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민교육콘텐츠연구소

사무실 번호 : 070-4898-2779 / 대표메일 : streamwk@gmail.com

연구소칼럼[콩나물시루]

성숙의 시대를 여는 지역복지의 전략: 자본에서 사람으로

강정모 소장 2026. 5. 11. 23:03

선진국이라는 이름표가 던지는 질문

대한민국은 이제 국제사회에서 인정받는 선진국입니다. 경제 규모와 기술력은 세계 상위권에 위치합니다. 하지만 현장에서 마주하는 사회복지 종사자들의 체감도는 사뭇 다릅니다. 선진국 진입은 단순한 경제 성장의 종착지가 아닙니다. 그것은 새로운 사회적 과제의 시작을 의미합니다. 과거의 복지가 경제적 결핍을 채우는 과정이었다면, 지금의 복지는 고립을 해결하고 관계를 회복하는 과정이어야 합니다. 우리는 풍요 속에서도 여전히 불안하고 외로운 시민들을 목격하고 있습니다. 눈부신 경제 지표의 이면에 치러야할 개인간 단절의 현상을 극복해야 합니다. 경제적 결핍과 생존의 문제는 점점 일반행정의 영역으로 전환되어 가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사회복지 서비스는 무엇을 담당해야 할 것인가? 이것이 선진국 대한민국 사회복지 현장이 직면한 민관협력의 문제 배경입니다.

부유함 속에 가려진 고독이라는 그림자

선진국이란 빛만큼이나 그림자를 가집니다. 이웃 나라이지 오랫동안 선진국을 유지하는 일본의 사례는 우리에게 시사하는 바가 큽니다. 일본은 이미 수십 년 전부터 고독사 문제를 사회적 재난으로 다뤄왔습니다. 행정에서 이를 감당하지 못하게 되자, 시신 발견이 늦어진 현장을 복구하는 ‘특수청소(特殊掃除)’ 산업이 성장했습니다. 일본의 유품정리 및 특수청소 시장 규모는 현재 연간 수조 원대에 달하는 것으로 추산됩니다. 이는 단순히 공간을 치우는 서비스가 아니라, 단절된 삶의 비극적 흔적을 지워내는 선진국형 비즈니스입니다. 당혹스러운 것은 현장에서 발견되는 경제적 역설입니다. 고독사한 이들의 유품을 정리하다 보면 주인을 잃은 거액의 통장과 현금이 발견되곤 합니다. 일본 대법원의 발표에 따르면, 2022년 한 해 동안 연고가 없어 국가 금고로 귀속된 상속 재산은 약 768억 엔(약 7,000억 원)으로 역대 최고치를 경신했습니다. 돈이 없어서 죽음을 맞는 것이 아니라, 연결된 관계가 없어 죽음을 방치당하는 시대임을 증명하는 수치입니다. 대한민국 역시 이 경로를 점점 뒤따르고 있습니다.

 

보건복지부의 2022년 고독사 실태조사 결과에 따르면, 국내 고독사 발생은 최근 5년간 연평균 8.8%씩 가파르게 증가하고 있습니다. 이는 단순한 사망 통계의 상승이 아니라 우리 사회의 연결망이 빠른 속도로 해체되고 있다는 경고음입니다. 특히 통계청의 ‘2023 한국의 사회지표’에서 나타난 사회적 고립도 33.0%라는 수치는 우리 사회도 일본이 겪은 상황을 따라가고 있음을 나타냅니다. 국민 3명 중 1명은 몸이 아프거나 우울할 때, 혹은 갑작스러운 위기 상황에서 도움을 요청할 사람이 주변에 한 명도 없다는 뜻입니다. 결국 선진국 대한민국의 골목마다 깊게 스며들어 있는 것은 물질적 결핍이 아닙니다. 그것은 바로 경제적 빈곤보다 훨씬 더 치명적이고 해결하기 어려운 ‘관계의 빈곤’입니다.

