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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구소칼럼[콩나물시루]

"우린 계속 싸우고 있다고"… '활동가'로 성장하기 위한 창조적 루틴

강정모 소장 2026. 7. 12. 11:14

1933년의 경성, 그리고 2026년의 복지 현장

"나도 독립운동하는 사람들 좋아해. 근데 넌 안 했으면 좋겠어."

 

영화 <암살> 속 쌍둥이 언니 미츠코의 대사는 차갑고도 현실적입니다. 누구나 독립운동의 숭고함을 인정하지만, 내 가족만큼은 그 거칠고 험한 길에 서지 않기를 바라는 마음입니다. 계란으로 바위 치기 같은 무모한 싸움처럼 보이기 때문입니다. 거대한 시대의 벽 앞에서 한 개인의 희생은 무력해 보일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바위에 부딪혀 깨질지언정 멈추지 않았던 그 무모한 발걸음들이 없었다면, 오늘의 대한민국은 존재하지 않았을 것입니다. 비아냥과 회의론으로 가득 찬 세상의 시선 향해, 동생 안옥윤은 피 묻은 장총을 다잡으며 나직하지만 단단한 목소리로 읖조립니다.

https://www.sungdoo.dev/review/film/assaasination / 사진출처

 

"알려줘야지. 우린 계속 싸우고 있다고."

 

이 나즈막한 대사는 당시 암살 영화에서 제 마음에 가장 꼿히는 한 마디였습니다. 제가 하고 있던 활동이 그랬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또한 안옥윤이 했던 말 안에는 한국사회가 걸어왔던 사회복지 현장과 공익 활동의 궤적과 닮아 있습니다. 지난 30여 년의 세월 동안 대한민국 사회복지와 시민사회 역시 경제발전 앞에서 보완제로서 취급받아온 세월속 편견과 제도적 불모지라는 거대한 바위를 마주해 왔었습니다. "돈 많은 부자들이나 하는 동정"이라는 오해, "밑 빠진 독에 물 붓기"라는 비아냥 속에서도 현장의 실천가들은 결코 걸음을 멈추지 않았습니다. 우리가 마주한 인간의 존엄을 지키기 위해, 우리가 변화시킨 현장을 증명하기 위해, 끊임없이 언어를 만들고, 설득했습니다. 뒷모습으로만 일하던 시대를 넘어 명료하고 다양한 언어로 현장활동의 가치를 설명해 냈기에, 우리는 마침내 대한민국을 선진 복지 국가의 반열로 이끌어 올리는 역할을 할 수 있었다고 생각합니다. 

https://www.sungdoo.dev/review/film/assaasination / 사진출처

조직의 작동 원리와 사회복지사의 정체성

사회복지사가 근무하는 조직은 일반 기업이나 공공기관과 다른  작동 원리를 지니고 있습니다. 영리를 목적으로 하는 기업은 자본을 투입하여 소비자로부터 수익을 창출합니다. 공공 영역은 세금을 바탕으로 국민에게 서비스를 제공합니다. 반면 비영리조직(NPO/NGO)은 이윤이 아닌 가치와 사명을 연료로 삼아 움직입니다. 인간이 조직을 만드는 자연스러운 목적은 개인보다 더 큰 이익을 얻기 위함입니다. 이러한 인간의 본성을 고려할 때, 이윤 추구가 아닌 공익을 목적으로 권한 없이 자발적 의지에 의해 운영되는 비영리조직은 인간의 본성상 자연스럽지 않은 조직입니다. 의식적인 노력과 철학적 사유가 수반되지 않으면 조직의 구성 원리를 오해하기 쉽습니다. 실제 현장에서는 비영리조직의 수익 사업을 둘러싼 혼란이 자주 발생합니다. 비영리조직도 재정적 안정성과 사명 실현을 위해 수익 사업을 전개할 수 있습니다. 다만, 기업과의 결정적인 차이는 창출된 수익의 배분 방식에 있습니다. 기업은 이윤을 투자자들에게 비례하여 나누지만, 비영리조직은 정관에 명시된 공익적 목적과 사명을 위해서만 재투자해야 합니다. 조직의 목적과 정체성을 명확히 이해하지 못하면 신입 직원을 비롯한 현장 종사자들은 혼란을 겪을 수 있습니다. 내가 속한 조직이 어디로 가는지 알지 못하고 단순히 주어진 행정 업무만 반복할 때 동기는 저하되고 소진의 늪으로 빠져들게 됩니다. 최소한 한 달에 한 번은 기관의 사명과 비전, 즉 청사진을 확인하며 내가 하는 업무의 사회적 의미를 연결 짓는 작업이 필요합니다.

