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부아르의 통찰과 노년의 재발견
“여성은 태어나는 것이 아니라 만들어지는 것이다(On ne naît pas femme : on le devient).”
실존주의 철학자 장 폴 사르트르의 평생의 지적 동반자였던 시몬 드 보부아르(Simone de Beauvoir)는 1949년 출간된 현대 여성주의의 고전 《제2의 성》에서 이 선언을 남겼습니다. 여성성이라는 규정이 선천적인 생물학적 숙명이 아니라, 가부장적 사회구조와 문화적 제도 속에서 후천적으로 학습되고 길들여진 ‘타자화의 산물’일 수 있다는 가능성을 제시했습니다. 오랜 시간이 흐른 오늘, 우리는 이 통찰을 대한민국 노인 복지 현장에 대입하여 질문을 할 수도 있겠습니다. 과연 노인은 신체적 쇠퇴에 따라 자연스럽게 노인이 되는 것일까요, 아니면 우리 사회의 문화와 제도와 ‘노인’으로 만들고 있는 것일까요? 선진국 반열에 오른 대한민국에서 노인은 그저 세월에 따라 늙어가는 것이 아니라, 어쩌면 사회적 시선과 현재 복지 프레임에 의해 ‘만들어지고’ 있는지도 모릅니다.
엘렌 랭어의 1959년 수도원 실험
1979년, 미국 하버드 대학교 심리학과 최초의 여성 종신 교수로 임용된 엘렌 랭어(Ellen J. Langer)는 뉴햄프셔주의 한적한 시골 수도원에서 주목할 만한 심리 실험을 단행했습니다. 바로 지금까지 널리 회자되는 ‘시계 거꾸로 돌리기 연구(Counterclockwise Study)’입니다. 랭어 교수는 75세에서 80세 사이의 남성 노인 16명을 모아 일주일간 합숙을 진행했습니다. 수도원 내부는 20년 전인 1959년의 시공간으로 재현되었습니다. 흑백 텔레비전에서는 1959년 방영된 에드 설리번 쇼가 흘러나왔고, 탁자 위에는 당시의 라이프(LIFE) 잡지가 놓였으며, 라디오에서는 당시 인기있던 가수 페리 코모의 노래가 나왔습니다.




https://www.youtube.com/watch?v=0dWZ2Db72ww
거울을 치우고 자율을 세우다
실험의 핵심 규칙은 두 가지였습니다. 첫째, 노화된 자신의 얼굴을 확인하며 스스로에게 나이의 굴레를 씌우지 않도록 숙소 내 거울을 치웠습니다. 둘째, 참가자들은 1959년을 ‘과거’로 회상하는 것이 아니라, 마치 20년 전의 ‘현재’를 살고 있는 것처럼 현재 시제로 말하고 행동해야 했습니다. 피델 카스트로의 쿠바 진입이나 소련의 인공위성 발사를 아침 신문에서 본 뉴스처럼 토론했습니다. 더욱 중요한 장치는 ‘자기주도성과 자율성의 부여’였습니다. 연구진은 간병인이나 보조 인력을 두지 않았습니다. 입소 첫날, 계단 앞에서 어려움을 겪는 노인들에게 손을 내밀지 않았습니다. 무거운 여행 가방을 스스로 방까지 옮겨야 했고, 식사 준비와 설거지, 청소까지 일상을 직접 분담해 해내도록 했습니다. ‘도움받아야 할 약한 존재’라는 보호의 틀을 내려놓게 한 것입니다.
