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국의 주민자치위원 여러분, 안녕하십니까. 따스한 봄기운이 완연한 가운데 우리 주민자치 현장에도 오랜 가뭄 끝에 내리는 반가운 단비처럼 역사적인 소식이 찾아왔습니다. 지난 2026년 3월 31일, 주민자치회의 법률적 근거를 명확히 마련한 '지방자치법 개정안'이 제433회 국회 임시회 본회의를 통과한 것입니다. 이번 개정안 통과는 무려 13년 동안 우리 주민자치회를 옭아매던 '시범실시'라는 무거운 꼬리표를 마침내 떼어낸 풀뿌리 민주주의의 거대한 진전입니다. 지난 2020년 지방자치법 전부개정안에서 주민자치 조항이 삭제되었던 아픔을 딛고, 그동안 관련 단체와 위원 여러분이 국회 앞 1인 시위, 공청회, 토론회 등을 열며 제정 및 개정을 위해 피땀 흘려 노력해 온 결실이자, 98%에 달하는 제도화의 목표를 달성한 참으로 감격스러운 순간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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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방자치법 개정으로 주민자치회 본격 실시 근거 마련
■ 지방자치법 개정으로 주민자치회 본격 실시 근거 마련(2026.3.31. 본회의 통과) · 주민자치회 시범실시 종료 및 본격 실시 근거 마련 ※ 법 공포 후 6개월이 경과한 날부 - 정책브리핑 | 뉴스 | 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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끝나지 않은 2%의 과제
이제 주민자치회에 대한 명확한 법률적 근거가 마련되었습니다. 주민자치회 운영의 안정성이 확보되었습니다. 지역 현장에서 묵묵히 헌신해 온 위원 여러분을 실질적으로 지원할 수 있는 토대가 구축된 것입니다. 이는 지역자치를 세우는 일입니다. 마을에 자기결정권을 부여함으로써 우리 사회의 토대를 단단하게 다지는 중대한 계기가 될 것입니다. 하지만 못내 아쉬운 점도 남습니다. 이번 개정안은 읍·면·동에 주민자치회를 '둘 수 있다'고 규정했습니다. 의무 조항이 아닌 선택 조항으로 남겨둔 것입니다. 또한 주민 대표성을 보장할 강제적인 조항을 담아내는 데도 미치지 못했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천리길도 한 걸음부터라는 진리를 압니다. 첫술에 배부를 수 없음을 알기에 이 귀중한 변화를 뜨겁게 환영합니다. 법제화 운동은 여기서 멈추지 않습니다. '둘 수 있다'는 선택의 영역을 넘어, 전국의 모든 읍·면·동에 반드시 '둔다'로 법이 개정되는 그날까지 발걸음은 멈추지 않을 것입니다. 민주주의 제도의 완성을 향한 나머지 2%를 채우는 진정한 여정은 이제부터 시작입니다.
세상은 저절로 좋아지지 않는다
훌륭한 법과 제도가 마련되었다고 해서 우리 동네가 내일 아침 당장 살기 좋은 곳으로 변하지는 않습니다. 20세기 최고의 역사학자로 불리는 에릭 홉스봄은 간결하고도 무거운 유언같은 말씀을 남겼습니다. "세상은 저절로 좋아지지 않는다" 즉 '좋아진 세상을 얻는 건 공짜는 없다'라는 말입니다. 좋은 사회, 살기 좋은 마을은 누군가가 대신 만들어주지 않습니다. 살고 있는 주민 스스로가 치열하게 고민하고 노력하며, 때로는 궂은일에 참여하고, 고생을 감수해야만 얻을 수 있는 결실입니다. 제도의 기틀이 정비된 지금 우리에게 가장 필요한 것은 무엇일까요. 그것은 바로 내 마을을 향한 주인의식, 즉 '책임성'입니다.
