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복지사 혼자서는 감당할 수 없는 마을의 갈등
경력 1년 6개월 차, 뜨거운 열정 하나로 지역사회조직화 현장에 뛰어든 박소통 사회복지사는 주민조직 사업으로 동네 골목길을 누비며 주민들과 정을 나누는 것만으로도 행복했던 초기의 설렘은 잦아지고, 최근 아침 출근길이 많이 무거워졌다. 박소통 복지사의 발목을 잡은 것은 최근 원도심 빌라 밀집 지역을 중심으로 확산되는 '길고양이 밥자리(캣맘) 갈등'이었다. 골목마다 자발적으로 설치된 길고양이 급식소를 두고 생명을 보호해야 한다는 돌봄 주민들과 소음, 쓰레기 훼손, 차량 손상 등의 피해를 호소하는 일반 주민들 간의 갈등은 단순한 민원을 넘어 이웃 간의 전면전으로 가고 있었다. 욕설이 오가고, 밥그릇이 짓밟히는 일도 있었으며, 급기야 경찰까지 출동하는 사태가 발생했다. 초기에 박소통 복지사는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혼자서 뛰어다녔다. 오전에는 밥자리를 반대하는 주민들을 찾아가 고함사이를 오가며 진정시켰고, 오후에는 돌봄 주민들을 만나 조금만 주의해 달라고 읍소했다. 하지만 복지사 혼자서 중간에 끼어 소통하고 조정하려는 노력은 양측 모두에게 "저쪽 편만 든다"는 오해를 사기도 했다. 한쪽에서는 "복지관이 동물을 학대하는 주민들을 편든다"고 비난했고, 다른 쪽에서는 "동네 주거 환경이 망가지는데 복지관은 방관만 하느냐"며 손가락질했다. 혼자서 갈등을 해결하려던 박소통 복지사의 마음은 점차 찌그러지고 있었다. 그때 깨달은 진실이 있었다. 사회복지사 한 명의 유능함이나 조정 기술만으로는 수년간 쌓인 마을의 고질적인 갈등 구조를 바꾸기 어렵다는 것이었다. 마을의 문제는 결국 마을의 주인인 주민들이 스스로 문제의식을 느끼고, 함께 관여하며, 자치적인 힘을 기를 때 해결될 수 있었다. 그래서 박소통 복지사는 마을 안에서 함께 갈등을 다뤄줄 '우군(友軍)'을 찾기로 결심했다. 복지관을 중심으로 마을 문제를 스스로 해결하고자 하는 주체적인 주민들을 조직하는 것, 그것이 이 피곤한 갈등의 사슬을 풀 열쇠라고 생각했다.
마을의 문제의식들이 모여 '상생 주민 자치단'이 조직되다
박소통 복지사는 우선 복지관의 기존 프로그램에 참여하던 주민들 중, 평소 동네 환경이나 주민 간 관계에 깊은 관심과 문제의식을 보였던 이들을 유심히 살폈다. 부녀회 활동을 오래 하며 동네 사정에 밝은 이정임 통장, 평소 은퇴 후 마을 공익 활동에 뜻을 두고 있던 전직 교사 김만수 어르신, 그리고 다문화 가정 아이들을 돌보며 공동체 활동에 참여해 온 젊은 주부 박미영 씨가 그 주인공들이었다. 박소통 복지사는 이들을 한 명씩 찾아가 따뜻한 차를 나누며 마을의 고양이 밥자리 갈등에 대한 이야기를 꺼냈다. "통장님, 어르신, 미영 씨. 요즘 우리 동네 고양이 문제 때문에 이웃 사촌들이 원수가 되고 있어요. 이대로 두면 우리 마을 공동체는 상당히 깨질지도 모릅니다. 복지사인 제가 뛰어다녀 봤지만 한계가 있더라구요. 우리 마을의 평화를 위해 주민 여러분이 함께 지혜를 모아주시면 안 될까요?" 주민들은 기다렸다는 듯이 공감했다. 이정임 통장은 "맞아요, 박 선생. 나도 중간에서 양쪽 말을 다 듣는데 아주 미칠 지경이었어. 이러다 큰 사고 나겠다 싶더라고"라며 고개를 끄덕였다. 김만수 어르신은 "법이나 행정으로 해결하려고 하면 결국 한쪽은 패자가 되어 앙심을 품게 마련이지. 