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상북도 풀뿌리자치의 모범, 안동이 일구어낸 제도화의 궤적
경상북도의 다수 시·군은 여전히 관 주도의 자문기구 성격이 짙은 과거 주민자치위원회 체제에 머물러 있거나, 주민자치회 전환 과정에서 조례 제정과 위원 구성 등의 진통을 겪고 있습니다. 반면 안동시는 기초자치단체 차원에서 주민자치 시범실시 조례를 체계적으로 정비하고, 주민이 명실상부한 마을의 주권자로서 기능할 수 있도록 제도적 기반을 닦아왔습니다. 현재 안동시는 24개 읍·면·동 전역에 걸쳐 풀뿌리민주주의의 씨앗을 뿌렸습니다. 옥동, 송하동, 중구동을 비롯한 10개 행정동과 풍산읍 등 총 11개 읍·동이 주민자치회 전환을 매끄럽게 완수하였고, 13개 면 지역 역시 주민자치위원회에서 주민자치회로의 단계적 도약을 착실히 준비하고 있습니다. 이러한 전환은 주민이 마을의 고유한 결핍과 과제를 직접 발굴하고, 마을 자치계획을 수립하며, 주민총회라는 직접민주주의 공론장을 통해 마을의 미래를 투표로 결정하는 진정한 자치권의 실현 과정입니다. 행정 주도의 일방적 관성을 벗겨내고 주민 스스로 삶터를 일구어온 안동시의 실천적 여정은 경북 풀뿌리민주주의 역사의 중대한 분기점이 되고 있습니다.




안동시주민자치협의회의 활동과 현장 중심의 실천적 문제의식
안동시 24개 읍·면·동을 유기적으로 엮어내는 안동시주민자치협의회는 풀뿌리 자치 현장의 든든한 가교이자 중심축 역할을 성실히 감당해 왔습니다. 협의회는 읍·면·동 간의 자치 역량 격차를 해소하고, 주민 삶에 직결되는 생활 의제를 정책화하기 위해 정기 연석회의, 읍면동 교류 프로그램, 주민자치 아카데미 등을 주도적으로 이끌었습니다. 자치회가 조례와 제도로 안착하는 단계에 이르자, 현장 위원들과 실무진 사이에서는 한 차원 높은 고민이 자연스럽게 대두되었습니다. "단순히 도로를 포장해 달라는 민원과 주민이 함께 해결하는 자치의제는 어떻게 구별하는가?", "행정복지센터 공무원과의 소통 마찰이나 조직 내부의 의견 대립은 어떻게 풀어낼 것인가?", "주민총회를 형식적인 의전 행사가 아니라 온 마을이 환호하는 축제로 만들 수는 없을까?" 이번 실무역량 강화 워크숍은 안동시주민자치협의회가 품고 있던 이러한 절실한 질문에 응답하고자 기획되었습니다. 협의회가 지향하는 '현장 밀착형 실천 자치'의 비전과 본 교육과정의 커리큘럼은 안동시 24개 읍·면·동의 일상을 실질적으로 변화시키겠다는 하나의 공통된 목표로 긴밀하게 결합되었습니다.

안동상공회의소에 모인 24개 읍·면·동의 열기: 6회차 심화 워크숍의 여정
2026년 7월 22일부터 8월 26일까지 매주 수요일, 안동상공회의소 3층 대회의실은 폭염의 날씨보다 더 뜨거운 자치위원들의 학습 열기로 가득 찼습니다. 안동시주민자치협의회가 주최하고 시민교육콘텐츠연구소가 주관한 이번 과정은 24개 읍·면·동 위원들을 3개 그룹으로 나누어 그룹별 2회차씩, 총 6회차에 걸쳐 밀도 있게 진행되었습니다.
- 1그룹(1회기): 2026년 7월 22일(수), 7월 29일(수)
- 2그룹(2회기): 2026년 8월 5일(수), 8월 12일(수)
- 3그룹(3회기): 2026년 8월 19일(수), 8월 26일(수)
시민교육콘텐츠연구소 강정모 소장의 기조 강의와 여미경 대표의 특강을 필두로, 김영미, 김지영, 이덕경, 김철기, 최용석 등 연구소 소속의 숙련된 전문위원들이 각 분임 테이블에 상주 퍼실리테이터로 배치되었습니다. 강사의 일방적인 주입식 강의를 배제하고, 위원들이 직접 토론하며 결과물을 완성해가는 밀착형 테이블 퍼실리테이션 방식을 채택하여 실무 효능감을 크게 끌어올렸습니다.


