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스트잇만 붙이다 끝나는 회의는 그만!" 박소통 복지사의 만다라트 마을 의제 도출기
"선배님, 브레인스토밍이 원래 이렇게 힘든 건가요? 목소리 큰 회장님 의견대로만 흘러가고, 결국 나온 아이디어라는 게 매번 'CCTV 달자', '구청에 민원 넣자'가 전부예요. 전지를 펴놓고 포스트잇을 잔뜩 준비해 갔는데, 막상 주민분들은 팔짱만 끼고 계시고요."
지역조직팀 발령 1년 6개월 차, 의욕 넘치던 박소통 사회복지사가 깊은 한숨을 내쉬며 사무실로 들어왔다. 오늘 있었던 '행복마을 골목길 주차 갈등 해결을 위한 주민 모임'이 또다시 원점으로 돌아간 탓이다. 주차 문제라는 예민한 주제 앞에서 주민들은 서로 얼굴을 붉히거나, 현실성 없는 거대 담론만 던지다 지쳐버렸다. 풀 죽은 후배의 어깨를 토닥이며 김선배 복지사가 모니터 화면을 돌려 무언가를 보여주었다. 가로세로 9칸씩, 총 81개의 네모 칸이 빼곡하게 그려진 표였다.
"소통 쌤, '만다라트(Mandalart)'라고 들어봤어? 일본의 천재 투수 오타니 쇼헤이가 고교 시절 불가능에 가까운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 활용한 기법으로 유명하지. 그런데 이게 우리 같은 지역조직가들에게는 꽉 막힌 주민들의 입과 머리를 열어주는 강력한 '의제 증폭기'가 될 수 있어."
연꽃처럼 피어나는 아이디어, 만다라트의 마법
만다라트는 'Manda(본질의 깨달음)'와 'la(달성)', 그리고 'art(기술)'의 합성어로, 활짝 핀 연꽃 모양을 닮았다고 하여 '연꽃 만개법'이라고도 불린다. 핵심 원리는 간단하지만 그 파급력은 거대하다. 가장 가운데 핵심 주제를 적고, 그 주변을 둘러싼 8칸에 세부 주제(1차 아이디어)를 적는다. 그리고 그 8개의 세부 주제가 다시 바깥쪽 9칸 그리드의 중심이 되어, 각각 8개씩의 구체적인 실천 방안(2차 아이디어)으로 파생되는 구조다. 최종적으로는 64개(8x8)의 구체적이고 실행 가능한 아이디어가 도출된다.

김선배는 지난 워크숍 사례를 들려주었다. "우리 복지관 사회복지사 소진 예방 실습 때 기억나? 가운데에 '스트레스 관리'를 적고, 주변에 '일기 쓰기', '맛있는 것 먹기', '수다 떨기', '휴가 떠나기' 등을 적었지. 거기서 멈추면 흔한 브레인스토밍이지만, 우리는 '내가 이용자로 힐링 프로그램 참여하기'라는 칸을 다시 중심으로 가져가서 '어떤 프로그램?', '언제?' 등으로 파생시켰어. 아이디어가 구체적인 실행 계획으로 진화하는 거야." 김선배의 설명에 박소통 복지사의 눈이 반짝였다. "아! 모호한 주제를 강제로 쪼개서 생각하게 만드니까, 뜬구름 잡는 소리가 줄어들겠네요!"
만다라트, 마을 현장에 상륙하다: 시행착오와 깨달음
며칠 뒤, 두 번째 주민 모임. 박소통 복지사는 자신만만하게 전지 크기로 출력한 만다라트 표를 벽에 붙였다. 한가운데에는 [골목길 주차 평화 만들기]라는 주제가 적혀 있었다. "자, 어르신들! 오늘은 이 64칸을 꽉꽉 채워볼 겁니다!" 하지만 반응은 싸늘했다. "아이고, 복지사 양반. 보기만 해도 어지러워. 우리가 무슨 시험 치나? 빈칸이 너무 많아서 숨이 턱 막히네." 박소통 복지사는 아차 싶었다. 기법의 훌륭함만 믿고 대상자의 수용성을 고려하지 못한 초보 퍼실리테이터의 흔한 실수였다.
