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5년 차의 도약과 문 앞의 새로운 과제
사회복지관의 문을 열고 들어온 지 어느덧 2년 반이라는 시간이 흐른 박소통 복지사는 자타가 공인하는 '현장 체질'이었다. 주민센터의 문턱을 닳도록 드나들고, 골목 평상에 앉아 어르신들이 건네는 요구르트를 받아 마시며 주민들과 관계를 맺는 일에는 제법 자신이 붙었다. 행정안전부의 주민자치 활성화 흐름이나 보건복지부의 커뮤니티 케어 정책이 말하는 '주민 주도성'이라는 단어도 이제는 낯설지 않았다. 실제로 박 복지사가 땀 흘려 뛰어다닌 만큼 마을 현장에도 기분 좋은 변화의 바람이 불고 있었다. 예전 같으면 관공서에서 정해준 대로 일방적으로 따르기만 하던 주민들이, 이제는 마을 복지 계획을 수립할 때 소소한 동네 청소 구역을 정하거나 반찬 나눔 대상자를 선정하는 일 정도는 스스로 머리를 맞대고 의논하기 시작했다. 회의실 테이블에 둘러앉아 서툴지만 서로 "먼저 말씀하시라"며 양보하는 모습도 보였고, 작은 안건들은 민주적인 절차를 거쳐 다수결로 척척 결정해내는 성숙함도 싹텄다. 동네 사랑방마다 소박한 자치 문화가 자리를 잡아가는 과정을 보며 박 복지사는 가슴 뿌듯한 보람을 느끼곤 했다.
그러나 이러한 소소한 성공과 평화는 더 크고 본질적인 동네의 구체적 이슈가 테이블 위에 올라오는 순간, 새로운 전환점을 맞이하게 되었다. 이번에 마주한 의제는 그동안 다루었던 가벼운 마을 이벤트나 단발성 사업과는 무게감 자체가 다른, 지역사회 이해관계자들의 현실적 권리와 가치가 정면으로 충돌하는 해묵은 과제였다. 동네의 방치된 폐가를 리모델링하여 독거어르신들의 급식 지원을 위한 '공공 공유주방'을 설치하고 운영하는 안건이 주어지자, 그간 다져온 민주적 소통의 문화는 한 단계 더 깊은 시험대에 올랐다. 마을 내 공유주방 설치라는 단일 의제를 둘러싼 다섯 이해관계자의 입장은 저마다의 명확한 명분과 타당한 논리를 가진 채 대립했다. 취약계층의 생존권을 위해 주방 설치가 시급하다는 복지사와 순수한 열정으로 몸을 던지겠다는 청년봉사자의 입장, 반면 내 집 앞 골목에 조리 시설이 들어옴으로써 발생할 소음과 악취, 주차 스트레스를 우려하는 주민대표의 입장이 충돌했다. 여기에 공유주방의 대량 조리 행위가 골목 상권의 매출을 위축시킬까 봐 반대하는 지역상인과, 주민의 재산권 보호와 복지 법령 집행 사이에서 행정적 한계를 고심하는 구청 공무원의 각각의 입장은 회의를 매번 평행선으로 흐르게 했다. 서로를 향한 존중은 있었지만, 양보할 수 없는 구체적인 생존권과 재산권이 충돌하는 현장 앞에서 양보와 다수결의 원칙으로는 결론을 내리기 어려웠다.
이제 겨우 현장의 첫발을 뗀 2.5년 차 담당자에게 이처럼 선명하게 맞서는 이해관계의 실타래를 조율하는 퍼실리테이터의 역할은 커다란 도전이었다. 이해관계자들 간의 좁혀지지 않는 의견 차이를 바라보며 박 복지사의 마음속에는 자연스러운 중압감과 두려움이 밀려왔다. '과연 내가 공유주방을 둘러싼 이 첨예한 갈등의 복판에서 중심을 잡고 모두가 공감할 수 있는 조율을 해낼 수 있을까? 괜히 성급하게 대안을 제시했다가 그동안 정성껏 가꾸어 온 마을의 신뢰 관계에 구멍을 내는 것은 아닐까?' 도약의 문턱 앞에서 마주한 이 과제는 청년 사회복지사에게 두려움과 동시에 잘해내고 싶다는 강한 책임감을 안겨주고 있었다.
