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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구소칼럼[콩나물시루]

나를 아는 것보다 더 힘겨운 일: '자기 수용'이라는 현장의 근력

강정모 소장 2026. 3. 21. 11:06

 

성찰의 기원이 된 오래된 명제

"너 자신을 알라." 소크라테스가 델포이 신전의 문구를 인용하며 던진 이 명제는 철학의 영원한 출발점입니다. 이 문장이 오묘한 이유는 명쾌함이 아니라 모호함에 있습니다. 세월이 흐르고 경험이 쌓일수록 자신을 정의하는 일은 점점 더 어려워집니다. 나이를 먹는다는 것은 나에 대한 확신을 갖는 과정이 아닙니다. 오히려 내가 얼마나 다층적이고 복잡한 존재인지 깨달아가는 과정에 가깝습니다.

 

앎과 수용 사이의 거대한 간극

자기 인식은 철학의 제1과제입니다. 그러나 인식한 자신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는 '자기 수용'은 실천의 제1과제입니다. 나를 아는 것과 받아들이는 것은 질적으로 다른 차원의 일입니다. 우리는 흔히 자신을 안다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실제로는 보고 싶은 모습만을 선별하여 인지할 때가 많습니다. 자신을 정직하게 직면하는 일은 고통스럽습니다. 그 결과를 온전히 긍정하는 일은 그보다 더 큰 용기를 필요로 합니다.

한계와 가능성을 대하는 우리의 자세

현장에서 우리는 자신의 부족함을 마주할 때 깊은 좌절을 느낍니다. 특정 영역을 싫어하고, 서툴며, 능력이 닿지 않는다는 사실을 인정하기란 쉽지 않습니다. 그러나 흥미로운 점은 그 반대의 경우도 마찬가지라는 사실입니다. '나는 이것을 좋아하고, 잘하며, 충분한 역량이 있다'는 긍정적 자아를 수용하는 것도 역시 우리는 힘겨워합니다. 겸손이라는 이름으로 자신의 탁월함을 부정하는 것 또한 일종의 수용 거부입니다.

현장의 서사: 어느 사회복지사의 고백

2020년 코로나19 확산 초기, 서울의 한 복지관에서 주민조직화를 담당하던 A 사회복지사의 사례는 우리에게 많은 것을 시사합니다. 그는 수년간 '대면 활동의 달인'으로 불리며 주민들을 만났습니다. 하지만 갑작스러운 비대면 상황은 그를 극심한 무력감에 빠뜨렸습니다. 디지털 도구 활용에 서툴렀던 그는 자신의 '무능'을 인정하기보다 '환경'을 탓하며 방어적인 태도를 보였습니다. 그러던 중 그는 한 선배 활동가의 조언에서 전환점을 맞이했습니다. "환경이 바뀐 것이 아니라, 당신이 가진 '통제 욕구'가 바닥난 것뿐입니다." A 사회복지사는 자신이 '주민을 돕는 유능한 전문가'라는 자아에 지나치게 집착했음을 깨달았습니다. 그는 결국 자신의 디지털 무능력을 솔직하게 인정하고 주민들에게 도움을 청했습니다. 놀랍게도 주민들은 스스로 온라인 소통 공간을 만들고 운영하기 시작했습니다. 그는 자신의 한계를 받아들임으로써 오히려 주민의 역량을 이끌어내는 '촉진자'로서의 새로운 탁월함을 발견했습니다. (출처: 서울시복지재단, 2020 코로나19 대응 사회복지 현장 사례집 재구성)

 

지혜와 역량을 수렴하는 활동가의 길

시민단체 활동가와 사회복지사는 타인의 삶과 공동체를 돌보는 귀한 분들입니다. 우리는 늘 주민의 욕구를 분석하고 지역의 자원을 발굴하느라 분주합니다. 그러나 정작 가장 중요한 자원인 '나'라는 도구를 점검하는 일에는 인색할 때가 많습니다. 지역복지와 마을복지의 실질적인 성패는 활동가가 자신을 얼마나 투명하게 대면하느냐에 달려 있습니다. 자신의 부족함을 인정할 때 비로소 타인의 어려움에 관대해질 수 있습니다. 동시에 자신의 강점을 기쁘게 긍정할 때 성숙한 연대가 가능해집니다. 이제 우리는 '아는 나'를 넘어 '안 나를 받아들이는 나'로 나아가야 합니다. 현장의 지혜는 책상 위 논리가 아니라, 자신의 한계와 가능성을 모두 끌어안은 여러분의 정직한 성찰에서 시작됩니다. 그 단단한 자기 수용의 토대 위에서 주민조직의 꽃은 더욱 향기롭게 피어날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