며칠전 한 지자체의 주민복지과에서 지역사회보장협의체와 진행할 마을복지사업 계획서 검토 및 운영 및 성과수렴을 위한 종합컨설팅을 요청받았습니다. 이 지자체는 5만 이하의 농촌지역이었고, 참여자는 읍면의 사업담당공무원과 읍면 지역사회보장협의체 리더 3명씩 참여하였습니다. 제출한 마을복지사업계획서를 놓고, 다소간의 강의와 질의응답과 토론을 통한 컨설팅을 하였습니다. 이 사업주관은 주민복지과와 그 지역의 가장 규모가 큰 종합사회복지관이 협력하여 주관한다고 합니다. 제가 실행했던 컨설팅 현장의 경험을 바탕으로 전국의 주민조직 사업과 마을복지사업, 기타 민관협력 사업을 담당하는 사회복지사들이 참조할 수 있도록 특히 농촌, 도농복합지역의 사회복지사분들에게 도움이 되도록 시나리오 형식으로 각색하여 작성한 칼럼입니다. 이 점 참조하여, 각 현장을 상상하면서 읽어주시면 좋겠습니다.

어둠 속에서 길을 잃은 사업계획서
전국 각지의 농산어촌과 도심 골목에서는 오늘도 열띤 논의가 펼쳐집니다. 지역사회보장협의체 위원들과 마을 리더, 그리고 이들을 지원하는 사회복지사와 행정 공무원이 머리를 맞대고 우리 동네의 복지 계획을 세우는 현장입니다. 주민이 직접 마을의 문제를 찾고 해결책을 기획하는 마을복지사업은 민관협력의 꽃입니다. 현장의 열기는 뜨겁습니다. 하지만 현장에서 마주하는 사업계획서들은 종종 열정의 크기만큼이나 구조적인 아쉬움을 남깁니다. 계획서의 상당수가 '무엇을 할 것인가'라는 수단에 집중되어 있습니다. '왜 이 사업을 해야 하는가'라는 목적이 흐릿한 경우가 많았습니다. 사회복지사는 주민들의 거친 언어와 막연한 바람을 정교한 정책의 언어로 번역해 내는 조력자입니다. 어느 지역의 컨설팅 현장에서 마주했던 생생한 사례들을 보편적인 맥락으로 재구성하여, 우리가 놓치지 말아야 할 마을복지 설계의 본질을 짚어보고자 합니다.
"소화기가 목적입니까?" 컨설팅 현장의 긴장감
최근 10개 읍면 단위 주민조직화 컨설팅 현장. 강의실에는 긴장감이 돌았습니다. 사업계획서 작성의 첫 단추는 명확한 '문제 정의'입니다. 어느 마을의 안전지킴이 사업계획서를 보면, 목표 항목에 많은 좋은 실행 내용들이 나열되어 있습니다. 지역사회 협력체계 구축, 안전한 마을 조성, 투척용 소화기 보급 등이 혼재되어 있습니다. "위원님, 투척용 소화기를 나누어주는 것이 우리 사업의 목적입니까?", "아니, 골목이 좁아서 소방차가 못 들어옵니다. 불이 날까 봐 주민들이 불안해하니까 소화기를 주자는데, 전문가라는 분이 왜 자꾸 그런 질문을 하시나요?" 목소리가 높아졌습니다. 위원들의 얼굴에 불만이 스쳤습니다. 저는 컨설팅 현장에서 항상 "계획서에서 문제 즉 '어두운 언어'를 가장 먼저 찾아보라"고 주문합니다. 어두운 언어란 현장의 문제입니다. "소화기는 수단일 뿐입니다. 우리가 마주한 진짜 '어두운 언어'는 좁은 골목 탓에 밤잠을 설치는 노인들의 불안감, 즉 '화재 발생의 높은 위험'입니다. 소화기 보급이라는 행위만 기재되면 사업은 물품 전달로 끝납니다. 하지만 '화재 위험 감소와 주민 불안 해소'로 목적을 세우면 어떻게 될까요? 투척용 소화기 배뿐만 아니라, 이웃끼리 비상 연락망을 짜고 대피로를 점검하는 등등의 더 다양한 활동목표가 구성되어야 합니다." 침묵이 흘렀습니다. 사업의 목적은 이 어두운 문제를 밝게 변화시키겠다는 선명한 언어로 기술되어야 합니다. 목적이 하나로 절실하게 세워져야 사업이 흔들리지 않습니다. 소화기를 나누어주는 행위는 목적이 아니라 수단일 뿐입니다. 주민들과 깊이 대화하며 주민들이 체감하는 가장 절실한 '어둠'이 무엇인지 정의하는 것, 그것이 마을복지 기획의 첫 단추입니다.