선배의 다이어리에서 찾은 소통의 열쇠
퇴근길, 박 복지사는 불이 꺼져가는 사무실에 앉아 깊은 생각에 잠겼다. 주민들이 공유주방이라는 하나의 공간을 단순한 님비(NIMBY)나 이기주의의 대상으로 보지 않고, 공공의 가치 안에서 건강하게 토론하며, 결과에 기꺼이 기분 좋게 승복할 수 있는 대안적 토론 방법은 없는 것일까? 갈등이 상생의 지혜로 전환되는 주민조직화의 현장을 만들기 위해 어떤 기술이 필요할지 고민에 빠진 그에게, 팀장인 오실무 선배가 따뜻한 커피 한 캔을 건넸다. 오 선배는 박 복지사의 빼곡한 노트를 가만히 들여다보더니, 자신이 오랜 시간 아껴온 오래된 교육 파일 하나를 펼쳐 보였다. 맨 첫 장에는 '입장 토론, 일명 풍선들의 수다'라는 독특한 제목이 적혀 있었다. "박 복지사, 주민 조직 안에서 토론이 평행선을 달리는 이유는 주민들이 이기적이어서가 아니에요. 도리어 자신이 대변하는 구체적인 권리와 역할에 너무 성실하기 때문이지요. 주민대표는 골목 주민들의 정당한 주거 환경을 지켜야 하고, 상인은 당장 이번 달 점포의 생계를 지켜야 하니까. 각자가 서 있는 단단한 방을 한 걸음도 벗어나지 못한 채 상대방의 말을 들으라고 하니, 그건 진짜 경청이 아니라 내 주장을 펼치기 위해 잠시 숨을 고르는 대기 시간에 불과하지요.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건, 상대방의 입장을 안전하고 재미있게 직접 쥐어보게 만드는 소통의 기술이에요. 이 풍선 기법을 우리 공유주방 갈등 현장에 맞게 한번 다듬어보면 효과적일 거에요."
자료를 읽어 내려가는 박 복지사의 눈이 반짝이기 시작했다. 이 기법은 참여자들에게 서로 다른 색상의 풍선 교구재를 부여하고, 일정 시간 동안 철저히 그 풍선에 적힌 정체성에 스며들어 토론하게 만드는 '역할 전환 기반의 토론 모형'이었다. 내 개인의 생각과 조금 다르더라도 부여된 풍선의 정체성에 기대어 발언하기 때문에 심리적 부담이 적고, 정해진 시간이 지나면 풍선을 옆으로 교체해가며 다채로운 관점을 골고루 경험할 수 있다는 강점이 있었다. 박 복지사는 이 기술이 우리 동네 공유주방 설치를 둘러싼 논의의 평행선을 전환하고, 상생의 길을 열어줄 수 있는 소중한 열쇠가 될 수 있음을 직감했다.
