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뷔 40주년을 맞이한 가수 임재범이 전국 투어 콘서트를 끝으로 공식 은퇴를 선언했다는 소식은 왜? 아직 생생한데, 특별히 신상에 대한 문제도 없는데 '왜?' 라는 당혹감을 주었습니다. 가수 임재범의 40주년 콘서트를 대학에 들어간 큰 아이와 함께 보고, 듣고 나서 은퇴 소식을 들으니 다행스러움을 비롯한 다양한 감정이 교차했습니다. 소식 이후로 매일 은퇴 이유를 검색했습니다. 저를 비롯한 많은 팬들도 이유가 무척 궁금했나 봅니다. 겨우 기사 몇 개가 나왔습니다. 가수 임재범은 목소리가 나오지 않는 최악의 상황을 맞이하기보다, 온전하게 노래할 수 있을 때 무대를 떠나는 것이 마지막 자존심이자 팬들에 대한 도리라고 밝혔습니다. 스스로 가장 빛나고 좋은 때에 무대에서 걸어 나오는 "박수 칠 때 떠난다"는 결단, 온전하게 열정을 불태워 노래할 수 있을 때 마이크를 내려놓겠다는 고백, 그리고 아내와 사별한 후 홀로 남은 딸을 위해 이제는 가수가 아닌 평범한 가장이자 아빠로서의 삶에 집중하겠다는 다짐은 거장의 내공을 느낄 수 있었습니다. 팬들의 아쉬움이 빗발쳤는지 은퇴 후에도 평범한 세상 속에서 팬들과 함께 숨 쉬고 있을 것이니 섭섭해하지 말라며 마지막 신곡 Life is a Drama로 40년 음악 인생을 마무리한 그의 모습은, 삶의 절정에서 스스로 브레이크를 밟을 줄 아는 인간의 통제력의 아름다움을 보여준 한 사례로 남았습니다. 최고의 순간에 스스로 무대를 비워내는 가수 임재범의 서사는 나이가 들면서 변화되는 중년으로 흘러가는 나의 신체와 더불어 삶과 세계를 돌아보게 만드는 성찰의 거울이 되어 주었습니다.

거울 앞에서 마주한 신체의 역설
강사인 저는 오십대로 들어가면서 오후 강의를 앞두고는 꼭 거울을 보게 되는 습관이 생겼습니다. 삼사십대에는 아침 면도로 충분했습니다. 오십대가 되니 오후나 저녁 강의 스케줄이 있다면 꼭 강의 전에 거울을 보고, 관리해야 합니다. 반나절만에 얼굴에 거뭇한 기운이 올라오고 수염이 까칠하게 자라나기 때문입니다. 몇 년 전에는 없던 루틴이 생겼습니다. 신체 곳곳에서 낯선 변화가 일어납니다. 코털이 길게 자라 간질거려서 나도 모르게 자주 코와 콧구멍을 만지게 됩니다. 왼쪽 눈썹 하나는 홍콩 무술 영화의 스승처럼 길게 뻗어 자랍니다. 어느 날 강의를 마치고 화장실 거울을 보다가 콧구멍 밖으로 삐죽 나온 코털을 발견했습니다. 민망함에 귀가하는 버스 안에서 내내 신경이 쓰였습니다. 풍성해야 할 머리숱은 줄어들어 머리속이 들여다보입니다. 반면 단정해야 할 얼굴 주변의 털들은 오히려 길고 굵어집니다. 비어가는 곳과 무성해지는 곳이 교차하는 중년 신체를 겪고 있는 중입니다.
생물학적 브레이크의 고장과 항상성 붕괴
이러한 현상은 생물학적 항상성이 느슨해진 결과라고 합니다. 젊은 시절 모낭은 성장과 억제의 균형을 정교하게 유지합니다. 털이 일정 길이에 도달하면 성장을 멈추라는 억제 단백질 신호가 작동합니다. 노화는 이 억제 신호가 약해지는 과정이라고 합니다. 성장을 멈추게 하는 생물학적 브레이크가 마모되는 것입니다. 이로 인해 테스토스테론과 대사 물질인 디하이드로테스토스테론(DHT)에 대한 특정 부위 모낭의 민감도가 변합니다. 머리카락 모낭은 위축되어 탈모가 일어납니다. 반면 눈썹, 코털, 수염 모낭은 성장기 신호가 꺼지지 않고 '아나젠 주기'가 장기화됩니다. 제어력을 잃은 특정 부위의 체모가 비정상적으로 길어집니다. 신체 통제 시스템의 균형이 한쪽으로 쏠렸기 때문입니다.