30년의 격차, 문제와 지원의 불일치

30여 년 전 사회복지 현장의 핵심 화두는 절대적 빈곤이었습니다. 밥을 굶고 난방을 하지 못하는 이웃을 찾는 것이 최우선 과제였습니다. 지금 현장을 채우는 언어는 전혀 다릅니다. 고독, 외로움, 사회적 고립이 그 자리를 차지했습니다. 하지만 우리의 복지 시스템은 여전히 과거의 관성에 머물러 있습니다. 원인은 관계의 단절인데 해법은 여전히 경제적 지원과 물품 배분에 집중되어 있습니다. 반찬을 배달하고 후원금을 연결하는 것만으로는 고립된 개인을 세상 밖으로 끌어낼 수 없습니다. 현재의 사회복지 현장은 직면한 문제와 이를 해결하기 위한 지원 체계 사이의 불일치를 겪고 있습니다. 이 격차를 메우는 것이 현재 지역복지 실천가들에게 주어진 전략적 과제입니다.

개인주의의 심화와 선진국 국민이 치르는 비용

선진국은 개인주의를 기반으로 작동합니다. 내 삶의 문제는 내가 선택하고 결정하며, 그 결과까지 온전히 책임져야 하는 구조입니다. 자유의 크기가 커진 만큼 개인이 짊어져야 할 심리적 무게도 무거워졌습니다. 사회적 고립과 외로움은 이 개인주의가 극단화되는 과정에서 선진국 시민이 필연적으로 지불하는 일종의 사회적 비용입니다. 삶의 실패나 노화가 개인의 무능으로 치부될 때, 인간은 수치심을 느끼고 스스로를 사회로부터 단절시킵니다. 공동체의 울타리가 해체된 자리에 남은 것은 각자도생의 불안입니다. 고독사는 물질적 결핍의 결과가 아닙니다. 개별화된 삶 속에서 사회적 안전망과 관계망이 동시에 파열된 현상입니다.

압축 성장이 남긴 집단적 신경과민

대한민국은 인류사에서 유례를 찾기 어려운 엄청나게 빠른 속도로 성장했습니다. 식민지와 전쟁의 폐허를 딛고 단 한 세기 만에 선진국 반열에 오른 것은 위대한 성취입니다. 하지만 그 이면에는 '집단적 신경과민'이라는 깊은 흉터가 남았습니다. 쉴 틈 없는 경쟁과 성취 지향적 문화는 우리를 지속적인 불안으로 몰아넣었습니다. 경제 지표는 화려하지만 국민의 행복도는 낮고, OECD 자살률 1위라는 오명은 좀처럼 지워지지 않습니다. 몸은 첨단 선진국에 살고 있지만, 마음은 여전히 생존을 위해 투쟁해야 했던 과거의 긴장 상태를 벗어나지 못하고 있습니다. 너무 빠르게 달려오느라 서로의 손을 놓쳐버린 결과입니다.

근년도 OECD 회원국 자살현황. 대한민국은 2021년에도 압도적으로 높은 자살률을 보였다/사진=한국생명존중희망재단

정신건강에 대한 무지와 불편한 편견: 데이터가 보여주는 역설

선진국 사회는 육체보다 정신 에너지를 훨씬 더 많이 소모하는 구조입니다. 너무 빠른 고도의 정보화와 치열한 성취 압박 속에서 정신적 소진(Burn-out)이 발생하는 것은 이제 피할 수 없는 시대적 현상입니다. 하지만 대한민국은 몸은 선진국에 도착했음에도, 마음을 돌보는 방식은 여전히 과거의 문법에 갇혀 있습니다. 이는 객관적인 지표를 통해 드러납니다. 2024~2026년 최신 OECD 보고서에 따르면, 국가별 항우울제 소비량(DDD: 인구 1,000명당 하루 소비량)은 그 사회의 정신건강 관리 수준과 수용성을 보여주는 척도가 됩니다. 아이슬란드(160 DDD 이상), 캐나다(약 130 DDD), 영국 및 호주(110~120 DDD) 등 주요 선진국들은 정신건강 서비스를 일상적인 공공보건의 영역으로 적극 관리하고 있습니다. 이들 국가에서 정신과 약물을 복용하는 것은 시력이 나빠지면 안경을 쓰는 것처럼, 부족한 부분을 보완하는 지극히 평범한 자기 관리의 일환으로 인식됩니다. 반면 대한민국의 항우울제 소비량은 약 20~30 DDD 수준으로, OECD 평균의 3분의 1에도 미치지 못하는 최하위권에 머물러 있습니다.