비영리 조직의 미션과 수익 구조 일치 모델

미국의 대표적인 비영리 고용 복지 기구인 '굿윌 인더스트리(Goodwill Industries)'는 비영리조직의 작동 원리를 명확히 증명하는 선진 사례입니다. 이들은 시민들에게 기부받은 물품을 매장에서 판매하여 상당한 수익을 올립니다. 그러나 이 수익은 장애인 및 취약계층을 위한 직업 훈련과 일자리 창출이라는 '조직의 사명'에 100% 재투자됩니다. 국내에서도 '행복도시락'이나 사회복지법인의 '보호작업장'들이 이와 같은 모델을 실행하고 있습니다. 정부 보조금에 의존하는 스텝 역할을 넘어, 우리가 창출하는 공익적 부가가치가 어떻게 지역사회의 가치로 순환되는지 그 원리를 명확히 이해할 때 사회복지사는 비로소 비영리조직의 주체로 서게 될 것입니다.

신뢰의 보이지 않는 축적과 붕괴의 임계점

사회복지 현장에서 지속 가능한 영향력을 발휘하기 위해서는 동료와 지역사회로부터 신뢰를 얻어야 합니다. 스티븐 코비의 이론에 따르면 신뢰(Trust)는 성품과 역량의 방정식으로 성립됩니다. 어느 한쪽으로 치우치지 않고 두 요소가 균형을 이룰 때 온전한 신뢰가 형성됩니다. 역량 중심의 신뢰는 업무를 정확하게 처리하는 '신용(Credit)'이며, 성품 중심의 신뢰는 사람을 대하는 정직한 가치관과 '믿음(Faith)'에 기반합니다. 우리는 흔히 신뢰를 쌓는 데는 오랜 시간이 걸리지만 무너지는 것은 한순간이라고 말합니다. 그러나 현장에서 작동하는 신뢰의 역동은 다소 다릅니다. 현장에서 신뢰는 쌓아 올리는 과정도 오래 걸리지만, 무너지는 과정 역시 오랜 시간에 걸쳐 진행됩니다. 바로 이 '보이지 않는다'는 특성 때문에 함정이 발생합니다. 매일 마주하는 실무와 밀려드는 행정 업무 속에서 눈에 보이지 않는 신뢰 자본을 구축하는 일은 당장 급하지 않다는 이유로 늘 우선순위에서 밀려나기 쉽상입니다. 동료와 사소한 약속을 어기는 것, 이용자의 작은 불편을 외면하는 것, 나의 성품과 역량을 돌아보지 않는 태도는 당장 눈앞의 문제를 불러오지는 않습니다. 무너지는 과정이 겉으로 드러나지 않기에 우리는 안전하다는 착각에 빠집니다.하지만 보이지 않는 내면의 균열은 소리 없이 깊고 넓게 진행됩니다. 중요하지만 급하지 않은 신뢰형성 작업이 우선순위에서 밀려남이 오랜 시간 축적되어 임계치에 도달하는 순간, 신뢰는 마치 댐이 터지듯 순간적으로 무너져 내립니다. 한 번의 실수나 한순간의 사건으로 무너진 것이 아닙니다. 매일 꾸준히 방치했던 시간들이 쌓여 만들어낸 결과입니다. 눈에 보이지 않더라도 꾸준히 의식적으로 신뢰의 벽돌을 쌓아 올려야 하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습니다.

지역사회 거버넌스 붕괴와 민관 신뢰 회복 사례

영국의 런던 일부 지자체에서는 과거 복지 서비스 공급을 민간 위탁으로 전환하는 과정에서, 기관들이 실적(역량)에만 치중하고 지역 주민과의 정서적 소통(성품)을 소홀히 했습니다. 눈앞의 평가는 통과했으나 주민들의 내면적 불만은 소리 없이 누적되었습니다. 결국 작은 민원 처리가 도화선이 되어 지자체 전체의 복지 거버넌스 신뢰가 일시에 붕괴하는 사태를 겪었습니다. 이후 영국은 주민들이 직접 참여하는 '복지 허브(Welfare Hubs)' 체계를 구축하여, 매일 눈에 보이지 않는 사소한 신뢰를 오랜 시간 다시 쌓아 올렸습니다. 국내에서도 '찾아가는 동주민센터'나 '지역사회보장협의체'의 실무자들이 매일 반복하는 주민 접촉과 일상적 약속 이행은, 임계점의 붕괴를 막고 거대한 사회적 자본을 형성하는 핵심적인 신뢰 구축 활동입니다.

