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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구소칼럼[콩나물시루]

사막이 사라지면 지구도 무너진다: 내 안의 모래바람이 비옥한 성과를 만드는 원천일지도…

강정모 소장 2026. 9. 3. 10:15

사막을 없애면 더 좋은 지구가 될 것인가

사막은 흔히 쓸모없고 버려진 불모지로 인식됩니다. 살을 에는 밤의 냉기와 숨을 턱턱 막히게 하는 낮의 열기, 거친 모래바람만이 존재하는 척박한 공간으로 여겨집니다. 물은 턱없이 귀하고 농사는 불가능에 가깝습니다. 누구나 메마른 땅을 마주하면 ‘이곳이 푸른 숲이 되면 얼마나 좋을까’ 하는 상상을 하게 마련입니다. 척박한 땅에 물을 대고 거대한 숲을 가꾸어 온 세상을 푸르게 덮으면 지구가 훨씬 살기 좋은 낙원이 될 것이라 기대하기 쉽습니다. 그러나 자연의 섭리는 인간의 기대와는 전혀 다르게 작동하고 있습니다. 유튜브 채널 '지식브런치'에서 공개한 영상 〈만약 지구에 사막이 사라진다면〉은 사막에 대한 평소의 상식을 뒤집습니다. 인간의 무분별한 개발과 과도한 경작, 방목과 산림 훼손, 지하수 고갈과 기후위기로 토지가 회복력을 잃고 파괴되는 '인위적 사막화'는 반드시 막아야 할 재난입니다. 삶의 터전이 무너지고 생태계가 붕괴하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지구의 순환 체계 속에서 스스로 형성된 '자연적 사막'마저 푸른 숲으로 변해 사라진다면, 지구는 인간에게 낙원이 아니라 디스토피아가 되며 인류는 곧 종말을 맞게 된다는 설명에 깊이 몰입하게 되었습니다.

https://www.youtube.com/watch?v=0OCL0q4iN4c&t=16s

 

약 3억 년 전 석탄기처럼 지구 전역이 식물과 나무로 뒤덮인다면 대기 중 산소 농도는 현재의 21%에서 40% 수준까지 폭증한다고 합니다. 현재 대기 환경에 적응해 숨을 쉬는 인간과 고등 생명체는 과도한 산소 농도로 인해 심각한 폐 손상과 호흡기 파괴, 시신경 손상에 따른 실명 등 치명적인 산소 중독의 위험에 직면하게 됩니다. 산소 농도가 25% 수준이었던 백악기 시대에도 젖은 나무까지 불탈 정도로 빈번한 대형 화재가 발생했다고 합니다. 만약 산소 농도가 40%에 육박한다면 지구 전체는 작은 번개와 마찰 하나에도 걷잡을 수 없이 타오르는 거대한 인화성 화약고로 변하고 맙니다. 게다가 무성해진 식물 군락이 대기 중 이산화탄소를 과도하게 흡수해 온실효과가 급격히 사라지면, 지구에는 혹독한 빙하기가 닥쳐 살을 에는 추위가 인류를 덮치게 될 것입니다. 이처럼 지구가 스스로 형성한 사막은 고유의 항상성과 건강성을 보전하기 위해 만들어낸 거대한 생태적 조절 축입니다. 적도 부근에서 태양열로 뜨거워진 공기가 상승하며 많은 수증기를 비로 쏟아내고, 수분을 잃은 건조한 공기가 위도 30도 부근으로 내려앉으며 사막 지대가 형성됩니다. 사막의 극심한 일교차는 공기의 팽창과 수축을 일으켜 지구적 규모의 대기 순환을 주도합니다. 또한 사막 모래 속에 서식하는 특화된 미생물과 박테리아는 대기 중의 막대한 이산화탄소를 흡수하여 땅속에 격리하는 중요한 탄소 저장소 역할을 수행합니다. 사하라 사막에서 피어오른 수천만 톤의 모래 먼지는 무역풍을 타고 대서양을 건너 수천 킬로미터 떨어진 아마존 열대우림과 대양으로 날아갑니다. 미국 항공우주국(NASA)의 위성 관측과 생태 지구과학 연구에 따르면, 사하라 모래 먼지에 포함된 풍부한 인(Phosphorus) 성분은 매년 열대성 폭우로 토양 영양분이 씻겨 내려가는 아마존 밀림을 먹여 살리는 천연 비료 역할을 합니다. 아울러 모래 먼지에 함유된 철분과 미네랄은 해양 생태계의 1차 생산자인 식물성 플랑크톤의 핵심 영양원이 되어 바다 먹이사슬을 지탱하고 지구 산소의 절반 이상을 공급합니다. 지구는 결코 결점 없는 녹색 옥토만으로 존속할 수 없습니다. 지구상에서 가장 울창하고 푸른 밀림조차 자신의 생명력을 유지하기 위해 가장 황량하고 메마른 사막에 막대한 빚을 지고 있었던 셈입니다. 메마른 땅이 푸른 땅을 먹여 살리고, 텅 빈 척박함이 지구 전체의 생태적 균형을 떠받치고 있었던 것입니다.