이때, 김선배가 자연스럽게 개입했다. 그는 전지의 바깥쪽 칸들을 종이로 가려버리고 정중앙의 9칸만 남겨두었다. "어르신들, 바깥쪽은 당장 안 보셔도 됩니다. 딱 이 가운데 8칸만 채워볼게요." 시각적 부담이 줄어들자 주민들의 입이 열리기 시작했다. '공간 확보', '주차 규칙', '이웃 배려', '외부 차량 통제' 등 1차 핵심 의제 8개가 중앙을 둘러쌌다.
침묵하던 주민의 입을 열게 한 ‘칸’의 힘
진짜 마법은 이제부터였다. 박소통 복지사는 [이웃 배려]를 바깥쪽 그리드의 중심으로 옮겨 적고 가려뒀던 종이를 하나 뗐다. "자, 이제 '이웃 배려'로만 8가지를 생각해 봅시다. 주차장 짓자는 구청 얘기는 잠깐 빼고, 우리끼리 배려할 수 있는 행동이 뭐가 있을까요?" 이전 회의에서는 "김씨네 트럭이 문제야!"라며 남 탓만 하던 분위기가 완전히 달라졌다. 주어진 칸에 집중하게 된 것이다. 이때 평소 한마디도 않던 빌라 새댁이 손을 들었다.
"저기... '주차장 공유 시간표'를 만들면 어떨까요? 저는 낮에 출근하니까, 그 시간에 밤샘 운전하시는 앞집 아저씨가 제 자리에 주차하실 수 있게요." 순간 회의실에 탄성이 터졌다. 평범한 브레인스토밍이었다면 목소리 큰 사람들에 묻혀 나오지 못했을 섬세한 아이디어였다. 만다라트가 제공한 구체적인 렌즈가 주민의 내면에 있던 지혜를 길어 올린 것이다.
성공의 기세를 몰아 복지관 내부로 향하다
마을 모임을 성공적으로 마친 박소통 복지사는 한 가지 의문이 생겼다. '이 좋은 기법을 왜 우리 사무실에서는 안 쓸까?' 사실 박소통 복지사가 근무하는 복지관도 속사정은 복잡했다. 사회복지사들은 현장 업무에 치여 늘 소진을 호소했고, 행정직·기능직 동료들은 "사회복지사들만 주인공이냐"며 소외감을 느꼈다. 업무 환경 개선 회의를 열어도 늘 "예산이 없다", "인력이 부족하다"는 푸념으로 끝나기 일쑤였다. 박소통 복지사는 김선배에게 제안했다. "선배님, 이번 직원 연수 때 우리도 만다라트를 해보면 어떨까요? 마을 주민들처럼 우리 식구들 마음도 64칸으로 열어보고 싶어요." 김선배는 흐뭇한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좋지! 대신 이번엔 사회복지사와 일반직이 한 팀이 되어 서로의 언어를 칸에 채우게 해보자고."



사회복지사와 일반직의 간극을 메우는 81개의 칸
직원 연수 날, 전 직원 30명이 모였다. 중앙 주제는 [우리가 출근하고 싶은 행복한 복지관 만들기]였다. 처음엔 서먹했다. 하지만 만다라트의 '강제 배당' 원칙은 힘을 발휘했다. 1차 의제로 '업무 프로세스', '휴식의 질', '부서 간 협업', '물리적 환경' 등이 도출되었다. 흥미로운 장면은 '업무 프로세스'라는 세부 주제를 채울 때 벌어졌다. 사회복지사들은 '서류 간소화'를 적었지만, 행정직 직원은 '지출 결의 서류의 정확성 기일 준수'를 적었다. 만다라트 칸 안에서 서로의 고충이 시각적으로 충돌하고 동시에 이해되는 순간이었다. "아, 행정 선생님들이 우리 서류 늦는 것 때문에 그렇게 스트레스를 받으셨구나." 박소통 복지사는 칸을 채워가며 동료의 얼굴을 다시 보게 되었다.