삼계탕 한 그릇의 딜레마와 유연한 기획
수단에 얽매이는 현상은 다른 마을에서도 있었습니다. 어느 마을에서는 고독사 예방을 위해 월1회 삼계탕을 대접하는 사업을 기획했습니다. 이때 질문을 해야 합니다. 삼계탕 제공 자체가 사업의 목적입니까? 그렇지 않습니다. 진짜 목적은 집에서 외롭고, 고독하여, 삶의 의미를 상실해가는 이웃을 밖으로 이끌어내어 관계망을 형성하고 고독사 위험을 낮추는 것입니다. 월1회 삼계탕을 포함하여 주1회 가벼운 밑반찬을 매개와 수단으로 자주 안부를 묻는 것이 목적 달성에 효과적일 수 있습니다. 지역사회보장협의체 위원들은 마을의 속사정을 누구보다 잘 아는 현장 전문가입니다. 전문가란 잘하는 사람이 전문가라기보다는 오래한 사람이 전문가일수 있습니다. 사회복지사는 위원들이 가진 현장의 지혜가 사업계획서의 논리 구조 안에서 다채로운 수단으로 발현될 수 있도록 사업목적의 명료화를 안내해주어야 합니다.
삶의 의미를 처방하다: 영국 브롬리 바이 보우의 기적
해외의 지역복지 사례 역시 이러한 '목적의 명확화'가 얼마나 중요한지 참고됩니다. 영국의 민관협력 성공 모델인 '브롬리 바이 보우 센터(Bromley by Bow Centre)'의 초기 상황이 좋은 예입니다. 1980년대, 런던의 대표적인 빈민가였던 이 지역에서 활동가들은 처음에 주민들의 열악한 건강 상태와 빈곤을 해결하기 위해 '무료 진료'와 '구호물품 배분'이라는 수단에 집중했습니다. 하지만 막대한 예산과 인력이 투입되었음에도 주민들의 삶의 질은 좀처럼 나아지지 않았습니다. 문제의 본질을 놓치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활동가들은 일방적인 행정적 지원을 잠시 멈추고 주민들과 깊은 토론을 시작했습니다. 토론을 통해 발견한 주민들이 새롭게 인식한 '어두운 언어'는 질병이나 배고픔이 아니라, '지독한 외로움'과 '삶의 목적 상실'이었습니다. 아우슈비츠에서 생존했던 기록의 세계적 으로 감동을 준 <죽음의 수용소에서>의 저자이자 정신과 의사인 빅터 프랭클이 말했듯, 인간은 의미를 잃을 때 병이 듭니다. 토론이후 센터는 사업의 목적을 '단순 질병 치료 및 구호'에서 '사회적 관계망 회복과 삶의 의미 찾기'로 전환했습니다. 약이나 물품을 주는 대신, 원예 활동, 미술 교실, 주민 동아리를 연결해 주는 이른바 '사회적 처방(Social Prescribing)'을 도입한 것입니다. 그 결과는 놀라웠습니다. 주민들의 우울증과 병원 재방문율이 획기적으로 감소했고, 구호 물품을 받던 수혜자들이 자발적인 마을의 리더로 성장하는 근본적인 변화가 일어났습니다. 수단에 갇혀 있던 시선을 거두고, 토론을 통해 주민의 진짜 욕구인 '목적'을 명확히 세웠을 때 비로소 진정한 실질적 변화가 일어난 것입니다.
'일회성' 지원이라는 비판? 그럼 '이회성'은 괜찮은가?
B면 컨설팅 현장입니다. 현장의 공무원과 사회복지사를 가장 괴롭히는 지적중 하나가 '일회성 사업'이라는 비판입니다. 한 마을에서는 덮는 이불은 있지만 바닥에서 올라오는 냉기를 막을 두꺼운 '요'가 없는 취약계층을 위해 요를 구입해 전달하는 사업을 기획했습니다. "소장님, 이거 한 번 사주고 마는 일회성 예산 낭비 아닙니까? 감사에서 지적받을 가능성이 높습니다." 담당 주무관의 미간이 좁아졌습니다. 저는 질문했습니다. "일회성 사업을 한다는 것이 무엇이 문제인가요?" 담당 공무원은 한 번도 받아보지 못한 질문에 당황한 기색이 역력했습니다. 우리는 일회성의 개념을 다시 정의해야 합니다. 사업의 타당성은 실행 횟수가 아니라 '주민 욕구의 적합성'에 있습니다. 배가 고픈 사람에게 이불을 여러 번 주는 것은 낭비일수 있지만, 얼음장 같은 방바닥 때문에 고통받는 이에게 두툼한 요를 한 번 지원하여 겨울을 따뜻하게 나게 한다면 그것은 적합하고, 효과적인 복지사업인 것입니다. 한 번의 지원으로 대상자의 삶이 실질적이고, 요긴하게 개선된다면 오히려 그 예산은 아주 효과적으로 쓰인 것입니다. 일회성이냐 다회성이냐가 중요한 게 아니라, 주민들이 절실히 필요한 욕구에 얼마나 정확하게 부합하여 서비스하여, 이용자의 삶이 개선되었고, 행복도가 향상되었느냐가 중요하지 횟수가 중요한 게 아닙니다. 그것은 주민의 절실한 욕구에 얼마나 정확히 응답했는지를 증명하면, 일회성은 오히려 세금을 아껴, 효과적으로 사용한 것이며, 비판이 아니라 상을 받아야 하는 상황인 것입니다. 비판에 움츠려들지 마시고, 그럴 때마다 이 사업의 목적, 변화시키려 한 문제에 집중하면 당황하지 않을 수 있고, 용기를 얻게 됩니다.