인생의 지형도와 내 안의 사막

이 영상을 통해 사막과 지구의 심오한 생태적 관계를 이해하며, 나와 인간의 삶을 되돌아보게 되었습니다. 1975년에 내 의지와 무관하게 이 지구별에 던져진 이래 지나온 생의 궤적을 짚어보았습니다. 지금까지 걸어온 인생을 하나의 지형도로 펼쳐본다면 적어도 3분의 1은 메마르고 황량한 사막 지대로 그려집니다. 나머지 3분의 2의 삶이 지닌 윤택함과 비옥함은 어쩌면 그 3분의 1의 사막이 존재했기에 가능했던 것은 아닐까 생각해보게 됩니다. 고난과 결핍, 실패와 좌절을 거치지 않고서는 성숙에 도달하기 어렵습니다. 인간은 누구나 의도하든 의도하지 않든 자기 삶의 한구석에 깊은 사막을 품은 채 살아갑니다. 태어난 자리가 금수저든 흙수저든, 사회적 성공을 거둔 사람이든 쓰라린 실패를 맛본 사람이든, 저마다의 사막을 건너왔을 것입니다. 어떤 이는 지독한 가난 속에서 사막을 만나고, 어떤 이는 질병과 고립에서, 어떤 이는 소중한 관계가 파탄 난 폐허에서, 또 어떤 이는 겉보기에 풍요롭지만 주변의 경멸과 모멸이라는 사막을 마주하기도 합니다. 사막에서는 숨을 곳이 없습니다. 울창한 숲에서는 나무 뒤에 몸을 숨길 수 있고, 사람들 틈에서는 화려한 직함, 그럴듯한 말솜씨, 포장된 성과 뒤로 숨을 수 있습니다. 그러나 광막한 사막에서는 아무것도 숨길 수 없습니다. 작열하는 태양은 벌거벗은 내면의 민낯을 가감 없이 비추고, 목이 타들어 가는 갈증은 나의 초라한 한계를 직면하게 합니다. 내가 더 걸을 수 있는지, 여기서 멈추어야 하는지, 내가 붙들고 있는 신념이 진짜인지 가짜인지 사막은 있는 그대로 드러냅니다. 그렇기에 사막은 잔인하지만 정직합니다. 그 척박한 지대가 존재했기에 개인의 삶은 자기 과시와 교만이라는 산소 중독에 빠지지 않고 내적 균형의 가능성을 마련할 수 있는지도 모릅니다.

 

시인 황지우는 〈뼈아픈 후회〉를 통해 자신의 내면에 도사린 사막과 에고의 붕괴를 다음과 같이 노래했습니다.

