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민교육콘텐츠연구소

사무실 번호 : 070-4898-2779 / 대표메일 : streamwk@gmail.com

좋은글나눔 [時雨]

11.장유유서(정인재)

강정모 소장 2015. 7. 13. 08:49

2011년 가을이었다. 심신이 소진되었다. 그 땐 종교가 직업이었다. 

산 날도 얼마 안 되는 데, 마른수건 짜듯 매주 지혜를 퍼대니 온몸이 아팠다. 
더군다나 그 해엔 셋째를 출산하고, 낯선 곳으로 이사하여 두통약을 달고 살았다.
아내와 다툼은 물론, 어린 아이들에게 화를 많이 냈다. 이렇게 살아선 안 되겠다 싶었다. 
그래서 11월 한 주, 공동체와 가정에 일방적으로 나 좀 쉬다 오겠다고 말하고
길희성 서강대 원로교수가 운영하는 강화도의 심도학사에 등록했다. 
뭘 배운다기 보다는 다른 사람, 다른 풍경, 다른 공기, 다른 말, 다른 주제를 만나고 싶었다. 
여건상 정인재 선생님이란 분의 프로그램만 되어, <중용> 강의를 듣게 되었다. 
당시 내용의 선택은 관심사가 아니었다. 도피. 그 자체가 목적이었다. 
동네 복덕방 할아버지같은 첫 인상의 그 분은 시종 푸근한 인상으로 지혜를 길어, 수강생들에게 전달하였다. 

조선에선 불온사상이었고, 학문으로도 비주류인 양명학을 연구한 선생은 
나에게 고릿한 느낌의 뭉텅이로만 알고 있던 고전을 신선하게 만들어 주셨다. 
한 자도 빠짐없이 노트에 적으려고 노력했다. 이 문장을 이렇게 해석하다니! 
조선이나 지금이나 보수나 주류는 참 싫어했겠다 싶다. 그런데 난 왜 그리 재밌던지...

3년이나 지난 지금도 잊지 않는 대목이다. 
장유유서. 

당시 노트를 퇴고하다 한 시가 자꾸 머리에 맴돌아 같이 새겨보았다. 
----------------------------------------------------------------------------------

양명학은 장유유서(長幼有序)’를 성리학과 다르게 해석합니다.

장유(長幼)는 나이의 많고 적음을 뜻하지 않습니다나이라면 노소(老少)라고 해야 합니다()는 차례나 순서를 의미하지만 담벽의 의미도 있습니다직역하면 어른과 아이 사이에는 담벽이 있다입니다

해석하면 인생의 담과 벽을 넘어간 사람이 어른이라는 뜻입니다즉 인생에서 자신이 져야 할 책임을 회피했다면 나이를 먹어도 어린이()나이가 적어도 삶의 고비를 당당히 직면했다면 어른()입니다.


정인재, <풍우란의 중국철학사 번역자고려대학교 원로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