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택의 고통과 '결정 피로'의 함정
심리학자 로이 바우마이스터(Roy Baumeister)는 흥미로운 실험을 통해 인간의 의지력이 유한한 자원임을 증명했다. 그는 실험 참가자들을 두 그룹으로 나누어 한 그룹에는 달콤한 초콜릿을 주며 참게 했고, 다른 그룹은 마음껏 먹게 했다. 이후 풀리지 않는 퍼즐을 풀게 했을 때, 초콜릿을 참느라 의지력을 소진한 그룹은 훨씬 빨리 포기했다. 이를 '자아 고갈(Ego Depletion)'이라 부른다. 사색하고, 생각하고, 선택하고, 그 선택에 대해 책임지는 것은 힘들고 에너지가 많이 든다. 리더의 자리가 본질적으로 고독하고 힘든 과학적 이유다.
조선의 왕, 권력자가 아닌 '극한의 수험생'
우리는 흔히 사극을 보며 왕이 되어 호령하는 상상을 한다. 권력의 달콤함과 관능적 상상에 빠지는 것이다. 하지만 실제 조선 왕의 하루는 우리가 상상하는 것과 달랐다. 밤 11시에 잠들어 새벽 5시에 기상한다. 눈 비비고 일어나 왕실 어른께 문안을 드리고 나면, 그때부터 공부가 시작된다. 아침 공부(주강), 점심 공부(주강), 저녁 공부(석강)에 이어 밤에는 밀린 보고를 받고 결재를 한다. 왕은 평생 입시생처럼 살았다. 권력을 휘두르는 시간이 아니라, 공부하고 또 공부하며 자신의 권력이 제대로 쓰이고 있는지 살피는 시간이었다. 주인으로 산다는 건 책임을 수반한다. 책임을 지려면 그에 걸맞은 실력을 갖춰야 하기 때문이다. 조선의 왕들이 그토록 단명하고 예민했던 이유는 바로 끊임없는 선택과 책임이 주는 중압감 때문이었을 것이다.
https://www.youtube.com/watch?v=udwmpSIpSU4

현장의 갈등: "좋은 게 좋은 거니, 선생님이 다 알아서 해줘요"
마을 복지 계획을 수립하거나 주민 예산 분배를 논의하는 회의 현장에서, 사회복지사들이 가장 힘들게 마주하는 장면이 있다. 겉으로는 민주적인 절차를 밟는 듯 보이지만, 결정적인 순간마다 주민 리더는 교묘하게 책임을 회피한다.
"아유, 선생님. 이걸 굳이 우리보고 정하라고 하면 어떡해요? 복지관에서 늘 하던 전문적인 방식이 있을 텐데, 선생님이 딱 정리해서 가져오면 우리가 추인만 하면 되잖아요. 내가 괜히 여기서 한마디 했다가 나중에 동네 사람들에게 무슨 소리를 들으려고요. 책임지기 싫어서가 아니라, 좋은 게 좋은 거니까 복지관 지침대로 갑시다. 전문가인 선생님이 결정해 주면 우리는 그저 믿고 따를게요. 그게 우리를 도와주는 거 아니겠어요?"
이 짧은 대화 속에는 거리의 철학자 에릭 호퍼가 말한 '자유의 두려움'이 숨어 있다 . 자유를 누리기 위해서는 생각하고, 배우고, 선택을 위해 노심초사하며 그 결과에 책임을 져야 한다. 하지만 인간은 막상 자유가 주어지면 밀려오는 두려움을 견디기 힘들어 한다. 결국 익숙한 의존적 관계, 즉 시키는 대로 하는 삶으로 회귀하려는 본성이 작동한다. 이런 태도는 정서적 미독립 상태에 원인이 있다. 독립적이지 못한 사람은 자기중심적으로 정보를 해석한다. 소통이 단절되고 갈등이 깊어지는 원인은 여기에 있다.
리더의 진짜 업무는 '일'이 아니라 '사유'다
리더가 된다는 건 '선택'해야 할 일이 많아진다는 뜻이다. 최선의 선택을 하려면 생각할 시간을 더 할애해야 한다. 생각을 '잘' 하려면 도구가 필요한데, 그것이 바로 '언어'와 '지식'이다. 직위가 올라간 만큼 언어와 개념 확보에 시간과 역량을 투여해야 풍성하고 윤택한 생각을 할 수 있다. 주민 리더가 선택을 위한 사유와 토론과 대신 '실무적인 일'로만 시간을 채우려 하면, 성과와 행복한 조직으로 나아가기 어렵다. 주민조직을 담당하는 사회복지사와 주민리더의 역할은 행사장을 뛰어다니는 것이 아니다. 일상 업무를 독서와 질문, 그리고 생각과 질문이 필요하다. 조직과 마을의 방향을 고민하고, 구성원에게 적합한 질문을 던지며, 결정에 대한 책임을 지는 것이야말로 리더의 역할이다.

홀로 섦을 지원하는 사업, 민주주의의 실습장
인문학의 목적은 '홀로 섦'이다. 이는 단순히 물리적인 독립을 넘어, 내가 누구인지 정확히 알고 스스로 사유하며 선택의 결과인 '자유의 두려움'을 마주해 나가는 과정이다. 사업의 본질은 가시적인 행사 성과를 내는 것이 아니다. 주민 개개인이 자기 삶과 공동체의 주인으로 바로 서는 '사유의 힘'을 기르도록 돕는 것이 사업의 진정한 방향이어야 한다. 사회복지기관은 시민들이 지속적으로 자기 학습을 하도록 촉진하는 교육기관이 되어야 한다. 주민조직 프로그램은 주민들이 선택의 고통을 함께 나누고 책임을 학습하는 민주주의의 학교다. 사회복지사는 주민들이 선택과 책임의 두려움으로 의존의 익숙함으로 숨어들지 않도록, 그들에게 풍성한 사유의 도구인 '언어'와 '개념'을 전달하는 역할을 수행해야 한다. 비록 변화가 더디고 때로는 주민의 의존이 무겁게 느껴질지라도, 여러분이 닦아놓은 그 길을 통해 비로소 시민은 독립된 주체로 성장한다. 여러분의 헌신적인 하루가 곧 우리 사회의 민주주의를 일궈내는 여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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