"슬프다 / 내가 사랑했던 자리마다 / 모두 폐허다

 

나에게 왔던 모든 사람들, / 어딘가 몇 군데는 부서진 채 / 모두 떠났다

 

내 가슴속엔 언제나 부우옇게 / 바람에 의해 이동하는 사막이 있고, / 뿌리 드러내고 쓰러져 있는 갈퀴나무, 그리고 / 말라 가는 죽은 짐승 귀에 모래 서걱거리는

 

어떤 연애로도 어떤 광기로도 / 이 무시무시한 곳에까지 함께 들어오지는 / 못했다, 내 꿈틀거리는 사막이, 그 고열의 / 에고가 벌겋게 달아올라 신음했으므로 / 내 사랑의 자리는 모두 폐허가 되어 있다

 

아무도 사랑해본 적이 없다는 거 / 언제 다시 올지 모를 이 세상을 지나가면서 / 내 뼈아픈 후회는 바로 그거다 / 그 누구를 위해 그 누구를 사랑하지 않았다는 거

 

젊은 시절, 도덕적 경쟁심에서 / 내가 자청한 고난도 그 누구를 위한 헌신은 아녔다 / 나를 위한 헌신, 나를 위한 희생, 나의 자기 부정 그러므로 나는 아무도 사랑하지 않았다 / 그 누구도 걸어 들어온 적 없는 나의 폐허 / 다만 죽은 짐승 귀에 모래의 말을 넣어주는 바람뿐"

 

젊은 시절의 열정과 도덕적 확신이 자기중심적 에고와 뒤엉킬 때, 사랑마저 폐허로 변해버리고 만다는 고백에 깊이 공감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타인을 위한다는 명분으로 자청한 고난이 실상은 자신을 증명하기 위한 도덕적 우월감에 불과했음을 깨닫는 순간, 가슴속에는 모래바람만 서걱거리는 사막이 남게 된다는 자조는 고스란히 저의 고백처럼 다가왔습니다. 그 아픈 풍경은 제 안에도 사하라처럼 깊숙이 자리 잡고 있습니다.

https://stockcake.com/i/desert-skeleton-remains_1259826_354007, https://www.shutterstock.com/ko/image-photo/skeleton-camel-calf-lies-partially-buried-1478770166?dd_referrer=https%3A%2F%2Fwww.google.com%2F / 사진출처

신기루를 좇았던 5년의 폐허와 생존의 고백

제 삶에서 가장 메마른 사막의 시간은 종교적 이상에 헌신했던 5년의 세월이었습니다. 신학교에 입학해 고전과 경전을 인문학적으로 읽어내는 깊이에 매료되었고, 텍스트가 품은 진리의 언어로 사람의 영혼을 변화시키겠다는 순수한 열정으로 가득 찼습니다. 그 시기에 평생의 동반자인 아내를 만나 가정을 이루었습니다. 깨달음을 나누고 사람을 살리겠다는 열정 하나만을 나침반 삼아 종교적 조직을 직접 일구기도 했습니다. 처음에는 뜻도 있었고 동역자도 있었으며 길이 활짝 열리는 듯했습니다. 그러나 현실은 기대와 달랐습니다. 시간이 흐르고 발을 깊이 디딜수록 빠져나오기 힘든 갯벌에 갇히는 기분이었습니다. 책임은 눈덩이처럼 불어났고 기대는 감당하기 힘든 족쇄가 되었습니다. 가까스로 갯벌을 빠져나왔을 때 눈앞에 펼쳐진 광경은 푸른 약속의 땅이 아니라, 끝을 가늠할 수 없는 광막한 사막이었습니다. 이글거리는 지평선 너머의 신기루에 홀려 있었던 것입니다. 이상을 좇아 나를 믿고 사랑해 준 이들을 이끌고 사막 한복판으로 걸어 들어갔습니다. 내가 품었던 도덕적 확신과 이상주의는 황지우 시인의 고백처럼 주변 사람들을 하나둘 부수어 갔습니다. 그 과정에서 그들 역시 나를 부수고 갉아먹었습니다. 사랑이라는 이름을 앞세웠지만, 내 안의 상처와 자존심은 고스란히 상대방에게 상처로 되돌아갔습니다. 지겨운 반복의 어느 지점, 사방이 틔어 막막한 지평선 한가운데서 마침내 나는 스스로를 내려놓게 되었습니다. 사막 한가운데서 완전히 길을 잃은 것입니다. 왜 이곳까지 걸어와야 했는지 스스로 납득조차 할 수 없었습니다. 누더기가 된 채 도착한 곳에는 안식처 대신 더 메마른 모래폭풍만이 휘몰아쳤습니다. 어디로 나아가야 할지 알 수 없어 모든 기력이 빠져나갔습니다. 차라리 그 자리에 쓰러져 메마른 백골이 되고 싶었습니다. 백골이 되어 모래바람을 머금은 채, 이곳까지 걸어올 누군가에게 더 이상 이 길로 들어서지 말라고 경고하는 푯말이라도 된다면 최소한의 의미는 남을 것 같았습니다.