가치 일치의 과중함: 도덕적 번아웃과 이념적 고갈

이러한 신뢰의 위기와 번아웃은 비단 전통적인 사회복지 시설 종사자들만의 전유물이 아닙니다. 진보적 사회단체, 공익법인, 그리고 진보 정당이나 정치 영역 등 이른바 '도덕적 가치와 공익적 이슈'를 최전선에서 다루는 실천가와 활동가들에게는 한층 더 극단적인 형태의 번아웃이 발생하곤 합니다. 이들이 겪는 소진의 본질은 업무 과다를 넘어선 '도덕적 번아웃(Moral Burnout)'이자 '가치 일치의 압박'입니다. 진보와 인권, 평등과 생태 등 사회적 가치를 주창하는 단체의 활동가들과 정치인들은 사회적으로 매우 높은 도덕적 잣대를 요구받습니다. 더 큰 문제는 외부의 시선보다 자기 내부의 엄격한 검열에 있습니다. "사회를 변화시키겠다는 내가 과연 올바르게 살고 있는가", "내 삶과 내가 주장하는 가치가 100% 일치하는가"에 대한 강박은 영혼을 서서히 메마르게 합니다. 대의를 위해 개인의 사생활이나 휴식, 정당한 보상을 포기하는 것을 당연시하는 문화 속에서 활동가들은 쉽게 정서적으로 고립됩니다. 특히 사회적 약자를 대변하는 과정에서 발생하는 거대한 벽과 구조적 정체, 혹은 내부 진영 간의 갈등을 목도할 때, 이들은 '이념적 환멸'과 '실존적 허무감'을 마주합니다. 나의 온 삶을 던졌으나 세상은 쉽게 변하지 않고, 오히려 스스로의 삶만 피폐해졌다는 알아차림은 자아를 상실하게 만듭니다. 이러한 내면의 상실을 방치할 때, 실천가들은 순간적으로 이성적 판단 흐름을 잃고 치명적인 도덕적 사고를 일으키거나, 끝내 감당할 수 없는 무력감에 휩싸여 극단적인 선택에 이르는 사건으로 이어지기도 합니다. 따라서 이들의 소진을 예방하는 것은 한 개인의 멘탈 관리가 아니라, 가치지향적 조직이 명운을 걸고 구축해야 할 최우선 제도적 과제입니다.

휴먼서비스와 공익활동가를 위한 글로벌 선진 예방체계

선진 해외 국가들과 글로벌 시민사회는 이러한 가치 중심 직종의 종사자 내면붕괴 위험을 일찍이 감지하고, 이를 조직적·공적 층위에서 선제적으로 예방하기 위한 성과 있는 시스템을 발전시켜 왔습니다.

유럽(독일·영국): 법제화된 직무 스트레스 위험성 평가와 정당 재단 시스템

독일은 노동안전보건법(ArbSchG)을 통해 모든 복지기관과 비영리 단체가 의무적으로 '정신적 직무 스트레스 위험성 평가'를 실시하도록 강제합니다. 특히 독일의 진보 정당들은 하인리히 뵐 재단(Heinrich-Böll-Stiftung, 녹색당 성향)이나 프리드리히 에베르트 재단(Friedrich-Ebert-Stiftung, 사민당 성향) 등 정당과 연계된 독자적인 재단 시스템을 통해 정치인과 활동가들의 보조적 방어망을 구축했습니다. 재단은 활동가들이 정치적 전선에서 물러나 심신을 재충전하고 연구에 몰입할 수 있도록 안식년 예산과 심리적 보호 프로그램을 전적으로 지원합니다. 영국은 '임상 수퍼비전' 체계를 비영리 휴먼서비스를 넘어 인권·사회운동 단체까지 확장하여 실무자가 겪는 대리 외상과 가치 고갈을 전문 수퍼바이저와의 정기적인 일대일 상담 채널을 통해 치유하고 있습니다.

미국: 활동가 지속가능성 프로그램(Sustainability Project)과 TIC 모델

미국은 대형 NPO와 시민사회 재단을 중심으로 '활동가 지속가능성 프로젝트(Activist Sustainability Project)'를 전개하고 있습니다. 사회정의 운동을 하는 실천가들이 도덕적 압박으로 무너지지 않도록 장기 안식 휴가 펀드를 무상 제공하며, '번아웃은 개인의 실패가 아닌 구조적 결과'임을 명시하는 가이드라인을 보급합니다. 또한 연방인사관리처(OPM) 수준에서 발전한 '근로자 지원 프로그램(EAP)'을 통해 직무 스트레스뿐만 아니라 가치 일치의 압박에서 오는 정서적 고갈, 법률, 재정 문제까지 전문가가 비밀 보장 하에 무료 상담을 제공합니다.

일본: 의무적 스트레스 체크와 '공익활동가 지원 펀드'

일본은 후생노동성 주도로 노동안전위생법을 개정하여 50인 이상 사업장 전 직원을 대상으로 '스트레스 체크 제도'를 연 1회 의무화했습니다. 휴먼서비스 종사자가 고스트레스 군으로 분류될 경우, 노동 시간 단축 및 부서 이동 등 실질적인 조치를 조직이 강제합니다. 이에 더해 일본 시민사회는 독립된 민간 기금을 통해 '활동가 리프레시 지원 펀드'를 운영하며, 사회적 가치를 다루다 지친 이들에게 강제적인 휴식과 고립 탈출을 위한 정서적 연대 네트워크를 제공하여 극단적 선택의 징후를 조기에 스크리닝하고 있습니다.

