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역사회의 변화를 이끄는 강력한 동력은 무엇일까요? 자본이나 정교한 행정 시스템을 떠올리기 쉽지만, 그간 풀뿌리 민주주의와 마을 공동체 현장을 지켜보며 내린 결론은 시민들의 ‘자발적이고 주체적인 참여’입니다. 우리는 이를 '자원봉사'라 부릅니다. 최근 민관협력과 주민참여 사업이 확대되면서 현장에서는 딜레마가 발생합니다. “자원봉사자들의 지속적인 참여를 독려하기 위해 소정의 활동 실비나 수당을 지급해야 하는 것 아닌가?”라는 질문입니다. 표면적으로는 자원봉사자에 대한 예우와 합리적 보상처럼 들리는 이 질문은, 실상 자원봉사의 가장 중요한 본질인 ‘무보수성’의 효과를 간과하고, 공동체의 자발적 동인을 저하시키는 함정을 내포하고 있습니다. 자원봉사가 유급이 되는 순간, 그것은 더 이상 시민적 연대가 아닌 ‘값싼 노동’이자 ‘단기 아르바이트’로 전락할 가능성이 있습니다. 금전적 보상이 어떻게 시민의 고귀한 선의를 변질시키는지, 현대 심리학과 행동경제학, 그리고 뇌과학의 실험과 해외 사례를 통해 그 이유를 살펴보고자 합니다.

인센티브의 역설: 내적 동기를 파괴하는 ‘과잉 정당화 효과’
자원봉사에 금전적 보상을 도입하는 것이 왜 위험한지 설명하는 첫 번째 근거는 심리학의 ‘과잉 정당화 효과(Overjustification Effect)’입니다. 인간의 동기는 외부에서 주어지는 보상(외적 동기)이 개입될 때, 스스로 우러나오는 흥미나 보람(내적 동기)이 억압되는 특성을 지닙니다.
[실험 과정과 결과] 이 현상을 증명한 로체스터 대학교의 심리학자 에드워드 데시(Edward Deci)의 1971년 ‘소마 큐브(Soma Cube) 실험’은 동기부여 이론의 고전으로 불립니다. 데시는 대학생들을 두 그룹으로 나누어 3일간 퍼즐 맞추기를 시켰습니다.
- A그룹(통제집단): 3일 내내 아무런 보상 없이 퍼즐을 맞추게 했습니다.
- B그룹(실험집단): 1일 차에는 보상이 없었고, 2일 차에는 퍼즐을 맞출 때마다 1달러씩 지급했으며, 3일 차에는 다시 보상을 중단했습니다.
연구진은 실험 중간에 연구자가 자리를 비우는 ‘자유 시간(Free choice period)’을 주고 참가자들의 행동을 몰래 관찰했습니다. 결과는 인상적이었습니다. 내내 보상을 받지 않은 A그룹은 자유 시간에도 재미 삼아 퍼즐을 계속 맞췄습니다. 반면, 2일 차에 돈을 받았던 B그룹은 3일 차에 보상이 끊기자 자유 시간에 퍼즐을 쳐다보지도 않고 잡지를 읽거나 엎드려 잤습니다. 돈이라는 ‘외적 보상’이 퍼즐의 순수한 즐거움이라는 ‘내적 동기’를 저하시켰던 것입니다. (출처: Deci, E. L. (1971). Effects of externally mediated rewards on intrinsic motivation. Journal of Personality and Social Psychology)
[해외 사례: 이스라엘 고등학생들의 모금 활동] 이 이론이 자원봉사 현장에 적용된 사례가 있습니다. 행동경제학자 유리 그니지(Uri Gneezy)와 알도 러시치니(Aldo Rustichini)가 이스라엘에서 진행한 소아암 환자 돕기 모금 자원봉사 실험입니다. 이들은 고등학생 자원봉사자들을 세 그룹으로 나누어 모금액의 성과를 비교했습니다.
- 1그룹: 아무 보상 없이 순수하게 자원봉사로 모금 진행.
- 2그룹: 모금액의 1%를 수당으로 지급.
- 3그룹: 모금액의 10%를 수당으로 지급.
