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민교육콘텐츠연구소

사무실 번호 : 070-4898-2779 / 대표메일 : streamwk@gmail.com

연구소칼럼[콩나물시루]

변화를 모색하는 리더가 먼저 점검해야 할 '조직의 배설계'

강정모 소장 2026. 3. 17. 15:29

몸의 시스템으로 본 조직의 병식

사람의 몸은 소화계, 신경계, 순환계, 호흡계, 근골격계로 유기적으로 연결되어 있습니다. 조직 또한 이와 유사한 생체 시스템을 갖습니다. 갈등이 깊거나 성과가 정체된 조직을 들여다보면 흥미로운 공통점이 발견됩니다. 이들은 신경계의 고차원적인 전략을 논하기 전에, 이미 소화계 단계에서부터 뚜렷한 '병식(病識)'을 보입니다. 스스로 문제가 있음을 직감하면서도 멈추지 못하는 상태입니다. 특히 많은 공익 조직들이 만성적인 '소화 장애'를 앓고 있습니다.

흡수 없는 섭취와 만성적인 소화 불량

공익 조직의 소화 장애는 과도한 의욕에서 시작됩니다. 하나의 사업이 위장에서 겨우 분해될 즈음, 조직은 채 흡수하기도 전에 새로운 사업을 집어넣습니다. 현장은 영양분을 흡수해 자기 것으로 만들 시간이 부족합니다. 조직 내부에서는 화되지 못한 정보와 과업들이 부딪히며 소화되지 못한 가스처럼 '트림'으로 터져 나옵니다. 겉으로는 분주해 보이지만 실상은 영양실조에 걸린 조직들이 많습니다. 더 심각한 문제는 '배설'의 부재입니다. 소화계는 입에서 시작해 항문에서 끝납니다. 들어온 만큼 내보내지 못하면 조직은 내부의 노폐물로 가득 차게 됩니다.

 

버림으로써 생명을 살린 '하우징 퍼스트'의 서사

조직의 건강함은 무엇을 먹느냐보다 무엇을 버리느냐에서 증명됩니다. 미국의 비영리 단체 '커뮤니티 솔루션(Community Solutions)'의 로잔 하거티(Rosanne Haggerty) 대표의 사례는 시사하는 바가 큽니다. 과거 그녀는 노숙인들에게 식사와 옷, 상담 등 수많은 서비스를 제공했습니다. 하지만 노숙인 숫자는 줄지 않았습니다. 그녀는 결단했습니다. 기존의 복잡한 '자격 심사'와 '단계별 재활 프로그램'이라는 견고한 시스템을 과감히 '배설'했습니다. 대신 '하우징 퍼스트(Housing First)', 즉 조건 없이 집부터 제공하는 단순한 원칙에 집중했습니다. 수십 년간 고수해온 사업 방식과 전문가로서의 권위를 버리는 일은 고통스러웠습니다. 그러나 불필요한 절차를 덜어내자 현장은 본질에 집중하기 시작했습니다. 이 '비움'의 결단은 미국 내 수십 개 도시에서 만성 노숙인을 획기적으로 줄이는 기적을 만들었습니다(출처: Roseanne Haggerty, "The Home for Good", 2010). 진정한 혁신은 새로운 사업의 추가가 아니라, 낡은 관행의 배설에서 시작됨을 증명한 사례입니다.

리더십의 본질은 항문을 관리하는 용기

많은 조직이 소화계 중 유독 '입'에만 편향되어 있습니다. 새로운 비전, 화려한 슬로건, 추가적인 공모 사업은 리더의 입을 즐겁게 합니다. 그러나 조직의 진정성은 입이 아니라 '항문'에 달려 있습니다. 새로운 시대를 맞이하겠다는 다짐은 결코 '더하는 것'만으로 완성되지 않습니다. 제때 버리지 못한 과거의 사업, 성과 없는 관례, 비대해진 행정 절차가 조직의 혈관을 막고 있습니다. 먹는 만큼 버리지 못하는 조직은 결국 내부에서부터 썩기 마련입니다. 시민단체 활동가와 사회복지 현장의 리더 여러분, 우리 조직이 현재 무엇을 삼키고 있는지보다 무엇을 내보내지 못하고 있는지 살피십시오. 주민 조직과 지역 복지의 현장에서 새로운 에너지가 돌게 하는 힘은 리더의 '비우는 결단'에서 나옵니다. 불필요한 과업을 덜어내고 본질만 남기는 용기가 필요합니다. 조직의 시스템이 다시 원활하게 흐르도록, 이제 리더는 입을 닫고 조직의 배설계를 점검해야 합니다. 비워진 그 자리에 비로소 주민의 삶과 현장의 활력이 채워질 것입니다.

 

건강성 회복을 위한 ‘조직 다이어트’ 체크리스트.pdf
0.13MB