한국의 주목할 만한 시도: 공익활동가 사회적협동조합과 힐링센터

한국 역시 이러한 글로벌 흐름에 발맞추어 고무적인 변화를 만들어내고 있습니다. 지자체에서 운영 중인 '사회복지사 권익보호 전담 기구'와 더불어, 시민사회 영역에서 자발적으로 구축한 '공익활동가 사회적협동조합(예: 동행)'의 활동을 꼽을 수 있습니다. 과거에는 사회복지사나 진보 단체의 활동가들이 겪는 상처를 개인이 알아서 삭여야 했지만, 이제는 현장에서 마주하는 폭력·상실·도덕적 고갈 사건 발생 시 즉각적으로 노무·법률 자문을 지원하고 심리 전문 임상 상담 및 휴식 비용을 공적·연대적 시스템으로 지원합니다. 이러한 안전망은 실천가들이 도덕적 고립감을 느끼지 않고 다시 일어설 수 있도록 돕는 든든한 방파제가 되어주고 있습니다.

과거의 재해석과 직(職)·업(業)의 분리, 그리고 활동가 정체성의 회복

우리는 흔히 과거를 바꿀 수 없는 고정된 사실로 인식합니다. 그러나 나에게 일어난 물리적인 사건은 10%에 불과하며, 그 사건을 바라보고 해석하는 현재의 태도가 나머지 90%를 결정합니다. 과거에 겪었던 아픈 실패와 상처를 고통으로만 남겨둘 것인지, 아니면 나를 성장시키기 위한 인생의 교훈으로 재해석할 것인지는 현재의 나에게 달려 있습니다. 과거를 다르게 규정할 때 비로소 현재가 변화하고 미래가 달라집니다. 이러한 맥락에서 사회복지사와 공익실천가는 자신의 일을 직(職, Job)과 업(業, Vocation)으로 분리하여 인식할 필요가 있습니다. '직'은 생계를 유지하기 위한 수단이자 환경에 따라 변동하는 직무를 의미합니다. 반면 '업'은 내가 좋아하고 가치를 두며 내 안에서 사라지지 않는 영혼의 소명입니다. 그러나 지난 20여 년간 대한민국 사회복지와 시민사회 현장은 제도화가 됨에 따라 양적 팽창의 소용돌이 속에서 '서비스 전달자(Service Deliverer)'로서의 효율성과 기관을 지탱하는 '스텝(Staff)'으로서의 행정적 역할을 과도하게 강조해 왔습니다. 국가의 보조금을 정산하고, 매뉴얼에 따라 서비스를 제공하며, 평가 지표를 맞추는 '직'의 기능에 매몰되어 온 것입니다. 이로 인해 사회복지사 및 실천가의 본질적인 정체성이자 사회적 소명인 '활동가(Activist)'로서의 근육은 약화하고 말았습니다. 지역사회의 모순을 찾아내고, 주민들을 주체로 세워 연대하는 '주민조직화'의 역량과 현장 역동성을 잃어버린 것입니다. 그 결과, 주민자치와 민관협치가 고도화되고 주민이 스스로 삶의 과제를 결정하는 오늘날의 선진 복지 사회 속에서, 과거의 익숙한 행정 루틴에 갇혀 있던 많은 사회복지사들이 새로운 현장 변화에 적응하지 못하는 상황에 직면해 있습니다. 메이저리그의 전설적인 투수 박찬호는 은퇴할 때 "아시아 최다승 투수라는 타이틀은 언젠가 깨지겠지만, 내가 공 던지기를 좋아하는 사람이라는 본질은 바뀌지 않는다"는 말을 남겼습니다. 우리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종합복지관이나 재단이라는 '직'의 자리, 혹은 서비스 전달자나 스텝이라는 행정적 역할은 제도적 환경에 따라 언제든 변하거나 사라질 수 있습니다. 그러나 주민과 함께 호흡하고 지역사회를 주체적으로 변화시키고자 하는 '활동가'이자 '업'의 정체성은 등대와 같습니다. 매뉴얼을 집행하는 전달자를 넘어, 주민조직화의 약화된 근육을 다시 세우고 '업'의 본질을 회복할 때 비로소 우리는 선진 민관협치 리더로 서게 될 것입니다. 내가 좋아하는 '업'의 소명과 단련된 '직'의 기술이 교차하는 지점에서 열정이 나옵니다. 직과 업을 균형감 있게 관리해야 자기 성장의 결과를 체감할 수 있습니다. 