에드워드 드 보노와 관점 전환의 과학
박 복지사는 프로그램을 모방하는 것에 그치지 않고, 주민들과 기관에 확실한 신뢰를 주기 위해 이 기법의 이론적 배경과 과학적 근거를 촘촘하게 채워나갔다. 현장에서 활용하는 풍선 토론은 인지과학과 창의적 사고 교육 분야에서 세계적인 권위를 가진 에드워드 드 보노(Edward de Bono)의 '육색모자 사고법(Six Thinking Hats, 1985)'과 맥을 같이 하고 있었다. 드 보노는 인간의 뇌가 한 번에 너무 많은 정보와 감정, 비판과 기대를 동시에 처리하려다 보면 사고가 엉키고 감정적인 대립으로 치닫기 쉽다고 분석했다. 따라서 서로 다른 사고 유형을 색상으로 구분하여 초점을 맞출 때, 비로소 다각적이고 건설적인 논의가 가능해진다는 원리였다. 국내의 공공 및 교육 현장에서도 이를 변형한 '색깔 교구 토의·토론' 연구들이 교육학 분야를 중심으로 다수 발표되며 그 효과성을 입증하고 있었다. 학계의 연구 결과들에 따르면, 자신의 고정된 의견에서 벗어나 지정된 색상의 정체성을 대변하는 연습을 거친 참여자들은 특정 쟁점의 위험 요인과 긍정적 편익을 입체적으로 검토하는 복합 사고 능력이 향상될 뿐만 아니라, 타인에 대한 정서적 공감 능력이 통계적으로 유의미하게 상승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다만, 사회복지나 지역사회 주민조직 현장에서는 추상적인 인지적 성격(정보, 감정, 비판 등)으로 풍선을 쓰기보다, 마을의 실제 '이해관계자 정체성'으로 치환하여 풍선에 기재할 때 주민들의 몰입도와 현장 활용성이 극대화된다는 현장 전문가들의 실천 기록을 확인했다. 박 복지사는 탄탄한 이론적 정당성을 뼈대로 삼고, 우리 동네의 당면 과제인 '공공 공유주방 설치' 갈등을 해결하기 위해 다섯 명의 핵심 이해관계자 정체성을 풍선 교구재에 녹여내기 위한 전략을 구상했다.



해외 선진 사례에서 발견한 역지사지의 힘
박 복지사는 풍선 토론을 설계하면서, 이와 유사한 정체성 전환 토론 기법이 해외 공동체 갈등 해결에서 거둔 가치 있는 성과들을 찾아내어 살펴보았다. 우리가 직면한 사안과 가장 비슷한 사례가 있었다. 영국 이스트 런던(East London)의 커뮤니티 재단이 주도한 '공동체 주방 및 자치 센터 건립 프로젝트'였다. 당시 이 지역 역시 저소득층 이민자들을 위한 무료 공공 주방 설치를 두고, 인근 원주민들의 거센 치안·환경 민원과 인근 소상공인들의 강력한 반발로 2년 가까이 사업이 전면 중단된 상태였다. 당시 재단은 주민 간의 감정적 평행선을 깨기 위해 드 보노의 관점 전환 모형을 로컬 거버넌스에 맞춤형으로 변형한 '롤 플레이 액션 랩(Role-Play Action Lab)' 프로그램을 도입했다. 반대파 주민에게는 '이민자 보호자'의 역할을, 상인들에게는 '커뮤니티 활동가'의 지위를 부여하여 대화하게 한 실천이었다. 그 결과, 참여자들은 타인의 정체성을 통해 공공 사업의 필요성과 서로의 합리적 두려움을 동시에 목격하게 되었다. 이 드라마틱한 관점 전환을 거치며 영국 현지 주민들은 무조건적인 반대를 철회하고, 상인들이 주방 식자재를 납품하는 '로컬 상생 거버넌스'를 구축하는 대타협을 이뤄냈다(출처: 대안적 공동체 분쟁 해결에 관한 런던 소통연구소 보고서, 2019 / London Institute of Communication, 'Alternative Community Dispute Resolution Report', 2019). 박 복지사는 이 해외 사례를 보며, 공간을 둘러싼 로컬 갈등의 해법은 타인의 신발을 신어보는 정서적 체험에 있음을 확신했다.