주민들이 스스로 대화 테이블을 만들어야 하네"라며 뜻을 보탰다. 이렇게 복지관을 중심으로 문제의식을 가진 핵심 주민 5명이 모여 '마을 상생 주민 자치단(이하 상생단)'이라는 이름의 주민조직이 첫발을 내딛게 되었다. 박소통 복지사는 상생단 주민들이 갈등 조정 주체로 성장할 수 있도록 지원하는 퍼실리테이터 역할을 자처했다. 이들은 매주 복지관에 모여 스터디를 시작했다. 국내외에서 주민들이 주도하여 갈등을 해결한 선진 사례들을 함께 읽고 토론했다. 특히 전남 완도군 약산면에서 매생이 양식장 경계를 두고 5년 동안 격렬하게 싸웠던 주민들이 전문가의 중재로 '옆 마을이 우리에게 바라는 점이 무엇일까?'를 유추하는 대화를 통해 자발적 상생 협약을 맺고 사법 비용 없이 자치적으로 분쟁을 해결한 국내 사례를 공부할 때는 주민들의 눈빛이 번뜩였다. 또한, 캐나다 포트 세인트 존에서 자원 개발을 두고 원주민과 기업이 극심하게 대립했을 때, 서로의 입장을 바꿔 원주민은 기업 임원의 역할을, 기업 임원은 원주민의 역할을 시뮬레이션하며 서로의 두려움과 욕구를 대변하는 토론을 통해 공동 환경 감시 그라운드 룰을 도출해낸 해외 사례도 상생단 주민들에게 거대한 인사이트를 주었다. 김만수 어르신은 "이거네! 우리 고양이 갈등도 무작정 만나서 싸우게 할 게 아니라, 이 완도와 캐나다 사례처럼 '역지사지'의 판을 깔아줘야 해"라며 무릎을 쳤다. 박소통 복지사와 상생단 주민들은 이 지각적 역할 공유의 심리적 원리를 활용한 '역지사지 그라운드 룰' 대화 모델을 우리 마을 고양이 갈등 현장에 맞춤형으로 적용해 보기로 뜻을 모았다.
첫 번째 주민 대화의 날, 냉소와 시행착오를 겪다
상생단 주민들이 주축이 되어 갈등의 중심에 서 있는 '고양이 돌봄 주민(캣맘·캣대디)' 대표 4명과 '반대 주민(빌라 자치회 및 인근 주민)' 대표 4명을 어렵사리 복지관 세미나실로 초대했다. 박소통 복지사는 뒤에서 묵묵히 행정적 지원과 기록을 담당했고, 이날의 메인 퍼실리테이터는 상생단의 김만수 어르신과 이정임 통장이 맡았다. 주민이 주민을 초대해 대화의 장을 연 것 자체만으로도 용기있는 첫걸음이었지만, 현실의 갈등은 그리 호락호락하지 않았다. 대화 테이블에 앉은 양측 주민들의 표정은 얼음장처럼 차가웠다. 김만수 어르신이 온화한 목소리로 "우리 마을의 평화를 위해 귀한 걸음 해주셨습니다. 본격적인 대화에 앞서, 서로 존중하고 말을 끊지 않는다는 규칙을 지켜주시기 바랍니다"라고 일방적인 규칙을 선언하며 대화의 문을 열었다. 하지만 이 하향식 규칙은 영향력이 별로 없었다. 돌봄 주민 대표인 최민지(가명) 씨가 "우리가 밤마다 사료를 주며 쥐가 창궐하는 걸 막아주는 면도 있는데, 무조건 밥그릇을 발로 차고 오물을 던지는 건 명백한 동물 학대이자 폭력입니다"라고 포문을 열자, 반대 주민 대표인 강성구(가명) 씨가 즉각 책상을 치며 자리를 박차고 일어났다. "무슨 헛소리에요! 고양이 우는 소리 때문에 애들이 밤마다 깨서 울고, 주차해 놓은 새 차 지붕에 올라타서 스크래치를 다 내놨는데! 당신들이 내 차 수리비 물어낼 거야? 냄새나서 살 수가 없다고!" 회의실은 순식간에 고성과 비난으로 뒤덮였다. 이정임 통장이 "여러분, 진정하세요! 규칙을 지켜주셔야 대화가 됩니다!"라고 소리쳤지만, 격앙된 주민들의 귀에는 아무것도 들리지 않았다. 첫 번째 주민 대화는 서로에게 깊은 상처와 분노만 남긴 채 30분 만에 파행으로 끝났다. 양측 주민들이 문을 쾅 닫고 나가버린 썰렁한 회의실에서 상생단 주민들과 박소통 복지사는 깊은 탄식을 하였다.