내 삶의 주인이 되는 자극과 반응의 공간

우리는 일상에서 많은 외부 자극을 마주합니다. 까다로운 이용자의 민원, 촉박한 사업 마감 기한, 동료 간의 갈등, 그리고 사회적 가치와 내 삶의 불일치에서 오는 괴리감은 모두 우리의 감정을 뒤흔드는 강렬한 자극입니다. 동물의 세계에서는 자극이 주어지면 본능에 따라 즉각적으로 반응합니다. 이를 '반사적 대응'이라고 부르며, 인간 역시 기분과 감정, 즉각적인 욕망에 따라 행동할 때 반사적 상태에 머물게 됩니다. 그러나 인간에게는 자극과 반응 사이에 선택할 수 있는 공간이 존재합니다. 자극을 받았을 때 멈추어 서는 정지 버튼(STC: Stop, Think, Choose)을 사용할 수 있는 능력은 인간만이 존재합니다. 사회복지사와 현장 활동가들은 외부의 불편하고, 충격적인 자극에 반사적인 감정을 표출하거나 적합하지 않은 문자로 대응하는 대신, 의식적으로 정지하는 역량이 필요합니다. 가슴에 손을 얹고 시계초로 딱 7초만 세어 보시기 바랍니다. 7초라는 시간은 나를 잠식하려는 감정을 진정시키고, 자아의식, 상상력, 양심, 독립의지를 깨우기에 충분한 시간입니다. 7초 동안 멈추고 "지금 내가 하려는 감정 표현이나 행동이 옳은가, 적합한가, 나에게 이익이 되는가"를 질문해야 합니다. 책임감(Responsibility)의 어원은 주어진 자극에 어떻게 반응할지를 스스로 선택하는 능력(Response-ability)입니다. 사람은 타인의 지시가 아니라 스스로 선택한 일에 대해서만 온전한 책임을 지며, 그 과정에서 재미와 몰입을 경험합니다. 제도적인 안전망 위에서 이러한 주도적 선택을 발휘하여 반응을 통제할 때, 우리는 감정적 고갈로부터 자신을 보호할 수 있습니다.

관심의 원에서 영향력의 원으로 전환

빅터 프랭클은 아우슈비츠 수용소라는 극단적인 한계 상황 속에서도 "인간이 시련을 가져다주는 상황 자체를 변화시킬 수는 없지만, 그에 대한 자신의 태도는 스스로 선택할 수 있다"고 역설했습니다. 이를 실천 원리로 구체화한 것이 바로 관심의 원 및 영향력의 원 모델입니다. 관심의 원은 내가 바라고 주의를 기울이지만 현재 나의 통제권에서 벗어나 있는 영역입니다. 날씨, 과거의 실수, 불안한 미래, 타인의 냉정한 평가, 마음에 들지 않는 정치 상황이나 구조적인 예산 한계 등이 이에 해당합니다. 반면 영향력의 원은 지금 당장 내 힘으로 통제하고 바꿀 수 있는 구체적인 영역입니다. 많은 사회복지사와 활동가들이 소진되는 이유는 자신의 제한된 시간과 에너지를 통제 불가능한 관심의 원에 집중하기 때문입니다. 기관의 열악한 환경이나 거대한 정치적 지형, 상사의 성향을 내 힘으로 당장 바꾸려고 애쓸수록 무력감만 깊어집니다. 우리가 주목해야 할 곳은 지금 바로 실행 가능한 영향력의 원입니다. 상대방의 말을 30분간 온전히 경청하기, 아침에 일어나 10분간 스트레칭하기, 매주 내면의 기록을 남기기 같은 작은 행동들입니다. 라인홀트 니이버의 기도문처럼 우리에게는 변화시킬 수 없는 것을 받아들이는 침착함과 변화시켜야 할 것을 바꾸는 용기, 그리고 이를 구별할 수 있는 지혜가 절실합니다. 통제할 수 없는 것들에 함몰되지 않고 내가 오늘 할 수 있는 작은 실천에 집중할 때, 영향력의 원은 점차 확장되어 보이지 않던 구조까지 서서히 바꾸어 낼 수 있습니다. 

번아웃을 극복하는 5년 차 사회복지사의 실천 시나리오

이 철학적 모델들이 현장에서 어떻게 영향력을 발휘하는지, 종합사회복지관에서 근무하는 5년 차 박 과장의 시나리오를 통해 살펴보고자 합니다. 어느 날 박 과장은 까다롭기로 유명한 이용자로부터 "도대체 복지관에서 나한테 해준 게 뭐가 있냐"며 삿대질과 함께 거친 폭언이라는 강력한 '외부 자극'을 받았습니다. 과거 1, 2년 차 시절의 그였다면 억울함과 분노에 휩싸여 즉각적으로 반박하거나, 자책하며 며칠 밤을 뜬눈으로 지새우는 '반사적 대응'을 보였을 것입니다. 5년 차가 되며 누적된 만성 소진으로 인해 "이 일을 계속해야 하나"라는 회의감이 밀려오는 순간이기도 했습니다. 그러나 이번에 박 과장은 의식적으로 가슴에 손을 얹고 'STC 정지 버튼'을 눌렀습니다. 마음속으로 7초를 세며 요동치는 감정을 가라앉히고(Stop), 이 상황을 객관적으로 바라보며 내가 조절할 수 있는 것이 무엇인지 생각한 뒤(Think), 폭언에 감정적으로 맞대응하는 대신 매뉴얼에 따라 단호하고 차분하게 기관의 대응 절차를 고지하기로 선택(Choose)했습니다. 자극에 휘둘리지 않고 스스로 반응을 통제하는 주체적인 권한을 행사한 것입니다. 사건이 일단락된 후, 박 과장은 자신의 노트를 펴고 두 개의 원을 그렸습니다. 민원인의 거친 성향, 삭감된 복지 예산, 나를 지켜주지 못하는 듯한 관장님의 방관적 태도는 '관심의 원'으로 분류했습니다. '내가 바꿀 수 없는 영역'에 시간과 에너지를 낭비할 필요가 없었습니다. 대신 지금 내 힘으로 바꿀 수 있는 '영향력의 원'에 집중하기 시작했습니다. 지자체에 개설된 '사회복지사 권익보호 전담 기구'에 연락하여 무상 전문 심리 상담을 신청했고, 동료들과 함께 해당 사례를 분석하여 복지관 내 '안전 대피 매뉴얼'을 재정비하는 실천을 개시했습니다. 통제 불가능한 외부 구조를 원망하는 대신, 자신이 할 수 있는 작은 행동에 집중하자 무력감은 유능감으로 변하기 시작했습니다. 박 과장의 이러한 주도적 실천은 동료들의 연대를 이끌어냈고, 결과적으로 복지관의 안전 체계를 바꾸는 선한 영향력의 확장으로 이어졌습니다. 번아웃의 임계점에서 그를 전환한 것은 제도의 변화가 아니라, 자극과 반응 사이의 공간에서 영향력의 원을 선택한 지혜로운 '주체적 실천'이었습니다.