1인 가구는 현상이다: 일본 마츠도(松戸)시의 이바쇼(居場所)
주민조직화 사업을 하다 보면 은둔형 1인 가구를 밖으로 끌어내려는 시도를 종종 봅니다. 대상자들이 프로그램 참여를 거부한다며 고민을 토로하는 현장의 목소리도 많습니다. 그런데 저는 질문을 드렸습니다. "1인가구가 문제죠?", 참여자들은 "~네"라고 하였다가 분위기가 다소 이상해졌습니다. 제가 틀린 질문을 하였기 때문입니다. 예를들면 가정폭력이 빈번한 5인가구가 문제인가요? 거기서 탈출하여 1인가구로 행복하게, 폭력없이 일상을 영위하는게 문제인가요? 그렇습니다 '1인 가구는 문제가 아니라 현상'이라는 것입니다. 혼자 살더라도 나름의 방식으로 행복을 누리며 사는 분들을 밖으로 나와서 사람들과 자꾸 만나야하고, 관계를 형성해야 한다고 하는 설득하는 것은 정확한 복지가 아닙니다. 마을만들기의 오랜 경험을 가진 일본의 사례를 주목할 필요가 있습니다. 치바현 마츠도(松戸)시 도키와다이라 단지는 2000년대 초반 심각한 고독사 문제에 직면했습니다. 초기에는 방문 횟수를 늘리고 감시망을 촘촘히 하는 데 집중했습니다. 하지만 거부감만 커졌습니다. 방향을 바꿨습니다. 그들은 대상자를 밖으로 끌어내는 대신, 단지 내에 누구나 편하게 들러 차를 마시고 갈 수 있는 '이바쇼(居場所, 마음 둘 곳)' 형태의 살롱을 만들었습니다. 억지로 끌어내지 않았습니다. 그저 안전하고 따뜻한 공간을 열어두고 기다렸습니다. 단절되었던 1인 가구들이 스스로 문을 열고 나와 살롱에서 관계를 맺기 시작했고, 마침내 '고독사 제로'를 달성했습니다. 우리가 찾아야 할 대상은 '사회적 관계를 맺고 싶지만 장벽에 부딪혀 고립을 겪는 분', '우울과 무기력 속에서 구조의 손길을 기다리는 분'들입니다. 1인가구 명단이 내려왔다고 그 분들을 수요자로 파악하여 프로그램을 돌릴 것이 아니라, 발품을 팔아 개별적인 상황과 욕구를 파악하는 촘촘한 조사가 사업으로 기획되고, 선행되어야 합니다. 정교한 수요 파악 없는 프로그램은 결국 실적 채우기로 오히려 1인가구 주민에게 피해를 주는 사업이 될 가능성도 있습니다.
https://signalm.sedaily.com/article/13796234


생존은 행정의 몫, 행복은 민관협력의 몫
민관협력 사업이 기존의 관 주도 행정 서비스와 무엇이 달라야 하는지 묻는 이들이 많았습니다. 어느 지역의 사례가 적합한 사례가 되었습니다. 이 마을은 공공 예산으로 매년 밑반찬 지원 사업을 하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마을복지 예산으로 또 밑반찬 사업을 기획하려 했습니다. 반면 마을 한편에서는 어르신들이 소일거리가 없어 모이기만 하면 화투를 치고, 화투로 인해 싸움, 놀이가 도박으로 넘어가는 등의 갈등이 심화되고 있었습니다. 이때 마을 지역사회보장협의체 위원들이 기타 동아리를 만들어 어르신들을 위한 음악 나눔 공연을 기획했습니다. 밑반찬 사업 예산이 따로 있다면 이번에 군에서 지원하는 예산으로는 다른 문제를 발견하고, 그것을 변화시키는 것을 해야합니다. 이것이 마을복지사업 문제발굴이며, 이것이 곧 의제개발입니다. 마을복지사업 예산은 생존을 지원하는데만 쓰여야 한다는 것은 편견입니다. 개발도상국의 사회복지가 생존에 집중했다면 선진국 대한민국의 사회복지는 행복에 집중해야 합니다. 생존을 위한 기본적인 지원은 행정의 시스템으로 해결하고, 민관협력의 자원과 에너지는 주민의 '행복'과 '문화', 그리고 '관계'를 복원하는 데 쓰여야 합니다. 마을복지는 중복 수혜의 함정을 피하고, 주민들이 마을 안에서 살아가는 즐거움을 느끼게 하는 더 높은 차원의 가치를 지향해야 합니다.


