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갈등해결, 어떻게 할 수 있나?_정혁 전문위원 기고글

강정모 소장 2020. 8. 17. 12: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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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ttps://www.usip.org/public-education/students/curve-conflict

 

갈등해결, 어떻게 할 수 있나?

 

정 혁

시민교육콘텐츠연구소 전문위원

(베를린자유대 정치학 박사과정)

 

 

우리는 지금 갈등의 시대를 살아가고 있다. 사회가 민주화되고, 다원화될수록 갈등이 많아지는 것은 어쩌면 불가피한 것일지 모른다. 민주주의 사회는 다양한 의견들과 이해관계들이 필연적으로 충돌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문제는 갈등을 다루는 방식이다. 갈등이 건설적인 결과를 가져오느냐, 아니면 파괴적으로 기능하느냐는 결국 갈등을 대하는 구성원들의 태도에 달려있다. 불행히도 오늘날 우리 사회는 갈등을 다루는 데 있어서 매우 미숙해 보인다. 정부와 국회는 물론, 지역사회, 학교, 직장, 가정에 이르기까지 크고 작은 갈등으로 몸살을 앓고 있지만, ‘힘’이나 ‘법⋅제도’가 아닌 ‘대화’를 통해 갈등해결에 이르렀다는 사례를 접하기란 좀처럼 쉽지 않다. 어떻게 하면 우리 사회가 평화적인 갈등해결의 역량을 키워나갈 수 있을까?

 

갈등에 긍정적으로 반응하기

 

스스로 질문해보자. 타인과의 관계 속에서 갈등이 생겼을 때, 나는 어떤 반응을 보이는가? 가급적이면 갈등 상황을 피하려고 하거나, 감정적으로 대응하고 있지는 않나? 내가 속한 조직은 평소에 어떻게 갈등을 다루고 있는지도 곰곰이 따져보자. 갈등을 드러내놓고 이야기할 수 있는가? 치유되지 못한 상처와 앙금이 쌓여있음에도 마치 ‘없는 것처럼’ 행동하고 있지는 않은가? 실제로 대부분의 사람들이 갈등에 대해 갖는 이미지는 어둡고 부정적이다. 이렇게 되면, 갈등은 가급적이면 없을수록 좋고, 불가피하게 발생하더라도 빨리 눈앞에서 사라지는 것이 목표가 된다. 특히, 체면을 중시하는 우리 문화에서는 자신의 조직 내에 갈등이 있다는 것 자체를 부끄럽게 여기기 쉽다. 갈등은 나쁜 결과를 가져올 것이라고 믿기 때문이다.

 

갈등해결의 첫 단추는 갈등을 긍정하는 것이다. 사실 갈등은 불편하다. 갈등은 단순히 ‘일치하지 않는 이해관계나 의견’이라는 사전적 정의만으로 환원할 수 없는 심리적 차원의 긴장을 수반하기 때문이다. 갈등해결이 단지 기술(skill)이나 테크닉(technique)이 될 수 없는 까닭이 바로 여기에 있다. 예를들어 나와 갈등하는 상대가 나보다 지위가 높거나 더 많은 자원을 동원할 수 있다고 할 때, 무엇보다 나에게 필요한 것은 용기와 믿음이다. 이러한 차원을 무시한 채 마치 갈등을 수학문제 대하듯 공식에 대입해서 풀어내려는 시도는 효과를 거두기가 어렵다. 중요한 것은 갈등에 임하는 나의 자세와 태도다. 만약 갈등 상황에 부딪힌다면, 이를 빨리 해결하고 앞으로 나아가고자 하는 욕구를 잠시 내려놓자. 그보다, 갈등의 속살을 드러내고 그것과 어떻게 직면할지를 고민하는 편이 나을 것이다.

 

해결책에 앞서 근본 원인을 찾아야

 