입체적 자기관리를 위한 네 가지 기둥

소진을 예방하고 주체적인 성장을 이어가기 위해서는 육체, 마음, 지식, 관계라는 네 가지 영역을 고루 돌보는 입체적인 자기관리가 필요합니다. 일과 속에서 소중한 영역을 먼저 배치하는 것이 관리의 모든 것입니다. 

 

첫째, 육체적 관리입니다. 원대한 목표 대신 주 2회 수영하기, 아침에 일어나 3분간 스트레칭하기, 밤 12시 이전에 반드시 취침하기처럼 지금 즉시 실행 가능한 사소한 루틴부터 시작합니다. 

둘째, 마음의 관리입니다. 복잡한 감정 노동 속에서 내면의 평화를 지키기 위해 하루에 20분씩 깊은 숨을 쉬며 명상하기, 매일 밤 세 가지의 감사일기 쓰기, 의도적으로 핸드폰을 멀리하고 홀로 침묵하는 시간 갖기 등을 실천해야 합니다. 높은 도덕적 가치를 추구할수록, 자기 내면을 비추는 고요한 시간을 확보합니다. 

셋째, 지식의 관리입니다. 직급이 올라가고 리더십을 발휘할수록 사고의 재료가 되는 언어가 풍부해야 합니다. 매월 한 권의 서적을 탐독하고, 한 페이지의 짧은 글을 작성하며, 정기적인 독서 모임에 참여하여 현장을 거시적으로 바라보는 안목을 형성합니다. 

넷째, 관계의 관리입니다. 가족들과 정서적으로 깊이 있는 대화를 나누고, 자녀의 말에 공감하며, 일터에서는 갈등이 발생했을 때 감정적으로 맞대응하지 않고 '나-전달법(I-Message)'을 차분히 적용하는 연습을 반복합니다.

 

네 가지 영역은 상호 보완적이므로 균형 있게 관리해야만 소진의 파도를 극복할 수 있습니다.

7년 차 복지사의 균형 성장을 위한 '소중한 일' 실천 시나리오와 활동 계획

그렇다면 네 가지 기둥을 활용한 활동 관리는 현장에서 어떻게 구체화될 수 있을까요? 노인복지관에서 근무하는 7년 차 이 팀장의 시나리오는 우리에게 실질적인 로드맵을 제시합니다.7년 차에 접어든 이 팀장은 중간관리자로서 위아래로 끼어 매너리즘과 육체적 고갈을 겪고 있었습니다. 복지관의 만성적인 인력 부족, 정부의 평가 지표, 부서 간의 이기주의 등 통제 불가능한 '관심의 원'을 원망하며 야근을 거듭하던 그는 마침내 "시간이 없어서 내 삶을 돌볼 수 없다"는 한계에 부딪혔습니다. 하지만 이 팀장은 '인생의 병에 모래(긴급하지만 소중하지 않은 행정 업무)를 먼저 채우면 큰 돌(내 삶의 성장과 안녕)을 넣을 수 없다'는 본질을 깨닫고, 자신의 '영향력의 원' 안에서 바로 실행할 수 있는 '네 가지 기둥 기반의 소중한 일 계획(활동 관리)'을 수립했습니다. 다음은 이 팀장이 매일의 일과 속에서 우선 순위로 배치하여 실천하고 있는 자기관리 활동 표입니다.