성과는 숫자가 아닌 연결의 흔적이다
마지막으로 성과 측정의 문제입니다. 사업의 성과를 증명해야 한다는 압박에, 고령의 지역사회보장협의체 위원들에게 복잡한 척도 검사지를 쥐여주는 것은 비현실적입니다. 현장에는 현장의 언어에 맞는 지표가 필요합니다. 가장 훌륭한 성과지표는 선명도가 높은 것입니다. '밑반찬을 배달하러 갔다가 보일러가 고장 난 것을 발견하여 행정 복지센터에 연계한 횟수'를 세어보십시오. 물품 전달이라는 산출을 넘어 민관협력이 '살아있는 안전망'으로 작동했음을 보여주는 지표입니다. 방문을 마치고 나오며 대상자의 기분을 스티커로 붙이게 하거나, "매주 전화가 오니 혼자가 아닌 것 같아 든든해"라는 한 줄 소감을 기록하는 것만으로도 훌륭한 정성적 데이터가 됩니다. 숫자의 크기보다 이웃과 이웃이 연결된 촘촘한 사례를 축적하는 것이 마을복지의 성과를 증명하는 것이 마을복지 성과지표의 핵심입니다.
주민조직 사회복지사는 주민욕구의 번역가들
전국의 마을복지 현장에서 분투하는 사회복지사 여러분, 그리고 생업과 함께 이웃을 위해 활동하시는 마을 리더 여러분. 여러분이 현장에서 하시는 마을복지의 노력은 행정 업무의 연장이 아닙니다. 파편화되어 섬처럼 떠도는 개인들을 다시 '마을'이라는 공동체로 잇는 보람있는 연결 작업입니다. 때로는 답답한 행정의 벽에 부딪히고, 때로는 기대만큼 따라주지 않는 주민들의 반응에 지쳐 무력감을 느낄 때도 있을 것입니다. 주민들의 거친 언어를 세련된 계획으로 다듬어내는 과정이 번거롭고, 모호하게 여겨질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고민하고 고쳐 쓴 사업계획서의 문장 하나가 누군가에게는 얼어붙은 방을 데우는 온기가 되고, 누군가에게는 깊은 고립의 터널을 빠져나오게 하는 동아줄이 됩니다. 여러분은 예산을 집행하는 사람을 넘어, 마을의 행복을 디자인하는 사회적 건축가입니다. 완벽하지 않아도 괜찮습니다. 이웃의 삶을 더 나아지게 만들겠다는 여러분의 발걸음이 훌륭한 복지 실천입니다. 묵묵히 마을의 변화를 만들어가는 여러분의 헌신에 깊은 존경과 박수를 보냅니다. 여러분의 걸음이 곧 대한민국 마을복지의 길이 될 것입니다.
0세부터 97세까지 모이는 '고마 할아버지의 집', 지역을 되살리다 | SIGNAL
※편집자 주 - 일본이 고령화사회(65세 인구 비중이 전체 인구의 7% 이상)로부터 초고령사회(20% 이상)에 접어들기까지 35년이 걸린 반면 우리나라는 2000년부터 2025년까지 불과 25년 걸릴 것으로 전
signalm.sedaily.com
'연구소칼럼[콩나물시루]' 카테고리의 다른 글
| 주민자치회의 본격화, 행정은 ‘관성'을 깨고 '시민'의 곁으로 다가가는 파트너십으로 전환해야 한다. (0) | 2026.05.08 |
|---|---|
| 리더의 거울, ‘알아차림’에서 시작되는 신뢰의 리더십 (1) | 2026.05.08 |
| [주민자치칼럼] 행정의 보조자를 넘어 지역의 결정권자로: 주민자치회라는 새로운 엔진 (0) | 2026.04.30 |
| [주민자치칼럼] 주민자치 의제별 특징이해 : ‘해달라’는 요구에서 ‘하겠다’는 책임으로 (0) | 2026.04.27 |
| [주민자치칼럼] 권한은 '좋은 것'이 아니라, 다뤄야 할 '에너지'입니다. (0) | 2026.04.22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