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명학은 ‘장유유서(長幼有序)’를 성리학과 다르게 해석합니다.
장유(長幼)는 나이의 많고 적음을 뜻하지 않습니다.
나이라면 노소유서(老少有序)라고 해야 합니다.
서(序)는 차례나 순서를 의미하지만 담, 벽의 의미도 있습니다.
양명학적으로 해석하면 ‘어른과 아이 사이에는 담, 벽이 있다’입니다.
인생의 담과 벽을 넘어간 사람이 어른이라는 뜻입니다.
즉 인생에서 자신이 져야 할 책임을 회피했다면 나이를 먹어도 어린이(幼)며,
나이가 적어도 삶의 고비를 직면했다면 어른(長)일수 있습니다. / 정인재 고려대 명예교수
양명학은 장유(長幼)를 나이가 아닌 책임의 경계로 정의한다.
인생의 벽(序)을 마주하고 넘어서는 자가 어른(長)이다.
담쟁이, 도종환
저것은 벽
어쩔 수 없는 벽이라고 우리가 느낄 때
그때,
담쟁이는 말없이 그 벽을 오른다
물 한 방울 없고,
씨앗 한 톨 살아남을 수 없는
저것은 절망의 벽이라고 말할 때
담쟁이는
서두르지 않고 앞으로 나아간다.
한 뼘이라도 꼭 여럿이 함께
손을 잡고 올라간다.
푸르게 절망을 다 덮을 때까지
바로 그 절망을 놓지 않는다.
저것은 넘을 수 없는 벽이라고
고개를 떨구고 있을 때
담쟁이 잎 하나는
담쟁이 잎 수 천 개를 이끌고
결국 그 벽을 넘는다.

비영리 활동가에게 벽은 해결되지 않는 사회적 절망이자 한계다. 도종환의 담쟁이처럼 한 뼘씩, 여럿이 손을 잡고 나아갈 때 벽은 정복의 대상이 아닌 연대의 터전이 된다. 시대의 책임을 회피하지 않고 고통의 담을 직면하는 자가 이 시대의 진정한 어른이다. 절망을 푸르게 덮으며 끝내 벽을 넘는 연대가 우리를 성장시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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