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를 바라보는 용기, ‘알아차림’의 미학
비영리 조직의 리더십은 조직을 효율적으로 운영하는 역량과 기술 이전에, 자신을 정직하게 마주하는 ‘알아차림’에서 시작됩니다. 불교 용어로도 쓰이는 이 단어는 사실 우리가 일평생 한 번도 제대로 해보지 못한 일일 수도 있습니다. 우리는 매일 거울을 보지만, 거울 속의 나는 좌우가 바뀐 상일 뿐이며 내 눈으로 직접 나의 실체를 보는 것은 물리적으로 불가능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나를 보는 대신 쉽게 마주하는 타인의 허물을 찾는 ‘뒷담화’에 더 익숙해지곤 합니다. ‘알아차림’이란 나를 ‘유체이탈’ 시키듯 객관적인 시선으로 내 행동과 마음의 민낯을 직면하는 과정입니다. 이때 마주하게 되는 감정은 대개 ‘부끄러움’입니다. 맹자가 강조했듯, 인간의 본성인 이 부끄러움을 회피하지 않고 온전히 받아들일 때 비로소 우리는 행동을 수정하고 변화할 수 있는 진정한 동력을 얻게 됩니다. 리더는 가끔 고독한 시간을 가지고 명상과 성찰을 통해 내면의 거울을 닦아야 하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습니다.
‘첫 마음’이라는 내적 동기의 회복
현장의 리더들이 지치지 않고 나아가기 위해서는 자신이 이 길을 선택했던 ‘첫 마음’과 ‘첫 동기’를 수시로 환기해야 합니다. 우리가 왜 이곳에 와서 비영리 조직운영을 했는지, 자원봉사를 시작했는지, 사람들을 만나 조직을 운영해 온 본래적 에너지가 무엇이었는지 되돌아보는 시간은 리더십의 뿌리를 튼튼히 하는 작업입니다. 3년, 혹은 10년이 넘는 세월 속에서 우리를 멈추지 않게 했던 내적 힘을 발견하는 것은 매우 중요합니다. 힘들고 어려운 상황을 이겨내는 힘은 결국 우리 내면에 쌓인 ‘좋은 기억’과 ‘행복한 경험’에서 나옵니다. 활동 과정에서 마주했던 주민의 미소, 작은 변화의 순간들과 같은 기쁜 기억들이 많을수록 리더는 위기 앞에서도 굴하지 않고 다시 일어설 수 있습니다. 이러한 기억들을 마음속에만 두지 않고 메모하고 기록하는 습관은 개인의 성장을 넘어, 지역사회의 소중한 자산이자 우리 삶의 유산이 됩니다.
신뢰의 방정식: 성품(Faith)과 역량(Credit)의 조화
신뢰는 성품과 역량이 결합한 방정식의 결과물입니다. 리더십은 독재 국가가 아닌 민주주의 사회에서만 성립하는 고유한 개념이며, 그 핵심은 직책이나 권력이 아니라 구성원으로부터 얻는 자발적인 ‘신뢰(Trust)’에 있기 때문입니다. 신뢰는 리더의 됨됨이를 뜻하는 성품과 실무적 능력을 뜻하는 역량이 조화를 이룰 때 비로소 완성됩니다. 먼저 내면적이고 주관적인 영역인 성품 중심의 믿음(Faith)은 리더의 인간적인 신용과 일관성을 의미합니다. 성품은 훌륭하지만 실질적인 실무 역량이 부족한 리더는 팀원들에게 따뜻한 위로와 공감은 줄 수 있으나, 현장의 난제를 해결하지 못해 결국 ‘측은한 사람’으로 남게 됩니다. 반대로 실무 능력을 의미하는 역량 중심의 신용(Credit)은 외부에서 눈으로 확인할 수 있는 전문성의 지표입니다. 역량은 뛰어나지만 성품이 부족한 리더는 팀원들의 노고를 외면하고 성과를 독식하기 쉬우며, 이런 리더는 ‘무시할 수는 없으나 함께 일하기 싫은 사람’이 되어 팀 내 뒷담화의 주된 대상이 되곤 합니다. 신뢰는 쌓는데 오랜 시간이 걸리지만, 무너지는 것도 오래 걸리는 특징이 있습니다.(물론 한 순간에 무너지기도 하는 것을 목도하기도 합니다) 따라서 리더는 신뢰의 변동폭이 크지 않으니 긴급하지 않은 것으로 여겨 신뢰관리의 우선순위를 두지 않아 임계점에서 와르르 무너지는 상황을 겪게 됩니다. 그래서 자신이 믿음이나 신용 둘 중에 어디를 더 선호하고, 거기에만 집중하는 ‘편향성’을 인정하고 끌리지 않는 반대편을 노력하고, 균형을 잡으려는 노력을 기울여야 합니다. 역량을 중시하는 리더는 경청과 질문을 통해 성품을 닦아야 하며, 성품을 중시하는 리더는 체계적인 업무 처리 능력을 기르는 데 집중해야 합니다. 이는 마치 노를 젓는 배가 양손의 힘을 균형 있게 써야만 제 방향으로 전진할 수 있는 이치와 같습니다.