마음의 시계가 되돌린 신체의 활력
결과는 인상적이었습니다. 단 일주일 만에 참가자들의 악력과 관절 유연성이 향상되었고, 구부정했던 척추가 펴지며 평균 신장이 0.5인치 커졌습니다. 시력과 청력, 기억력과 지능 검사 점수가 개선되었으며, 실험 전후 사진을 무작위로 섞어 외부인들에게 평가를 내리게 한 결과 실험 후 얼굴이 평균 3년가량 젊어 보인다는 판정을 받았습니다. 퇴소 당일, 지팡이에 의지해 버스에서 내렸던 노인들은 잔디밭에서 공을 던지며 미식축구(터치풋볼)를 시작했습니다. 마음의 시계를 20년 전으로 돌리고 자율적 주체로서 환경을 재구성한 것만으로 굳어 있던 몸과 감각이 반응한 것입니다. 랭어 교수의 실험은 노화(Aging)란 거스를 수 없는 생물학적 과정만이 아니라, ‘늙었으니 아무것도 못 할 것’이라는 사회적 고정관념과 환경이 육체에 남긴 심리적 영향일 가능성도 존재할 수 있음을 보여주었습니다.
초고령사회 대한민국의 그늘
시선을 오늘날 대한민국의 현실로 돌려봅니다. 통계청 발표에 따르면 대한민국은 65세 이상 고령 인구 비중이 20%를 넘어서며 초고령사회에 진입했습니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 중 고령화 속도가 가장 빠르며, 향후 수십 년 내에 세계에서 가장 고령화된 국가 중 하나가 될 것이라는 전망이 이어집니다. 일본과 비교해도 출발은 늦었지만 고령화의 전개 속도는 한층 빠릅니다. 주목해야 할 부분은 ‘인식의 정체’입니다. 대한민국은 식민지와 전쟁의 상흔을 딛고 원조를 받던 나라에서 주는 나라로 자리매김했습니다. 산업 기술과 문화 역량, 경제 규모는 세계 상위권에 위치합니다. 하지만 복지 현장의 시선은 과거 개발도상국 시절의 문법에 머물러 있는 경우가 적지 않습니다.
과거형 빈곤 프레임에 갇힌 노인복지
적지 않은 지자체와 복지관의 사업계획서에는 노인이 여전히 ‘가난하고 쇠약하여 시혜적으로 보살펴주어야 할 수동적 수혜자’로 다루어집니다. 물론 노인 빈곤 문제를 가볍게 여길 수는 없습니다. 그러나 현장에서 마주하는 상황은 과거와 다른 결을 보입니다. 다수의 은퇴 노년층은 단순히 빈곤하다기 보다는 거주하는 주택 등 부동산에 자산이 묶여 있어, 자산이 있지만 현금 흐름이 원활하지 않은 형태를 띠고 있습니다. 그래서 노인세대는 빈곤하다는 착시가 발생한다고 생각됩니다. 베이비부머 세대를 비롯해 현장에 유입되는 신(新)노년층은 교육 수준이 높고, 오랜 직장 생활과 사회 활동을 통해 전문성과 경험을 축적해 온 이들입니다. 그럼에도 복지관을 이용하는 순간, 이들은 보호받아야 할 대상자로 분류되곤 합니다. 복지관에서는 여전히 경로식당 배식 지원이나 생필품 배분에 머무르고, 서예나 노래교실 같은 여가 프로그램을 수동적으로 제공하는 방식이 이어집니다.
수동적 복지가 낳는 무기력의 덫
이러한 공급자 중심의 접근은 선진화된 사회에서 예기치 않은 부작용을 부릅니다. 어르신들에게 사회의 도움 없이는 독립적으로 지내기 어렵다는 인식을 심어줄 수 있기 때문입니다. 엘렌 랭어의 연구가 시사하듯, 인간은 환경이 규정하는 역할에 맞추어 자신을 조정합니다. 과도한 보호와 일방적인 수혜는 잔존 역량과 자율성을 낮추고 의존성을 키울 우려가 있습니다. 선의로 출발한 복지서비스가 건강한 시민을 점차 무기력한 존재가 되는 결과를 낳을 수도 있는 것입니다.