국내 실증 연구가 증명하는 토론 기술의 신뢰성
해외 사례뿐만 아니라 국내 사회복지 및 주민자치 현장에서도 이러한 정체성 분리 토론 기법의 실질적인 효과성은 구체적인 학술 연구를 통해 거듭 증명되고 있었다. 대도시 자치구의 주민참여예산제 및 마을 공공공간 건립 과정에서 발생하는 민민(民民) 갈등과 민관(民官) 갈등을 연구한 학계의 실증 분석들이 대표적인 근거였다. 국내의 한 자치 분역 연구에 따르면, 찬반 투표나 자유 발언 중심의 주민 회의는 오히려 갈등을 고착화하고 소수의 목소리 큰 주민에게 의사결정이 좌지우지되는 부작용을 낳았다. 반면, 참여자들에게 임의의 역할 풍선이나 지정된 색상의 관점 카드를 쥐여주고 토론을 촉진한 실험 집단에서는 지표 변화가 관찰되었다. 상대방의 입장을 직접 발언해 본 주민들은 '갈등 사안에 대한 인지적 복잡성'이 토론 전보다 평균 42% 이상 상승했으며, '타인 의견에 대한 수용도' 역시 비실험 집단에 비해 압도적으로 높게 나타났다. 특히 최종 합의안이 도출되었을 때, 자신의 본래 의견과 다른 결과가 나오더라도 의사결정 과정의 민주적 정당성을 인정하고 결과에 기꺼이 승복하는 '절차적 정당성 인지 비율'이 80%를 상회한다는 통계적 결론을 확인할 수 있었다(출처: 한국지방자치학회보, "색깔 지정을 통한 관점 전환 토론 기법이 주민참여예산 갈등 조정에 미치는 영향", 2022). 박 복지사는 이러한 국내 데이터에 기반하여, 이번 풍선 토론이 동네의 공유주방 갈등을 해결할 가장 과학적이고 신뢰도 높은 장치임을 확신하고 현장 적용을 서둘렀다.
첫 번째 시도와 팽팽한 공기
마을복지계획 수립을 위한 주민 모임 날, 박 복지사는 회의실 탁자 위에 파랑, 하양, 빨강, 노랑, 초록색의 오색 풍선과 네임펜을 올려두었다. 풍선 토론을 전면적으로 적용하기에 앞서, 주민들의 경직된 마음을 풀어주고 '내 입장'의 중력에서 잠시 벗어나는 연습을 하기 위한 워밍업 단계였다. 오늘 참석한 다섯 명의 핵심 주민대표(구청 복지정책 담당 공무원, 종합사회복지관 관장, 마을활동가이자 주민대표, 지역상인회 회장, 청년봉사자 대표)는 탁자 위의 알록달록한 풍선들을 보며 호기심과 어색함이 교차하는 표정을 지었다. "주민 여러분, 고맙습니다. 오늘은 매번 하던 서류 중심의 회의에서 잠시 벗어나, 서로의 생각을 색다른 방식으로 들여다보는 시간을 가지려 합니다. 각자 앞에 놓인 풍선에 본인의 원래 성격이나 오늘 토론에서 취하고 싶은 태도를 적어주세요. 긍정형, 비판형, 중립형, 감정형, 사실주의자 중 하나를 선택하시면 됩니다." 박 복지사의 안내에 따라 주민들은 조금씩 웃음을 지으며 풍선 위에 글자를 적어 나갔다. 늘 깐깐하게 예산 규정을 따지던 구청 공무원은 '사실주의자'를, 순수한 진심을 가진 청년봉사자는 '긍정형(열정가)'을, 복지관 관장은 '중립형'을 선택했다. 워밍업 토론의 주제는 최근 공공 의제로 자주 언급되던 "인구 증가를 위한 결혼 지원금 1억 지급 정책의 타당성"이라는 다소 신선하고 가벼운 이슈였다. 그러나 토론의 막이 오르자 박 복지사의 예상은 다소 빗나갔다. 주민들은 풍선에 적힌 정체성을 연기하기보다, 어느새 평소 자신이 가지고 있던 신념과 가치관을 그대로 투영하여 상대방의 의견을 반박하기 시작했다. 사실주의자 풍선을 든 구청 공무원은 "국가 재정의 지속 가능성을 고려할 때 현실성이 없다"며 정책의 한계를 명확히 선을 그었고, 긍정형 풍선을 든 청년은 과감한 투자가 필요한 시점이라며 행정의 신중함을 답답해했다. 풍선이라는 도구를 손에 쥐여주었음에도, 평소의 대화 습관과 고정관념의 무게는 쉽게 가벼워지지 않았고 회의실의 공기는 이내 평소처럼 팽팽해졌다. 첫 단계부터 세심한 조율의 필요성이 절실해지는 순간이었다.