자극과 반응 사이, 선택의 공간을 확보하라
성장하는 비영리 활동 리더는 환경이나 감정에 지배당하지 않습니다. 보통의 사람들은 기분과 욕망 같은 외부 자극에 반사적으로 반응하며 살아갑니다. 그러나 주도적인 활동가는 자극과 반응 사이에 선택할 수 있는 자유가 있음을 명확히 인지합니다. 책임감(Responsibility)이란 외부 자극에 우리가 어떻게 반응할지 스스로 결정하는 능력(Response-ability)을 의미합니다. 엘리노어 루스벨트는 "당신의 동의 없이는 아무도 당신에게 열등감을 느끼게 할 수 없다"라고 강조했습니다. 사회복지 현장에서 마주하는 수많은 갈등 속에서도 리더가 자신의 감정, 언어, 태도를 스스로 멈추고(Stop), 생각하고(Think), 선택(Choose)할 때 비로소 삶의 주인이 될 수 있습니다.
지금 할 수 있는 것, '영향력의 원'에 집중하여 변화를 이끌어라
자신의 삶에 주인이 된 사람은 에너지를 집중하는 방향이 다릅니다. 이와 관련하여 스티븐 코비(Stephen Covey)는 세계적인 베스트셀러 《성공하는 사람들의 7가지 습관》의 첫 번째 습관인 '자신의 삶을 주도하라'에서 '관심의 원(Circle of Concern)'과 '영향력의 원(Circle of Influence)'이라는 개념을 제시했습니다. 코비에 따르면, '관심의 원'은 우리가 걱정하고 신경 쓰는 모든 것들을 포함하는 넓은 영역입니다. 여기에는 날씨, 국가 경제, 타인의 평가나 행동, 과거의 실수, 거대한 사회적 이슈 등 우리가 통제할 수 없는 수많은 외부 요인들이 속해 있습니다. 반면 '영향력의 원'은 그 관심의 원 내부에 작게 자리 잡고 있으며, 오직 나의 행동, 나의 소통 방식, 나의 태도처럼 내가 직접 통제하고 긍정적인 영향을 미칠 수 있는 구체적인 영역만을 의미합니다. 통제할 수 없는 '관심의 원'에 갇혀 반응적으로 살아가는 사람은 불합리한 환경이나 타인을 탓하며 귀중한 에너지를 낭비하게 됩니다. 에너지를 이렇게 소진하면, 결국 자신이 진정으로 무언가를 바꿀 수 있는 '영향력의 원'마저 점차 쪼그라들게 됩니다. 반면 주도적이고 신뢰받는 리더는 지금 당장 자신이 통제할 수 있는 '영향력의 원'에만 에너지를 집중합니다. 거대한 사회 구조나 제도를 당장 바꿀 수는 없지만, 오늘 만나는 주민의 이야기를 진심으로 경청하고, 자신의 전문성을 키우며, 팀원들과 어떻게 협력할지 결정하는 것은 지금 당장 스스로 선택할 수 있는 영향력의 영역입니다. 이처럼 영향력의 원 안에서 행동하면 그 긍정적인 에너지가 주위로 확산되어, 결과적으로 자신이 통제할 수 있는 영향력의 원 자체가 점점 커지게 됩니다.
국내 안산희망재단은 재난 이후 무너진 지역 사회를 재건하기 위해 높은 투명성(성품)과 전문적인 기금 운용 능력(역량)을 발휘하여 전국적인 민관 협력의 훌륭한 모델이 되었습니다 (출처: 안산희망재단 활동 보고서). 이러한 실행력은 해외 사례에서도 증명됩니다. 미국 로스앤젤레스 사우스센트럴(South Central)의 론 핀리(Ron Finley)는 거주지가 신선한 채소를 구할 수 없는 '식량 사막'이라는 거대한 문제를 탓하며 좌절하지 않았습니다. 당장 자신이 할 수 있는 일, 즉 집 앞 버려진 도로변에 채소를 심는 행동에 에너지를 집중했습니다. 불법이라는 시청의 벌금과 체포 영장에도 불구하고 900명의 시민 서명을 이끌어내며 시의 법을 바꾸었습니다. 이 작은 실행은 전 세계적인 게릴라 가드닝 무브먼트로 확대되며 빈곤 지역의 식생활 문제를 근본적으로 변화시켰습니다 (출처: 론 핀리 프로젝트 공식 보고서 및 강연). 현장에서의 작은 실행이 결국 거대한 지역사회의 변화를 만듭니다.