 

"더 이상 가지 마시오. 되돌아가시오. 더 가면 내 꼴이 됩니다."

 

스스로 맥을 놓아버리자, 극심한 결핍과 갈등에 지친 이들의 원망과 비난이 쏟아졌습니다. 그들을 탓할 수는 없었습니다. 누군가를 이용하려는 악의는 전혀 없었으나, 감당할 수 없는 사막을 가로질러야 한다는 사실조차 모른 채 사람들을 이끌었던 미숙함의 대가는 가혹했습니다. 탈진해 쓰러진 나를 뜯어먹어서라도 배신감과 서러움을 삭이고 싶었을 그들의 심정을 조금은 헤아릴 수 있었습니다.죽음의 문턱까지 내몰렸던 나를 건져 올린 존재는 아내였습니다. 아내의 헌신과 단단한 연대가 없었다면 사막의 모래 속에 묻혀 백골이 된 채 바람을 따라 굴러다녔을 것입니다. 사랑으로 모였던 공간은 흩어지고 뼈아픈 과거의 잔상만이 남았습니다. 가족을 추슬러 다행히 발견한 작은 오아시스에 다다르기까지, 아내와 나는 숱한 함정과 위기를 넘나들어야 했습니다. 참으로 다행스러운 일은, 그 고통의 시간 속에서도 자녀들이 상처받지 않고 그 시절을 역동적이고, 따뜻한 시절로 간직하고 있다는 사실입니다. 많은 시간이 지난 지금도 내 삶의 처절했던 사막의 기억은 사라지지 않고 여전히 몸과 기억 속에 또렷이 각인되어 있습니다. 아마 살아 숨 쉬는 한 잊지 못할 것입니다. 그러나 그 고통스러웠던 모래바람과 막막함에 압도되어 길을 잃어 아찔했던 시간의 기억은 현재의 삶을 지탱하는 가장 견고한 안전장치가 되어 주었습니다. 일을 기획하고 조직을 구성할 때마다 가슴속 사막의 감각을 먼저 떠올립니다. 비현실적인 낙관주의에 도취되지 않고 닥쳐올 위기를 차분히 예측합니다. 그럴듯한 명분과 도덕적 우월감이라는 신기루가 유혹할 때마다 과거의 폐허를 성찰하며 걸음을 멈춥니다. 섣부른 확신으로 타인을 고난으로 몰아넣지 않도록 조심하고 또 조심합니다. 사막을 아는 사람은 물을 함부로 쓰지 않고, 관계의 폐허를 겪어본 사람은 사람의 마음을 함부로 쓰지 않게 됩니다.