정답 사회가 남긴 집단적 고립
선진 사회는 육체적 노동 이상으로 관계적 에너지를 필요로 합니다. 빠른 성장을 거치며 우리 사회는 효율성과 정해진 모범 답안을 따르는 데 익숙해졌습니다. 정해진 기준을 쫓으며 경쟁 속에서 달려온 이면에는 높은 수준의 자살률과 사회적 고립이라는 그늘이 드리워져 있습니다. 선진국 진입은 물질적 결핍의 해소에 머물지 않고, ‘관계의 결핍’이라는 새로운 과제를 드러냅니다. 일본의 고독사 현장을 다루는 특수청소 현장에서는 의미심장한 단면이 전해집니다. 유품을 정리하는 과정에서 주인을 찾지 못한 거액의 예금통장이나 현금이 종종 수습되곤 합니다. 일본 대법원 통계에 따르면 연고자가 없어 국가로 귀속되는 무연고 사망자의 상속 재산이 해마다 상당한 규모에 달합니다. 국내에서도 고독사 사례가 늘고 있으며, 위기 상황에서 도움을 청할 이웃이 없다고 답하는 시민의 비율도 적지 않습니다.
물질 중심 복지에서 관계의 회복으로
이러한 현상은 경제적 자원의 유무만으로 설명되지 않습니다. 연결된 관계가 부재하여 발생하는 문제입니다. 평생 직장의 언어에 익숙했던 이들이 은퇴 후 일상의 공간인 동네로 돌아왔을 때, 이웃과 눈을 맞추고 삶을 나눌 언어를 마련하지 못한 탓이 큽니다. 물질적 지원을 복지의 중심에 두느라 사람과 사람을 잇는 일에 소홀했던 복지 행정이 마주한 현실입니다. 이러한 접근에서 벗어나, 노인을 ‘돌봄의 대상’에서 ‘지역사회를 지탱하는 주체’로 바라보며 관계의 전환을 이끌어내는 현장들이 있습니다.
골목의 서사를 살려낸 선배시민: 성수종합사회복지관 ‘성수로그’
서울 성동구 성수동은 상업적 변화와 기존 주거 환경이 교차하는 공간입니다. 빠른 변화 속에서 오랜 시간 동네를 지켜온 어르신들은 소외감을 느끼기 쉬웠습니다. 성수종합사회복지관은 어르신들을 복지관 내부 프로그램에만 머물게 하지 않고, 동네 골목으로 연결했습니다. 바로 고령친화 마을만들기 주민가이드 프로젝트 ‘성수로그’입니다. 복지관은 어르신들을 수혜자가 아닌 ‘마을 해설사(도슨트)’로 참여하도록 안내했습니다. 어르신들은 청년 대학생들과 파트너로 팀을 이루었습니다. 휠체어 이용자를 위해 보도 턱을 낮춘 배려가 유모차와 일반 보행자 모두에게 유익을 주었던 ‘커브 컷 효과(Curb Cut Effect)’의 의미를 함께 짚어보며 동네 골목을 살폈습니다. 만다라트 기법을 활용해 주민가이드로서의 역할을 논의하고, 서울숲의 옛 이야기와 성수동 수제화 거리의 역사를 스토리텔링 코스로 엮었습니다. 청년들은 디지털 지도 제작과 안내를 지원하고, 어르신들은 살아온 역사와 경험을 공유하며 세대 간의 접점을 넓혔습니다. 이 어르신 도슨트들은 복지관을 이용하는 다른 어르신들과 이웃들을 안내하며 동네의 이야기를 전하는 주체로 섰습니다. 수혜의 대상에 머물던 위치에서, 청년과 교류하며 마을의 자원을 알리는 안내자로 거듭난 사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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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정모 소장] 세대를 잇고 경계를 허물다, 성수종합사회복지관 '성수로그'의 고령친화적 마을만
세대공존의 기록을 축적해 온 성수로그의 여정성수동은 과거와 현재, 전통 제조업과 최첨단 트렌드가 공존하는 독특한 역동성을 지닌 공간입니다. 현대적인 변화가 가속화될수록 지역사회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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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년과 노년의 일상이 만나는 곳: 네덜란드 ‘휴머니타스’
