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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구소칼럼[콩나물시루]

벽을 마주했을 때, 포기와 수용의 차이

강정모 소장 2026. 3. 17. 11:25

삶의 질문에 답하는 현장의 태도

빅터 프랭클은 나치 수용소라는 극한의 '벽' 앞에서 삶의 방식을 재정의했습니다. 그는 인생이 왜 나에게 이런 고난을 주는지 묻기보다, 이 상황이 나에게 무엇을 요구하고 있는지, 즉 '인생이 나에게 걸어오는 말'에 귀를 기울이라고 했습니다. 사회복지 현장과 시민사회 활동가들은 매일 다양한 형태의 벽을 마주합니다. 예산의 한계, 제도적 결함, 혹은 주민과의 갈등이 그 벽입니다. 이때 우리가 취할 수 있는 선택지는 두 가지입니다. '포기'하거나, 혹은 '수용'하는 것입니다. 누구나 한번쯤 마주하게 될 인생의 벽 앞에 서게 될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포기가 아닌 수용의 용기입니다. 수용은 내가 누구인지, 그리고 바꿀 수 없는 현장의 조건이 무엇인지 명확히 인식하는 과정입니다. 이는 한계에 압도되어 도망치는 포기와는 다릅니다. 수용은 자신의 고유한 개성을 아름다운 꽃으로 피워내는 밀도있는 나-다움으로 완성되어가는 과정이지만, 포기는 주어진 가능성을 뒤로한 채 시들어가는 선택에 불과하기 때문입니다.

 

부서짐의 고통을 넘어 발견한 업(業)의 본질

저에게도 30대 후반, 삶이 통째로 부서지는 듯한 벽의 시간이 있었습니다. 30대 초반에 시작한 시민단체는 8년 만에 해산했습니다. 재정 위기, 내부 갈등, 외부 환경의 변화를 결국 넘어서지 못했습니다. 30대를 모두 쏟아부은 공간과 사람이 산산이 조각날 때, 저는 운명을 한탄하며 분노했습니다. 하지만 그후 허둥대며 무엇을 하기보다는 아내의 도움을 받아 약1년 반의 지난 세월의 복기 시간을 가질 수 있었습니다. 지난 세월을 참고서로 삼아 내 자신을 객관적으로 관찰해보았습니다. 그러면서 저는 '조직을 운영하고 투쟁하는 리더'라는 옷(職)이 맞지 않는 사람이었다는 사실에 대해 수용을 하게 되었습니다. 대신 '콘텐츠를 연구하고 교육하는 일'에서 행복을 느끼는 존재임을 인정하고 수용했습니다. 조직이라는 형식이 나라는 존재에 적합하지 않음을 수용하니 콘텐츠라는 본질(業)이 보였습니다. 이 과정이 저에게 새로운 자유와 지속 가능한 길을 열어주었습니다. 당시 도종환 시인의 '담쟁이' 라는 시가 더 나에게 다가왔던 기억이 납니다. 담쟁이는 벽을 만났을 때 포기하며 절망하여 시들지 않고, 오히려 그 벽이 '내가 타고 올라가야 할 길'임을 묵묵히 수용하는 듯 한 시인의 시선이 절실히 다가왔었습니다. 잎 하나가 수천 개의 잎을 이끌고 결국 벽을 넘어서듯, 수용은 고립된 체념이 아니라 연대와 확장을 위한 적극적인 선택임을 느꼈었고, 삶의 자유가 확장되었던 10여년전의 홀가분함이 선명합니다. 우리는 인생의 벽을 상수로 인정할 때 비로소 벽은 우리가 딛고 올라갈 새로운 경로가 될 것이라고 생각됩니다.

절망의 벽을 길로 바꾼 서사: 히와레 바자르의 기적

인도의 히와레 바자르(Hiware Bazar) 마을이라는 곳은 가뭄이라는 거대한 벽에 가로막혔던 곳입니다. 주민들은 절망하며 술과 도박에 빠졌고 마을은 시들어갔습니다. 하지만 1989년, 주민들은 "우리는 비가 적게 내리는 지역에 살고 있다"는 냉혹한 현실을 전략적으로 수용했습니다. 하늘만 탓하며 포기하는 대신, 담쟁이처럼 서로의 손을 잡고 부족한 물을 관리하는 엄격한 규칙을 만들었습니다. 척박함을 수용한 결과, 오히려 그 환경에 맞는 지속 가능한 농법을 찾아냈습니다. 20여 년이 지난 지금, 이곳은 인도에서 가장 부유한 마을 중 하나가 되었습니다. 한계를 부정하지 않고 수용할 때, 벽은 오히려 공동체를 결속시키는 전략적 토대가 되었습니다(출처: India Today, "The Miracle of Hiware Bazar", 2014).

성과를 만드는 활동가의 수용의 태도

수용의 태도는 활동가 개인의 전문적 성장과 조직의 성과를 결정짓는 핵심 역량입니다. 한계를 명확히 수용하는 조직은 실현 불가능한 목표에 에너지를 낭비하지 않습니다. 대신 가용한 자원과 자신의 역량을 객관적으로 분석하여 '승률이 높은 지점'에 전략을 집중합니다. 이러한 수용적 태도는 실패를 '데이터'로 전환합니다. 먼저 겪은 고통이 나중에 마주할 현장을 돕는 유기적인 흐름을 만들어낼 수 있을 것입니다. 벽을 제거하기 보다 담쟁이처럼 벽을 수용하고, 이용하여 확장하고, 넘어가는 유연성과 경로를 설계하는 전략을 펼치면서, 활동가는 감정적 소모를 줄이고 문제 해결의 주도권을 유지할 수 있습니다. 이는 조직 차원에서 실패 리스크를 관리하고 지속 가능한 성과를 축적하는 역량입니다. 수용은 활동가와 사회복지 종사자들이 자신의 정체성을 유지하며 현장의 복잡성을 돌파하게 만드는 동력입니다. 주어진 한계를 변수가 아닌 상수로 두는 순간, 활동가의 창의성은 비로소 작동하기 시작할 것입니다. 담쟁이가 벽을 길로 바꾸어 나가듯, 우리 앞에 놓인 벽이 건네는 질문에 가만히 응답해 보는 것은 어떨까요. 그 막막했던 벽이 어느새 우리가 딛고 올라설 지도가 되고, 지난 고통의 지혜가 현장의 성과로 회복되는 지혜가 되어 흐르게 될 것이라 믿습니다. 그 충분히 가능한 변화를 함께 응원하고 싶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