좌절을 딛고 일어선 상생단의 용기와 반전의 설계
"역시 우리는 안 되는 걸까요? 복지사님, 주민들이 저렇게 서슬 퍼렇게 싸우는데 우리가 끼어드는 게 무리였나 봅니다." 젊은 주부 박미영 씨가 낙담한 목소리로 말했다. 박소통 복지사 역시 가슴이 답답했지만, 여기서 무너지면 마을 공동체의 회복은 영영 불가능하다는 것을 잘 알고 있었다. 박소통 복지사는 상생단 주민들의 손을 꼭 잡았다. "아닙니다, 여러분. 우리가 완도나 캐나다 사례에서 배운 핵심을 놓쳤어요. 저분들에게 우리가 정한 규칙을 '지키라'고 강요하니까 반발심만 생긴 겁니다. 사람은 외부에서 강제된 규율에는 본능적으로 반발하지만, 비록 상대방의 입장이라는 프레임을 거쳤을지라도 '내가 직접 고민하고 내 입으로 문장화한 규칙'에 대해서는 강한 소유 의식과 책임감을 느낀다고 배웠잖아요. 다음 대화 때는 양측 주민들이 스스로 규칙을 만들 수밖에 없는 '역지사지'의 프레임을 가동해야 합니다. 우리가 다시 한번 용기를 내서 그분들을 찾아가보는게 어떨까요?" 박소통 복지사의 격려에 상생단 주민들은 다시 눈을 반짝였다. 이정임 통장은 반대 주민들의 집을 찾아가 "나를 봐서라도 한 번만 더 나오시라. 이번에는 정말 다를 것"이라며 설득했고, 김만수 어르신은 돌봄 주민들을 만나 "생명 존중이라는 좋은 뜻이 마을에서 인정받으려면 대화의 끈을 놓지 말아야 한다"고 간곡히 읍소했다. 주민조직이 가진 끈끈한 지역 네트워크와 진정성이 마침내 빛을 발하여, 일주일 뒤 양측 주민들은 다시 한번 복지관 대화 테이블에 앉게 되었다. 이번에는 더 단단히 준비된 '역지사지 그라운드 룰' 프로세스에 따라 진행했다. 상생단 주민들은 회의실 테이블을 아예 두 그룹으로 분리해 배치했다. 한쪽은 '돌봄 주민 그룹', 다른 쪽은 '일반 주민 그룹'이었다. 그리고 김만수 어르신이 부드럽지만 단호한 어조로 미션을 선포했다. "주민 여러분, 오늘 이 자리는 여러분의 억울함이나 요구사항을 말씀하시는 자리가 아닙니다. 오늘은 입장을 바꿔서 진행합니다. 돌봄 주민분들은 '반대 주민분들이 우리에게 진정으로 바라는 점과 변화되었으면 하는 점'이 무엇일까 상상해서 저 전지에 적어주십시오. 반대로 일반 주민분들은 '돌봄 주민분들이 우리에게 가장 섭섭해하고 바라는 점'이 무엇일까 추측해서 적어주시는 겁니다. 상대방의 눈으로 바라본 우리 자신의 모습을 적는 시간입니다."

서로간의 감정과 욕구를 상상하고, 읽어보다
처음에는 양쪽 모두 황당하다는 표정이었다. 강성구 씨는 "우리가 왜 저 사람들 속사정까지 채워줘야 합니까?"라며 툴툴거렸고, 최민지 씨 역시 펜을 잡은 채 선뜻 문장을 적지 못했다. 이때 상생단 주민들이 각 그룹에 배치되어 조력자 역할을 톡톡히 해냈다. 박미영 씨는 돌봄 주민 그룹에서 "반대 주민들이 밤마다 고양이 소리에 잠 못 잘 때 느낄 피로감을 한번 상상해 봐요"라며 생각을 촉진했고, 이정임 통장은 반대 주민 그룹에서 "돌봄 주민들이 애써 준 사료가 쓰레기통에 처박힐 때 느꼈을 슬픔을 한번 입장을 바꿔 생각해보자구"라며 주민들의 마음을 두드렸다. 시간이 흐르면서 주민들의 펜이 움직이기 시작했다. 서로를 향해 삿대질하던 손으로 상대방의 아픔과 두려움, 욕구를 한 자 한 자 적어 내려간 것이다. 이윽고 교차 발표 시간이 다가왔다.