 

1. 육체적 관리
(에너지의 기초)
복지관의 과중한 업무량, 고질적인 인력 부족으로 인한 만성 야근과 수면 부족 주 2회 수영(화·목 퇴근 후) 회원 등록 및 참여
매일 아침 6시, 3분 스트레칭 루틴 고수
• 주중 밤 12시 이전 취침 스마트폰 전원 차단
체력이 증진되며 오후 시간대 업무 집중도가 향상됨. 만성 피로와 편두통이 완화되어 민원인을 대할 때 정서적 유연성이 생김.
2. 마음의 관리
(정서적 방파제)
완고한 상사의 독단적 성향, 까다로운 이용자들의 무리한반복 민원 자극 매일 아침 출근 직후 10분간 차 마시며 호흡 명상
• 감정 노동 후 홀로 20분간 산책하며 침묵 유지
• 퇴근 전 매일 3가지 감사일기 기록
민원인의 폭언 자극 앞에서 STC 버튼을 누를 수 있는 내면의 힘이 축적됨. 상사의 언행에 감정적으로 동요하지 않고 정서적 평정을 유지함.
3. 지식의 관리
(활동가
언어 축적)
복지 환경의 급격한 변화, 주민자치 고도화로 인한 기존 사업 모델의 정체와 한계 매월 사회복지 및 인문학 전문 서적 1권 완독
• 격주로 현장 고민을 담은 한 페이지 짧은 글 쓰기
• 관내 중간관리자 독서 실천 모임 주도 (월 1회)
복지 스텝의 매너리즘에서 벗어나 주민조직화의 활력적 근육을 재건함. 회의 시 소모적 논쟁 대신 명료한 가치의 언어로 동료들을 설득함.
4. 관계의 관리
(연대와 소통)
소통이 단절된 부서 간 이기주의, 야근으로 인해 소홀해진가족 및 자녀와의 갈등 • 매주 수요일 '가족 대화의 날' 지정, 1시간 경청
• 팀원들과 격주 1회 업무 제외 1:1 티타임 진행
• 갈등 발생 시 감정을 빼고 '나-전달법'으로 대화
가정 내 정서적 지지 기반이 단단해져 출근길이 가벼워짐. 팀 내 심리적 안전감이 조성되어 팀원들의 이직 의도가 낮아지고 업무 몰입도가 증가함.
 

이 팀장은 "시간을 관리하려 했을 때는 실패했지만, 영향력의 원 안에서 내 삶에 중요한 '활동'의 우선순위를 먼저 배치하자 소진의 파도가 멈추었다"고 고백합니다. 매일 아침 3분 스트레칭을 하고 퇴근 후 수영장으로 발걸음을 옮기는 사소한 루틴의 반복이 7년 차 복지사를 단단하게 만드는 실전적 무기가 된 것입니다.

콩나물 시루의 지혜와 현장의 선한 영향력

우리의 전문적 역량의 성장은 직선의 그래프를 그리며 우상향하지 않습니다. 노력해도 변화가 없는 것 같은 지루하고 답답한 정체기가 존재합니다. 그러나 이 시기를 묵묵히 견디며 사소한 루틴을 지속하는 행동을 '창조적 반복(Creative Routine)'이라고 부르고자 합니다. 창조적 반복이 임계점에 도달하는 순간, 우리의 역량은 질적인 도약을 이루며 한 단계 높은 차원으로 성장합니다. 이러한 성장의 원리는 마치 밑이 빠진 콩나물 시루에 물을 붓는 과정과 유사한 느낌입니다. 물을 주면 시루 밑바닥으로 물이 빠져 나가 버리는 것처럼 보입니다. 헛수고를 한 것 같은 허무함이 밀려들기도 합니다. 그러나 매일 거르지 않고 천천히, 그리고 꾸준히 물을 주다 보면 흘러가는 시간 속에서 콩나물은 보이지 않게 조금씩 자라나 마침내 시루를 가득 채우게 됩니다. 이 '보이지 않는 정체기'를 가장 잘 설명해 주는 이야기가 바로 우리 민족의 단군신화입니다. 곰과 호랑이가 캄캄한 동굴 속에서 쑥과 마늘만 먹으며 100일을 견디라는 과제를 받았을 때, 동굴 안에서는 둘 다 아무런 신체적 변화가 일어나지 않았습니다. 매일이 불안하고 지루한 정체기였을 것입니다. 99일까지 지속된 고달프고, 긴 어둠을 견디지 못하고 동굴을 뛰쳐나간 호랑이는 결국 그대로 였으나 창조적 루틴을 지켜낸 곰은 100일째가 되는 순간 인간으로의 질적 도약을 이루어냈다는 놀라운 맥락입니다.

 

3년 차 지역복지 담당자인 최 선임의 시행착오가 이 동굴의 시간과 같았습니다. 영구임대단지 주민들을 조직화하여 마을 공동체를 만들겠다는 포부로 현장에 뛰어든 최 선임은, 매주 주민들을 만나 소통하고 사랑방 모임을 기획했습니다. 그러나 6개월이 지나도록 주민들은 냉담했고, 모임은 활성화되지 않았습니다. 매번 밑 빠진 콩나물 시루에 물을 붓는 듯한 허무함과 "내 역량이 부족한가"라는 불안감이 밀려왔습니다. 단군신화의 호랑이처럼 당장 눈앞의 성과가 보이지 않는 현장을 포기하고 행정 스텝 역할로 도망치고 싶은 유혹이 매일 그를 흔들었습니다. 그럼에도 최 선임은 주민조직화의 근육을 믿고 매주 같은 시간에 마을로 나가 주민들의 손을 잡는 '창조적 반복'을 멈추지 않았습니다. 곰처럼 묵묵히 어둠을 견디며 영향력의 원에 집중한 지 1년이 지나던 어느 날, 기적이 시작되었습니다. 늘 마음을 닫고 있던 한 주민이 "최 선생이 매주 찾아와 진심을 다하는 모습을 보며 마음이 움직였다"며 이웃들을 모아 스스로 마을 축제를 기획하기 시작한 것입니다. 정체되어 있던 지역사회가 임계점에 도달하자 자생적 공동체로 변모하는 질적 도약의 순간이었습니다. 최 선임이 견뎌낸 지루한 99일의 정체기가 결코 헛수고가 아니었음을, 100일째의 변화가 증명해 준 것입니다.

