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패를 지혜로 발효시키는 기술
비행기 창문이 둥근 이유
초기 제트 여객기인 영국의 ‘드 하빌랜드 코메트 1’은 비극적인 기종이었습니다. 1953년부터 잇따른 공중 폭발 사고로 수많은 생명을 앗아갔습니다. 사고 원인은 뜻밖에도 ‘사각형 창문’에 있었습니다. 높은 고도에서 기체는 수축과 팽창을 반복합니다. 이때 가해지는 압력이 사각형 모서리에 집중되었습니다. 미세한 균열은 기체를 조각냈습니다. 오늘날 우리가 보는 둥근 창문은 그 참혹한 실패의 대가입니다. 항공 산업은 실수를 가장 엄중하게 다룹니다. 체슬리 슐렌버거 기장은 항공 분야의 모든 규칙이 누군가의 추락 덕분에 존재한다고 말했습니다. 비행 기록 장치인 ‘블랙박스’ 역시 이 과정에서 탄생했습니다. 모든 추락은 기록되고 분석됩니다. 그 기록은 다음 비행을 더 안전하게 만듭니다. 항공 산업의 성장은 곧 실패를 자산화한 역사의 기록입니다.

실패라는 재료와 성찰이라는 에너지
우리가 숲에서 버섯을 먹을 수 있는 이유는 단순합니다. 우리 조상들이 독버섯을 먹고 희생되었기 때문입니다. 현재의 풍요는 누군가의 시행착오라는 값을 치른 결과입니다. 시행착오는 지혜의 재료입니다. 지혜가 축적될 때 비로소 창조가 발생합니다. 하지만 실패가 자동으로 지혜가 되지는 않습니다. 여기에 ‘성찰(Reflection)’이라는 에너지가 투여되어야 합니다. 실패를 방치하면 쓰레기가 되어 썩습니다. 그러나 성찰이라는 에너지를 뿌리면 지혜로 발효됩니다. 롤프 도벨리는 저서 『불행 피하기 기술』에서 자기기만에서 벗어나는 것이 행복의 전제조건이라고 강조했습니다. 현실이 탐탁지 않아도 수용해야 합니다. 자신의 재능을 객관적으로 검토하고 수정해야 합니다. 실패가 자산이 되려면 집요한 분석이 필요합니다. 분석 없는 실패는 고통의 반복일 뿐입니다.
나를 남 보듯 하는 객관적 태도
성찰은 어렵습니다. 인간의 신체 구조는 타자를 보게 설계되었습니다. 우리는 자신의 얼굴을 육안으로 직접 볼 수 없습니다. 타인의 실수는 명료하게 보이지만, 자신의 허물은 사각지대에 놓입니다. 나를 나로 보는 주관적 태도에서 벗어나야 합니다. ‘나를 남 보듯’ 하는 객관적 태도가 성찰의 시작입니다. 회개와 반성은 수치심을 동반합니다. 치욕스러운 감정을 견디는 힘이 없으면 성찰은 중단됩니다. 그래서 많은 실패가 지혜가 되지 못하고 쓰레기통으로 향합니다. 사회복지 현장과 시민운동의 영역도 마찬가지입니다. 우리는 사업의 성패 앞에서 자주 흔들립니다. 실패를 자기 책임으로 수용하기보다 외부 환경이나 타인의 탓으로 돌립니다. 이는 합리화입니다. 합리화는 두려움에서 나오는 방어 기제입니다.
멈추고 관찰하는 용기
위기는 위험과 기회의 공존입니다. 실패라는 재료가 주어졌을 때, 우리는 서둘러 무언가를 하려고 합니다. 성찰 없는 행동은 또 다른 실패를 부릅니다. 이때 필요한 것은 가만히 들여다보는 용기입니다. 이 실패가 어디서, 어떻게, 왜 우리 앞에 왔는지 추적해야 합니다. 실패의 모양과 질감을 관찰해야 합니다. 주민 조직과 지역 복지 현장에서 활동가들은 종종 소진을 경험합니다. 계획대로 되지 않는 주민 관계, 성과 없는 사업에 좌절합니다. 하지만 추락하는 것은 괜찮습니다. 중요한 것은 추락의 원인을 아는 것입니다. 원인을 설명할 수 없다면 우리는 자신과 세상을 이해하지 못한 것입니다. 설명되지 않은 실패는 반드시 반복됩니다. 관찰하는 힘이 우리를 보호합니다.
지혜와 역량을 수렴하는 활동가의 자세
시민단체 활동가와 사회복지 종사자 여러분, 우리의 현장은 늘 정답이 없는 안개 속과 같습니다. 마을 복지와 주민 자치의 현장에서는 예기치 못한 갈등과 실패가 일상적으로 일어납니다. 이때 우리가 가져야 할 가장 강력한 역량은 실패를 지혜로 전환하는 ‘성찰적 기록’입니다. 우리 각자의 활동 기록이 현장의 블랙박스가 되어야 합니다. 좋은 삶과 훌륭한 활동은 많은 실패를 수용하고 수정하는 과정 그 자체입니다. 자신의 활동을 객관화하여 바라보십시오. 동료와 실패의 원인을 투명하게 토의하고, 축적하는 것이 선진국에서 사회복지 성과입니다. 수치심을 뚫고 나온 성찰만이 조직과 지역사회를 변화시킵니다. 꾸준한 분석을 통해 실패를 발효시키십시오. 그 발효된 지혜가 여러분의 전문성이 되고, 주민들의 삶을 바꾸는 창조적 에너지가 될 것입니다. 우리는 조상들의 시행착오 덕분에 버섯을 먹듯, 우리의 성찰 덕분에 다음 세대가 더 나은 공동체를 누리게 될 것임을 믿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