가장 많은 기부금을 모아온 것은 수당을 전혀 받지 않은 1그룹이었습니다. 가장 저조한 실적을 낸 것은 1%의 수당을 약속받은 2그룹이었습니다. 수당이 개입되는 순간, 학생들은 이 활동을 ‘암 환자를 돕는 자원봉사’가 아니라 ‘단 1%의 수수료를 받는 저가 아르바이트’로 인지했기 때문입니다. 자원봉사자에게 실비를 주는 것이 얼마나 선의를 저하시키는지 보여주는 사례입니다. (출처: Gneezy, U., & Rustichini, A. (2000). Pay Enough or Don't Pay at All. The Quarterly Journal of Economics)
규범의 충돌: ‘사회적 규범’을 오염시키는 ‘시장 규범’
두 번째 근거는 행동경제학자 댄 애리얼리(Dan Ariely)가 주창한 ‘사회적 규범(Social Norms)’과 ‘시장 규범(Market Norms)’의 충돌입니다. 인간 사회는 호의, 연대, 이타심으로 움직이는 영역(사회적 규범)과 계약, 가격, 대가로 움직이는 영역(시장 규범)이 공존합니다.
[실험 과정과 결과] 애리얼리는 미국 은퇴자 협회(AARP) 소속 변호사들을 대상으로 실험을 진행했습니다. 먼저 변호사들에게 가난한 퇴직자들을 위해 시간당 30달러(약 4만 원)라는 낮은 가격에 법률 상담을 해줄 수 있는지 물었습니다. 변호사들은 "내 몸값이 얼만데 그런 푼돈을 받고 일하느냐"며 단호히 거절했습니다. 시장 규범이 작동한 것입니다. 이후 애리얼리는 질문을 바꾸어 "가난한 퇴직자들을 위해 '무료로' 법률 상담 자원봉사를 해줄 수 있느냐"고 물었습니다. 놀랍게도 대다수의 변호사들이 흔쾌히 승낙했습니다. 돈을 아예 빼버리자 시장 규범이 사라지고, 이웃을 돕는다는 사회적 규범이 작동했기 때문입니다. 사회적 규범이 시장 규범으로 치환되면, 돈으로 환산할 수 없는 공동체의 결속력은 와해됩니다. (출처: Ariely, D. (2008). Predictably Irrational: The Hidden Forces That Shape Our Decisions)
[해외 사례: 미국과 영국의 헌혈 시스템 비교] 이러한 규범의 충돌을 국가 정책의 스케일에서 증명한 것이 영국의 사회정책학자 리처드 티트머스(Richard Titmuss)의 헌혈 연구입니다. 1970년대, 미국은 혈액의 안정적인 공급을 위해 피를 뽑는 사람에게 돈을 지급하는 '매혈(상업적 헌혈)' 시스템을 도입했고, 영국은 100% 무보수 자발적 헌혈 시스템을 유지했습니다. 결과는 영국의 압승이었습니다. 돈을 주는 미국은 오히려 혈액 수급량이 턱없이 부족했고, 간염 등 오염된 혈액의 비율이 압도적으로 높았습니다. 돈을 벌기 위해 빈곤층이나 마약 중독자들이 혈액을 팔러 왔기 때문입니다. 반면, 아무런 대가도 지급하지 않은 영국은 더 많은 시민들이 참여하여 깨끗하고 충분한 혈액을 확보했습니다. 돈을 개입시켜 사회적 규범을 시장 규범으로 바꾸는 순간, "생명을 나눈다"는 시민의 고귀한 정체성은 사라지고 이기적인 거래만 남게 됨을 역사적으로 증명한 것입니다. (출처: Titmuss, R. M. (1970). The Gift Relationship: From Human Blood to Social Policy)
뇌과학적 진실: 보상이 꺼버리는 ‘이타심의 스위치’
세 번째 근거는 뇌과학(Neuroscience)이 밝혀낸 보상 체계의 전환입니다. 우리는 흔히 자원봉사자에게 실비를 주면 '자원봉사의 기쁨'에 '돈의 기쁨'이 더해져 동기가 배가될 것이라 생각할 수 있지만, 인간의 뇌는 그렇게 작동하지 않습니다.