고정관념을 털어내는 세 바퀴의 유희
박 복지사는 당황하지 않고, 오 선배의 조언과 동영상 실천 매뉴얼에서 강조했던 '신체적 전환 의식'의 중요성을 떠올렸다. 머리로만 관점을 바꾸려 하면 익숙한 자아의 관성이 작동하기 마련이다. 신체를 움직여 내 안의 긴장과 고집을 먼저 물리적으로 털어내야 했다. 박 복지사는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주민들을 향해 다정하면서도 활기찬 목소리로 외쳤다. "잠시만요, 주민 여러분! 지금 우리는 풍선의 정체성이 아니라 평소 내 모습 그대로 아주 진지하게 토론하고 계십니다. 이렇게 해서는 진짜 입장 토론의 묘미를 경험하기 어렵습니다. 모두 들고 계신 풍선을 머리 위로 높이 들어 올려 주시기 바랍니다. 그리고 다 함께 자리에서 가볍게 일어나 주십시오." 주민들은 서로의 얼굴을 바라보며 엉거주춤 자리에서 일어났다. 박 복지사는 직접 시범을 보이며 머리 위의 풍선을 부드럽게 흔들었다. "자, 지금부터 제 구호에 맞춰 회의실 탁자를 중심으로 시계 방향으로 천천히 돌겠습니다. 몸을 가볍게 움직이면서 내 안의 고정관념과 긴장감을 털어버리는 주문을 함께 외치는 겁니다. '고집을 버리자, 관점을 바꾸자!' 딱 세 바퀴만 돌겠습니다. 시작합니다!", "고집을 버리자... 관점을 바꾸자..." 처음에는 쑥스러운 듯 작은 목소리로 웅얼거리던 주민들이, 두 바퀴를 돌고 세 바퀴째에 접어들자 서로의 유쾌한 모습에 결국 참지 못하고 환한 웃음을 터뜨렸다. 평소 엄격한 표정으로 행정 검토를 말하던 구청 담당자가 파란 풍선을 머리에 이고 조심조심 걷는 모습, 복지관 관장님이 하얀 풍선을 흔들며 미소 짓는 모습 그 자체가 회의실의 두꺼운 벽을 허무는 거대한 해학이었다. "좋습니다. 이제 제 신호에 맞춰 들고 계신 풍선을 오른쪽 분에게 전달합니다. 한 클릭 이동!" 박 복지사의 신호와 함께 풍선이 이동했고, 주민들의 역할이 강제적으로 전환되었다. 깐깐했던 행정 담당자의 손에는 '긍정형(열정가)' 풍선이, 늘 열정적이던 청년활동가의 손에는 '비판형(부정형)' 풍선이 쥐어졌다. 몸을 움직이고 함께 웃는 이 짧은 유희의 과정을 거치고 나서야, 회의실을 지배하던 무거운 방어기제와 권위가 부드럽게 해체되었다. 주민들의 눈빛에는 비로소 새로운 관점을 받아일어날 준비가 된 유연함이 깃들었다.

