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 가지 어긋남, 그럼에도 시도해야 하는 이유
프랑스의 작가 베르나르 베르베르는 그의 저서 <상상력 사전>에서 소통이 왜 그토록 어려운지를 열 가지 단계로 정의했습니다. 내 머릿속의 생각이 상대의 가슴에 닿기까지, 우리는 다음과 같은 겹겹의 장애물을 통과해야 합니다.
- 내가 생각하는 것
- 내가 말하고 싶어 하는 것
- 내가 말하고 있다고 믿는 것
- 내가 실제로 말하는 것
- 당신이 듣고 싶어 하는 것
- 당신이 듣고 있다고 믿는 것
- 당신이 실제로 듣는 것
- 당신이 이해하고 싶어 하는 것
- 당신이 이해하고 있다고 믿는 것
- 당신이 실제로 이해하는 것
내 생각과 상대방의 이해 사이에는 상당한 거리가 존재합니다. 우리가 흔히 겪는 "내 말은 그게 아닌데"라는 탄식은 이 간극에서 비롯됩니다. 소통은 정보 전달이 아닙니다. 상대의 '주파수'를 맞추어가는 피곤한 과정입니다. 주민자치와 지역 복지의 현장에서 갈등이 끊이지 않는 이유는 이 열 가지 가능성이 있기 때문입니다. 소통은 기술이 아니라, 상대의 주파수에 내 마음을 맞추려는 겸손에서 시작됩니다.

달변의 허공을 메우는 진심의 무게: 현장의 역동적 사례
한 동(洞)에서 열린 '주민참여예산 의제 발굴 워크숍' 현장이었습니다. 테이블에는 지역에서 수십 년간 활동해온 베테랑 위원들과 평범한 주민들이 섞여 앉았습니다. 이날 소통의 단절을 보여준 장면이 있었습니다. 전직 대기업 임원 출신의 A 위원은 화려한 프레젠테이션 기술을 동원해 마을의 주차 문제를 분석했습니다. 그는 수치화된 데이터와 세련된 논리로 공영주차장 확충의 당위성을 설파했습니다. 그의 발언은 완벽했고, 논리는 빈틈이 없었습니다. 그는 자신이 '정확하게 말하고 있다'고 믿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15분간 이어진 그의 '강연' 동안 주민들의 눈빛은 점점 생기를 잃어갔습니다. 주민들은 그가 '말하고 싶어 하는 것' 대신, 자신들이 '듣고 싶지 않은 훈계'를 들었습니다. 소통이 아니라 일방적인 '투사'였기 때문입니다. 주민들은 유창함에 압도당했고, 피로가 쌓여갔습니다.
그 침묵을 깨뜨린 것은 평소 말수가 적던 주민 B씨였습니다. 그는 떨리는 목소리로 입을 뗐습니다. "저는 주차장 숫자 같은 건 잘 모릅니다. 그런데 어제 퇴근길에 우리 집 앞 골목에서 한 아이가 불법 주차된 차 사이에서 툭 튀어나오는 걸 보고 심장이 내려앉는 줄 알았습니다. 저는 우리 아이들이 학교 다녀올 때 가슴 졸이지 않는 마을이었으면 좋겠습니다." 순간 회의실의 공기가 바뀌었습니다. 세련된 분석표에는 반응하지 않던 주민들이 저마다 자신의 경험을 쏟아내기 시작했습니다. "맞아요, 우리 손주도 그 길로 다녀요", "그 골목 가로등도 너무 어둡더라고요". 논리적인 A 위원의 말은 '정보'로 끝났지만, 서툰 B 씨의 말은 주민들의 '이해하고 싶은 마음'에 정확히 접속했습니다. 소통은 머리보다 가슴으로 이어지는 주파수 맞추기임을 보여준 순간이었습니다.
소통은 생존의 다른 이름이다
신성로마제국의 프리드리히 2세는 인간 본연의 언어를 찾기 위해 잔혹한 실험을 감행했습니다. 갓 태어난 아기들을 격리한 채, 먹이고 씻기되 절대로 말을 걸거나 신체적으로 접촉하지 못하게 했습니다. 황제는 아이들이 자라나면 신의 언어나 고대 히브리어로 말할 것이라 믿었습니다. 결과는 참담했습니다. 아이들은 어떤 언어도 배우지 못했을 뿐 아니라, 원인 모를 쇠약 증세를 보이다 모두 사망했습니다. 인간은 소통 없이 살 수 없는 존재임을 증명한 비극입니다.
