다. 여러 사람이 모여 빨리, 그리고 덜 피곤하게 결론을 내리는 방법은 학습과 훈련을 통해 습득되는 기술입니다. 선진국의 자생적 모임들이 발휘하는 힘은 바로 이 지점에서 나옵니다. 비영리 현장의 리더들이 끊임없이 민주적 소통 역량을 갈고닦아야 하는 이유이기도 합니다.
민주주의 발전의 세 단계: 주권, 참여, 그리고 복지
에이브러햄 링컨은 게티스버그에서 "국민의, 국민에 의한, 국민을 위한 정부"라는 짧지만 강력한 문장을 남겼습니다. 이는 단순히 정치적 수사가 아닙니다. 민주주의와 조직이 성숙해가는 세 가지 단계를 명확히 보여줍니다. 첫째는 '국민의(Of the people)', 즉 주권재민의 단계입니다. 주권은 왕이나 특정 지도자가 아닌 시민 개개인에게 있다는 선언입니다. 투표하는 날에만 주인이 되고 다음 날부터 '을'로 전락하는 민주주의는 반쪽짜리에 불과합니다. 그러면 우리가 투표날뿐만 아니라 일상에서도 '갑'을 유지하는 방법은 무엇일까요? 갑질을 할까요? 그러면 안 됩니다. 바로 두번째인 '국민에 의한(By the people)', 즉 시민참여입니다. 투표를 넘어 일상에서 지속적으로 주권자의 권리를 유지하는 힘은 참여에서 나옵니다. 참여하는 사람이 주인이 되고, 참여하지 않는 사람은 손님이 된다는 도산 안창호 선생의 가르침은 2026년의 우리에게도 여전히 유효합니다. 셋째는 '국민을 위한(For the people)', 즉 복지국가의 단계입니다. 대한민국은 이제 복지국가의 문턱에 서 있습니다. 주권재민이 없는 시민참여가 존재할 수 없듯이, 시민참여 없는 복지국가는 성립불가합니다. 시민의 실질적인 참여가 전제되지 않은 복지는 지속 가능하지 않습니다. 참여 없는 복지는 시혜에 그칠 뿐, 시민의 존엄을 온전히 지켜주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형식적 민주주의의 한계를 넘어서
선거와 투표만으로 민주주의가 완성되었다고 믿는 것은 위험합니다. 이를 '형식적 민주주의'라 부릅니다. 마치 살점 없이 뼈대만 앙상하게 남은 모습과 같습니다. 우리 몸에 골격이 중요하듯 민주주의의 제도적 틀도 무시할 수 없으나, 뼈대만으로는 생명력을 가질 수 없습니다. 제도라는 뼈대 위에 시민성과 시민참여라는 풍성한 살이 붙어야 비로소 '풍성한 민주주의'가 완성됩니다. 비영리기관은 바로 이 '민주주의의 살'을 채우는 역할을 합니다. 현장의 활동가들이 사용하는 언어가 풍성해지고, 그 언어가 시민들의 삶에 닿을 때 민주주의는 비로소 건강해집니다.
2026년, 다시 민주주의의 주인이 된다는 것
2026년의 사회는 더욱 복잡해졌고 갈등의 양상도 다양합니다. 이러한 시대일수록 "모든 국민은 자신들의 수준에 맞는 정부를 가진다"는 알렉시스 드 토크빌의 경고를 무겁게 받아들여야 합니다. 정치는 다수의 무관심을 먹고 자라며, 참여하지 않는 대가는 나쁜 권력에 지배당하는 고통으로 돌아옵니다. 우리는 투표를 통해 '덜 나쁜' 선택을 하는 것에 그쳐서는 안 됩니다. 링컨이 말했듯 국민 전부를 끝까지 속일 수는 없습니다. 시민이 깨어 있고 끊임없이 교육받으며 스스로를 통제할 때, 정부는 비로소 올바른 방향으로 작동합니다. 비영리기관 종사자들은 시민들이 단순한 관찰자가 아닌 참여자가 되도록 돕는 이들입니다. 민주주의는 결과가 아니라 과정입니다. 함께 결정하는 과정이 비록 더디고 고될지라도, 그 안에서 민주적 역량을 키워가는 것이 우리가 지향해야 할 가치입니다. 주권재민의 원칙 위에 시민참여의 근육을 키워 복지국가라는 열매를 맺는 일, 그것이 우리가 나아갈 방향입니다. 에이브러햄 링컨의 말처럼 투표는 총알보다 강합니다. 그 강한 힘을 일상의 변화로 바꾸어내는 힘은 결국 현장에서 묵묵히 시민성을 깨우는 여러분의 실천에 달려 있습니다. 민주주의의 발전 단계는 멀리 있는 것이 아니라, 오늘 우리가 내리는 '함께'의 결정 속에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