먼저 돌봄 주민 대표 최민지 씨가 떨리는 목소리로 일반 주민 그룹을 향해 발표를 시작했다. "저희가 상대방의 입장이 되어 생각을 해보았습니다. 아마도 일반 주민분들은… 우리가 고양이 밥만 던져주고 책임감 없이 휙 가버리는 모습에 가장 화가 나셨을 것 같습니다. 낡은 플라스틱 그릇에 비가 오면 사료가 썩어 냄새가 나고 주변이 지저분해지니까 동네 환경이 망가진다고 걱정하셨을 것 같고요. 무엇보다 밤늦은 시간에 주택가 한복판에서 고양이가 모여 울어대니 아이들이 잠을 깨고 일상생활에 큰 고통을 받으셨을 것 같습니다. 그래서 저희에게 밥자리를 깔끔하게 관리하고, 민가에서 멀리 떨어진 곳으로 위치를 옮겨주길 간절히 바라고 계실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회의실 안이 순간 물을 끼얹은 듯 조용해졌다. 팔짱을 낀 채 불만 가득한 표정으로 벽을 보고 있던 반대 주민 강성구 씨의 고개가 서서히 돌봄 주민들을 향했다. 자신들의 불만을 무조건 '동물 혐오자들의 악성 민원'으로만 치부하는 줄 알았는데, 돌봄 주민들이 자신들이 겪는 일상의 고통과 주거 환경에 대한 두려움을 정확하게 읽어 주었기 때문이다. 힘의 불균형 속에서 주민들이 복지관의 기대를 유추할 때 불평을 줄이고 존중의 태도를 원할 것이라 유추했던 세밀한 메커니즘이, 주민과 주민 간의 갈등 현장에서 적중하고 있었다. 이어서 반대 주민 대표 강성구 씨가 목을 가다듬으며 전지를 펼쳤다. 그 역시 다소 가라앉은 목소리로 발표를 이어갔다. "우리도 돌봄 주민들의 입장을 상상해 봤습니다. 이분들은 말 못 하는 길고양이들도 엄연한 생명인데, 배고파 굶어 죽는 것을 가만히 보지 못하는 참 따뜻하고 고운 마음을 가진 분들일 것입니다. 그런데 우리가 무작정 소리를 지르고, 멀쩡한 사료 그릇을 발로 차서 엎어버릴 때 가슴이 아프고 상처를 받으셨을 것 같습니다. 우리가 고양이를 무조건 유해동물 취급하며 쫓아내려고만 하지 말고, 그분들의 생명 존중 마음을 인정해 주고 대화로 좋게 해결 방안을 찾길 원하셨을 것 같습니다." 발표가 끝나자, 돌봄 주민 최민지 씨의 눈에서 왈칵 눈물이 쏟아졌다. "맞아요… 저희를 무조건 나쁜 사람 취급하고 고양이 밥그릇을 던지실 때 너무 무서웠어요"라며 어깨를 들썩였다. 강성구 씨 역시 미안한 표정으로 고개를 숙였다. "내가 홧김에 그릇을 발로 차고 소리 지른 건 정말 미안합니다. 냄새가 너무 나고 잠을 못 자서 이성을 잃었나 봅니다"라며 먼저 손을 내밀었다. 양측을 '공격자와 피해자'가 아닌 '서로에게 정당한 기대치와 불안을 가진 동등한 주체'로 재정의하는 역지사지 그라운드 룰의 효과가 나타난 순간이었다. 주민들은 상대가 나에게 바라는 점을 긍정적인 방향(존중, 청결, 소음 저감)으로 유추하고 확인하는 과정에서, 내면에 잠재되어 있던 근거 없는 불안과 적대감을 걷어내기 시작했다.