사막과 사막화의 경계: 고통의 미화를 경계하며

하지만 이 시점에서 우리가 혼동하지 말아야 할 것은 ‘사막’과 ‘사막화’의 차이입니다. 자연의 유구한 순환 속에서 형성된 사막은 지구 생태계를 유지하는 데 필수적인 지형입니다. 그러나 인간의 탐욕과 착취, 기후위기로 인해 비옥했던 토지가 황폐해지는 사막화는 인류가 온 힘을 다해 막아야 할 재난입니다. “사막이 필요하다”는 생태적 진실을 왜곡하여 사막화를 방치해서는 안 되듯, 내면의 사막을 이야기할 때도 타인의 고통과 사회적 폭력을 미화하는 우를 범해서는 안 됩니다. 사회복지 현장과 시민사회 영역에서는 더욱 객관적이어야 합니다. 누군가의 빈곤, 장애, 질병, 사회적 고립, 차별과 혐오, 폭력 피해를 두고 "인생의 성숙을 위한 귀중한 사막"이라거나 "영혼을 단련하는 수업"이라며 손쉽게 포장해서는 안 됩니다. 그것은 당사자의 고통을 가볍게 정당화하고 구조적 모순에 면죄부를 주는 일이기 때문입니다. 사회적 취약계층이 겪는 어려움은 공공 정책과 제도적 개선, 권리 옹호와 촘촘한 지역사회 안전망을 통해 치유하고 해결해야 할 명백한 사회적 과제입니다. 마찬가지로 현장 활동가와 사회복지사들이 겪는 번아웃과 소진 역시 개인의 나약함이나 역량 부족으로만 돌려서는 안 됩니다. 비현실적인 실적 압박, 만성적인 인력 부족, 불투명한 의사결정 구조, 돌봄의 책임을 실무자 개인에게 전가하는 관료적 시스템이라는 '구조적 사막화'는 점차 개선해야 합니다. 우리가 주목하는 사막의 지혜는 고통 자체를 미화하자는 것이 아닙니다. 피할 수 없는 실패와 한계의 사막을 통과한 사람이 길어 올린 '성찰적 감각'을 귀하게 쓰자는 뜻입니다. 타인의 아픔에 섣부른 정답을 들이밀지 않는 겸손, 거대한 이상보다 눈앞에 선 한 사람의 존엄과 안전을 먼저 살피는 섬세함, 내가 세상을 구원할 수 없음을 인정하면서도 곁의 이웃을 끝내 포기하지 않는 단단한 연대의 태도를 배우자는 것입니다.

고난의 광야를 건너간 사람들의 내면 기록

인류 역사에 거대한 족적을 남긴 이들 역시 모두 저마다의 지독한 내면 사막과 영혼의 어둠을 통과했습니다. 넬슨 만델라(Nelson Mandela)에게 사막은 27년에 달하는 혹독한 로벤섬 감옥의 수감 생활이었습니다. 그는 차가운 독방에 갇힌 채 어머니의 부고를 들었고, 맏아들이 교통사고로 세상을 떠났을 때도 마지막 길을 배웅하지 못했습니다. 자서전 『자유를 향한 긴 여정』에서 그는 대의를 위해 헌신하느라 가족들에게 좋은 아버지이자 남편이 되지 못했다는 통한의 고백을 남겼습니다. 그러나 그는 감옥이라는 황량한 사막에서 복수심을 키우는 대신 분노를 정화하는 법을 배웠습니다. 백인 간수조차 동등한 한 인간으로 마주하는 품성을 훈련한 그는, 출옥 후 아파르트헤이트 정권을 무너뜨리면서도 피의 보복 대신 '진실화해위원회'를 통한 평화적 통합을 이끌어냈습니다. 가난한 이들의 어머니로 불린 마더 테레사(Mother Teresa)의 사후 공개된 서간집 『나의 빛이 되어주오(Come Be My Light)』는 대중이 알지 못했던 그녀의 깊은 영적 사막을 드러냈습니다. 그녀는 수십 년 동안 매일같이 가장 비천한 임종자들의 고름을 닦아내면서도, 내면에서는 신의 부재와 침묵, 지독한 고독과 영혼의 어두운 밤을 겪었습니다. "내 영혼 안에는 너무도 깊은 칠흑 같은 어둠이 자리하고 있습니다"라는 고백처럼, 그녀는 확신과 환희가 아니라 메마른 갈증 속에서 사역을 이어갔습니다. 그러나 그녀는 자신의 공허를 타인에게 전가하지 않았고, 영적 메마름을 이유로 가난한 이들의 곁을 떠나지도 않았습니다. 베트남 전쟁의 참화 속에서 평화운동을 이끌었던 틱낫한(Thich Nhat Hanh) 스님은 조국에서 추방당해 프랑스 플럼빌리지에서 오랜 망명 생활이라는 상실의 사막을 건넜습니다. 그는 사회적 실천을 하면서도 자기 안의 분노와 폭력성을 먼저 알아차리지 못하면 정의의 이름으로 타인을 파괴하게 된다고 경고하며 '참여불교'를 제창했습니다. 이들의 삶은 한결같이 증언합니다. 사막은 인간을 파괴하는 공간이 될 수도 있지만, 비대한 자아를 불태우고 타인의 고통을 온전히 품어 안는 너른 품으로 거듭나는 결정적인 변곡점이 될 수도 있습니다.