전문화의 허약성과 죽음의 기원
생명의 역사에서 균형과 통제는 생존의 핵심이었습니다. 40억 년 전 지구상에 출현한 단세포 생명은 무한히 재생하는 불멸성을 가졌습니다. 하지만 약 7억 년 전 세포들이 결합하여 다세포 생명이 탄생했습니다. 다세포 생물은 효율적인 생존을 위해 세포 간 분업과 전문화를 선택했습니다. 소화나 이동 등 각자의 역할을 나누어 맡은 것입니다. 그러나 전문화가 심화되면서 개별 세포는 스스로 생존할 능력을 잃고 허약성을 갖게 되었습니다. 이 허약성이 결국 개체의 죽음으로 이어졌습니다. 다세포 유기체가 유기적으로 연결되고 생태계 내부에서 종들 간의 균형을 유지하기 위해 죽음이라는 제어 장치가 필연적으로 발생한 것입니다.

전략적 폐기와 아폽토시스 메커니즘
다세포 생명체가 건강함을 유지하는 비결은 역설적으로 잘 죽는 것에 있습니다. 생물학에서는 이를 아폽토시스(Apoptosis), 즉 세포 자살이라고 부릅니다. 세포의 자살이 생명을 완성하듯 조직의 영속성도 전략적 폐기가 결정합니다. 단적인 예가 손의 형성입니다. 태아는 성장과정에서 손가락 사이의 세포들이 스스로 사멸하여 사라져야 비로소 정교한 인간의 손이 완성됩니다. 만약 세포가 죽기를 거부하고 과거의 불멸성을 독단적으로 추구하면 그것은 몸 전체를 위협하는 암세포가 됩니다. 암세포는 타 세포와 소통하지 않는 일종의 자폐적 증식을 일삼습니다. 뇌는 이와 유사하게 유아기에 폭발적으로 증가한 시냅스 중 사용하지 않는 경로를 과감히 제거하는 시냅스 가지치기(Neural Pruning)를 단행합니다. 불필요한 경로를 제거해야 학습과 전문화가 일어납니다. 자연 생태계 역시 주기적인 산불을 통해 노쇠한 나무들을 태우고 토양에 영양분을 공급하여 새로운 생명이 싹틀 공간을 마련합니다. 비우지 않으면 채울 수 없고, 죽지 않으면 새로 태어날 수 없습니다. 아폽토시스는 생명을 지속시키기 위한 적극적인 생존 전략입니다.
조직의 노화와 통제력 상실
조직도 하나의 다세포 생명체와 같습니다. 비영리조직(NPO), 시민단체, 사회복지 기관도 시간이 흐르면 늙습니다. 초기 조직은 공통의 목적을 위해 개인이 결합하여 사명과 비전에 집중합니다. 역할을 분담하며 전문성을 발휘하고 상호의존적 연대를 이룹니다. 그러나 조직이 나이가 들면 스스로를 정교하게 통제하던 피드백 시스템이 느슨해집니다. 현장의 활력과 핵심 가치는 머리숱처럼 빠져나갑니다. 반면 수명이 다한 프로젝트, 관료주의적 절차, 구시대적인 관습은 암세포처럼 불멸을 고집하며 조직을 노쇠하게 만듭니다. 소통이 단절된 부서와 개인은 조직의 방향성과 무관하게 독단적으로 비대해집니다. 정작 힘을 주어야 할 본질은 약화되고, 멈추어야 할 비본질적 요소들은 제어 장치가 고장 난 채 무성해 집니다.