타협과 해결 전략: 주민조직이 중재하는 상생의 그라운드 룰
감정적 앙금이 걷히자, 이제는 현실적이고 구체적인 타협안을 마련하는 이성적인 논의가 속도감 있게 진행되었다. 이 과정 역시 복지관의 박소통 복지사와 상생단 주민들이 적극적으로 중재했다. 상생단의 박미영 씨는 "돌봄 주민분들이 밥자리 청결을 약속하셨고, 일반 주민분들도 생명 존중의 뜻을 인정해 주셨으니, 이제 실천 가능한 동네 규칙을 함께 완성해 볼까요?"라며 화제를 전환했다. 주민들은 양측이 교차 발표한 상대방의 기대를 바탕으로, 스스로 지키고 책임질 '마을 길고양이 상생 그라운드 룰'을 한 조항씩 직접 작성해 나갔다. 첫째, 주택가 단독 빌라 바로 앞이나 주차장에 무분별하게 흩어져 있던 임시 밥자리 7곳을 폐쇄하기로 합의했다. 대신 주민들의 통행이 적고 민가와 최소 30m 이상 떨어진 동네 작은 공원 외곽과 공터 2곳으로 밥자리를 통합·이전하기로 결정했다. 둘째, 돌봄 주민들은 고양이 급식소를 친환경 원목 상자로 제작하여 미관을 해치지 않도록 하고, 매일 오전·오후 2회 청소 당번을 정해 사료 찌꺼기와 주변 쓰레기를 수거하기로 약속했다. 특히 여름철 악취 방지를 위해 잔여 사료는 당일 회수한다는 내부 규칙을 세웠다. 셋째, 반대 주민들은 돌봄 주민들의 활동과 통합 급식소를 존중하며, 밥그릇을 훼손하거나 돌봄 주민에게 모욕적인 언사를 하지 않기로 서약했다. 향후 길고양이 관련 문제가 발생할 경우, '상생단 주민 자치위원회'의 중재를 통해 해결하기로 내부 절차를 공식화했다. 넷째, 복지관의 박소통 복지사와 상생단은 구청 주민참여 예산 및 동물보호과와 연계하여 통합 급식소에 고양이 중성화(TNR) 사업을 최우선으로 적용하기로 했다. 이를 통해 개체 수를 조절하고 발정기 울음소리를 저감하는 민관협력 행정 지원 체계를 매칭하기 위함이다. 주민들은 완성된 그라운드 룰 전지에 한 명씩 자신의 이름을 서명했다. 위에서 일방적으로 내려온 규칙에는 눈길도 주지 않던 주민들이, 스스로 선택하고 합의한 규칙 앞에서는 달랐다. 자신이 직접 유추하고 문장화한 규칙이기에 자발적 책임감이 향상된 것이다. 주민들은 서로 악수를 나누며 회의실을 나섰고, 이 모습을 지켜본 상생단 주민들과 박소통 복지사의 마음도 뿌듯했다.
[실무 가이드] 사회복지사를 위한 '역지사지 그라운드 룰' 5단계 과정
이 칼럼을 읽고 있는 전국의 동료 사회복지사들이 마을 갈등을 다루는 주민조직화 현장에서 이 기법을 컴팩트하고 즉각적으로 적용할 수 있도록 체계화된 5단계 표준 프로세스를 제시해본다.

- 1단계: 문제 제기 및 동기부여
- 행동 지침: 사회복지사나 기관이 일방적으로 정한 규칙(하향식 규제)은 주민들의 자발적인 실천 동기를 이끌어내지 못하고 반발심만 키운다는 한계를 참여 주민들과 공유한다. 갈등 해결을 위해서는 당사자들이 스스로 움직여 규칙을 직접 만들어야 하는 당위성에 공감대를 형성한다.
- 2단계: 역할 부여 및 입장 전도
- 행동 지침: 대화 테이블에 모인 주민들을 실제 이해관계와 갈등 성격에 따라 두 그룹(A그룹 vs B그룹)으로 분리하여 착석시킨다. 이후 "자기 그룹의 억울함이나 요구사항을 적지 말고, 상대방의 눈과 입장이 되어 '상대방이 우리에게 진정으로 바라는 점과 변화되었으면 하는 점'이 무엇일까 추측해서 적어달라"는 역지사지 미션을 부여한다.