[실험 과정과 결과] 2006년 미국 국립보건원(NIH)의 뇌과학자 호르헤 몰(Jorge Moll)과 조던 그래프만(Jordan Grafman) 박사 연구팀은 기능적 자기공명영상(fMRI)을 통해 사람들이 자선단체에 기부할 때 뇌에서 어떤 반응이 일어나는지 관찰했습니다. 실험 결과, 피험자들이 자발적으로 돈을 기부하거나 남을 돕는 결정을 내릴 때 뇌의 중뇌변연계(Mesolimbic system)가 강하게 활성화되었습니다. 흥미로운 점은 이 부위가 맛있는 음식을 먹거나 섹스를 할 때, 즉 생존과 직결된 원초적 쾌락을 느낄 때 활성화되는 영역이라는 것입니다. 나아가 남을 도울 때는 인간관계와 애착을 형성하는 뇌의 '안와전두피질(vmPFC)'과 '전대상피질' 부위도 함께 빛났습니다. 이는 이른바 ‘헬퍼스 하이(Helper's High)’라 불리는 강력한 도파민과 옥시토신 분비 상태입니다. 그러나 금전적 보상이 주어지는 순간 뇌의 스위치는 급격히 전환됩니다. 애착과 공감을 담당하는 부위의 활성이 잦아들고, 경제적 실익과 손익을 계산하는 전전두엽의 이성적 영역이 가동하기 시작했습니다. 즉, 이타심과 공감의 뇌가 꺼지고 가성비를 따지는 계산기의 뇌가 켜지는 것입니다. (출처: Moll, J., et al. (2006). Human fronto-mesolimbic networks guide decisions about charitable donation. Proceedings of the National Academy of Sciences)
[해외 사례: 파크런(Parkrun)의 기적] 영국에서 시작되어 전 세계 22개국으로 퍼진 글로벌 커뮤니티 운동 '파크런(Parkrun)'은 뇌과학이 증명한 옥시토신과 도파민의 힘을 극대화한 자원봉사 사례입니다. 매주 토요일 아침 동네 공원에 모여 5km를 달리는 이 거대한 행사는 수만 명의 100% 무보수 자원봉사자(진행, 기록 측정, 응원 등)에 의해 운영됩니다. 이들은 단 1파운드의 실비도 받지 않지만 자원봉사 대기줄이 끊이지 않습니다. 그 이유는 이 시스템이 '돈'이 아닌 '사회적 유대감(안와전두피질 활성화)'에 집중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동네 주민들과 하이파이브를 하고, 지역사회에 건강한 활력을 불어넣었다는 소속감과 성취감이라는 뇌과학적 보상이 그 어떤 화폐 가치보다 강력한 동기부여로 작동했던 것입니다. 파크런 재단은 자원봉사자들에게 보상 예산을 쓰는 대신, 그들이 더 안전하고 즐겁게 활동할 수 있는 IT 시스템과 관리 매뉴얼을 구축하는 데 예산을 집중하고 있습니다.




현장 시나리오: 시스템이 만드는 참여의 차이
앞서 살펴본 심리학, 행동경제학, 뇌과학의 이론들이 실제 자원봉사 현장에서 어떻게 작동하며 공동체의 운명을 가르는지, 가상의 사례를 통해 그 차이를 확인해 보겠습니다. 겨울을 앞두고 취약계층 노인들을 위한 ‘사랑의 김장 나눔 및 겨울철 안부 순찰’ 프로젝트를 야심 차게 시작한 이웃 마을, ‘가’ 마을과 ‘나’ 마을이 있습니다.
[사례 1: 시장 규범이 잠식하여 붕괴된 ‘가’ 마을] ‘가’ 마을의 리더십은 사업 성공을 장담했습니다. “요즘 세상에 맨입으로 누가 봉사를 합니까? 지자체 공모사업 예산을 최대한 끌어와서, 참여하는 주민들에게 시간당 1만 원, 하루 최대 4만 원의 ‘활동 실비’를 지급합시다. 돈을 쥐여주면 책임감 있게 일할 겁니다.” 초기 반응은 폭발적이었습니다. 모집 공고를 내자마자 50명이 넘는 주민이 몰려들었습니다. 하지만 불과 한 달 만에 현장은 전쟁터로 변했습니다. 김장 배추를 나르던 한 주민이 불만을 터뜨렸습니다. “어휴, 허리 끊어지겠네. 최저시급도 안 되는 1만 원 받고 내가 이 고생을 해야 돼? 옆 동네 ‘다’ 마을은 방범 봉사만 해도 2만 원을 준다던데 우린 왜 이 모양이야?” 시장 규범(Market Norms)이 마을의 활성화를 저하시켰습니다. 사람들은 점점 홀로 사는 노인들의 안위를 걱정하기 보다는 계산기의 뇌가 켜집니다. 자발적으로 어르신의 말벗이 되어주던 따뜻한 시선은 잦아지고, “제 봉사 시간 4시간 다 채웠죠? 저 먼저 갑니다.” 출석부에 도장을 찍고 수당을 챙기는 기계적 행위로 변해갔습니다. 파국은 이듬해 찾아왔습니다. 지자체 예산이 삭감되어 실비 지급이 중단된 것입니다. 마을 리더는 “우리 마을 어르신들을 위한 일이니 무보수로 한 번만 도와달라”고 호소했지만, 주민들의 반응은 냉랭했습니다. “돈도 안 주는데 미쳤다고 그 고생을 합니까?” 활동가들은 이탈했고, 1년 전 시끌벅적했던 마을회관은 썰렁해지고, 공동체 사업은 중단되었습니다. 과잉 정당화 효과가 마을의 자발성을 손상시킨 것입니다.