기업 사례: 가속 페달만 밟았던 레고의 위기와 부품 가지치기
통제력을 상실한 채 비본질적인 영역을 확장하다가 파산 위기에 직면했던 대표적인 사례가 글로벌 완구 기업 레고(Lego)입니다. 1990년대 후반 레고는 본질인 블록 장난감의 성장 한계를 선언했습니다. 이후 비디오 게임, 아동 의류, 디지털 애니메이션, 대규모 테마파크 사업으로 무리하게 다각화를 시도했습니다. 고유의 정체성을 잃은 채 시장의 유행을 좇았습니다. 이 과정에서 고유 부품의 수는 7,000개가 넘게 증가했습니다. 제조 프로세스는 복잡해졌고 물류 비용과 운영 효율성은 악화되었습니다. 가속 페달만 밟고 조절 브레이크를 밟지 않은 결과였습니다. 2004년 취임한 최고경영자 요르겐 비그 크누스토르프는 아폽토시스와 같은 결단을 내렸습니다. 레고의 핵심 가치인 창의적 블록 놀이로의 회귀를 선언했습니다. 테마파크를 비롯한 비핵심 사업을 과감히 매각했습니다. 복잡성의 주범이었던 생산 부품의 30%를 현장에서 잘라냈습니다. 모든 것을 다 잘하려는 구조에서 핵심 역량에 집중하는 방식으로 조직을 재편했습니다. 불필요한 경로를 제거한 레고는 민첩성을 회복하고 역사상 최대의 흑자를 기록하며 재도약에 성공했습니다. (출처: The Strategy Institute, "From Bankruptcy to Billions: Lego's Blueprint for Business Transformation")
비영리 사례: 관행을 태우고 본질을 재건한 걸스카우트
비영리에서 가장 성공적인 조직 쇄신으로 평가받는 미국 걸스카우트(GSUSA)의 사례도 시사점이 큽니다. 1970년대 걸스카우트는 심각한 노화 현상을 겪고 있었습니다. 사회는 급변하는데 조직의 매뉴얼과 운영 방식은 수십 년 전 관행에 머물러 있었습니다. 핵심 가치인 청소년 주도성은 약화되었고 관료적인 행정 절차와 구시대적인 프로그램만 무성하게 남아 있었습니다. 회원 수와 자원봉사자 참여는 급감했습니다. 당시 취임한 프란시스 헤셀바인은 조직 내부의 인위적인 '산불'을 선택했습니다. 그녀는 시대에 뒤떨어진 수많은 활동 배지와 구태의연한 교육 프로젝트들을 과감히 폐기하는 전략적 사멸을 단행했습니다. 현장 소통을 가로막던 피라미드형 관료제 구조를 유기적 네트워크로 전환했습니다. 조직의 자폐적 관행을 제거하고 지역사회 구성원들의 목소리를 투명하게 반영하는 피드백 시스템을 복원했습니다. 오래된 관행이 타버린 자리에 다양성과 전문성을 갖춘 새로운 세대의 프로그램이 뿌리를 내렸습니다. 미국 걸스카우트는 비본질을 과감히 깎아내는 리더십을 통해 지속가능한 비영리 생태계를 재구축했습니다. (출처: Hesselbein, F. (2011). "My Life in Leadership", Jossey-Bass)
NGO 사례: 본부의 비대함을 깎아내고 현장으로 돌아간 국제앰네스티
걸스카우트 사례와 더불어 글로벌 인권 NGO인 국제앰네스티(Amnesty International)가 겪은 시행착오 사례 역시 조직의 항상성 회복을 보여줍니다. 2000년대 후반 국제앰네스티는 전 세계적인 인권 보호라는 숭고한 사명에도 불구하고 심각한 조직적 관료화에 빠져 있었습니다. 조직이 오랫동안 성장하면서 런던에 위치한 국제사무국(International Secretariat) 본부는 지나치게 비대해졌습니다. 의사결정 구조는 느리고 복잡해졌습니다. 정작 인권 침해가 빈번하게 발생하는 글로벌 사우스(Global South, 개발도상국) 현장과의 거리는 점차 멀어졌습니다. 현장의 긴급한 목소리에 반응해야 할 조직이 거대한 본부 행정 시스템을 유지하는 데 더 많은 에너지를 쏟았습니다. 