도덕적 영웅주의의 붕괴와 파커 J. 파머의 부서진 마음

사회운동과 시민사회 교육의 세계적 사상가인 파커 J. 파머(Parker J. Palmer)는 활동가의 내면 사막을 가장 정직하게 직시한 사상가입니다. 그는 교육 개혁, 시민사회 리더십, 민주주의 회복을 위해 평생을 헌신했습니다. 그러나 사회를 변화시키겠다는 뜨거운 열망 속에서 세 차례나 극심한 우울증이라는 깊은 내면의 사막에 빠졌습니다. 외부 세계를 구원하겠다는 '도덕적 영웅주의'와 '완벽주의적 자아'가 스스로를 집어삼킨 결과였습니다. 모든 에너지가 고갈된 그는 침대에서 일어날 힘조차 잃었습니다. 빛 한 점 없는 영혼의 암야 속에서 그는 자신이 추구했던 헌신이 실상은 세상을 통제하려는 오만과 자아도취였음을 뼈아프게 깨달았습니다. 파머는 자신의 내면 사막을 억지로 탈출하려 하지 않았습니다. 그는 그 절망과 결핍의 밑바닥에 온전히 머물렀습니다. 친구들의 묵묵한 돌봄 속에서 모래바람을 견뎌낸 그는 마침내 '마음이 부서져 산산조각 나는 것'과 '마음이 부서져 활짝 열리는 것'의 차이를 발견했습니다. 내 안의 사막을 통과하며 에고가 부서질 때, 인간은 비로소 타인의 고통과 사회의 상처를 있는 그대로 품어 안는 더 넓은 가슴을 갖게 된다고 고백합니다. 그의 저서 『삶이 내게 말을 걸어올 때』와 『비통한 자들을 위한 정치학』은 바로 이 영혼의 사막에서 건져 올린 결실입니다. 그는 자신이 겪은 내면의 폐허를 자양분 삼아, 상처 입은 교사와 활동가들의 내면을 회복시키는 '용기와 회복 센터(Center for Courage & Renewal)' 프로그램을 창안했습니다. 그의 사막은 개인의 붕괴로 끝나지 않고, 전 세계 수많은 실천가를 살리는 오아시스가 되었습니다.