[사례 2: 시스템과 시민적 역량에 투자하여 기적을 만든 ‘나’ 마을] 반면, ‘나’ 마을의 리더십은 실비 지급을 거절했습니다. “우리가 예산으로 주민들의 시간을 사려 해선 안 됩니다. 그 예산으로 자원봉사자들이 자긍심을 느낄 수 있는 무대를 만들어 봅시다.” ‘나’ 마을은 확보한 예산을 자원봉사 운영 시스템을 만드는 데 투여했습니다. 먼저, 현장에서 주민들이 겪을 혼선과 피로감을 줄이기 위해 훈련된 ‘전담 코디네이터’를 배치했습니다. 배추를 절이고 나누는 모든 동선이 전문가에 의해 매끄럽게 설계되었습니다. 또한, 자원봉사 전에는 “우리의 작은 행동이 고립된 어르신들의 겨울을 어떻게 살리는가”에 대한 ‘공익활동 리더십 교육’을 실시했습니다. 가장 중요한 것은 활동이 끝난 직후였습니다. 동네에서 가장 아늑하고 따뜻한 카페 공간을 대관하여, 쾌적한 환경 속에서 따뜻한 차를 마시며 서로의 경험을 나누는 ‘성찰의 시간’을 가진 것입니다. “오늘 김 할머니 댁에 갔는데, 작년에 우리가 담가준 김치 덕분에 겨울을 잘 버텼다며 제 손을 꼭 잡고 우시더라고요.” 나눔의 시간에는 눈물과 웃음, 그리고 연대감이 흘러넘쳤습니다. ‘나’ 마을의 자원봉사자들은 수당을 받지 않았습니다. 자신의 차에 기름을 넣고, 집에서 앞치마와 고무장갑을 챙겨왔습니다. 하지만 그들은 불만은커녕 자긍심으로 빛났습니다. 체계적인 활동이 지역사회에 만드는 실질적인 변화를 목도했기 때문입니다. 그들은 ‘1만 원짜리 인력’이 아니라 사각지대를 발굴하는 ‘기획자’로 성장했고, 마을의 문제를 주도적으로 해결하는 진정한 민관협치의 파트너로 거듭났습니다.

자원봉사 활성화의 진정한 방향, 시민적 주체성을 향한 투자
‘나’ 마을의 사례가 우리에게 던지는 메시지는 명확합니다. 진정한 자원봉사 활성화는 봉투에 담긴 몇 만 원의 교통비 지원이나 위로금으로 이루어지지 않습니다. 시민들은 자신이 사회에 의미 있게 기여하고 있다는 자기-효능감(Self-Efficacy), 훌륭한 동료들과 연대하고 있다는 소속감, 그리고 이 활동을 통해 시민으로서 성장하고 있다는 확신이 들 때 기꺼이 자신의 시간과 에너지를 투입합니다. 자원봉사자를 사회복지사들과 전문 활동가들과 함께 민관협력 사업의 의사결정에 참여하는 ‘시민’으로 대우받는 환경을 조성하는 것. 그것이 바로 우리가 만들어가는 가장 효과적인 인센티브입니다. 자원봉사의 본질인 ‘무보수성’은 국가나 지자체가 시민의 노동력을 공짜로 활용하려는 핑계가 아닙니다. 그것은 화폐 가치로는 환산할 수 없는 시민의 사회적 책임과 주체성을 자본의 논리로부터 지켜내는 보루입니다. 우리는 돈으로 사람의 물리적 시간은 살 수 있어도, 시민의 진심과 자발적 의지는 살 수 없습니다. 무보수성의 원칙을 지키고, 그 빈자리를 시스템과 존중으로 채워낼 때, 우리 사회에는 돈으로 환산 불가능한 '사회적 연대'가 지속될 것입니다. 성장의 기회와 프로그램이 정교하게 준비되어 있다면, 주민들은 자신의 비용을 들여서라도 그 기쁜 변화의 물결에 기꺼이 뛰어들 것입니다. 시민의 열정을 온전히 담아낼 정교하고, 과학적 시스템을 치열하게 논의해야 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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