대부분의 갈등은 ‘긴 역사’를 가지고 있다. 그리고 갈등은 마치 빙산과 같아서 겉으로 드러난 이슈나 현상보다 그 이면에 숨겨진 뿌리를 찾아내는 것이 중요하다. 빙산의 아랫부분인 근본 원인을 찾아내지 않은 채 성급하게 해결책을 찾으려하는 것은 오히려 근본적 해결에는 도움이 되지 않는다. 진짜 중요한 문제는 겉으로 드러나지 않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이때 중요한 것이 바로 경청이다. 여기서 경청은 단순히 ‘귀 기울여 듣는 기술’이 아니다. 서로 갈등하고 있는 문제(issue)가 상대방에게 있어서 어떤 의미인지 이해하려는 적극적인 자세를 뜻한다. 즉, 겉으로 드러난 주장 너머에 있는 상대방의 실제 관심사(interest)와 요구(need)가 무엇인지에 초점을 맞추는 것이다. 그랬을 때, 상대방이 오해하고 있는 것은 무엇인지, 상대방이 진정으로 중요하게 여기는 것은 무엇이고, 나에게 전하고자 하는 것이 무엇인지를 헤아릴 수 있다. 이런 식으로 상대방의 이야기를 적극적으로 듣게 되면 의미있는 변화가 일어나게 된다. 회피하거나 공격적인 자세가 많이 누그러질뿐더러 차츰 감정적인 반응보다는 실제로 원하는 것(need)을 이야기할 수 있는 분위기가 만들어지게 되는 것이다.

 

말하지 않은 것이 더 중요하다

 

“상대방이 말한 것만이 아니라 말하지 않은 것에도 귀를 기울여야한다. 말한 것보다 말하지 않은 것이 더 중요한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코피 아난 전 유엔 사무총장의 말이다. 상대의 말을 경청한다는 것은 그 말을 하게 된 상황이나 맥락, 말 속에 담긴 심층적 의미까지 읽어낸다는 의미이다. 전세계를 돌아다니며 분쟁해결을 위해 노력했던 수많은 경험 속에서 얻은 깨달음일 것이다.

 

코피 아난의 주장을 귀담아 들어야 하는 또 다른 이유가 있다. 우리 사회가 서양과는 달리 소위 ‘고맥락 문화’(high context culture)라는 특징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고맥락 문화에서는 말로써 명확하게 표현하는 것 보다 사람들의 행동을 통해 의사소통을 한다. ‘분위기’와 ‘눈치’와 같은 비언어적 소통이 더 많은 비중을 차지한다. ‘귀’ 뿐만이 아닌 ‘눈’과 ‘마음’으로 들을 때 비로소 상대방을 이해할 수 있는 것이다.

 

내 이야기를 솔직하게

 

다음 단계는 내 이야기를 하는 것이다. 상대방의 요구를 이해했다면, 이제 내가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 나에게 있어 그 문제가 왜 중요한지를 설명하는 순서가 되겠다. 핵심은 ‘내’ 이야기를 ‘솔직하게’ 전달하는 것이다. 즉, 상대방을 비난하거나 감정을 상하게 하지 않고 나의 느낌과 감정, 욕구를 표현하는 것이다. ‘너는 나를 무시하는 것 같다’라고 말하기보다, ‘너와 대화를 할 때 나는 무시당하는 느낌이 든다’고 말해야 한다. 객관적으로 봐도 후자가 사실에 가깝다. 무시당한다는 느낌은 나의 느낌일 뿐, 상대방의 의도는 내가 알 수 없기 때문이다. ‘솔직하게’ 말한다는 것은 내가 바라는 것이 무엇인지를 정확하게 설명하는 것이다. 솔직한 나의 느낌과 바람을 위주로 이야기 하게 되면, 상대방은 그것에 대해 생각할 여유를 갖게 되고, 그만큼 스스로 변화할 수 있는 기회를 얻게 될 것이다. 이렇게 마음과 마음이 만나는 대화를 하게 된다면, 서로의 관계는 질적인 변화(transformation)를 이룰 수 있을 것이다. 갈등해결의 진정한 묘미라 할 수 있다.

 

창조적인 대안을 상상하기

 

대화를 통해 갈등하고 있는 문제의 핵심에 도달했으니, 이제는 서로 만족할 수 있는 대안을 창출하는 단계이다. 다음은 <갈등해결 워크숍>을 진행할 때 활용하는 ‘사과 나누기’라는 활동이다.

 

‘사과가 세 개 있다. 그런데 두 사람이 서로 더 많은 사과를 갖기 위해 싸우고 있다. 두 사람의 관계도 좋아지고 서로 만족할 수 있는 해결방안을 찾아보라’

 

이 문제에 ‘정답’은 없다. 하지만 ‘가능한 방법’은 셀 수 없이 많다. 당신의 머리 속에는 몇 가지 방법이 떠오르는가? 이 활동을 진행하다보면, 참가자들은 처음에는 어리둥절하다가도 ‘모든 가능한 대안을 마음껏 상상하라’는 말을 듣고는 조금씩 아이디어를 내놓기 시작한다. 확실한 대안을 찾기보다는 우선, 될 수 있는 대로 많은 대안들을 모으고 평가는 나중에 하는 것이다. 그러면, 참가자들은 ‘사과를 즙을 만들어 나눈다’, ‘사과를 팔아서 수익사업을 한다’, ‘가난한 이웃에게 모두 기부한다’, ‘상대방을 먼저 웃기는 사람에게 준다’, ‘사과를 나눠 먹은 후 그 씨앗으로 사과나무를 심는다’ 등 참신한 아이디어들을 계속해서 쏟아내는 것을 볼 수 있었다.