- 3단계: 그룹별 브레인스토밍 및 작성
- 행동 지침: 주민들이 상대방의 눈으로 바라본 우리 자신의 모습을 상상하며 토론하게 한다. 이때 사회복지사와 사전에 조직된 핵심 주민(주민조직)들이 각 그룹에 퍼실리테이터로 참여하여, 주민들이 감정적 방어기제를 허물고 상대방이 처한 현실적 고통과 욕구, 두려움을 구체적인 문장으로 도출할 수 있도록 조력하고 전지나 보드에 기록하도록 돕는다.
- 4단계: 교차 발표 및 상호 피드백
- 행동 지침: 각 그룹이 추측한 상대방의 기대치와 두려움을 교차하여 발표한다. 이때 발표를 듣는 상대 그룹은 방어적인 비난을 멈추고, "맞다, 그것이 우리가 정말 원하던 바다"라고 인정하거나, "그 부분은 오해가 있으니 서로 존중하는 선에서 이러이러하게 보완하자"와 같이 건설적이고 구체적인 코멘트를 통해 규칙의 내용을 정교하게 다듬는다. 이 과정에서 상호 간의 투사 효과(부정적 왜곡)가 교정되고 깊은 심리적 안전감이 형성된다.
- 5단계: 규칙 확정 및 자치적 내재화
- 행동 지침: 상호 합의되고 정교화된 조항들을 시각화하여 대형 전지나 보드에 명문화하고, 참석한 모든 주민이 서명하게 한다. 이 규칙을 회의 공간이나 마을 거점 공간에 상시 게시하여 주민들이 스스로 선택하고 선택한 약속에 대해 강한 책임감과 소유 의식(Ownership)을 유지하며 마을 활동을 이어갈 수 있도록 내재화한다.
주민 주도 거버넌스가 증명한 풀뿌리 민주주의 효과
시간이 흘러 마을은 변화했다. 주민들이 스스로 정한 '길고양이 상생 그라운드 룰'은 성과있게 지켜지고 있었다. 깨끗하게 관리되는 통합 급식소 덕분에 빌라 골목의 쓰레기봉투 훼손 문제는 눈에 띄게 줄어들었고, 구청과 연계한 TNR 사업으로 밤마다 주민들을 괴롭히던 발정기 울음소리도 서서히 사라졌다. 가끔 규칙을 잊는 주민이 생기면, 박소통 복지사가 나설 필요도 없이 상생단의 이정임 통장과 주민들이 먼저 다가가 "우리가 같이 만든 규칙이잖아요"라며 다정하게 권고하고 바로잡았다. 이번 박소통 사회복지사와 복지관 주민조직의 성공 사례는 우리에게 많은 시사점을 준다.
첫째, 이 방법론은 조직 내에 강력한 '심리적 안전감(Psychological Safety)'을 구축한다. 복지관이나 사회복지사가 강자로서 약자인 주민에게 시혜적으로 다가가 문제를 조율하는 수직적 구도를 깨뜨리고, 주민 스스로가 갈등의 당사자이자 해결의 주체인 동등한 파트너로 재정의된다. "내 솔직한 욕구와 두려움을 이야기해도 이 공간과 주민 조직 안에서는 안전하게 수용되고 건강하게 조정된다"는 신뢰 분위기가 형성되는 것이다. 둘째, 주민들의 '시민 역량(Civic Capacity)'을 확장시킨다. 민주주의는 단순히 내 몫을 더 많이 요구하고 주장을 관철하는 투쟁이 아니라 나와 처지가 다른 이웃 시민의 곤경과 두려움을 머릿속으로 상상하고 공감하는 능력에서 출발한다. 역지사지 그라운드 룰은 참여 주민들이 단편적인 '요구자'나 '민원인'의 지위를 넘어, 공공의 문제를 다각적으로 바라보고 타협을 이끌어내는 고도의 '성숙한 시민 파트너'로 거듭나게 만드는 효과적인 시민 교육적 기제다. 셋째, 민관협치(거버넌스)의 핵심인 '사회적 신뢰 자본'을 축적한다. 일방통행식 행정이나 사법적 처벌에 의존하는 방식은 일시적으로 갈등을 봉합할지언정 주민 간의 상호호혜적 관계망을 파괴한다. 반면 주민들이 함께 갈등을 마주하고 역지사지의 프레임으로 대안을 마련해 본 경험은, 향후 마을에 어떤 복잡하고 거대한 지역사회 갈등이 들이닥치더라도 주민 스스로가 회복 탄력성 있게 대화로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촘촘하고 단단한 사회적 자본을 형성하게 한다. 갈등은 평화롭던 공동체를 파괴하는 불청객이기도 하지만, 거꾸로 주민들이 자치의 주체로 성장할 수 있도록 돕는 강력한 촉매제가 되기도 한다. 오늘도 갈등이 가득한 거친 마을 현장에서 주민조직화의 매듭을 풀기 위해 고군분투하며 눈물 흘리고 있을 전국의 수많은 '박소통' 사회복지사분들은 주민을 믿고, 주민을 조직하며, 그들이 스스로 역지사지의 지혜를 발휘할 수 있도록 판을 깔아주는 것. 그것이 바로 우리가 발을 딛고 서 있는 풀뿌리 민주주의와 지역복지 실천이 지닌 아름다운 힘이라고 생각한다.