디테일이 가져온 변화, 뜬구름이 실천이 되다
워크숍의 결과물은 놀라웠다. 단순히 '복지를 늘리자'는 구호 대신, 만다라트의 가장 바깥쪽 칸에는 당장 실행 가능한 64개의 디테일이 채워졌다.
- [휴식의 질] 칸에서 파생된 '사무실 내 잔잔한 배경음악 도입', '점심시간 PC 강제 오프제'.
- [물리적 환경] 칸에서 나온 '공용 탕비실 커피머신 렌탈', '사회복지사 현장용 백팩 지급'.
- [부서 간 협업] 칸의 '신규 직원 입사 시 부서별 1일 교차 근무 체험'.
특히 영상에서 강조된 '내가 이용자로 힐링 프로그램 참여하기' 아이디어는 우리 조직에도 적용되었다. 사회복지사들이 직접 프로그램을 기획만 하는 게 아니라, 일반직 동료들과 함께 숲 체험 프로그램의 '참여자'가 되어보는 시간을 갖기로 한 것이다. 칸을 채우기 위해 쥐어짜 냈던 아이디어들이 오히려 서로의 역할을 체득하는 소중한 자산이 되었다.

실제 국내외 사례로 본 만다라트의 신뢰도
만다라트의 효과는 비단 오타니 쇼헤이만의 전유물이 아니다. 일본의 소프트뱅크(Softbank)는 신규 사업 아이디어를 발굴할 때 이 기법을 활용하는 것으로 유명하며, 국내에서도 많은 혁신 기업과 공공기관이 '브레인라이팅'과 결합한 형태로 만다라트를 활용한다. 실례로, 한 국내 대형 복지법인에서는 조직 개편 과정에서 발생하는 갈등을 해결하기 위해 '만다라트 기반 소통 워크숍'을 진행한 바 있다. 당시 "소통하자"는 추상적인 목표를 '메신저 예절', '회의 시간 단축', '칭찬 릴레이' 등 64개의 구체적 행동 지침으로 쪼개어 실천한 결과, 이직률이 전년 대비 15% 감소하는 성과를 거두기도 했다. (출처: 공공기관 혁신사례 보고서 및 경영학 잡지 사례 참조)
퍼실리테이터 사회복지사를 위한 120% 팁
박소통 복지사는 이제 확신한다. 마을이든 조직이든, 문제는 아이디어가 없어서가 아니라 아이디어를 꺼내 놓을 '안전하고 구체적인 틀'이 없어서 발생한다는 것을 말이다. 현장에서 만다라트를 사용할 때 박소통 복지사가 전하는 꿀팁은 다음과 같다. 첫째, '시각적 점진성'을 유지하라. 처음부터 81칸을 다 보여주면 주민도 직원도 도망간다. 중앙부터 하나씩 종이를 떼어내며 흥미를 유발해야 한다. 둘째, '강제성의 미학'을 즐겨라. 8칸을 다 채워야 한다는 압박이 평소 안 쓰던 뇌 근육을 자극한다. 빈칸이 생겨도 괜찮지만, 최대한 채우려 노력하는 과정에서 '진짜 지혜'가 튀어나온다. 셋째, 'Sorting(분류)'으로 마무리하라. 도출된 64개 아이디어 중 '즉시 실행(Quick-Win)', '예산 확보 필요', '중장기 과제'로 스티커를 붙여 분류하면 그것이 곧 사업계획서가 된다.
전지 앞에서의 막막함은 현장 사회복지사라면 누구나 겪는 통과의례다. 하지만 우리에게는 주민들의 흩어진 생각들을 구조화하고, 동료들의 닫힌 마음을 여는 기술이 있다. 오늘, 갈등으로 꽉 막힌 마을 모임이나 서먹한 주간 회의 시간에 64개의 마법 같은 네모 칸을 그려보는 것은 어떨까? 얽히고설킨 문제들이 한 송이 연꽃처럼 맑게 피어나는 경험을 하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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