 

평화적 갈등해결에서 놓쳐서는 안될 것 중 하나가 ‘상상력’이다. 많은 사람들이 상상력의 부족을 호소한다. 왜 일까? 아마도 주입식 위주의 학교교육의 탓이 가장 클 것이다. 워크숍을 진행하다보면 참가자들이 자기 생각을 이야기하기 보다는 강사가 원하는 답이 무엇인지에 맞춰서 이야기하는 경우를 많이 보게 된다. 이렇게 ‘정답 맞추기’에만 익숙한 문화에서는 다양하고 창의적인 생각이 나올 수 없다. 고정관념과 정해진 틀에서 과감하게 벗어날 수 있어야 새로운 대안을 만들어낼 수 있다.

 

진정한 갈등해결은 관계 회복

 

서로 만족할 만한 대안까지 마련되었다면, 마지막 할 일이 남아있다. 깨어진 관계를 다시 복원하는 일이다. 즉, 화해를 만드는 과정이다. 갈등해결에서 화해란 쌓인 감정을 털어내는 것만을 의미하지 않는다. 깨졌던 관계를 회복하고 서로 간에 관계 맺는 방식을 다시 설정하는 것을 말한다. 그동안 소통의 방식에 문제는 없었는지, 서로에 대한 편견이나 선입견은 없었는지, 지난 시간을 되돌아보며 함께 성찰하는 과정이 필요한 것이다. 그렇지 않고 당면한 이슈를 해결하는 것으로 끝을 낸다면 관계의 상처로 인한 불신의 싹이 언제 다시 움틀지 모르기 때문이다.

 

갈등해결을 통해 평화로운 관계로 나아간다는 것은 이처럼 쉬운 일이 아니다. 이런 까닭에 전문적인 훈련을 받은 제3자에게 문제해결을 대신해 줄 것을 요청하는 사람들이 많다. 아직까지 우리 사회에서는 대개 이런 일을 ‘갈등’ 전문가가 아닌 ‘법’ 전문가에게 맡기는 상황이다. 불가피하게 법에 호소해야할 경우는 예외로 한다 해도, 법(法)을 통한 갈등해결은 비용과 시간이 많이 들어갈 뿐만 아니라 갈등 당사자 상호 간에 불신과 적대감을 남기는 경우가 많다. 법이란 제도는 정서적 차원의 문제를 해결할 수 없는데다가 관계의 회복에 관여할 만한 기제를 가지고 있지 못하기 때문이다.

 

갈등은 당사자 스스로 풀어야

 

법과 제도를 통한 갈등해결의 더 심각한 단점은 당사자 간에 벌어진 문제를 힘과 권위를 가진 제3자에게 맡김으로써 문제해결을 추구한다는 점이다. 이는 시민들의 자발적 문제해결의 의지를 약화시킬 뿐만 아니라 서로 다른 의견 교환을 통한 소중한 학습 기회를 빼앗게 될 것이다. 그리고 법에 의존하는 방식이 남용될수록, 우리 스스로 민주주의를 심화시킬 가능성은 줄어들 수밖에 없음을 잊어서는 안 된다. 최근 들어 우리 사회의 주요 갈등 현안의 최종적 결정 권한이 사법부에 집중되고 있는 현실이 이를 반영한다. 우리 사회의 앞날을 결정지을 중요한 현안들이 자꾸만 소수의 법관들의 결정에 좌우되고 있다. 이러한 ‘중앙집중식’ 갈등해결이 일상화될수록 전문가들에게 위임된 권력은 강화되겠지만, 시민들의 참여의 폭은 점점 더 줄어들고 말 것이다.