네덜란드 데벤테르(Deventer)에 위치한 노인요양복지시설 ‘휴머니타스(Humanitas)’는 해외 사회복지계에서 널리 알려진 사례입니다. 2012년, 이 시설은 주거비 부담을 겪는 대학생들에게 요양원의 여유 방을 무료로 제공하는 대신, 한 달에 일정 시간 동안 노인 입주자들의 이웃이 되어 함께 시간을 보내도록 했습니다. 학생들은 전문적인 간병을 제공하는 것이 아닙니다. 함께 식사하고, 인터넷이나 스마트기기 사용법을 나누며, 음악을 듣거나 담소를 나눕니다. 어르신들은 청년들에게 인생의 경험을 전하고 이들의 고민을 들어주는 역할을 맡습니다. 이 교류는 시설의 분위기를 바꾸어놓았습니다. 청년들의 참여로 공간에 활기가 더해졌고, 어르신들의 정서적 안정과 일상적 활동 수준이 개선되는 모습을 보였습니다. “나를 환자가 아닌 한 사람의 이웃이자 대화 상대로 대한다”는 참여자의 소감은 복지가 지향해야 할 바를 잘 보여줍니다. 일방적인 간병을 넘어 수평적인 역할과 관계를 맺었을 때 노년의 삶에 긍정적인 변화가 나타난 것입니다. (출처: Humanitas Deventer 운영 자료 및 PBS NewsHour 보도, “Dutch nursing home offers rent-free housing to students”)
‘노인(老人)’을 넘어 ‘어른(長)’으로의 시선 전환
국내외 사례들과 엘렌 랭어 교수의 연구는 복지 현장에 창조적 시선을 제공합니다. 우리는 복지의 언어와 방식을 다듬어야 합니다. 우리는 ‘장유유서(長幼有序)’의 가치를 민주적 관점에서 다시 살펴볼 필요가 있습니다. 우리는 통상 ‘노인(老人)복지’라는 표현을 사용합니다. 노인이 생물학적으로 나이가 들어 몸이 약해진 상태(老)를 가리킨다면, 장유유서의 ‘어른 장(長)’은 단순한 나이의 많음이 아니라 삶의 궤적 속에서 중심을 잡고 공동체의 품격을 돕는 성숙한 존재를 뜻합니다. 세종대왕이 훈민정음 서문에서 언급한 ‘어린 백성’의 ‘어리다’는 나이가 적다는 뜻이라기보다 ‘깨치지 못하고 서투르다’는 의미에 가까웠습니다. 장유유서의 본질은 나이로 서열을 나누어 군림하는 권위주의가 아닙니다. 성숙한 어른(長)과 서투른 존재(幼) 사이에 ‘인생의 벽을 마주해 온 경험의 순서(序)’가 있음을 인정하는 데 있습니다.
자라나는 세대에게 배우는 어른의 품격
정신과 의사 M. 스캇 펙(M. Scott Peck)은 저서 《아직도 가야 할 길》에서 의미심장한 경고를 남겼습니다. “성장하는 자녀에게서 배울 의사가 없는 부모는 부지불식간에 노망의 길을 택하고 있는 것이다. 그래서 그들의 자녀와 세상은 그런 부모를 뒤에 남겨둘 것이다. 자녀에게서 배운다는 것은 대개의 사람들이 의미 있는 노년을 보내기 위해 자신을 준비하는 가장 좋은 기회이다.” 어른이 된다는 것은 과거의 기억에 안주하며 아랫세대를 가르치려는 일방성에 머무는 것이 아닙니다. 자라나는 세대의 낯선 언어와 새로운 시대 감각에 가 닿기 위해 귀뿐 아니라 뇌와 심장의 의지라는 품을 기꺼이 내어주는 태도입니다. 젊은 세대에게서 겸허히 배울 줄 아는 유연성을 잃어버릴 때 인간은 세상의 변화 뒤편에 홀로 남겨진 채 빠르게 늙어갑니다. 다음 세대와 접속하기 위해 익숙한 나의 낡은 껍질과 결별할 줄 아는 성찰이야말로 노년의 고립을 막고 주체성을 지키는 핵심적인 동력입니다.