국가 항우울제 소비량 (DDD) 특징
아이슬란드 약 160+ 세계 최고 수준, 적극적인 약물 처방 문화
캐나다 약 130 2019~2023년 사이 약물 사용량 26% 급증
영국 / 호주 110 ~ 120 정신건강 서비스에 대한 접근성이 매우 높음
미국 110+ 처방 건수가 매년 증가 추세 (2020년대 들어 급증)
독일 / 프랑스 60 ~ 70 유럽 평균 수준 유지
대한민국 약 20 ~ 30 OECD 최하위권 (평균의 약 1/3 수준)

 

국가 주요 특징 및 분석
아이슬란드 세계 1위. 인구의 약 16%가 매일 복용하는 수준임.
캐나다 고소비 국가군에 속하며, 최근 사용량이 지속적으로 증가함.
호주 정신건강 서비스 접근성이 높으며 복용 기간이 긴 편임.
영국 2000년대 이후 소비량이 2배 이상 급증한 국가 중 하나임.
독일 / 프랑스 OECD 평균 수준으로, 프랑스는 독일보다 상대적으로 높음.
대한민국 OECD 최하위권. 라트비아(21.5)와 함께 가장 낮은 수준임.

OECD 주요국 항우울제 소비량 통계 (2021~2022년 기준), OECD 통계는 DDD(Defined Daily Dose, 인구 1,000명당 하루 소비량) 단위를 사용. 

 

여기서 우리가 직시해야 할 역설이 존재합니다. 대한민국은 OECD 국가 중 자살률 1위를 기록하고 있음에도 항우울제 소비량은 가장 적다는 사실입니다. 이는 우리 국민이 특별히 정신적으로 강인하거나 건강해서가 아니라, 정신과 진료에 대한 심리적·사회적 문턱이 비정상적으로 높다는 것을 시사합니다. 여전히 우리 사회 저변에는 정신적 질환을 ‘개인의 의지 박약’이나 ‘성격 결함’으로 치부하는 전근대적인 낙인(Stigma)이 견고합니다. “정신과 기록이 남으면 인생에 오점이 된다”거나 “약에 의존하는 것은 패배자다”라는 식의 무지와 편견이 적기 치료를 가로막는 장벽이 되고 있습니다. 최근 ‘2025 한국 우울증 약물치료 알고리즘(KMAP-DD 2025)’ 지침 등 의료계에서는 더 적극적이고 정교한 치료를 권고하고 있으며, 젊은 층을 중심으로 변화의 조짐이 보이고 있다는 점은 다행스러운 일입니다. 그러나 여전히 지역사회 곳곳에 숨어있는 고립 가구들은 이러한 편견 때문에 스스로를 감옥에 가두고 있습니다. 감기에 걸리면 내과에 가듯 마음이 아프면 전문가를 찾는 것이 상식입니다. 정신적 고통을 숨겨야 할 치부가 아닌 관리해야 할 질병으로 수용하는 문화적 토양을 마련하는 것, 그리고 약물 치료에 대한 막연한 공포를 과학적 근거로 해소하는 것이 선진 복지의 실질적인 시작입니다. 이제 지역복지의 역할은 단순히 물질적 배분을 넘어, 주민들이 정신건강의 문턱을 낮추고 ‘마음의 안전망’ 안으로 들어올 수 있도록 돕는 세심한 민관협력 모델로 진화해야 합니다. 수치 뒤에 가려진 이 절박한 신호를 읽어내는 것이야말로 성숙한 선진국으로 가는 길입니다.