 

법과 제도를 통한 ‘위임형’ 갈등해결의 대안으로 조정을 통한 갈등해결이 있다. 조정(mediation)이란 당사자 간 갈등해결이 어려움을 겪을 때 제3자가 개입해서 당사자들의 문제해결 과정을 돕는 것을 말한다. 갈등 당사자의 요청을 전제로 조정자가 개입할 수 있다는 점이 법적 해결 방식과 근본적으로 다른 점이다. 그리고 조정자의 역할은 결론을 내리는 심판자가 아닌 대화의 과정(process)을 주관하며, 문제해결의 주체는 여전히 당사자라는 점도 다르다. 그렇다고 조정자가 소극적인 중재 역할을 하는 것은 아니다. 갈등이 가진 복합적인 특성상, 조정자는 형식적 중립을 내세우기 보다는 당사자들의 상충하는 견해가 원활하게 교환될 수 있도록 사실 확인, 감정 다루기, 대안탐색에 이르기까지 매우 적극적인 역할을 수행한다. 미국의 경우, 이러한 대안적 분쟁해결(Alternative Dispute Resolution) 시스템이 성공적으로 정착하여 미국 내 소송 사건 중 95% 이상이 법정 밖에서 해결되고 있다.

 

시급한 갈등 조정 전문가 양성

 

다양한 분야에서 갈등이 증가일로에 있는 우리나라도 대안적 갈등해결에 대한 보다 적극적인 정책을 검토해볼 필요가 있겠다. 이해관계가 매우 복잡한 사회 갈등 대신 우선은 지역의 주민자치센터마다 전문 조정인을 배치시켜, 지역사회 내에서 벌어지는 소소한 문제부터 주민들 스스로 해결해 나가도록 돕는 방안을 검토해볼만하다. 그리고 학생들 사이에 생긴 갈등을 같은 또래의 학생들이 조정하도록 하는 ‘또래 조정 프로그램’을 지역 교육청 단위로 도입하는 것도 검토할 수 있겠다. 실제로 미국, 캐나다 등 외국의 많은 나라에서 적용되고 있으며 학교폭력 감소에 크게 기여하고 있다. 이룰 위해서는 전문 조정인의 체계적인 양성이 시급하다. 현재로서는 몇몇 시민단체들이 자체적으로 전문 활동가를 양성하고 있는 실정이다. 우리 사회가 갈등으로 인해 소모되는 유무형의 비용을 생각할 때 그 비용은 비교할 수 없이 적을 것이다.

 

마지막으로 갈등해결에 대해 흔히들 잘못 이해하고 있는 점에 대해 몇 가지 바로잡고 글을 마무리 하고자 한다. 먼저, 갈등해결을 기술(skill)로 이해하는 것이다. 갈등해결이 타인과 더불어 살아가는 기술인 것은 분명하지만, 단지 활용하기 좋은 도구(tool)를 배우겠다고 달려드는 사람이 있다면 개인적으로 꼭 말리고 싶다. 갈등해결은 먼저 나를 바꾸고 상대를 이해함으로써 보다 성숙한 관계를 만들어 가는 기술(art)이자 태도(attitude)이다. 갈등해결을 통해 더 나은 결과를 기대하는 것은 당연하지만 그보다 중요한 것은 함께 변화하고자 노력하는 과정 그 자체임을 강조하고 싶다.

 

협력하고 상생하는 평화 문화 만들기

 

그리고 갈등해결 제도화의 과제가 있다. 갈등해결 혹은 갈등관리 시스템을 법적으로 제도화하는 것은 반드시 필요하다. 그러나 시스템을 만드는 것이 능사는 아니다. 시스템을 운영하는 것은 결국 사람이다. 그리고 시스템의 밑에서 무의식과도 같은 역할을 하는 것이 문화다. 즉, 사람과 사람들이 관계 맺고 소통하고 일하는 방식 자체가 달라져야 한다. 겉만 번들한 제도를 세워나가기보다 차이 인정, 소수자 존중, 수평적 조직문화, 정치적 관용 등 일상에서 민주적 가치들이 살아 움직이는 그런 사회를 만들어나가는 노력 자체가 중요하다. 그러한 노력들 속에서 갈등은 없어지는 것이 아니라 (늘 우리 곁에 있을 텐데) 새로운 성장과 발전의 기회로 전환될 것이다.

 

 

*이 글은 민주화운동기념사업회 소식지 <희망세상> 2010년 1월호에 게재된 “더 나은 민주주의를 위한 평화적 갈등해결”을 수정한 글입니다. 2020년 9월 4일 진행하는 ‘노후희망유니온’ 조합원교육 강의를 위해 재작성되었습니다. 갈등해결 프로세스의 핵심이 담겨있기에 교육 교재로 널리 활용되기를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