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구소칼럼[콩나물시루]

"우리 조직은 원래 그래요"라는 말 뒤에 숨겨진 위험한 신호들

강정모 소장 2026. 3. 2. 14:30

사라진 바나나와 남겨진 매질

베르나르 베르베르는 그의 저서 <상상력 사전>에서 ‘다섯 마리 침팬지 실험’을 소개합니다. 방 한복판 사다리 꼭대기에 바나나가 있습니다. 바나나를 잡으려는 침팬지는 천장에서 쏟아지는 찬물을 맞습니다. 모든 침팬지가 시도를 포기할 때쯤, 실험자는 찬물을 치우고 침팬지를 한 마리씩 교체합니다. 새로 들어온 침팬지는 본능적으로 사다리를 오르려 합니다. 하지만 기존 침팬지들은 그를 끌어내려 매질합니다. 찬물을 맞지 않게 하려는 배려로 시작된 폭력은, 구성원 전체가 교체된 후에도 멈추지 않습니다. 이제 방 안의 침팬지 중 누구도 찬물을 맞은 적이 없습니다. 하지만 그들은 사다리에 접근하는 동료를 여전히 때립니다. 정작 꼭대기의 바나나에는 아무도 관심이 없습니다. 그저 문을 바라보며 매질할 ‘새로운 타자’가 나타나기만을 기다릴 뿐입니다.

 

https://janegoodall.ca/our-stories/10-things-about-chimpanzees/(사진출처)

'원래'라는 이름의 보이지 않는 감옥

조직에 들어온 신입이나 경력 직원은 오리엔테이션을 거칩니다. 이 과정에서 선임자들은 대개 '일을 처리하는 방법(How)'을 전수합니다. 현재의 시스템을 문제없이 유지하는 숙달된 방식을 알려주는 것이 목적입니다. 이때 전수되는 지식은 대개 관행이라는 이름의 안전장치입니다. 문제는 질문이 시작될 때 발생합니다. "왜 이 일을 해야 하나요?", "이 방법이 정말 효과적인가요?"라는 본질적인 물음에 조직은 당황합니다. 답변은 대개 궁색합니다. "우리 조직은 원래 이랬어요."라는 말이 전가의 보도처럼 등장합니다. 질문이 반복되면 조직은 질문자를 '골치 아픈 존재'로 규정합니다. 처음의 조언은 짜증으로 변하고, 급기야 조직적 소외로 이어집니다. 본질(바나나)은 잊힌 채, 관행(매질)만 남은 침팬지 사회의 모습과 다르지 않습니다.

사다리의 방법과 사다리의 방향

사다리를 오르는 행위에는 두 가지 관점이 공존합니다. 관리는 "어떻게 효율적으로 올라갈 것인가"를 묻습니다. 반면 리더십은 "이 사다리를 어느 벽에 걸쳐 놓을 것인가"를 질문합니다. 관리는 정해진 활동을 문제없이 수행하는 실무력의 영역입니다. 리더십은 그 활동의 목적과 적합성을 따지는 사고력의 영역입니다. 실무 현장에서 관리와 리더십은 우열의 관계가 아닙니다. 둘 다 어렵고 필수적입니다. 건강한 조직은 상황에 따라 이 두 질문을 적절히 교차합니다. 시작 단계의 조직은 리더십의 질문에 치우쳐 체계가 부족하기 쉽고, 안정기에 접어든 중견 조직은 관리의 질문에 매몰되어 관성에 빠지기 쉽습니다. 이러한 편향성이 조직의 건강을 해치는 근본 원인이 됩니다.

질문하는 존재가 조직을 살린다

오래된 시민단체와 복지 기관 활동현장은 '원래'라는 단어가 힘을 발휘하기 쉽습니다. 주민 조직화나 지역 복지 사업은 변화무쌍한 현장을 다룹니다. 하지만 정작 사업을 수행하는 조직 내부가 관행의 틀에 갇혀 있다면, 주민들에게 변화를 말할 자격은 힘을 잃습니다. 우리가 따지지도 않고 수용하는 '원래'는 무엇입니까? 혹시 우리는 바나나를 잊은 채 사다리만 지키고 있지는 않습니까? 신입 직원의 낯선 질문은 조직의 퇴행을 막는 가장 강력한 백신입니다. "왜?"라고 묻는 이들을 보호해야 합니다. 그 질문이 멈추는 순간, 조직의 리더십은 죽고 관리라는 이름의 매질만 남게 됩니다.

현장의 동료들에게 보내는 연대와 응원

시민사회 활동가와 사회복지사 여러분, 여러분은 매일 사다리 위에 놓인 바나나를 바라보며 땀 흘리는 사람들입니다. 때로는 조직의 완고한 관습에 부딪혀 무력감을 느낄 때도 있을 것입니다. 자신의 질문이 조직의 평화를 해치는 것 같아 입을 다물고 싶은 순간도 있을 것입니다. 하지만 여러분의 그 불편한 질문이야말로 조직이 사다리를 엉뚱한 벽에 기대지 않게 만드는 유일한 나침반입니다. 여러분의 고민은 틀린 것이 아니라, 조직이 잃어버린 본질을 찾아가는 과정입니다. 현장에서 주민과 함께 호흡하며 '옳은 일'을 고민하는 여러분의 발걸음을 응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