풍선의 교체, 그리고 찾아온 첫 번째 울림
워밍업으로 마음의 밭을 일구었으니, 이제 동네의 가장 깊고 본질적인 의제를 다룰 본 라운드가 시작되었다. 박 복지사는 풍선을 새로 정돈하여, 세심하게 준비한 동네 공유주방 설치 이슈의 실제 이해관계자 정체성이 기재된 오색 풍선들을 주민들에게 다시 전달했다. 이번에는 추상적인 성격이 아니라, "우리 동네 방치된 폐가를 독거노인 급식 지원용 공유주방으로 만들 것인가"라는 단일 의제를 둘러싼 실제 다섯 명의 이해관계자 정체성이 고스란히 담긴 묵직한 교구재였다. 첫 번째 라운드에서 주민들은 우선 자신이 들고 있는 풍선의 실제 역할에 맞는 입장에서 1차 발언을 이어갔다. 영양실조 위기에 놓인 독거어르신들의 생존을 위해 공유주방 설치가 절박하다는 복지사, 마을을 심폐소생술 하겠다는 청년의 목소리, 반면 내 집 앞 골목에 시설이 들어옴으로써 소음과 악취, 주차 문제가 생길 것을 우려하는 주민대표의 주장이 팽팽하게 맞물렸다. 여기에 식자재 공급 상권 침해를 우려하는 상인회장과 법적 한계를 조율하는 공무원의 의견까지 날카롭게 부딪혔다. 각자의 정당한 논거들이 충분히 펼쳐진 후, 박 복지사는 타이머의 시작 버튼을 누르며 차분하고 엄숙한 목소리로 선언했다.
"지금부터 이 풍선 토론의 가장 중요한 핵심인 [풍선 교체] 단계로 진입합니다. 퍼실리테이터의 안내에 따라, 모든 참석자는 지금 들고 계신 풍선을 시계 방향으로 바꾸시기 바랍니다. 주민대표 풍선은 사회복지사에게, 사회복지사 풍선은 지역상인에게, 상인은 청년봉사자에게, 청년은 구청 공무원에게, 공무원 풍선은 주민대표에게로 이동합니다. 이제부터 여러분은 방금 전까지 내가 열심히 설득하려 했던 바로 그 사람입니다." 회의실에 정적이 흘렀고, 풍선을 바꿔 든 주민들의 시선이 저마다 손에 쥐어진 새로운 색상의 풍선 표면으로 향했다. 잠시의 망설임 끝에 가장 먼저 침묵을 깬 사람은 평소 "왜 하필 내 골목, 내 집 앞이냐"며 공유주방 설치를 강하게 반대하던 주민대표였다. 이제는 '사회복지사'의 문구가 적힌 푸른 풍선을 가지게 된 그는 풍선을 가만히 만지작거리며 깊은 숨을 내쉬더니, 이내 차분해진 목소리로 대화를 시작했다. "막상 풍선을 바꾸어 쥐고 나니 참 묘한 기분이 듭니다. 아까 주민대표일 때는 '왜 하필 내 집 앞이냐'고 언성을 높였는데, 사회복지사 풍선을 들고 이 자리에 앉으니 가슴이 내려앉습니다. 제 눈앞에 당장 이번 주에 돌아가실지도 모르는 영양실조 어르신 여러분의 얼굴이 떠다니는 기분이에요. 주민분들의 항의 방문을 받을 때, '이 사업은 실적이 아니라 사람 목숨이 달린 일입니다'라고 하셨던 사회복지사님의 마음이... 이제야 조금 이해될 듯 합니다. 예산은 한정되어 있고 폐가는 방치되어 있는데, 주민들을 어떻게 설득해야 할지 복지사로서 고민이 됩니다." 그의 잔잔한 고백이 끝나자 회의실에는 따뜻한 온기가 감돌았다. 주민대표의 입을 통해 흘러나온 사회복지사의 현실적인 고충은, 복지사 스스로가 백 번 설명하는 것보다 더 깊은 진정성을 띠고 주민들의 마음에 스며들었다.