국내외 주민조직화의 '동굴의 시간'과 돌파의 역사

최 선임의 시나리오는 가상의 이야기가 아닌, 전 세계 주민조직화 역사에서 수없이 입증된 실전적 진실입니다. 현대 주민조직화(Community Organizing)의 선구자인 사울 알린스키(Saul Alinsky)가 1930년대 미국 시카고의 가장 낙후된 빈민가이자 백인 비하 집단 거주지였던 '백야드(Back of the Yards)' 지역을 조직화할 당시가 그러했습니다. 초기 몇 달간 활동가들은 극심한 냉대와 의심을 받았습니다. 폭력과 빈곤에 찌든 주민들은 외부 실천가들의 제안에 전혀 반응하지 않았습니다. 아무런 가시적 변화가 없던 지루한 정체기 속에서 알린스키와 활동가들은 도망치지 않고, 주민들의 일상적 고충을 경청하며 영향력의 원 안에서 신뢰 벽돌을 채워 나갔습니다. 마침내 임계점에 도달하자, 지역 교회와 노동조합, 청년들이 연대하여 대규모 주민의회를 구성했고, 지자체를 상대로 아동 급식과 주거 환경 개선을 쟁취해 내는 질적 도약을 이뤄냈습니다. (출처: 사울 알린스키 저, 『급진주의자를 위한 규칙(Rules for Radicals)』)

 

국내 사례에서도 이와 유사한 사례가 존재합니다. 서울 영등포구의 영구임대단지 지역에서 활동하던 사회복지사들이 겪은 초창기 주민조직화 과정이 대표적입니다. 복지사들은 알코올 중독, 고독사, 이웃 간 소통 단절로 황폐해진 임대단지 환경을 바꾸기 위해 주민 모임을 시도했습니다. 하지만 초기 8개월 동안 주민들은 "복지관이 또 실적 채우려고 귀찮게 한다"며 문을 열어주지 않거나 심한 폭언 자극을 주기도 했습니다. 복지사들은 무력감의 동굴 속에서도 포기하지 않고, 매주 수요일마다 임대단지 정자에 앉아 주민들의 이야기를 듣고 떡을 나누는 창조적 루틴을 8개월간 지켰습니다. 그 보이지 않는 축적이 임계치를 넘어서자, 단 한 명의 주민이 마음을 열고 "매주 찾아오는 복지사들의 진심을 봤다"며 이웃들을 직접 설득하기 시작했습니다. 이 흐름은 순식간에 번져 주민들이 스스로 임대단지 내 순찰대를 조직하고, 자발적인 독거노인 반찬 나눔 모임인 '마을 공동체 가꾸기 회원'으로 발전하는 도약으로 이어졌습니다. 행정 스텝으로 도망치지 않고 '100일의 정체기'를 견뎌낸 복지사들의 헌신이 만들어낸 실제 기적입니다. (출처: 서울시 서부보건복지 계열 종합사회복지관 주민조직화 실천 사례집, 『주민이 주인 되는 마을 만들기』)

 

사회복지 현장과 공익 활동의 영역에서 마주하는 우리의 실천 역시 이와 같습니다. 가시적인 성과가 당장 눈앞에 나타나지 않고, 정성을 쏟은 사회와 지역사회가 여전히 제자리 걸음을 걷는 것 같아 지치고 낙담할 때가 많을 것입니다. 내가 든 기치와 현실의 괴리 앞에서 절망을 느낄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가 실천한 따뜻한 경청, 헌신적인 기획, 인간 존엄을 향한 작은 손길은 허공으로 사라지지 않습니다. 눈에 보이지 않는 내면의 고유한 축적을 이루며 사회와 이용자의 삶을 밑바닥에서부터 조금씩 변화시키고 있기 때문입니다. 훗날 우리들의 이름 석 자와 우리가 몸담았던 현장을 떠올릴 때, "그 사람들은 우리 사회를 참 따뜻하고 존엄하게 만들어준 고마운 존재였다"고 기억해 주는 것보다 더 위대한 업적은 없습니다. 척박한 사회적 복지 생태계와 공익 활동의 현장에서 묵묵히 자신만의 길을 걸으며 선한 영향력을 발휘하고 계신 모든 실천가 여러분, 여러분은 이 세상에 꼭 필요한 선함을 몸소 증명해 내고 있는 존엄한 나눔의 주체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