존경받지 못하는 나이, ‘장유유서’의 선진국형 재해석

한반도 역사상 처음으로 나이가 지혜의 상징이 되지 못하는 시대를 살고 있습니다. 노인복지라고 하지, 장인복지라고 하지 않습니다. 한반도에서 나이가 더 이상 지혜의 독점적 상징이 되지 못하는 ‘성숙 사회’에 진입했습니다. 과거 후진국형 모델에서는 정보가 귀했기에 오래 산 경험이 곧 생존에 유리했으나, 선진국에서 정보의 수명은 찰나에 불과하며 과거의 성공 방식은 오히려 변화의 걸림돌이 되기도 합니다. 여기서 우리는 지금까지 우리의 의식세계를 지배한 ‘장유유서(長幼有序)’를 선진국형 민주주의 관점에서 완전히 새롭게 정의해야 합니다. '노인(老人)'과 '어른(長)'은 다릅니다. 노인이 생물학적 쇠퇴를 의미하는 ‘늙을 노(老)’를 쓴다면, 장유유서의 ‘어른 장(長)’은 단순한 나이의 많음이 아니라 공동체의 질서와 품격을 세우는 존재를 뜻합니다. 세종대왕이 훈민정음 서문에서 언급한 ‘어린 백성’의 ‘어리다’는 나이가 적음이 아니라 ‘어리석고 미성숙함’을 뜻합니다. 즉, 장유유서의 본질은 나이의 위아래를 나누는 권위적 서열이 아니라, ‘성숙한 어른(長)과 미성숙한 존재(幼) 사이에는 '인생의 벽'(질서, 차례 序도 있지만 벽,wall 서序)’이 있음을 의미하는 것입니다. 단순히 생물학적 나이만 먹으며 자신에게 다가온 인생의 벽을 회피해 온 자들은 미성숙한 '노인(老人)'으로 남을 것입니다. 반면, 인생의 벽(序,The wall of life)을 회피하지 않고, 그것에 직면하여 역경과 시행착오 그리고 성취를 통해 단단해진 인격으로 자신의 삶을 가꿔온 사람은 나이를 먹어도 변화를 수용하고 다음 세대와 연대하며 공동체의 품격을 지키는 이는 노인(老)이 아닌 '어른(長)'인 것입니다. 

'경력'은 수많은 '역경'을 마주한 힘

우리가 흔히 말하는 ‘경력’을 거꾸로 뒤집으면 ‘역경’이 됩니다. 진정한 어른이란 단순히 시간을 견딘 자가 아니라, 삶의 수많은 벽(逆境) 앞에서 도망치거나 회피하지 않고 직면해온 사람입니다. 선진국형 사회에서 존경받는 어른은 자신의 과거를 훈장처럼 내세우는 ‘노인’이 아니라, 그 역경을 통해 얻은 유연함으로 정답이 없는 시대에 다음 세대와 함께 길을 찾는 사람입니다. 나이가 듦에 따라 사회적 필요성과 존경이 정비례하지 않는 현대 사회에서, 어른의 권위는 과거의 경력이 아니라 현재 마주한 역경을 어떻게 해석하고 공유하느냐에서 나옵니다. 존경은 권위로 강요하는 것이 아니라 관계 속에서 획득하는 가치입니다. 지역복지는 고립된 노인들을 공동체의 어른으로 다시 세우는 경로를 설계해야 합니다.  선진국형 지역복지는 노인을 단순히 ‘부양과 보호의 대상’으로 보는 행정적 관점을 바꿔야 합니다. 가장 시급한 복지는 경제적 지원을 넘어선 ‘언어의 복지’입니다. 직장인으로서의 언어(일 얘기)만 30년을 해온 노인들이 은퇴 후 사회적 고립에 빠지는 이유는 공유할 ‘삶의 언어’가 빈곤하기 때문입니다. ‘수다’는 단순한 잡담이 아니라, 고립을 방지하고 서로의 위기를 감지하는 소통 도구입니다. 지역사회 안에서 노인들이 서로 살피고(View), 위기를 발굴(Detect)하며, 다시 ‘공동체의 어른’으로 기능할 수 있도록 '공적 수다'의 장을 마련하는 것이 선진국형 사회복지 프로그램의 전략적 과제입니다.