마을 자치의 종착지: 나와 다른 존재를 공감하는 '민주주의적 상상력'
우리가 이번 길고양이 갈등 해결 과정에서 목격한 반전은, '통합 급식소 이전'이라는 물리적 합의를 넘어 주민들의 내면에서 일어난 심리적 지각 변동이었다. 이는 정치학자이자 철학자인 마사 누스바움(Martha Nussbaum)이 그의 저서 《교육을 말하다: 왜 민주주의는 인문학을 필요로 하는가》에서 설파한 '민주주의적 상상력(Democratic Imagination)'이 마을이라는 구체적인 생활 세계 속에서 구현된 순간이었다. 누스바움은 현대 민주주의 사회의 시민들이 갖추어야 할 필수적인 역량으로 이 '민주주의적 상상력'을 꼽았다. 그녀는 "민주주의적 상상력이란 내가 아닌 다른 사람의 처지가 되어보고, 그 사람의 이야기 속으로 들어가 그의 소망과 두려움, 이해관계를 함께 이해할 수 있는 능력"이라고 정의했다. 현대 사회에서 이 인문학적 상상력이 결핍될 때, 시민들은 나와 다른 삶을 사는 이웃을 대화의 파트너가 아니라 나의 이익을 방해하는 '제거 대상'이나 '방해물'로 전락시키고 만다. 누스바움의 경고처럼, 타인의 고통과 곤경을 상상할 수 없는 시민들로 가득 찬 사회는 결국 민주주의라는 이름 하에 서로를 향한 혐오와 공격만을 일삼는 장소로 변질될 뿐이다. 그동안 마을의 강성구 씨와 최민지 씨를 비롯한 주민들이 서로를 향해 삿대질을 멈추지 않았던 이유도 이 상상력의 끈이 끊어져 있었기 때문이었다. 반대 주민들에게 돌봄 주민들은 '동네 환경을 망치는 이기적인 존재'였고, 돌봄 주민들에게 반대 주민들은 '생명을 학대하는 인간들'이라는 프레임에 갇혀 있었다. 그러나 '역지사지 그라운드 룰'이라는 판 위에서, 복지관과 주민조직 상생단의 조력을 통해 주민들은 상대방의 프레임 속으로 들어갔다. 강성구 씨는 돌봄 주민들이 생명이 짓밟힐 때 느꼈을 슬픔을 상상해 냈고, 최민지 씨는 반대 주민들이 밤마다 고양이 소리에 잠을 깨며 겪었을 일상의 피로와 고통을 문장화했다. 서로를 혐오의 대상이 아닌, 나와 똑같이 정당한 욕구와 두려움을 가진 '영혼을 지닌 존재'이자 '동등한 시민'으로 바라보기 시작한 것이다. 풀뿌리 민주주의와 주민 자치의 본질은 내 주장만을 관철하는 투쟁의 기술이 아니다. 나와 처지가 다른 이웃 시민의 불안과 숨겨진 곤경을 머릿속으로 상상하고 공감해내는 능력, 그리하여 상생의 규칙을 스스로 만들어내는 능력에 있다. 이번 고양이 밥자리 갈등의 타협은, 주민들이 스스로의 힘으로 마을 안에서 '민주주의적 상상력'을 회복하고 신뢰 자본을 축적해 낸 증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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