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민교육콘텐츠연구소

사무실 번호 : 070-4898-2779 / 대표메일 : streamwk@gmail.com

연구소칼럼[콩나물시루]

도전과 자기제한의 균형 : 도전과 머무름을 교차하는 지혜

강정모 소장 2026. 3. 2. 14:56

벼룩의 도약을 가로막는 무형의 유리판

자신의 몸길이보다 수백 배를 뛰어오르는 벼룩은 자연계 최고의 도약 선수입니다. 하지만 빈 어항에 넣고 유리판으로 입구를 막으면 상황은 달라집니다. 유리판에 부딪히며 통증을 느낀 벼룩은 이내 유리판 높이까지만 뛰도록 자신의 능력을 스스로 제한합니다. 나중에 유리판을 치워도 벼룩은 더 이상 높이 뛰지 않습니다. 베르나르 베르베르는 그의 저서 『상상력 사전』에서 이를 통해 길들여진 한계가 얼마나 무서운지를 경고합니다. 우리 사회의 견고한 시스템과 타성이 활동가들의 가능성을 이 유리판처럼 가로막고 있는 것은 아닌지 되돌아보게 합니다.

환경에 따라 크기를 바꾸는 코이의 법칙

일본의 비단잉어 '코이'는 환경에 따라 성장의 크기가 결정됩니다. 작은 어항에서는 7cm밖에 자라지 못하지만, 넓은 강물에 방류하면 1m가 넘는 대어가 됩니다. 자신이 처한 환경에 따라 성장의 한계를 스스로 규정하는 것입니다. 과거 신자유주의가 득세하던 시절, 이 예화는 리더십 강의의 단골 소재였습니다. '야망을 가져라', '큰 물에서 놀아라'는 메시지는 무한 경쟁을 부추기는 도구로 쓰이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이 비유의 본질은 무조건적인 확장이 아닙니다. 내가 어떤 환경을 선택하고 그 안에서 어떤 가능성을 발견할 것인가에 대한 실존적인 질문으로 읽어야 합니다.

찰리 멍거와 버핏이 말하는 능력의 범위

투자의 귀재 워런 버핏은 '능력의 범위(Circle of Competence)'를 강조합니다. 자신의 능력이 어디까지인지 명확히 알고 그 경계 안에서 머무르라는 조언입니다. 롤프 도벨리는 『불행 피하기 기술』에서 이 개념을 재조명합니다. 범위의 크기보다 중요한 것은 경계의 끝을 아는 것입니다. 자신의 전문 영역 밖에서 요행을 바라는 것은 위험합니다. 경쟁이 치열한 세상에서 '괜찮은' 전문가보다 '능력의 범위'를 지키는 최고 수준의 전문가가 문제를 해결하는 속도는 천 배 이상 빠릅니다. 이 안에서만 우리는 비로소 안전한 항해와 깊이 있는 성취를 이룰 수 있습니다.

경계를 넘어서는 유혹과 상실의 비용

우리는 종종 작은 성공의 취기에 취해 자신이 설정한 안전한 경계를 망각하곤 합니다. 과거 글로벌 필름 시장을 지배했던 기업들이 디지털 전환이라는 본질적 혁신 대신, 자신들의 영향력을 과신하며 무리하게 이질적인 사업으로 몸집을 불리다 시장에서 자취를 감춘 사례는 시사하는 바가 큽니다. 자신의 강점이 발휘되던 숙련된 영역을 벗어나 충분한 성찰 없이 익숙하지 않은 '위험지대'로 진입할 때, 공들여 쌓아온 사회적 신뢰와 자산은 쉽게 휘발됩니다. 인생의 후반부에 접어들수록 우리를 지배하기 쉬운 감정은 성취를 향한 과도한 집착입니다. 멈춰야 할 때를 분별하지 못하고 자신의 범위를 무리하게 확장하려는 시도는 때로 감당하기 어려운 결과를 초래합니다. 안다고 착각하지만 실제로는 모르는 영역에 성급히 발을 들이는 순간, 우리는 그동안 지켜온 가장 소중한 가치들을 잃게 됩니다.