역경을 지나온 경력, 지혜의 연대
흔히 말하는 ‘경력(經歷)’의 글자를 바꾸어 보면 ‘역경(逆境)’이 됩니다. 어른이란 인생의 여러 벽 앞에서 피하지 않고 부딪치며 경험을 쌓아온 사람입니다. 나이가 든다고 해서 절로 어른이 되는 것은 아닙니다. 과거의 익숙함과 훈장에 갇히기보다, 스스로 통과해 온 역경의 지혜를 밑천 삼아 자라나는 세대의 손을 잡고 함께 길을 찾는 사람이 바로 공동체의 ‘어른’입니다. 따라서 사회복지 프로그램의 지향점은 ‘보호와 관리’에 머물기보다, 고립된 이들을 세상으로 이끌어 ‘사회적 역할’을 찾도록 돕고 지역사회의 ‘선배시민’이자 ‘어른’으로 설 수 있게 하는 데 두어야 합니다. 일방적으로 보살핌을 받는 수혜자가 아니라, 젊은 세대와 배움을 주고받으며 마을의 길을 함께 열어가는 역동적인 주체로 바로 세워내는 일이 선진 대한민국 복지가 나아갈 방향입니다.
지역복지 프로그램의 세 가지 전환점
첫째, 정해진 답을 주는 복지에서 함께 길을 찾는 복지로 전환해야 합니다. 전문가가 일방적으로 지원 방식을 결정하기보다, 당사자들이 모여 서로의 생각을 나누고 동네의 문제를 함께 고민할 수 있도록 대화의 장을 열어주는 조력자(Facilitator)의 역할이 필요합니다. 둘째, 물품 배분 중심에서 관계 형성을 돕는 방향으로 중심을 이동해야 합니다. 물품을 건네는 것만으로는 깊은 고립감을 해소하기 어렵습니다. 은퇴자들이 일상 속에서 이웃과 안부를 나누도록 ‘나-전달법(I-Message)’과 경청의 방식을 연습하고, 서로를 살피는 생활 속 안전망을 엮어가야 합니다. 셋째, 살아가던 동네에서 머무는 AIP(Aging in Place)의 가치를 살려야 합니다. 시설에 머물게 하는 방식은 자원을 소모할 뿐 아니라 당사자의 자율적인 삶을 제한하기 쉽습니다. 살던 집과 골목, 익숙한 이웃이 있는 지역사회 안에서 일상을 이어갈 수 있도록 의료와 돌봄이 유기적으로 연계되는 지역 기반 생태계를 만들어가야 합니다.
사회적 자본을 쌓아가는 현장의 실천가들
복지관 강당에서, 골목길 현장에서 묵묵히 땀 흘리는 사회복지사 여러분. 여러분은 복지의 중요한 길목에 서 있습니다. 물품을 전달하는 일은 눈에 띄는 기록을 남기기 수월합니다. 그러나 닫힌 문을 두드려 눈을 맞추고, 어르신들의 서운함이나 외로움을 담담히 들어주며, 주민들이 서로를 챙기도록 관계를 연결하는 일은 시간과 정성이 많이 드는 과정입니다. 그럼에도 이 과정은 값진 일입니다. 현장에서 건네는 경청, “도와드리겠다”는 말 대신 “어르신의 경험과 지혜가 동네에 필요합니다”라고 전하는 존중의 제안이, 한 사람의 굳어 있던 일상을 깨우는 계기가 되기 때문입니다. “노인은 태어나는 것이 아니라 만들어지는 것이다.” 여성에게 적용한 보부아르의 선언을 노인에게 적용한 문장을 바탕으로 사회복지 서비스의 방향을 긍정적인 전환의 계기로 삼을 수 있습니다. 노인을 도움이 필요한 대상으로만 대하면 무력감에 젖기 쉽지만, 그들의 삶의 궤적을 존중하고 지역사회의 일원으로 초대한다면 지혜를 나누는 선배시민의 모습을 보여줄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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