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이라는 이름의 이층집 구조
우리의 마음은 세 개의 층으로 이루어진 집과 같습니다. 지하실이 있고, 1층 생활공간이 있으며, 햇볕이 드는 2층 다락방이 존재합니다. 이 집이 건강하려면 각 층의 역할이 선순환해야 합니다. 지하실은 습기가 차기 쉬운 공간입니다. 주기적으로 내려가 쌓인 먼지를 털고 정리해야 합니다. 눅눅해진 것들은 1층이나 2층으로 가져와 볕을 쪼여야 합니다. 그래야 마음이라는 집 전체가 썩지 않습니다.

지하실의 욕구와 다락방의 당위
마음의 지하실에는 '욕구'가 들어차 있습니다. "~~~하고 싶다"로 표현되는 본능적인 에너지입니다. 반면 2층 다락방은 "~~~해야만 한다"라는 '당위'와 도덕의 공간입니다. 아동과 청소년은 말의 절반 이상을 지하실의 언어인 '하고 싶다'로 채웁니다. 하지만 성인이 된 활동가와 사회복지사의 언어는 다락방에 갇혀 있습니다. 오늘 당장 해야 할 일 열 가지를 적기는 쉬워도, 내가 진심으로 하고 싶은 일 두 가지를 써 내려가기는 어렵습니다.
뜨거워진 다락방과 썩어가는 지하실
다락방에 너무 오래 머물면 머리가 뜨거워집니다. 당위의 햇볕이 과도하게 쏟아지기 때문입니다. 그사이 지하실은 방치됩니다. 보살피지 않은 욕구들은 눅눅해지다 못해 썩어갑니다. 냄새가 나고 벌레가 생깁니다. 결국 집의 기초가 흔들리기 시작합니다. 사명감과 의무감으로 가득 찬 활동은 활동가 내면에 많은 압력과 염증을 발생시킵니다. 이것이 우리가 겪는 번아웃의 과정입니다.

활동가의 삶을 보호하는 제도적 안전망
특히 도덕적 결벽과 언행일치를 강하게 요구받는 진보적 활동단체나 소수정당의 경우, 이 과정은 생존의 문제입니다. 공적 주장과 사적 삶 사이의 강한 일치를 사회적으로 요구받는 진보적 조직의 활동가들은 일치를 위해 사적 일상에서도 긴장을 하면서 살아갑니다. 그러다가 개인마다 다른 압력역량의 한계를 벗어나게 되면 마음의 지하실의 욕구는 비정상적인 방식으로 터져 나올 수 있습니다. 그래서 진보적 의제를 다루는 조직일수록 내면의 욕구를 정기적으로 소통하고 정신건강을 검진하는 시스템을 조직 내부에 도입해야 합니다. 이는 활동가의 삶을 보호하는 장치입니다. 조직이 쌓아온 궤적과 성과가 단 한 번의 실수로 무너지는 안타까운 상황을 예방하는 가장 좋은 길이라고 생각합니다.
선진 NGO의 '보호 의무'와 심리 검진
이미 선진국의 주요 비영리 기구(NGO)와 진보 정당들은 '보호 의무(Duty of Care)'를 조직 운영의 핵심 원칙으로 수립하고 있습니다. 독일의 녹색당이나 북유럽의 주요 시민사회 단체들은 활동가를 위한 정기적인 ‘심리적 디브리핑(Psychological Debriefing)’ 제도를 운영합니다. 활동 중에 쌓인 심리적 부채를 지하실에 방치하지 않도록 전문가 상담과 내면 소통을 업무 시간의 일부로 공식 인정합니다. 이러한 제도적 뒷받침이 활동가의 전문성을 강화하고 조직의 도덕적 원칙을 지속 가능하게 만듭니다. (출처: NCVO, 'Duty of Care for Volunteers and Staff in NGOs')


내면 작업이 만드는 지속 가능한 변화
개인의 환기는 공동체의 지속 가능성으로 확장됩니다. 영국의 ‘더 웰빙 프로젝트(The Wellbeing Project)’는 전 세계 사회혁신가들을 분석하여 의미 있는 결론을 내렸습니다. 개인의 내면적 욕구를 돌보는 힘이 곧 사회 변화를 만드는 동력이라는 사실입니다. 이들은 지하실의 욕구를 억압하지 않습니다. 오히려 이를 공적 영역으로 가져와 동료들과 나누는 ‘내면 작업’을 필수 활동으로 간주합니다. 활동가의 행복이 곧 사회적 성과로 이어진다는 통찰입니다. (출처: The Wellbeing Project, 'How Social Entrepreneurs' Wellbeing Can Change the World')
전문가라는 긴장을 내려놓고 욕구를 환기하기
국내 복지 현장에서도 지하실의 환기는 실천적인 과제입니다. 서울시사회복지사협회의 ‘사회복지사 힐링 지원사업’이 좋은 사례입니다. 이 사업은 활동가들이 ‘전문가’라는 당위의 가면을 잠시 내려놓는 데 집중했습니다. 숲 체험이나 문화 예술 활동을 통해 지하실에 묻어두었던 본연의 욕구를 동료들과 공유했습니다. 자신의 욕구를 1층의 신뢰 관계 속으로 꺼내어 말리는 과정입니다. 그 결과 현장 복귀 후 직무 만족도가 유의미하게 상승했습니다. (출처: 서울시사회복지사협회, '사회복지사 위기대응 및 복리증진사업' 보고서)
지역 공동체를 세우는 활동가의 내공
주민 조직과 지역 복지를 담당하는 여러분의 역량은 결국 ‘마음을 돌보는 지혜’에서 나옵니다. 주민의 지하실 욕구를 건강하게 끌어내려면 활동가 자신의 지하실부터 환기해야 합니다. 당위라는 다락방에만 갇혀 있는 활동가는 주민의 진심을 만날 수 없습니다. 우리의 욕망이 햇볕 아래 뽀송하게 마를 때 타인의 삶을 품을 여백이 생깁니다. 나를 돌보는 것이 곧 마을을 돌보는 일입니다. 여러분의 지하실이 썩지 않도록, 오늘 하루는 다락방 문을 닫고 지하실의 언어를 꺼내 보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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