성취 뒤의 공허와 헨리 나우웬의 상처 입은 치유자

탁월한 저술가이자 영성가였던 헨리 나우웬(Henri J. M. Nouwen)의 생애 역시 화려한 외적 성취 이면에 자리 잡은 지독한 내면의 사막을 적나라하게 보여줍니다. 그는 하버드, 예일, 노터데임 대학교의 교수를 역임하며 세계적인 명성과 존경을 한 몸에 받았습니다. 수많은 강연과 저술을 통해 많은 이들에게 영적 위로와 사회적 통찰을 건넸습니다. 그러나 대중의 환호 뒤편에서 그의 내면은 극심한 갈증과 애정 결핍, 고독이라는 메마른 사막에 시달렸습니다. 인간관계의 파탄과 거절감에 직면했을 때 그의 자아는 여지없이 무너져 내렸습니다. 그는 정서적 공황과 우울증으로 정신과 치료소에 입원해야 했습니다. 책을 읽을 수도, 글을 쓸 수도, 누군가를 가르칠 수도 없는 완전한 내적 폐허였습니다. 자신이 전파했던 사랑과 치유의 메시지가 정작 자신에게는 아무런 효력도 발휘하지 못한다는 깊은 무력감에 짓눌렸습니다. 나우웬은 그 황량한 사막 한가운데서 자신의 결핍과 취약성을 있는 그대로 끌어안았습니다. 인정받고자 발버둥 치던 지적 우월감과 사역의 성과를 모두 내려놓았습니다. 그는 가장 낮은 자리에서 흘린 눈물과 상처를 통해 고전이 된 『상처 입은 치유자』를 남겼습니다. 자신의 상처를 숨기지 않고 정직하게 인정할 때 비로소 그 상처가 타인을 치유하는 통로가 된다는 역설적 진실이었습니다. 사막을 통과한 나우웬은 하버드 교수직을 미련 없이 내려놓고 캐나다 토론토의 중증 발달장애인 공동체인 '라르슈 데이브레이크'로 들어갔습니다. 말도 하지 못하고 스스로 씻지도 못하는 아담을 매일 씻기고 밥을 먹이는 일상의 궂은일을 자처했습니다. 지적 엘리트라는 껍데기를 벗어던지고 가장 취약한 이들과 눈을 맞추며, 그는 생애 마지막 10년을 가장 비옥하고 따뜻한 공동체의 일원으로 살아냈습니다.

물을 붓기 전에 우물을 찾는 현장의 지혜

사막에 물을 쏟아부으면 모래는 순식간에 물을 삼켜버립니다. 밑 빠진 독에 물을 붓듯 아무런 흔적도 남지 않은 채 증발해 버립니다. 사회복지 현장과 주민조직화 현장에서도 이와 같은 일이 빈번하게 일어납니다. 단기 공모사업비와 행정 예산이라는 물을 쏟아붓지만, 사업 기간이 끝나면 주민 모임은 흩어집니다. 실무자 한 사람의 열정으로 지탱하던 마을 사업은 담당자가 기관을 옮기거나 사정으로 퇴사하는 순간 멈추어 섭니다. 물을 담아낼 그릇과 우물이 준비되지 않은 상태에서 쏟아부은 자원은 그저 모래사막처럼 흡수되어 사라질 뿐입니다. 현장에서 진정으로 필요한 것은 물을 더 들이붓는 조급함이 아닙니다. 물이 고이고 흐를 수 있는 '우물'을 파는 일입니다. 우물을 판다는 것은 주민들이 삶의 문제를 스스로 발언하고 결정할 수 있는 공론장을 일구는 일입니다. 한두 명의 열성적인 리더에게 짐을 지우지 않고 역할을 골고루 분담하는 민주적 조직 체계를 세우는 일입니다. 이웃이 이웃의 안부를 묻는 일상적인 돌봄의 관계망을 엮어내는 일입니다. 사업의 개수와 참여 인원이라는 숫자의 성과표보다, 갈등을 겪은 이웃이 다시 마주 앉아 대화를 시작하는 관계의 깊이를 돌보는 일입니다. 사회복지사는 홀로 모든 갈증을 해결하는 전지전능한 샘물이 될 수 없습니다. 한 사람의 활동가가 지역의 모든 불의와 결핍을 홀로 떠안으려 할 때 사막의 비극이 시작됩니다. 동료에게 자신의 한계와 실패를 솔직히 털어놓을 수 있어야 합니다. 주민과 동료에게 당당히 도움을 요청해야 합니다. 해야 할 일을 무작정 늘리기보다 하지 말아야 할 일을 덜어내는 용기를 발휘해야 합니다. 지속가능성은 거창한 구호가 아니라, 내일도 지치지 않고 사람 곁에 건강하게 머물 수 있는 상태를 조직하는 일입니다.