인간 사회의 작동 방식과 약육강식의 극복
책임성을 이해하기 위해 동물의 왕국과 인간 사회를 비교해 보겠습니다. 동물의 세계는 단 하나의 원리로 굴러갑니다. 바로 약한 자가 강한 자에게 잡아먹히는 '약육강식'입니다. 자연 생태계에서는 생물이 생존하기 위해 힘의 논리로 돌아가는 것이 자연스러운 현상입니다. 약육강식 자체는 좋고 나쁨의 도덕적 판단 대상이 아닙니다. 하지만 우리는 동물이 아닙니다. 우리 사회가 오직 힘의 논리와 약육강식으로만 굴러간다면 그것은 인간 사회가 아닐 것입니다. 인간 사회 작동 방식의 최소한의 기준선은 바로 약육강식을 극복하는 데 있습니다. 약육강식의 반대말은 무엇일까요. 그것은 바로 '약자에 대한 겸손한 태도'입니다. 어린아이들이 놀이터에서 장난감을 빼앗으며 다툴 때를 떠올려 보십시오. 아이들이 본능대로 뺏고, 뺏기는 상황에 빠질 때 부모는 '안 돼, 멈춰'라는 교육을 시켜야 합니다. 그래야 동물차원에서 인간차원으로 들어갈 수 있습니다. 약자를 보았을 때 지배하려는 본능을 멈추고 약자와도 함께 살아가고, 배려하는 행위는 인간 존재에 지배적으로 내장된 DNA가 아닙니다. 죽을 때까지 의식적으로 배워야 하는 후천적 학습의 영역입니다. 즉 인성, 즉 인간성의 본질은 약한 자를 대하는 태도에서 결정됩니다. 주민자치회 역시 이처럼 약자를 존중하고 겸손과 배려를 공동체 전체가 함께 훈련하는 학교가 되어야 합니다.
호모 사피엔스의 생존 무기, 상호 의존성과 연대
수만 년 전, 힘과 체격이 월등했던 네안데르탈인은 사라지고 육체적으로 연약했던 호모 사피엔스만이 살아남았습니다. 호주 출신의 인류학자 피터 맥앨리스터는 저서 『맨스로폴로지(Manthropology)』를 통해 고대 화석에 남겨진 뼈의 두께와 근육의 흔적 등을 생체역학적으로 분석했습니다. 그 결과, 네안데르탈인 여성의 근력만으로도 현대 세계 팔씨름 챔피언을 단 몇 초 만에 제압할 수 있을 정도로 두 인류 간의 물리적 힘의 차이가 압도적이었음을 밝혀냈습니다. 그렇다면 이토록 연약했던 호모 사피엔스는 어떻게 최후의 승자가 되었을까요? 그 비결은 완력이 아닌 '협력과 나눔'이라는 혁신적인 생존 전략이었습니다. 사냥꾼 한 명이 거대한 동물을 잡아 혼자 독식하지 않고 다른 부족원과 나누었습니다. 내가 미래에 굶주렸을 때 도움을 받을 것이라는 무의식적 기대가 작동한 것입니다. 다치고 병든 동료를 버리지 않고 돌보는 행위는 공동체 전체의 생존율을 높였습니다. 현대의 선진 사회도 원리는 동일합니다. 우리는 결코 홀로 살아갈 수 없습니다. 볼펜 한 자루를 만들기 위해 디자인, 원유 정제, 철 재련 등 수많은 사람의 수고가 동원됩니다. 흔히 사 먹는 과자 한 봉지에도 미국, 말레이시아, 우크라이나, 싱가포르 등 전 세계 수많은 사람의 노동이 깃들어 있습니다. 내가 가진 능력이 뛰어나서 혼자 힘으로 세상을 다 바꿀 수 있다고 믿는 사람이 많은 곳은 후진 사회 또는 독재국가일 가능성이 높은 사회입니다. 평범한 사람들이 모여 서로의 한계와 연약함을 인정하고, 연대하여 사회를 바꿀 수 있다고 믿는 곳이 선진 사회입니다.