'기발한' 의제에서 '절실한' 자치의제로: 1회차 자치사업 운영기술
1회차 과정에서는 자치사업 기획의 패러다임을 근본적으로 전환하는 작업에 집중했습니다. 주민자치 활동의 초기에 흔히 나타나는 한계는 반짝이는 아이디어에 치중하거나 관공서에 공사를 요구하는 민원 수준에 그친다는 점입니다. 이번 과정에서는 '행정에 요구하는 민원형 의제'와 '주민이 주도적으로 실행하는 참여형 의제'의 경계를 짚어냈습니다. 아울러 문제의 이전 상태(Before)와 해결 후의 변화된 상태(After)를 다루는 '목적', 그리고 그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 밟아야 할 구체적 실행 행위인 '목표'를 분리하여 작성하는 기획 훈련을 진행했습니다. 이 과정에서 읍·면·동별 인구통계, 고령화율, 1인 가구 통계 등 미리 준비된 공공데이터와 AI 프롬프트 분석 기법을 테이블별로 보급하여 의제 발굴의 객관성을 확보했습니다. 참여 위원들은 카드 브레인스토밍과 1:1, 2:2, 4:4 피라미드 토론을 거치며 마을의 현안 속 진짜 문제를 정의했습니다. 이를 통해 사업명, 목적, 세부 실행목표, 현실적인 산출내역 예산표, 기대효과가 논리적으로 정렬된 A3 규격의 실행계획서 초안을 완성해 보았습니다.


