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민교육콘텐츠연구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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좋은글나눔 [時雨]

12.환대와해체(데리다)

강정모 소장 2015. 7. 13. 08:50

환대는 편안함의 해체이고, 
해체는 타인에 대한 환대이다. 
Hospitality is the deconstruction of the at-home, 
Deconstruction is hospitality to the other.
- 데리다 -


이게 무슨말이지? 내가 데리다의 이 글조각을 만나던 날 이해불가하여 버릴까했다. 왠일인지 버리진 않았다. 그러던 어느날 구멍에 맞는 열쇠를 발견하듯 이해하게 되었다.

제법 쌀쌀한 어느 날 아이들과 밖에 나갔다. 세 명의 아이들은 놀이터에서 추위도 잊은듯 동네 형들이 쏘면서 놀았을 BB탄(피)를 구슬이라며 열심히 줍고 놀았다. 그 구슬(?)들의 대부분은 흰색이었다. 그러다 어쩌다 빨강색의 구슬이라도 발견하면 무슨 다이아몬드를 발견한듯 길길이 뛰었다. 그리고는 달려들어 이어폰 꼿고, 신문을 읽고 있는 나에게 경쟁하듯 자랑했다. 처음엔 '와~ 대단한데~' 했다. 그런데 그 놈의 색깔구슬이 왜 그리 많은지 빨강, 파랑, 녹색, 심지어 형광색도 있었다. 그런 별종들을 찾을 때마다 나에게 떼로 와서 감탄과 인정을 요구했다. 스무번도 넘기 시작하자 난 스멀스멀 짜증이 피어나기 시작했다.

스물 두번째 달려오기 시작했을때 난 '그냥 니들끼리 놀면 안 되니?'로 방어했다. 그 때 첫째와 둘째의 '...............예...급 실망감..'의 낯빛은 날 더 이상 앉아있지 못하게 만들었다. '에이..' 나는 귀에 꼿은 이어폰을 빼고, 신문을 접어 가방에 넣었다. 두더지처럼 땅과 보도블럭 사이를 쑤시는 아이들 뒤에 슬그머니 다가가 '요기도 있다' 말해 주었다. 그 때 아이들은 날 쳐다보고 반색하며 진귀한(?) 투명한 육각형 왕구슬까지 보여주었다.(그건 어느 여자아이 목걸이가 해체되어 떨어져 나간 플라스틱 구슬이다) 난 녀석들의 표정을 따라하며 엄지손가락을 치켜주었다.

아이들은 놀고, 난 뒤에서 이어폰 꼿고, 따뜻한 커피를 들고, 조용히 책을 탐독하는 그 편안함(at-home)을 해체하여 아이들과 관계하였다. 난 환대의 에너지를 던졌고, 아이들은 자신들의 세계로 우정의 초대를 하였다. 날 해체하여 구슬의 세계로 진입하기 위해선 새로운 분야의 강의 콘텐츠를 의뢰받았을 때 버금가는 에너지를 필요로 한다. 그날 한 두 시간 함께 한 구슬줍기는 작은 사이더패트병 반통을 채웠다. 난 30년전 초등학생 시절 비비탄 장난감과의 추억을 더듬을 수 있었다. 40대의 어느하루의 나를 해체하지 않고선 불가능한 일이었다.

데리다는 어렵게 구성했지만 이솝은 이야기로 재미있게 얘기했다. 외워서 들려주는몇 안 되는 이야기 중에 음식을 대접한 접시에 관한 <여우와 황새> 이야기가 있다.

우정과 환대가 타자에 대한 위대한 행위인 것은 자기 해체가 아니고선 도달하거나 지속하기 어렵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