타인의 존엄을 지키는 세심한 나눔
마을 안에서 나눔을 실천할 때도 깊이 있는 책임성과 세심한 배려가 요구됩니다. 과거 일부 지자체에서 소비 쿠폰을 지급할 당시, 쿠폰 겉면에 18만 원, 33만 원 등 지원 금액을 적어 지급한 사례가 있습니다. 행정의 입장에서 분류하기는 매우 효율적이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금액이 큰 쿠폰을 제시해야 하는 주민은 계산대 앞에서 자신이 '어려운 처지에 놓인 사람'임을 사람들에게 알리는 상황이 되게 됩니다. 받는 사람의 입장을 헤아리지 못한 행정의 단면입니다. 반면, 훌륭한 나눔의 철학을 보여주는 옛 사례가 있습니다. 전남 구례의 부잣집 '운조루'에 있는 쌀 뒤주입니다. 이 뒤주에는 '타인능해(他人能解, 누구나 쌀 뒤주를 열 수 있다)'라는 글귀가 새겨져 있었습니다. 흉년이 들었을 때 굶어 죽지 않도록 누구나 쌀을 가져갈 수 있게 배려한 것입니다. 돋보이는 점은 이 뒤주의 위치입니다. 집주인은 쌀을 구하러 오는 이웃이 눈이 마주치며 느낄 수치심을 덜어주기 위해 뒤주를 사람의 눈에 잘 띄지 않는 헛간에 두었습니다. 이웃의 마음을 헤아린 세심함 덕분에, 마을 사람들은 뒤주의 사용을 자제했고 더 힘든 이웃에게 양보하는 효과가 일어났습니다. 나눔은 가진 자가 없는 자에게 베푸는 행위가 아니라 인간으로서의 존엄을 서로 회복시키는 과정입니다.
雲 鳥 樓, 구름 속에 새처럼 숨어사는 집, 운 조 루 - 雲 鳥 樓, 타인능해他人能解
운조루에는 유명한 뒤주가 하나 있다. 이 뒤주에는 문구가 새겨져 있는데 그 문구가 바로 '他人能解'이다. 타인능해, 즉 "누구나 쌀 뒤주를 열 수 있다." 원통형의 이 뒤주에는 세 가마니의 쌀을
www.unjoru.net
국내에도 이와 꼭 닮은 사례가 있습니다. 바로 전국 수천 곳의 소상공인들이 자발적으로 참여하고 있는 '선한영향력가게' 캠페인입니다. 사단법인 선한영향력가게 공식 데이터에 따르면, 이 캠페인은 2019년 서울 마포구의 한 식당 대표가 결식아동들의 식비를 전액 지원하겠다고 나선 것을 시작으로, 현재는 전국 3,800여 곳 이상의 자영업자가 자발적으로 동참하는 거대한 민간 연대로 성장했습니다(출처: 사단법인 선한영향력가게 공식 홈페이지, 2024년 기준). 우리 주변의 결식아동들은 행정에서 지급한 '급식 카드'를 식당에서 꺼낼 때마다, 자신이 어려운 처지임을 스스로 증명하는 것 같아 눈치를 보거나 상처를 받는 일이 많았습니다. 이를 안타깝게 여긴 동네 상인들이 연대하여 나선 것입니다. 이 캠페인에 동참하는 가게들은 아이들이 카드를 보여주기만 하면, 결제를 요구하지 않고 VIP 손님처럼 따뜻하고 든든한 식사나 서비스를 무료로 대접합니다. 행정의 지원망이 미처 보듬지 못한 아이들의 감정과 수치심까지 이웃의 힘으로 어루만진 것입니다. 상대를 단순히 시혜의 대상이 아니라 동등한 인격체로 존중하며 자존심을 지켜주는 이 따뜻한 연대야말로, 과거 '운조루'의 정신을 현대에 되살린 참된 책임성의 실천입니다.
