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좋은글나눔 [時雨]

이어폰을 빼고 아이들의 '보석'을 보았다, 자크 데리다의 환대

강정모 소장 2015. 7. 13. 08:50

"환대는 편안함(at-home)의 해체이고, 해체는 타인에 대한 환대이다." , 자크 데리다(Jacques Derrida) -

 

데리다의 문장을 처음 접했을 때, 설익은 관념의 파편처럼 느껴져 외면하고 싶었다. 그러나 삶의 어떤 순간은 철학자의 난해한 문장을 명료한 실체로 번역해낸다. 2015년 어느 겨울날, 세 아이와 놀이터로 향했다. 아이들은 누군가 버리고 간 BB탄 알갱이를 보석처럼 주워 모았다. 대부분 흰색이었으나, 간혹 섞인 유색 알갱이를 발견할 때면 아이들은 환호했다. 당시 나는 이어폰을 꽂고 신문을 읽으며 '나만의 안락한 요새(at-home)'에 머물렀다. 보석을 자랑하러 달려오는 아이들에게 건성으로 응대했다. 반복되는 부름에 짜증이 스며들었다. 스무 번 넘는 부름 끝에 "너희끼리 놀면 안 되겠니?"라며 싸늘한 방어벽을 쳤다. 그때 아이들의 얼굴에 스친 실망감이 나를 요새 밖으로 끌어냈다.

 

이어폰을 빼고 신문을 접어 가방에 넣었다. 단순한 동작이 아니었다. 주말의 평온함을 해체하는 의식이었다. 시선을 낮추자 보도블록 틈새에 박힌 플라스틱 조각이 비로소 보석으로 보였다. 아이들의 세계로 진입하는 일은 새로운 프로젝트를 기획할 때만큼이나 큰 에너지가 필요했다. 나를 해체해 타자의 세계에 닿자 비로소 진정한 우정이 시작됐다. 데리다의 수사는 이솝의 <여우와 황새>와 맥을 같이한다. 자신의 방식만을 고수한다면 상대는 결코 환대받을 수 없다. 나라는 그릇을 깨고 상대의 결에 맞추는 자기 해체 없이는, 우정도 환대도 불가능한 이상일 뿐이다.

함께 읽는 환대의 사유

  • 엠마누엘 레비나스: "타자의 얼굴을 마주하는 것은 나의 자유보다 타자의 호소를 우선하는 책임을 받아들이는 일이다."
  • 시몬 베유: "타인에게 관심을 기울이는 것은 자신을 비워내는 일이며, 이는 가장 희귀하고 순수한 관대함이다."
  • 한나 아렌트: "복수성 속에서 산다는 것은 사적 영역을 넘어 공통의 세계로 나를 개방하는 모험을 전제로 한다."

비영리활동가를 위한 제언

비영리 활동은 타자의 필요를 나의 현장으로 초대하는 일이다. 진정한 연대는 자원을 나누는 시혜가 아니라, 내 안에 구축된 운동의 문법을 해체하여 타자가 들어올 자리를 만드는 과정이다. 환대는 익숙한 안락함을 포기하는 통증을 수반한다. 활동가의 전문성이 타자를 규정하는 권력이 되지 않도록 지속적으로 자신을 해체해야 한다. 나를 허물어 타자의 세계에 진입할 때 변화의 동력인 우정이 발생한다. 활동은 곧 나를 해체하여 세상을 환대하는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