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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구소칼럼[콩나물시루]

[주민자치칼럼] 운이 지배하는 사회를 넘어, 예측 가능한 공익의 숲으로

강정모 소장 2026. 1. 30. 18:12

편안한 사적 일상과 고단한 공적 역할 사이의 긴장

사람은 누구나 자기만의 방에 들어서는 순간 비로소 편안한 숨을 쉬게 됩니다. 하루 종일 일터의 공적 영역에서 옥죄었던 허리띠를 풀어 던지고, 몸을 널브러뜨린 채 사적인 공간이 주는 안온함을 만끽합니다. 그곳에서는 표정을 관리할 필요도, 타인의 기대를 충족시킬 이유도 없습니다. 희로애락의 감정을 있는 그대로 분출하며 나 자신으로 돌아가는 시간, 그것은 우리에게 가장 익숙하고 편안한 사적 영역의 풍경입니다. 하지만 마을의 대표라는 이름으로 대문을 나서는 순간, 우리는 전혀 다른 중력을 마주하게 됩니다. 주민자치회 위원이라는 직함은 읍면동에서 공무원 다음으로 '권한'을 가진 자리이자, 그만큼의 신중함과 배려를 요청받는 공적 영역입니다. 때로는 웃기 싫어도 미소를 지어야 하고, 내 의견보다 주민의 목소리에 먼저 귀를 기울여야 하며, 동료위원의 반대의견에 타협하고, 절충할 생각의 수고를 해야 합니다. 이처럼 공적인 활동은 피곤하고 긴장되는 일입니다. 사적인 것은 본능에 가깝지만, 공적인 것은 부단한 훈련과 역량을 필요로 하기 때문입니다.

https://phys.org/news/2022-04-society.html / 사진출처

공적 근육을 단련하는 정기적 교육의 필연성

주민자치 위원으로 활동하는 2년의 임기는 이 낯설고 고단한 공적 영역에 머무는 시간입니다. 그러나 인간의 본성은 중력처럼 자꾸만 편안한 사적 영역으로 기울어지게 마련입니다. 공적 지위와 역할의 수행하는 근육의 힘이 약하게 되면 사적인 친분이나 이익의 수단으로 기울어지게 되고, 마을 공동체에는 균열이 생기고 예기치 못한 사고나 갈등이 발생합니다. 그 책임의 대가는 가볍지 않습니다. 우리가 정기적인 교육을 받고 공적 역량을 강화해야 하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습니다. 공적인 태도는 저절로 생겨나지 않습니다. 그것은 마치 정원을 가꾸듯 꾸준히 배우고 익혀야 하는 역량입니다. 주민자치 사업을 설계할 때 사심을 내려놓고 공익의 관점을 견지하는 것, 갈등의 현장에서 합리적인 합의를 이끌어내는 리더십은 반복된 학습과 사유의 훈련을 통해서만 완성됩니다. 따라서 바쁜 일상 속에서도 교육의 자리를 지키는 것은 마을 대표로서의 품격을 유지하고, 공적 책임의 무게를 견뎌내기 위한 가장 기본적인 준비입니다.

가장 낮은 곳을 향한 시선이 우리 모두의 안전망이 되는 이유

마을의 사업을 구상할 때 우리는 종종 효율성의 함정에 빠지곤 합니다. 그러나 공익은 가장 낮은 곳을 향한 시선에서 시작됩니다. 마을의 소수자와 취약계층을 먼저 고려하는 설계는 특정 계층을 위한 시혜가 아니라, 우리 공동체 전체를 위한 가장 확실한 보험을 드는 과정입니다. 왜냐하면 우리 모두는 사회적 취약계층과 소수자가 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우리지역의 모든 버스를 저상버스로 바꾸고, 공공기관마다 경사로를 설치하는 일을 생각해 봅시다. 평소 건강한 사람에게는 이러한 예산 집행이 나와는 먼 이야기처럼 보일지 모릅니다. 하지만 운동을 하다 예기치 않게 다리를 다치거나, 세월이 흘러 무릎이 아파지는 순간, 저상버스의 낮은 발판과 완만한 경사로는 비로소 나의 절실한 일상 문제로 다가옵니다. 소수자를 위한 배려는 이처럼 언젠가 마주할 나의 불편함을 미리 제거하는 지혜로운 공적 투자입니다.