정답이 없는 시대, 함께 길을 찾는 민주주의

선진국 사회에는 더 이상 ‘정답’과 ‘원래 그런 것’은 존재하지 않습니다. 서로 다른 세계관을 가진 세대들이 ‘함께 길을 찾는(民主主義)’ 과정에 있습니다. 단순히 오래 산 노인으로 남을 것인가, 아니면 변화를 수용하고 다음 세대와 연대하며 공동체의 품격을 지키는 어른으로 거듭날 것인가. 지역복지는 고립된 노인들을 소통하는 어른으로 전환시키는 세심한 경로 설계를 통해 대한민국이 ‘자살률 1위’라는 오명에서 벗어나 진정한 정신건강 선진국으로 나아가게 해야 합니다. 외로움은 이제 개인의 감정을 넘어 국가적 보건 이슈로 다뤄지고 있습니다. 영국은 2018년 세계 최초로 ‘외로움 담당 장관’을 임명하고 국가 차원의 외로움 방지 전략을 시행하고 있습니다(출처: UK Government, “A connected society”). 미국 또한 2023년 보건복지부 의무총감이 ‘외로움과 고립의 유행병’에 관한 자문 보고서를 발표하며, 사회적 단절이 공중보건에 심각한 위협이 됨을 경고했습니다(출처: U.S. Surgeon General’s Advisory). 이들은 복지의 초점을 물질적 분배에서 ‘사회적 연결망의 복원’으로 명확히 이동시키고 있습니다. 선진국 사회에서 관계는 곧 생존입니다.

돈의 언어를 넘어선 삶의 밀도

우리는 오랫동안 세상을 오직 ‘돈의 언어’로만 해석하도록 강요받아 왔습니다. 하지만 돈만으로는 길어진 인생의 밀도를 채울 수 없습니다. 경제력을 상실하는 순간 삶의 의미까지 상실하게 되는 이유는 돈 이외의 언어를 배우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스스로 생각하고, 선택하는 힘을 기르고 예술, 철학, 봉사, 연대 등 삶을 풍요롭게 설명할 수 있는 다양한 언어를 확보해야 합니다. 관계망 속에서 자신의 역할을 찾을 때 인간은 존엄을 유지합니다. 지역복지 현장은 주민들이 돈의 가치를 넘어 자신의 생각과 느낌을 공유하고, 아름다움을 체득하여, 상호간 약함에 대한 연대를 할 수 있는 용기를 기를 수 있는 새로운 관계의 언어를 학습하는 장이 되어야 합니다. 그것이 선진 시민으로서 고립을 극복하는 효과적 무기입니다.

지역복지 현장에 전하는 격려와 전략적 제언

주민조직과 지역복지를 담당하는 사회복지사 여러분, 여러분은 지금 대한민국 복지의 가장 거대한 전환점 위에 서 있습니다. 선진국이라는 화려한 간판 뒤에서 고립된 주민들의 마음을 잇는 일은 보이지 않는 벽을 허무는 것만큼이나 고단한 작업입니다. 물품을 전달하는 것보다 주민을 서로 연결하는 것이 훨씬 더 많은 시간과 에너지를 요구합니다. 하지만 여러분이 현장에서 만들어내는 작은 만남과 관계의 불씨는 고독사라는 거대한 어둠을 막아내는 대안입니다. 일본의 텅 빈 고독사 현장에서 발견된 수천억 엔의 통장은 우리에게 ‘돈이 아닌 사람이 답’이라는 사실을 절박하게 알려줍니다. 여러분은 지금 주민들의 ‘사회적 자본 통장’에 신뢰와 우정이라는 소중한 자산을 저축하고 계신 것입니다. 선진국형 복지의 성패는 예산의 규모가 아니라 관계의 두께에서 결정될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