본질과 무관한 부서와 권력이 무성하게 자라나는 심각한 목적 전치(Mission Drift) 현상이었습니다. 이를 극복하기 위해 국제앰네스티는 2010년대에 들어서며 '글로벌 전환 프로그램(Global Transition Programme)'을 실행했습니다. 이는 조직 내부의 뼈아픈 아폽토시스 과정이었습니다. 리더십은 비대해진 런던 본부의 집중된 권력을 과감히 해체했습니다. 수많은 본부 인력을 감축하고 불필요한 행정 계층을 정리했습니다. 대신 아프리카, 아시아, 라틴아메리카 등 실제 인권 문제가 발생하는 지역 거점(Regional Hubs)으로 권한과 핵심 인력을 대거 이동시켰습니다. 낡고 비대해진 관료주의라는 조직의 '코털'을 잘라내고, '현장 밀착'이라는 본질적인 핵심 가치에 에너지를 집중한 것입니다. 이러한 변화를 통해, 국제앰네스티는 조직의 기동성을 회복하고 현장 중심의 글로벌 인권 단체로서 정체성을 재건할 수 있었습니다. (출처: Amnesty International, "ORG 30/001/2013 Global Transition Programme Roadmap" 외 관련 문서)
적절한 퇴장과 권위의 지속가능성
최근 학계에 계신 지인의 고민을 들은 일이 있었습니다. 한 교수가 정년퇴임을 했다고 합니다. 그런데 그는 퇴임 후에도 학교와 학과를 떠나지 않고, 다양한 소통채널로 지속적으로 구체적 사안에 관여하고, 개입한다고 합니다. 묘한 방식으로 학과에 재정적 권한, 학위 심사 등 다양한 이해관계 이슈를 남겨두었기에 그것을 명분으로 현직 학과장을 비롯하여 동료 교수와 학생들의 연구와 행정에 지속적으로 관여하고, 명예교수라는 권위를 내세워 자신의 영향력을 계속 유지하려고 한다고 합니다. 이로 인해 현재 학과의 분위기는악화되고 있으며, 자칫하면 소송이 일어날 지경이라며, 요즘 학교 출근하는게 두렵다는 말을 들었습니다. 이 사례는 지속가능한 권위와 리더십의 조건을 보여줍니다. 포지셔닝(일시적 직책)은 리더십이 아닙니다. 오히려 리더십을 유지하려면 적절한 시기에 그 자리에서 사라지고, 떠나야 합니다. 실력은 시간이 걸릴뿐 결국 팔로워들이 다 쫓아옵니다. 쫓아온 시점부터 리더들이 리더 다우려면 팔로워들에게 경청하고 배우는 태도를 취해야 합니다. 그래야 오히려 리더십의 권위와 영향력을 유지할 수 있습니다. 특정 리더나 집단이 영원히 권력을 독점하려는 시도는 생물학적 불멸의 욕구와 같습니다. 이는 소통하지 않고 과거의 불멸성을 독단적으로 추구하는 암세포와 다름없습니다. 건강한 조직은 적절한 시기의 퇴장과 세대교체를 통해 공동체의 활력을 유지합니다. 떠나야 할 때 떠나지 못하는 관행과 인물은 조직을 노쇠하게 만들 뿐입니다.

단정한 조직을 위한 일상적 성찰
이제 단정한 외모를 유지하기 위해 정기적으로 거울을 보고 스스로의 상태를 점검하는 일은 번거롭지만 필수적인 일상입니다. 조직 운영도 이와 같습니다. 성찰이라는 거울 앞에 서서 우리 조직에 통제되지 않고 자라나는 비본질적 관행과 관료주의가 없는지 확인해야 합니다. 무엇을 할 것인가만큼 '무엇을 그만둘 것인가'를 결정하는 용기가 필요합니다. 조직의 사명에 대한 진정성, 건강성은 무엇을 하느냐 보다 오히려 무엇을, 언제 그만두느냐의 모습에서 증명됩니다. 비본질적인 비대함을 과감히 깎아내고 조직 내부의 정교한 제어력을 복원할 때, 공동체는 노쇠함이 아닌 성숙한 연륜을 갖추게 될 것입니다. 현장에서 묵묵히 헌신하며 건강한 항상성을 지켜가는 모든 사회복지사와 마을활동가들의 단정하고 힘 있는 발걸음을 응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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