 

https://www.re-thinkingthefuture.com/architectural-community/a4728-universal-design-architecture/사진출처

 

정보와 환경의 영역에서도 이 원리는 동일하게 작동합니다. 디지털 기기가 서툰 어르신을 위해 키오스크의 인터페이스를 단순화하거나 복잡한 행정 서류를 쉬운 우리말로 바꾸는 사업은 정보 취약계층만을 위한 것이 아닙니다. 직관적이고 쉬운 시스템은 바쁜 직장인의 처리 시간을 단축하고, 누구나 법적 혜택에서 소외되지 않게 돕는 공동체의 유익이 됩니다. 또한, 아이들과 여성들의 안전을 위해 골목길의 조명을 밝히고 안심 보행로를 조성하는 일은 술 취한 성인이 발을 헛디디지 않게 돕고 잠재적인 범죄의 틈을 예방합니다. 가장 약한 이의 보행 속도에 맞추어 길을 다듬을 때, 그 길은 비로소 그 누구도 불안해하지 않는 예측 가능한 안전한 길이 됩니다. 이처럼 공익성이란 사적인 이익의 경계를 넘어 우리 모두의 안전망을 촘촘하게 엮어내는 살아 움직이는 공동체의 실천입니다.

싱가포르에 조성한 인에이블링 빌리지 © Archdaily 홀 외곽을 따라 뻗어 있는 110미터 길이의 경사로 © www.aart.dk Musholm의 다목적 홀 © Archdaily 산타모니카의 통바 공원(Tongva Park)과 켄 겐저 광장(Ken Genser Square) © ASLA 밴쿠버 롭슨 광장의 계단과 경사로가 혼합된 모습 © Pinterest 확장되고 보호 기능을 갖춘 마틴 루터 킹 주니어 지역 해안 공원을 즐기는 주민들. 올 베이 콜렉티브, 에스추어리 커먼스, 2017년 레질리언트 바이 디자인 베이 에어리어 챌린지 제안 조감도. 위에서 내려다 본 '스페이스살림'. 서울시여성가족재단(우측 건물)과 연결된 다리가 있다. ⓒ유니트유에이 가산디지털단지역 일대 개선 후 모습 (사진=서울시 제공)

‘운’의 지배를 넘어 ‘합리성’이 주도하는 문명사회로

공적 마인드가 부재한 사회는 오직 ‘운’이 지배하는 사회입니다. 학교에 화재가 났을 때 내 자녀가 무사히 구출된 상황을 가정해 봅시다. 내 아이가 살아남은 것이 오로지 행운에만 의존한 결과라면, 우리는 평생을 불안 속에서 살아야 합니다. 만약 우리가 내 아이의 친구들과 그 세대 전체의 안전 시스템을 고민하지 않는다면, 우리 아이의 생명 또한 언제든 불운의 희생자가 될 수 있기 때문입니다.불과 수십 년 전까지만 해도 우리네 거실에는 ‘오늘도 무사히’라는 글귀가 걸려 있었습니다. 그것은 재난과 사고가 개인의 운에 달려 있던 시대의 절박한 기도였습니다. 하지만 민주주의와 시민 참여의 역사는 이 ‘운’의 영역을 ‘합리적 예측’의 영역으로 옮겨오는 치열한 투쟁의 과정이었습니다. 주민자치 위원들이 자신의 사적인 시간과 에너지를 쪼개어 마을을 돌보는 이유는, 우리 마을을 운이 좋으면 살아남고 운이 나쁘면 피해를 입는 약육강식의 원리를 남겨두지 않기 위함입니다. 우리가 기울이는 공적인 노력이 쌓일 때, 우리 사회는 비로소 내일의 안전을 계획할 수 있는 문명화된 공동체로 진화합니다.

후손에게 빌려온 마을이라는 정원을 가꾸는 마음

우리가 오늘 걷고 있는 도로, 우리가 숨 쉬는 공기, 우리 마을의 산과 강은 누구의 것입니까?. 소설가 생텍쥐페리는 이를 두고 "후손에게 잠시 빌려온 것"이라 표현했습니다. 빌려온 물건은 사용하지 않은 듯 깨끗이 보존하여 돌려주는 것이 마땅한 도리입니다. 마을의 크고 작은 공공재를 살피고 지속 가능하게 가꾸는 모든 활동은 바로 미래 세대를 위한 우리의 약속입니다읍면동의 대표로서 공적인 자리를 지키는 일은 때로 버겁고 무거운 책임감을 요구합니다. 그러나 그 불편함을 기꺼이 감내하며 내딛는 위원님들의 한 걸음이 우리 마을을 더욱 따뜻하고 안전한 곳으로 만듭니다. 위원님들이 견지하는 공적 태도와 활동은 우리 아이들이 살아갈 세상을 약육강식의 논리가 지배하는 삭막한 정글이 아닌, 합리성과 배려가 흐르는 기름진 토양으로 가꾸는 자양분이 될 것입니다. 오늘도 마을이라는 정원을 묵묵히 가꾸시는 위원님들의 노고에 깊은 존경을 표하며, 공익의 가치가 위원님들의 활동 속에서 찬란하게 꽃피우길 기대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