모래바람을 건너는 동료들을 위한 연대의 제언

사하라의 거친 모래바람이 대서양을 건너 아마존의 울창한 밀림을 먹여 살리듯, 우리가 통과해 온 사막의 시간은 결코 헛되이 사라지지 않습니다. 실패로 끝난 사업의 아픈 기록은 후배 실무자가 같은 함정에 빠지지 않도록 돕는 시행착오의 지혜라는 소중한 이정표가 됩니다. 관계의 갈등 속에서 겪었던 뼈아픈 상처는 주민의 거친 호소 이면에 숨겨진 깊은 외로움을 먼저 읽어내는 성숙한 감각이 됩니다. 무리한 도덕적 열정으로 탈진해 보았던 쓰라린 기억은 동료의 야근과 소진을 먼저 알아차리고 멈추어 서게 하는 따뜻한 조직문화의 거름이 됩니다. 사막을 지나온 실천가는 조금 느려집니다. 그러나 그 느림은 게으름이나 후퇴가 아닙니다. 한 사람의 존엄을 놓치지 않기 위해 속도를 조절하는 전문적인 배려입니다. 주민조직, 마을복지, 지역복지를 담당하는 사회복지사와 공익활동가 여러분, 지금 여러분의 발걸음이 유난히 무겁고 눈앞이 온통 캄캄한 모래폭풍으로 가득 차 있다면 스스로를 너무 자책하지 마십시오. 지금 겪고 있는 그 막막함과 고단함은 결코 여러분의 역량이 부족해서가 아닙니다. 더 깊은 생명의 지혜를 길어 올리기 위해 거쳐야 하는 필연적인 사막의 계절일 뿐입니다. 내 안의 사막을 부끄러워하거나 조급히 지우려 애쓰지 마십시오. 그 황량함을 겸허히 인정하고 응시할 때 우리는 비로소 타인의 고통에 깊이 공명하는 따뜻하고 단단한 전문성을 얻게 됩니다. 척박한 땅을 디디며 묵묵히 걸어가는 여러분의 한 걸음 한 걸음이, 이미 우리 사회의 가장 소중한 생태적 균형을 만들어가고 있습니다.

 

출처 및 참고 문헌

  • 지식브런치, 유튜브 영상 〈만약 지구에 사막이 사라진다면〉 및 분석 녹취록
  • NASA Earth Observatory, "Dust from the Sahara Fertilizes the Amazon" (https://earthobservatory.nasa.gov)
  • Yu, H. et al., "The fertilizing role of African dust in the Amazon rainforest", Geophysical Research Letters, 2015.
  • UNCCD(유엔사막화방지협약), 토지황폐화 및 사막화 방지 관련 공식 보고서 (https://www.unccd.int)
  • 황지우, 시 〈뼈아픈 후회〉
  • Parker J. Palmer, 『Let Your Life Speak: Listening for the Voice of Vocation』, Jossey-Bass, 2000; Center for Courage & Renewal (https://couragerenewal.org)
  • Henri J. M. Nouwen, 『The Wounded Healer』, Doubleday, 1979; 『The Inner Voice of Love』, Doubleday, 1996.
  • Nelson Mandela, 『Long Walk to Freedom』, Little, Brown and Company, 1994.
  • Mother Teresa, 『Come Be My Light: The Private Writings of the "Saint of Calcutta"』, Doubleday, 2007.
  • Thich Nhat Hanh, 『Peace Is Every Step』, Bantam Books, 1991; Plum Village Community 자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