과거를 재해석하여 현재의 성장을 도모하라
과거의 사건 자체는 바꿀 수 없지만, 그 사건에 대한 해석은 리더의 의지에 따라 얼마든지 바뀔 수 있습니다. "나에게 왜 이런 힘든 일이 일어났을까?"라는 원망이나 상처는 우리가 이미 통제할 수 없는 '관심의 원'에 속합니다. 이 거대한 관심의 원에 갇혀 과거의 트라우마나 가해자를 탓하는 데만 에너지를 쏟게 되면, 리더는 깊은 피해의식과 무기력에 빠지며 스스로의 생명력을 갉아먹게 됩니다. 반면, "이 경험이 나에게 주는 메시지는 무엇인가?"라고 질문의 방향을 바꾸는 순간, 우리는 내 힘으로 통제하고 반응을 선택할 수 있는 '영향력의 원' 안으로 진입하게 됩니다. 영향력의 원에 에너지를 집중한다는 것은, 억울한 상처를 부인하는 것이 아니라 그 상처에 어떻게 대응할지 스스로 주도권을 쥠으로써 상실했던 자존감과 내면의 생명력을 회복하는 치유의 과정입니다.
故 김복동 활동가는 참혹한 과거의 상처와 폭력이라는 바꿀 수 없는 관심의 원에 머물며 원망으로 삶을 소진하지 않았습니다. 대신 그녀는 자신이 당장 할 수 있는 일, 즉 세상에 진실을 알리고 다른 전시 성폭력 피해자들을 돕는 명확한 '영향력의 원'에 에너지를 집중했습니다. 이러한 주체적인 재해석과 실행은 그녀 내면의 자존감을 강력하게 회복시켰고, 이 작은 원에서 시작된 긍정적 에너지가 확산되어 종국에는 전 세계적인 인권 연대라는 거대한 변화를 끌어냈습니다. 아르헨티나의 '5월 광장의 어머니회'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자녀의 실종이라는 비극적 과거와 폭압적인 국가 권력은 평범한 어머니들이 당장 어찌할 수 없는 거대한 절망이자 관심의 원이었습니다. 그러나 이들은 방 안에서 원망하며 피해의식의 늪에 머무르는 대신, 하얀 수건을 쓰고 광장에 모여 서로의 아픔을 나누고 연대하는 자신들만의 영향력의 원을 구축했습니다. 뼈아픈 슬픔을 능동적인 연대로 승화시킨 이들의 행동은 스스로의 생명력을 되찾는 과정이었으며, 좁았던 영향력의 원을 넓혀 아르헨티나의 민주주의 회복을 이끄는 거대한 사회 운동으로 발전했습니다. 리더가 과거의 고된 경험을 원망이 아닌 성장의 밑거름으로 재해석하여 자신의 영향력의 원에 집중할 때, 무너졌던 자존감이 회복되고 나아가 지역사회의 미래마저 근본적으로 달라집니다.



지혜와 용기를 수렴하는 현장의 리더들에게
지역 복지의 최전선에서 마을의 변화를 이끄는 여러분은 우리 사회의 가장 든든한 자산입니다. 현장에서 매일 겪는 피로감과 갈등은 여러분이 민주적 주권을 실천하며 기꺼이 책임을 다하고 있다는 증거이기도 합니다. 세상의 질서에 수동적으로 자신을 맞추기보다, 자신에게 세상을 맞추는 주체적인 삶을 포기하지 마십시오. 우리가 바꿀 수 없는 현실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는 침착함과, 반드시 바꿔야 할 현장의 부조리를 타파해 나가는 용기, 그리고 그 둘을 명확히 구별하는 지혜를 하나로 모아주시길 부탁드립니다. 주민의 마음을 어루만지는 따뜻한 성품과 지역의 난제를 해결하는 전문적인 역량의 균형을 통해, 여러분의 마을에 ‘신뢰’라는 가장 값진 열매가 맺히기를 진심으로 응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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