역지사지의 여정에서 만난 성찰의 눈물
박 복지사는 주민들이 더 깊은 인지적 성찰과 정서적 공감에 도달할 수 있도록, 토론의 흐름을 이어가며 풍선을 두 번째, 세 번째로 계속해서 회전시켰다. 두 번째로 풍선을 교환하여 '지역 상인'의 풍선을 들게 된 종합사회복지관 관장님의 발언은 자리에 함께한 모든 이들의 마음을 뭉클하게 만들었다. "저 역시 지역 상인 사장님의 풍선을 손에 쥐고 나니 비로소 선명하게 보이는 것들이 있습니다. 그동안 복지사로 일할 때는 상인분들이 '좋은 일 하는데 왜 이렇게 반대만 하실까'라며 내심 서운해 했었습니다. 하지만 자영업자 입장이 되어보니 그게 아니네요. 저는 매달 직원 월세와 재료비, 공과금을 내야 하고, 이번 달 매출이 떨어지면 당장 내 자식 학원비도 못 주는 절박한 가장이었습니다. '복지'라는 명분 때문에 내 생업과 상권이 위협받는 상황을 생각하니, 분노가 일어나네요. 상인들의 불안감을 '지역 이기주의'로 생각했던 것을 반성하게 되었습니다." 관장님의 진심 어린 이야기가 이어지자, 탁자 맞은편에 앉아 있던 상인회 회장님의 눈에 물기가 보이는듯 했다. 자신이 공유주방 개설로 인한 골목 상권 위축을 걱정하며 주장해왔던 삶의 무게를, 다소 멀게만 느껴졌던 복지관 관장님이 풍선을 들고서 자신의 목소리로 공감했기 때문이다. 내 입장이 타인의 언어를 통해 온전하게 존중받는 순간, 가슴 속 깊이 쌓여 있던 경계심과 방어벽은 자연스럽게 녹아내리게 된다. 이어서 '구청 공무원'의 풍선을 쥐게 된 청년활동가의 고백이 잔잔하게 회의실을 채웠다. "공무원 풍선을 들고 보니 행정이 가진 법적, 제도적 책임의 무게가 얼마나 무거운지 알 것 같습니다. 아까는 구청이 왜 이렇게 느리고 미온적이냐고 답답해했는데, 행정 담당자가 되어보니 법과 제도, 예산의 한계라는 벽이 사방에 쳐져 있네요. 주민의 주거 환경권도 헌법상의 권리고, 노인 복지도 법적 의무인데, 둘이 충돌할 때 어느 한쪽의 손을 들어주는 순간 행정소송이나 격렬한 민원에 시달리게 될 것이라 생각됩니다. 서류 한 장, 예산 한 줄 집행하는 게 얼마나 신중해야 하는지 비로소 행정의 고충을 알 것 같습니다." 회의실은 이제 서로를 설득하기 위한 논쟁의 장이 아니었다. 서로의 풍선을 바꾸어 들고 험난한 마을의 길을 함께 걸어본 이들이 나누는, 깊은 연대와 성찰의 광장이었다.
상생의 지혜와 우리 모두의 공간
마을의 모든 이해관계자가 서로의 풍선을 통해 공유주방 설치를 둘러싼 다섯 가지 시선들을 경험한 후, 박 복지사는 마지막 라운드를 선언했다. "주민 여러분, 고맙습니다. 서로의 풍선을 바꾸어 들며 그 뒤에 숨겨진 진심 어린 두려움과 책임감을 온전하게 확인하셨으니, 이제 다시 본래의 역할로 돌아와 주시기 바랍니다. 그리고 우리가 함께 경험한 깊은 이해를 바탕으로, 공유주방에 대해 전향적이며, 승승의 방향으로 합의안을 도출해 주십시오." 본래의 주민대표 역할로 복귀한 주민은 먼저 마이크를 잡고 환한 표정으로 의견을 냈다. 그는 자신이 복지사 풍선을 들었을 때 느꼈던 책임감을 바탕으로 전향적인 대안을 제시했다. 공유주방의 운영 시간을 제한하고, 저녁과 주말에는 주민들의 자치 공간이나 맞벌이 부부를 위한 돌봄방으로 개방해 준다면, 이 시설은 더 이상 노인들만의 시설이 아니라 '우리 주민 모두의 복지관'이 될 수 있다는 논리였다. 이 조건을 수용해 준다면 반대를 거두고 주민들을 설득하는 데 앞장서겠다고 선언했다. 복지관 관장님은 주민대표의 제안을 수용하며 화답했다. 