 

https://www.indiehackers.com/@princely/5912e4904f(사진출처)

청년의 도약과 중년의 수렴

인생의 단계에 따라 우리는 두 가지 메시지를 전략적으로 수용해야 합니다. 10대에서 30대까지는 벼룩과 코이처럼 유리판을 치우고 강물로 나가는 도전이 필요합니다. 라캉이 말했듯 '내 욕망은 타자의 욕망'이기 쉬운 시기입니다. 부모나 사회가 설정한 경계를 넘어 직접 부딪히고 깨져봐야 합니다. 그래야 비로소 자신이 무엇을 잘하고 무엇에 설레는지 알 수 있습니다. 이 과정을 통해 스스로를 구성하고 선택하는 사람이 바로 '시민'입니다. 국민은 태어나지만, 시민은 스스로의 선택과 책임으로 만들어지는 존재이기 때문입니다.

조직의 비전과 사명 사이의 균형

비영리 조직도 마찬가지입니다. 초기 조직은 비전을 확장하며 다양한 실험과 도전을 멈추지 않아야 합니다. 조직의 역량과 적합성을 파악하는 탐색기가 필요하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조직이 궤도에 오른 후에는 비전보다 사명에 집중해야 합니다. 설립 목적이라는 '능력의 범위' 안에 머물며 변화시켜야 할 핵심 과제에 화력을 집중해야 합니다. 사명을 잊고 유행하는 사업에 기웃거리는 조직은 정체성을 잃은 이익 집단으로 전락하기 쉽습니다. 좁지만 깊은 우물을 파는 조직만이 지역사회에 지속 가능한 영향력을 발휘합니다.

진정한 야망은 인간다움의 회복

윌리엄 스미스 클라크 박사가 남긴 "소년이여 야망을 가져라(Boys, be ambitious!)" 명언의 원문은 우리가 아는 내용과 사뭇 다릅니다.

"Boys, be ambitious! Be ambitious not for money or for selfish aggrandizement, not for that evanescent thing which men call fame. Be ambitious for the attainment of all that a man ought to be."

(소년이여, 야망을 가져라! 돈을 위해서도 말고, 이기적인 성취를 위해서도 말고, 사람들이 명성이라 부르는 그 덧없는 것을 위해서도 말고, 단지 인간이 갖추어야 할 모든 것을 얻기 위해 야망을 가져라.)

 

그동안 우리 사회는 이 문장의 대부분을 잘라서 사용했습니다. 뒤에 붙은 준엄한 내용을 지우고 '야망'이라는 단어만 소비했습니다. 성취와 명성을 추구하는 것을 야망이라 여겼고, 그렇게 사용되었습니다. 하지만 일본의 농업을 혁신시켰던 클라크 박사가 제시한 야망은 타인 위에 군림하는 것이 아니었습니다. 한 인간으로서 마땅히 도달해야 할 존엄과 가치를 회복이었습니다. 자신을 아는 공부는 이를 위한 평생의 과업입니다. 특히 시민단체 활동가와 사회복지 종사자들에게 이 지혜는 더 필요합니다. 주민 조직과 지역 복지의 현장에서 우리는 가시적인 성과에 쫓겨 벼룩처럼 가두거나, 때로는 과도한 욕심으로 본질을 잃기도 하기 때문입니다.

지혜와 역량을 수렴하는 활동가의 길

이제 우리는 도약의 열정과 머무름의 지혜를 한데 모아야 합니다. 젊은 시절의 방황과 도전이 '나'라는 존재의 지도를 그리는 과정이었다면, 중년 이후의 활동은 그 지도 위에서 가장 잘할 수 있는 곳에 깊은 뿌리를 내리는 과정입니다. 지역 복지 현장의 사회복지사들은 주민의 삶이라는 거대한 강물 속에서 코이처럼 성장하되, 자신의 전문성과 윤리라는 '능력의 범위'를 단단히 지켜내야 합니다. 무분별한 확장이 아닌, 내실 있는 수렴을 통해 지혜와 경륜을 축적할 때 비로소 우리는 세상을 바꾸는 실질적인 힘을 갖게 됩니다. 그것이 바로 우리가 지향해야 할 진정한 시민의 얼굴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