공공적 불안의 수용과 좋은 시민의 역량 강화
만약 누군가 당신을 향해 "당신은 머지않아 큰 병에 걸리거나, 직장을 잃고 경제적 위기에 처할 것입니다"라고 지목한다면 어떤 기분이 들겠습니까. 십중팔구 몹시 불쾌해하며 화를 낼 것입니다. 누구나 나이를 먹어 늙고, 불의의 사고나 실직의 위험 속에 살아간다는 것은 부정할 수 없는 현실입니다. 하지만 이 차가운 사실을 '나 개인의 피할 수 없는 미래'로 맞닥뜨리는 일은 본능적으로 두렵고 거북합니다. 그래서 우리는 종종 "나에게만큼은 그런 불행이 비껴갈 것"이라며 불안을 애써 외면하려 합니다. 그러나 개인이 느끼는 이 불편한 진실을 회피하지 않고, 우리 사회 대다수가 '공동의 문제'로 기꺼이 수용할 때 비로소 진정한 연대가 시작됩니다. 막연한 불안을 집단 차원의 의제로 끌어안는 순간, 공동체는 불확실한 재난에 대비하기 위해 움직입니다. 그 결과물이 바로 '사회보험'이라는 든든한 공공의 방패이며, 이웃을 보호하는 촘촘한 복지 정책입니다. 이러한 공공 정책과 제도를 설계하고 실행하는 주체는 다름 아닌 우리가 선출한 공직자와 정치인들입니다. 그리고 그들에게 우리의 불안을 실질적으로 해소할 조례 제정을 촉구하고, 마을에 필요한 자치 규약을 다듬도록 이끄는 것이 주민자치회의 역할중에 하나입니다. 결국 우리의 삶을 지키는 정책은 하늘에서 떨어지는 것이 아니라, 투표권을 올바르게 행사하고 정책에 관여하는 우리 스스로의 선구안과 행동에 달려 있습니다. '착한 사람'을 넘어, 주어진 제도와 규칙이 과연 타당한지 끊임없이 묻고 행동하는 '좋은 시민'이 되어야 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습니다. 당연히 좋은 시민으로 깨어 마을의 문제에 참여하고 목소리를 내는 일은 무척 고단하고 피곤한 과정입니다. 그렇기에 우리는 방전되지 않고 연대의 끈을 이어가기 위해 끊임없이 '역량 강화'에 힘을 쏟아야 합니다.

존경하는 전국의 주민자치위원 여러분. 이제 우리 앞에는 13년의 염원 끝에 얻어낸 소중한 도화지가 펼쳐졌습니다. 이 도화지에 어떤 마을을 채워 넣을 것인가는 우리의 권리이자 묵직한 책임입니다. 나와 타인이 연결되어 있음을 깊이 자각하고, 이웃의 존엄을 지키는 나눔을 실천합시다. 굳건한 연대의 힘을 키워, 끝내 '둘 수 있다'를 '둔다'로 바꾸어 내는 제도의 완성을 이루어내는 날까지 꾸준히 정진하면 좋겠습니다. 정진의 과정에서 수많은 시행착오와 회의(懷疑)의 늪에 빠질 수 있습니다. 전진과 후퇴가 반복될 것입니다. 주민이 과연 자치를 지속적으로 할 수 있을까에 대한 행정과 지방의회의 압박도 있을 것입니다. 정부수립 당시, 직선제를 완성한 87년, 지방자치를 실시했던 91년도 그랬습니다. '과연 '민주주의'가 가능할까?' 하지만 대한국민은 현재 세계 최고 수준의 민주주의를 만들어내 왔습니다. 권한을 독점한 기득권은 역사적으로 늘 '가능할까?'를 물어왔습니다. 거기에 대한 응답은 가능함에 대한 용기입니다. 제도적 민주주의의 완성 주민자치회의 정착을 이룩해 냅시다. 자치분권과 풀뿌리민주주의의 완성을 향해감으로써 쌓은 부의 건강한 순환을 만들수 있습니다. 약육강식의 시대를 딛고 사람 냄새 물씬 나는 연대의 공동체로 나아가는 길에 우리 모두가 다정한 동반자가 되기를 간절히 소망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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