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구소칼럼[콩나물시루]

멈추지 않는 성장은 병이다 : 저성장 시대, '성숙'을 선택해야 하는 이유

강정모 소장 2026. 3. 2. 13:49

역효과를 낳는 과잉의 덫

사회사상가 이반 일리히는 인간의 활동이 특정 한계를 넘어서면 효율이 감소하고 결국 역효과를 낸다는 ‘일리히의 법칙’을 설파했습니다. 이는 고전경제학의 수확체감의 법칙을 인간의 행위와 사회 구조에 적용한 통찰입니다. 농도를 높인다고 수확량이 무한히 늘지 않듯, 노동과 조직에 가해지는 과도한 압박은 어느 지점을 지나면 파괴적인 결과만을 초래합니다. 우리는 그동안 이 한계선을 무시한 채 오직 '더 많이'와 '더 빨리'만을 외치며 달려왔습니다.

 

http://thenewleam.com/tag/ivan-illich(사진출처)

무너진 정답과 모델의 부재

2000년대 중반까지 우리 사회를 지배한 가치는 '성장'이었습니다. 이 시기에는 남이 만든 정답을 빠르게 맞히는 능력이 가장 중요했습니다. 성공한 조직의 프로그램과 운영 방식을 모방하는 것이 유능함의 척도였습니다. 하지만 세계금융위기 이후 견고해 보이던 성공 신화들은 균열을 일으키기 시작했습니다. 권위의 정점에 있던 이들의 추락과 정치·경제적 저성장은 더 이상 베낄 수 있는 정답이 존재하지 않음을 증명하고 있습니다.

성장에서 성숙으로의 패러다임 전환

성장이 멈추는 것을 두려워할 필요는 없습니다. 신체적으로 20세 이후에도 키가 계속 자란다면 그것은 성장이 아니라 '병'입니다. 성인이 된 육체가 성장을 멈추는 것은 건강함의 증거입니다. 이때부터 삶의 과제는 성장이 아닌 '성숙'으로 전환됩니다. 조직과 공동체도 마찬가지입니다. 이제는 규모의 확장이라는 허상을 버리고, 내실을 다지는 성숙의 단계로 진입해야 합니다.

성숙한 사회를 지탱하는 역량

성숙이란 자신의 삶과 활동을 스스로의 언어로 설명할 수 있는 상태를 의미합니다. 남의 모델을 좇는 대신 스스로가 모델이 되어야 합니다. 자신의 한계를 인정하는 겸손함, 타인의 고통에 깊이 공감하는 지혜, 갈등을 조정하는 협상력이 성숙의 핵심 역량입니다. 과거에는 '정해진 답'을 찾는 것이 중요했다면, 이제는 '구성원 모두가 수긍할 수 있는 답'을 함께 만들어가는 힘이 필요합니다.

현장을 지키는 여러분이 성숙의 이정표입니다

시민단체 활동가와 사회복지사, 그리고 현장에서 주민들과 부대끼는 지역복지 담당자 여러분. 우리가 마주한 저성장의 그늘은 위기가 아니라 성숙으로 가는 필수적인 관문입니다. 효율과 확장이라는 낡은 옷을 벗고 효과와 신뢰, 적정 규모라는 새로운 가치를 입어야 할 때입니다. 현장에서 사람과 사람 사이의 관계를 잇고 공동체의 행복을 사유하는 여러분의 발걸음은 결코 헛되지 않습니다. 성장이 멈춘 곳에서 비로소 피어나는 성숙의 가치를 믿으시기 바랍니다. 여러분이 곧 우리 사회가 나아갈 새로운 모델입니다. 흔들림 없이 그 자리를 지켜주시는 여러분께 깊은 존경과 응원을 보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