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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구소칼럼[콩나물시루]

자존심의 몰락이 가져오는 조직의 진화: 비영리 성숙의 세 가지 충격

강정모 소장 2026. 3. 2. 15:28

불편한 진실이 조직을 자유롭게 한다

인류의 역사는 거대한 자만심이 무너지는 과정의 연속이었습니다. 베르나르 베르베르는 그의 저서 《상상력 사전》에서 인류의 자존심을 상하게 한 세 가지 사건을 꼽습니다. 코페르니쿠스의 지동설, 다윈의 진화론, 그리고 프로이트의 무의식 발견입니다. 이 세 사건은 인류가 스스로를 '우주의 중심'이자 '특별한 신의 피조물', '합리적인 주체'로 믿었던 오만을 깨부수었습니다. 흥미로운 점은 이 '모욕적'인 진실을 받아들인 지점에서 비로소 인류의 과학과 철학이 비약적으로 진보했다는 사실입니다.

이러한 양상은 비영리 조직과 지역 복지 현장에서도 동일하게 나타납니다. 창립 초기 조직은 숭고한 가치와 특별함을 강조하며 응집력을 만듭니다. '우리는 다르다'는 선민의식은 초기 동력을 만드는 핵심 에너지입니다. 그러나 조직이 안정기에 접어들면 이 에너지는 오히려 독이 됩니다. 지속 가능한 성장을 위해서는 초기의 자존심을 버리고, 인류가 겪었던 세 가지 인식의 충격을 조직 안에서 재현해야 합니다. 그 과정은 고통스럽지만, 이를 통과해야만 조직은 비로소 성숙의 단계로 진입합니다.

중심에서 변두리로: 코페르니쿠스적 전환과 협력

첫 번째 충격은 '우리 조직이 세상의 중심이 아님'을 인정하는 것입니다. 코페르니쿠스가 지구를 우주의 중심에서 변두리로 밀어냈을 때, 인류는 비로소 광활한 우주의 질서를 보았습니다. 초기 비영리 조직은 흔히 자신들이 세상을 구원할 유일한 주체라고 믿습니다. 이러한 '조직 중심주의'는 내부 결속에는 유리하지만, 외부와의 단절을 초래합니다.

우리가 활동하는 조직과 지역사회는 전체 생태계의 아주 작은 일부입니다. 이 진실을 마주할 때 리더와 활동가는 과도한 책임감에서 벗어납니다. 내가 모든 것을 해결해야 한다는 강박은 타 조직을 경쟁자로 만듭니다. 하지만 우리가 '변두리 중 하나'임을 받아들이면 비로소 옆에 있는 조직이 보입니다. 자존심을 버린 자리에 다른 주체들과의 '협력'과 '연대'가 들어섭니다. 비교 우위를 점하려는 자존심이 아닌, 함께 시너지를 내는 자존감이 조직의 리더십과 문화를 바꿉니다.

우월함에서 겸손함으로: 다윈의 진화론이 주는 경고

두 번째 충격은 조직의 '평범성'을 인정하는 일입니다. 다윈은 인간이 고귀한 기원을 가진 존재가 아니라 동물과 뿌리를 같이 한다고 주장했습니다. 이는 인류에게 커다란 모욕이었으나, 동시에 인간을 객관적으로 이해하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비영리 조직 역시 자신들이 도덕적으로 우월하다는 착각에 빠지기 쉽습니다. '좋은 일을 하는 사람들이니 갈등이나 문제는 없을 것'이라는 믿음은 조직의 자정 능력을 마비시킵니다.


성숙한 조직은 다른 단체가 겪은 시행착오를 우리도 언제든 겪을 수 있음을 자각합니다. 우리 조직 또한 욕망과 갈등이 들끓는 인간들의 집단임을 인정하는 '겸손함'이 필요합니다. '우리는 다르다'는 오만은 외부의 조언을 거부하게 만듭니다. 하지만 우리 조직의 취약성을 객관화할 때 비로소 외부 컨설팅과 현장의 목소리가 귀에 들어오기 시작합니다. 다윈의 진화론이 인류를 객관화했듯, 우리 조직을 객관화하는 능력은 위기 관리와 혁신의 토대가 됩니다.

순수함에서 실재로: 프로이트의 이드와 욕망의 에너지

세 번째 충격은 활동의 동기가 언제나 '숭고하고 순수하지만은 않음'을 직시하는 것입니다. 프로이트는 인간의 행위가 고상한 이성이 아닌 무의식 속의 원초적 욕구(Id)에 의해 결정된다고 보았습니다. 사명을 기반으로 하는 시민단체와 사회복지 현장에서 이 주장은 매우 불편하게 들립니다. 우리의 헌신과 봉사가 사실은 인정 욕구나 개인의 이기적 동기에서 비롯되었을 수 있다는 지적은 자존심에 깊은 상처를 줍니다.


그러나 '순수성'이라는 환상은 현장을 경직되게 만듭니다. 활동가와 사회복지사 역시 인정받고 싶고, 쉬고 싶으며, 적절한 보상을 원하는 인간입니다. 이러한 욕망을 '불순한 것'으로 치부하고 억누를 때 조직은 병들기 시작합니다. 오히려 활동 동기의 다양성을 인정해야 합니다. 회원의 인정 욕구와 활동가의 휴식 욕구를 조직 운영 체계 안으로 끌어들여야 합니다. 욕망을 부정하는 것이 아니라, 그 에너지를 사회 변화의 동력으로 전환하는 영리함이 필요합니다. '순수한 활동'이라는 가면을 벗을 때, 조직은 비로소 실재적인 혁신을 시작할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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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존심을 넘어 자존감의 연대로

인류가 세 차례의 모욕적인 사건을 거치며 거대한 진화를 이룬 것처럼, 비영리 조직 또한 자존심이 꺾이는 지점에서 성장의 문이 열립니다. 타인과의 비교를 통해 얻는 '자존심'은 늘 불안합니다. 반면 어제의 우리와 오늘의 우리를 비교하며 진실을 마주하는 '자존감'은 단단합니다. 시민단체 활동가와 사회복지 종사자, 특히 현장에서 주민들과 부대끼는 지역 복지 담당자들에게 필요한 것은 바로 이 '불편한 진실을 견디는 힘'입니다. 우리가 가진 전문성이 절대적이지 않음을, 우리의 동기가 늘 성스럽지만은 않음을 인정하는 것은 어렵지만 진화의 방법입니다. 그 겸손의 자리에서 주민의 역량이 보이고, 동료의 지혜가 들리기 시작합니다. 자존심을 버리고 얻은 그 자유로움이 현장을 바꾸는 진짜 실력이 될 것입니다. 우리의 성숙은 자존심을 지키는 투쟁이 아니라, 자존감을 키우는 연대 속에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