테이블에서 길어 올린 안동의 삶: 생태·재난 대응과 초밀착 마을돌봄 모델
분임 토론을 통해 도출된 자치사업 계획서들은 안동시의 도농복합적 도시 구조와 초고령화라는 현실적 결핍을 정면으로 마주하고 있었습니다.
- 원도심 생활환경 개선 및 골목 안전망: 평화동의 '우리동네 그린 프로젝트'(마을회관 음식물 쓰레기 처리기 도입 및 분리수거 교육), 중구동의 '골목을 환하게 중구동 클린 파수꾼'(원도심 상권 야간 무단투기 근절을 위한 주민·상인 합동 야간 순찰) 등 구도심의 쾌적성과 보행 안전을 주민 스스로 확보하는 대안이 도출되었습니다.
- 기후위기 및 극한호우 대응 생태 방재망: 와룡·서후·북후면 연합의 '홍수 걱정없는 생태 하천 복원 사업', 남선면의 '수해 털고 웃음 찾기 환경정비', 일직면의 '막힘없는 배수로, 안전한 일직면', 임동면의 '배수시설 개선 및 주민점검단', 길안면의 '쉬리와 다슬기가 노니는 청정 길안천 만들기' 등 집중호우와 하천 오염에 맞서 마을 주민이 자치순찰단을 꾸리고 사전 준설을 실행하는 지속가능한 방재 모델이 완성되었습니다.
- 초밀착 이웃돌봄 및 세대통합 돌봄망: 태화·평화·서구동 연합과 명륜·용상동의 '현장에서 답을 찾는 고독사 해결방법' 및 '서로 챙김, 같이 한 끼', 송하·안기동의 '마음은 잇고 생활은 보살피는 1:1 맞춤 돌봄', 예안·임동·길안면의 '노노케어 안부지킴이'는 관공서의 손길이 닿지 않는 주말과 야간의 복지 사각지대를 이웃사촌 결연으로 메웠습니다. 나아가 임하면의 '아이 자람터'와 예안면의 '아이온(ON) 마을 돌봄 품앗이'처럼 농번기 돌봄 공백을 마을 어르신의 동행과 부모 품앗이로 채우는 세대통합형 자치 모델도 탄생했습니다.
- 행정경계를 넘어서는 광역 연합 의제: 특히 강남동, 안기동, 송하동 3개 동 위원들이 함께 기획한 '언제나 든든한 365일 안심 울타리'는 노후 급경사지 미끄럼 방지 보행길 조성, 스마트 안심벨 확충, 야간 순찰 연대를 아우르며 단독 행정구역을 넘어선 생활권 중심의 광역 자치 연합 모델을 제시했습니다.
차이를 빚는 소통과 민주적 회의: 2회차 조직운영 기술과 공론장 설계
2회차 과정에서는 주민자치 조직이 겪는 갈등을 건강하게 전환하고 민주적인 의사결정 구조를 확립하는 데 초점을 맞추었습니다. 참여자들의 열심이 커질수록 필연적으로 갈등이 수반되는 자치회의 역동을 분석하고, 참여자들의 외적 주장(Want) 뒤에 숨은 본질적 욕구(Need)를 발견하는 방법을 학습했습니다. 위원들은 공감적 경청과 나-전달법(I-Message)을 활용해 상대방의 상처받은 감정을 인정하고 불필요한 마찰을 줄이는 대화 실습을 거쳤습니다. 이어서 안동 간고등어, 사과, 안동소주, 막걸리, OTT 등 친숙한 일상의 단어를 주사위로 조합하는 '랜덤워드 발상법'을 통해 조직문화 쇄신을 위한 유쾌한 아이디어를 이끌어냈습니다. 이를 토대로 "정시 시작 및 정시 종료 원칙 준수", "투명한 예산 수립과 공개", "스마트폰과 PC를 활용한 명확한 소통 및 자료 문서화", "음주 회식 지양과 회의 시간 내 솔직한 소통", "공무원과 주민 간 역할 바꾸기(역지사지 토론)" 등 현장에서 즉각 적용할 수 있는 수평적 회의 규약(그라운드 룰)을 정립했습니다. 교육 후반부에는 지루한 내빈 축사와 딱딱한 의전으로 외면받기 쉬운 주민총회를 혁신하기 위한 방안을 모색했습니다. "어떻게 하면 주민들이 다신 오고 싶지 않은 최악의 총회를 만들까?"라는 역발상 반대문제 토론을 통해 총회의 병폐를 점검하고, 마을 문화동아리 공연 연계, 테이블 숙의 촉진자 배치, 디지털 취약계층을 위한 대형 활자 판넬 투표와 모바일 QR 사전투표를 결합한 '축제형 주민총회'의 구체적 실행 지침을 만들어보았습니다.


안동의 자치 리더들을 향한 응원, 그리고 시민교육콘텐츠연구소의 약속
이번 6회차에 걸친 워크숍은 안동시 읍·면·동 풀뿌리 현장의 무한한 잠재력과 위원님들의 묵직한 사명감을 다시금 확인한 뜻깊은 여정이었습니다. 찌는 듯한 여름 더위 속에서도 상공회의소를 가득 채웠던 위원님들의 치열한 숙의와 진정성 어린 눈빛은 안동 주민자치가 흔들리지 않고 전진하고 있음을 증명했습니다. 현장의 궂은일을 도맡아 처리하는 안동시주민자치협의회 실무자 여러분과 24개 읍·면·동 주민자치회 위원님들께 깊은 존경과 응원의 마음을 전합니다. 주민이 진정한 주인이 되는 공동체를 세우는 일은 험난하고 지난한 과정이지만, 여러분이 테이블 위에서 함께 벼려낸 자치계획서와 상호 존중의 소통 약속은 안동의 내일을 밝히는 가장 단단한 초석이 될 것입니다. 시민교육콘텐츠연구소는 앞으로도 안동시주민자치협의회의 든든한 동반자로서 발걸음을 맞추겠습니다. 복잡다단한 지역 현안을 창의적으로 해결하고 제도적 성숙을 이끄는 전문 연구·교육 파트너로서, 안동형 주민자치가 대한민국 풀뿌리민주주의의 독보적인 이정표로 자리매김할 수 있도록 품격 있는 시너지를 변함없이 이어가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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