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면 된다"는 화이팅이 우리를 나가지 못하게 한다면: 명석한 포기의 기술

"자신을 믿는다는 건 자신이 잘 못하거나 힘들거나 싫은 것에 대해 '난 할 수 있어'라거나 '자신에게 최선을 다하라'고 주문을 하면서 '세상에 자신을 입증'하려고 하는게 아니라, '내가 싫어하고, 못하는 걸' 알고, 그것을 '수용'하고, 다른 길을 찾을 수 있는 것이다. 이러한 태도는 자신에 대한 명석함의 증거이기도 하다." (2020. 6. 7. 강정모 단상)
입증의 강박이 가리는 자기신뢰
우리는 무한 경쟁 사회에서 끊임없이 자신을 입증하라는 요구를 받습니다. 못하는 일을 잘해내려 애쓰는 태도를 미덕으로 여깁니다. 그러나 이는 진정한 의미의 자기신뢰와 거리가 멉니다. 자신을 믿는 사람은 오히려 자신의 한계를 명확히 인식합니다. 못하는 일을 붙들고 시간을 낭비하는 대신, 자신의 부족함을 솔직하게 받아들입니다. 이러한 자기 수용은 체념이 아닙니다. 오히려 더 적합한 길을 찾기 위한 명석하고, 전략적인 용기입니다.
다산 정약용의 수용이 낳은 실학의 정수
조선의 실학자 다산 정약용은 정조가 가장 신임했던 젊은 관료로서 수원 화성을 설계하고, 짓는 등의 성과를 내다가 정세의 갑작스러운 변화와 유배라는 거대한 벽에 부딪혔습니다. 그는 중앙 정계로 복귀하여 자신의 결백을 입증하려 억지로 매달리지 않았습니다. 대신 그는 정계 복귀라는 길이 막혔음을 냉정하게 수용했습니다. 다산은 학자로서의 길이라는 '다른 길'을 선택했습니다. 그는 18년의 유배 기간 동안 500여 권에 달하는 방대한 저술을 남겼습니다. 자신의 처지를 비관하거나 과거에 집착하지 않았기에 가능한 성취였습니다. 고통을 수용한 태도는 그를 단순한 정치인이 아닌 시대를 밝히는 석학으로 만들었습니다. (출처: 박석무, 『다산 정약용 유배지에서 보낸 편지』, 창비, 2009)
빅터 프랑클의 선택이 만든 의미의 발견
서구의 사례로는 심리학자 빅터 프랑클을 들 수 있습니다. 그는 나치 강제 수용소라는 극한의 한계 상황에 놓였습니다. 그는 강제 수용이라는 현실을 부정하거나 물리적인 힘으로 극복하려 하지 않았습니다. 대신 그는 신체적 자유가 박탈된 현실을 수용했습니다. 그 안에서 그는 '내면의 자유'라는 다른 길을 찾았습니다. 수용소 안에서도 인간은 자신의 태도를 결정할 권리가 있음을 깨달은 것입니다. 이러한 수용은 훗날 '로고테라피(의미치료)'라는 새로운 심리학적 지평을 열었습니다. 자신의 한계를 직시하고 수용한 명석함이 인류에게 위대한 치유의 도구를 선사했습니다. (출처: 빅터 프랑클, 『죽음의 수용소에서』, 청아출판사, 2005)
활동가와 복지인을 위한 지혜의 연대
시민사회 활동가와 사회복지 종사자들은 종종 모든 문제를 해결해야 한다는 희생적 강박이 다가올 때가 많습니다. 하지만 모든 일을 다 잘할 수 없고, 모든 주민을 만족시킬 수도 없습니다. 그리고 참여자들 대부분이 만족스러우나 꼭 한 두명은 불만의 목소리가 클 때가 있습니다. 그런데 만족하는 대다수의 이용자나 참여자보다 불만족스러운 그 한 명에 집착하고, 괴로울 때가 많습니다. 하지만 내가 못하는 것과 우리 조직의 한계를 명확히 아는 것이 역량의 시작입니다. 한계를 인정할 때 비로소 타인과 협력할 공간이 생깁니다. 주민의 자발성을 믿고 동료의 강점을 빌려오는 유연함은 자기 수용에서 시작됩니다. 자신의 부족함을 수용하고 다른 길을 모색하는 태도는 지치지 않고 길게 걷는 지혜입니다. 든한 버팀목이 되기를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