이 실험은 우리에게 서늘한 질문을 던집니다. 지금 우리 마을의 주민들은 서로의 안부를 묻고 있습니까? 지역사회 안에서 누군가와 연결되어 있다는 감각은 친목을 넘어 생존의 필수 조건입니다. 소통이 단절된 마을은 프리드리히 2세의 실험실 속 아기들처럼 서서히 활기를 잃어가게 됩니다. 우리가 현장에서 주민들을 조직하고 대화의 장을 만드는 행위는, 단순한 행정 절차가 아니라 마을이라는 생명체를 살리는 호흡입니다.
박수 소리 뒤에 가려진 비명: '일상의 나'와 '본연의 나'
소통의 과제는 타인에게만 향하지 않습니다. 어쩌면 가장 치열한 소통은 '나와 나의 대화'일 것입니다. 다른 맥락으로 '일상의 나'와 '본연의 나'의 연결이 유지되어야 합니다. 현장에서 우리는 아빠, 엄마, 팀장, 사회복지사, 주민대표라는 사회적 가면을 쓰고 살아갑니다. 이것이 '일상의 나'입니다. 지역에서 활동하는 15년 차 베테랑 사회복지사 C 팀장의 사례입니다. 그는 지난달 큰 마을 축제를 성공적으로 마쳤습니다. 뒤풀이 자리에서 주민들은 그를 향해 "역시 C 팀장 없으면 우리 마을은 안 돌아가!", "마을의 해결사야!"라며 엄지를 치켜세웠습니다. 그는 '일상의 나'인 팀장으로서 활짝 웃으며 건배를 제의하고, 주민들의 한풀이를 들어주며 세심하게 사업의 마무리를 해냈습니다.
하지만 뒤풀이가 끝나고 모두가 떠난 밤, 텅 빈 행사장 구석에 홀로 앉은 그의 표정은 힘들었습니다. 주민들의 갈등 주파수에는 그토록 기민하게 반응하던 그였지만, 정작 축제 내내 가슴 깊은 곳에서 "그만하고 싶다, 너무 힘들다"라고 외치던 '본연의 나'의 주파수는 무시했기 때문입니다. 사회적 역할자가 깊어질수록, 그 안의 인간 C는 질식하고 있었습니다. 그는 집에 돌아와 거울 앞에 서서야 비로소 깨달았습니다. 자신은 마을을 살리느라 정작 자신의 목소리는 사라져가고 있었다는 사실을 말입니다. '일상의 나'와 '본연의 나'가 소통의 끈을 놓쳤을 때, 박수 소리는 공허한 소음이 될 뿐입니다. '나에게 말 걸기'는 소진된 활동가들이 다시 숨을 쉬기 위한 생존의 시도이자 부활의 시작입니다.
주파수를 맞추는 모든 이들에게 보내는 응원
현장에서 주민들의 갈등을 중재하고 지역의 복지를 책임지는 사회복지사와 활동가 여러분. 여러분은 매일 소통의 전쟁터에서 분투하고 있습니다. 내 진심이 벽에 부딪히는 것 같아 좌절하고, 유창한 말들 사이에서 길을 잃기도 할 것입니다. 베르베르가 말한 열 가지 어긋남은 여러분의 잘못이 아닙니다. 그것은 인간 존재의 한계입니다. 하지만 그 불가능해 보이는 간극을 메우기 위해 시도하는 여러분의 진심 한 마디가, 열 명의 달변가보다 더 깊은 변화를 만들어냅니다.
여러분이 주민의 눈을 맞추고 그들의 투박한 목소리에 귀를 기울이는 그 순간이 생명의 온기를 불어넣는 시간입니다. 타인의 주파수를 맞추기 전, 오늘 저녁에는 먼저 자신에게 말을 걸어보십시오. "오늘 하루, 나의 '본연'은 안녕했는가?"라고 말입니다. 소통은 어렵습니다. 어쩌면 불가능할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포기하지 않고 주파수를 맞추려 애쓰는 여러분의 뒷모습이 지역의 희망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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