그리고 자신이 상인의 풍선을 들었을 때 불안감을 해소하기 위해 생산적인 아이디어를 제안했다. 공유주방에서 소비되는 모든 식자재를 우리 골목 상권과 전통시장에서만 100% 구매하는 '로컬 푸드 구매 쿼터제'를 운영하겠다고 했다. 복지 시설이 들어와서 도리어 골목 상권의 매출을 올려주는 든든한 고객이 되겠다는 다짐이었다. 상인회 회장 역시 대안적인 아이디어를 제안했다. 아까 청년의 풍선을 들었을 때 그 순수한 마음에 감동했다며, 청년들에게만 조리실 청소와 위생을 맡기지 않겠다고 했다. 상인회 요식업 사장님들이 교대로 공유주방의 위생 관리관이 되어 노하우를 전수하고, 주말 요리 교실의 재능기부 강사로 나서서 공유주방이 골목의 자랑거리가 되도록 상인회에서 논의해보겠다고 화답했다. 이에 청년봉사자는 전통시장의 식자재를 거점으로 주민과 상인을 연결하는 마을 축제와 골목 잡지 발행을 기획해 동네에 활력을 불어넣겠다고 미소 지었다. 마지막으로 구청 공무원은 주민들의 주차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공유주방 뒤편 유휴지를 매입하여 '민관 공용 주차장'을 조성하는 논의를 시작해보겠다고 했다. 상인회와 복지 기관의 식자재 우선 구매 계약을 행정적으로 지원하거나 민원 걱정 없는 '마을 상생 협약서'를 체결하여 예산을 신속히 집행하는 방안을 보고하고, 논의해보겠다고 했다. 내 입장만 고집할 때는 보이지 않던 공유주방의 상생 지도가, 서로의 풍선을 바꿔 들고 나니 명확한 현실이 되어 눈앞에 펼쳐진 것이다.
민주적 정당성과 성장의 기록
이번 주민 모임을 성공적으로 마친 후, 박소통 복지사는 자리에 앉아 보람을 음미했다. 2년 반 동안 주민조직화 담당자로서 해내고 싶었던 참된 소통의 모델이 현장에서 실현되는 순간이었다. 풍선 토론 기법은 레크리에이션이나 일회성 프로그램이 아니었다. 그것은 주민들에게 타인의 삶과 정책적 고충을 합법적으로 대변해 보는 소중한 기회를 제공함으로써, 우리 안의 좁은 시야를 넓히고 성찰을 이끌어내는 고도의 '민주적 시민교육 실천'이었다. 박 복지사는 이번 도전을 통해 귀중한 현장 실천 지침을 스스로 정립할 수 있었다.
- 첫째, 갈등의 성격이 짙을수록 토론 전 몸과 마음의 긴장을 부드럽게 하고, 주어진 입장에 감정이입을 하도록 신체적 의례 과정이 진행될 필요가 있다.
- 둘째, 관점의 전환은 단발성에 그치지 않고 풍선을 최소 2~3회 이상 연속하여 회전시켜 복합적인 이해관계를 입체적으로 경험하게 해야 효과가 높다.
- 셋째, 사회복지사는 토론 과정에서 결론을 미리 정해두지 않고, 주민들의 목소리가 온전히 반영되도록 '중립적 촉진자(퍼실리테이터)'의 자리를 지켜야 주민 주도의 합의가 싹튼다는 점이다.
단순히 다수결의 논리로 표를 모아 소수를 배척하고 소외시키는 의사결정은 지속 가능한 정당성을 얻기 어렵다. 비록 시간이 조금 더 걸리고 서툴지라도, 서로의 풍선을 바꿔 들고 대화하며 상대방의 진심과 책임감의 무게를 먼저 확인하는 성숙한 과정을 거칠 때, 주민들은 결과에 기꺼이 승복하고 함께 책임지는 자치의 주체로 성장한다. 2.5년 차 박소통 복지사는 이제 새로운 도전 앞에서도 더 이상 두렵지 않았다. 그의 따뜻한 손에는 마을 주민들을 상생과 타협의 광장으로 다정하게 안내할, 빛나는 오색 풍선들이 언제나 함께할 것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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