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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구소칼럼[콩나물시루]

왜 우리 현장은 뜻대로 되지 않을까?" : 길을 찾는 활동가를 위한 항해술

강정모 소장 2026. 3. 21. 12:16

익숙한 비유가 몸으로 스며드는 시간

삶을 항해에 비유하는 말은 흔합니다. 하지만 어느덧 늘어난 흰머리와 거울 속 기미를 마주하며 이 상투적인 문장은 비로소 무게를 갖기 시작합니다. 찬물 한 모금에 시린 이를 느끼고, 방문을 닫고 자기만의 세계에 침잠하는 아이들의 뒷모습을 볼 때, 우리는 우리가 탄 배가 이미 연안을 떠나 깊은 바다로 들어섰음을 깨닫습니다. 2009년, 전남 녹동항에서 제주로 향하던 낡은 배 위에서의 기억이 떠오릅니다. 승합차를 배 밑바닥에 고박하고 4시간을 넘게 달리던 길입니다. 비행기로는 순식간이던 그 길이 배 위에서는 하루가 꼬박 걸리는 고단한 여정이었습니다. 멀리 제주항의 섬 라인이 부옇게 나타났을 때, 어릴 적 만화 '보물섬'에서 보았던 선원들의 환호성을 조금은 이해할 수 있었습니다. 바다 한가운데서 마주하는 풍경은 모래사장에서 보던 그것과는 전혀 다른, 압도적인 실체였습니다.

표류를 항해로 바꾸는 유일한 도구

망망대해에서 가장 먼저 필요한 것은 나침반입니다. 영화 '캐리비안의 해적'에서 잭 스패로우 선장을 선장답게 만드는 것은 화려한 보검이 아니라 낡은 나침반이었습니다. 사방이 물결뿐인 광막함 속에서 내 위치를 확인하는 능력은 항해의 전제 조건입니다. 인생도 바다만큼이나 막막합니다. 위치를 잃으면 당황하게 되고, 이는 곧 두려움과 우울로 이어집니다. 이때 우리를 구원하는 것은 '변하지 않는 원칙'입니다. 수천 년이 흘러도 변하지 않는 지혜가 나침반 역할을 해야 합니다. 우리는 흔히 배의 연식이나 디자인 같은 '트렌드'에 열광하지만, 결국 거친 파도를 뚫고 배를 움직이는 것은 나침반을 든 사람의 원칙입니다.

 

https://quotabulary.com/famous-quotes-about-sea-sailing / 사진출

어니스트 섀클턴이 증명한 '살아있는 원칙'의 힘

여기, 원칙이 어떻게 불가능한 항해를 가능케 하는지 보여주는 사례가 있습니다. 1914년, 남극 횡단에 나섰던 어니스트 섀클턴(Ernest Shackleton)과 인듀어런스호의 이야기입니다. 배가 부서지는 절망적인 상황에서 섀클턴은 나침반을 고쳐 잡았습니다. 그의 목적지는 '남극 정복'에서 '대원 전원 생존'으로 수정되었습니다. 그는 극한의 추위 속에서도 매일 아침 대원들과 함께 차를 마시고 일정한 일과를 유지하는 '원칙'을 고수했습니다. 방향을 잃지 않기 위해 매일 위치를 측정했고, 동료를 비난하지 않는다는 엄격한 규율을 세웠습니다. (출처: 알프레드 랜싱, <엔듀어런스>) 634일간의 표류 끝에 전원 생존이라는 기적을 일궈낸 동력은 화려한 항해 기술이 아니었습니다. '우리는 반드시 돌아간다'는 명확한 목적지와 '서로를 포기하지 않는다'는 변하지 않는 원칙이었습니다.

 

https://brunch.co.kr/@tkfkdgo-yo/19 / 사진출처

무너진 집터 위에서 다시 세운 '연대'의 나침반

1980년대 도시개발이라는 거대한 파도가 목동과 상계동의 가난한 삶터를 덮쳤습니다. 당시 활동가들과 주민들의 방향은 '철거 저지'와 '생존권 사수'를 가리키고 있었습니다. 하지만 현실은 냉혹했습니다. 공권력과 포클레인이라는 압도적인 혼돈 앞에서 주민들의 집은 속수무책으로 허물어졌습니다. 의도했던 '정착'은 실패했고, 주민들은 길거리로 내몰렸습니다. 이 절망적인 항해의 한복판에서 정일우 신부와 제정구 선생은 나침반을 다시 고쳐 잡았습니다. 목적지는 '무너진 집을 지키는 것'에서 '어디서든 함께 사는 인간 존엄의 공동체'로 수정되었습니다. 그들은 집이 허물어진 자리에서 짐을 싸 들고 명동성당으로, 다시 경기도 시흥의 복음자리 마을로 이주하며 항해를 멈추지 않았습니다. 그들이 견지한 원칙은 단호했습니다. '가장 가난한 이 곁을 떠나지 않는다'는 것과 '모든 결정은 주민 스스로 한다'는 원칙이었습니다. (출처: 제정구 기념사업회 자료실, <정일우 신부 추모집>) 집은 잃었을지언정 공동체는 잃지 않겠다는 이 나침반은 훗날 한국 시민사회의 뿌리 깊은 '지역사회 조직화(CO)'와 '주민 자치'의 원형이 되었습니다. 가장 처절한 혼돈의 바다를 통과하며 얻은 이 경륜은, 오늘날 우리 사회복지사들이 마주하는 마을 공동체 활동의 단단한 지표가 되고 있습니다. 의도대로 집을 지키지는 못했지만, 그 실패의 파도를 타고 도달한 곳은 '사람이 주인 되는 세상'이라는 더 넓은 바다였습니다.

 

https://news.cpbc.co.kr/article/1169480 / 사진출처

목적지가 없으면 움직임은 낭비일 뿐이다

모든 탈것은 목적지가 있어야 존재의 이유를 갖습니다. 목적지 없는 항해는 소중한 연료를 낭비할 뿐입니다. 목적지가 분명해야 중간 기착지를 설계할 수 있고, 예기치 못한 암초를 만났을 때 우회할 경로를 선택할 수 있습니다. 사회복지, 휴먼서비스, 사회적 자본 분야에서 우리가 지난 시절 겪었던 코로나19라는 거대한 폭풍우 속에서도 목적지는 분명했습니다. '일상의 회복'과 '공동체의 안녕'이라는 지향점이 있었기에 우리는 각자의 자리에서 중간 목표를 세우며 버틸 수 있었습니다. 목적지는 너무 멀어 보일 때가 많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중간 기착지에서 다시금 항해의 동기를 얻어야 합니다.

혼돈을 수용하는 역량이 경륜을 만든다

육지 이동이 일차방정식이라면, 바다 위 항해는 변수가 가득한 고차방정식입니다. 바다는 유동적이며 언제든 배를 삼킬 듯 일렁입니다. 사람의 의도대로 되지 않는 함수가 도처에 널려 있습니다. 그러나 이 '의도대로 되지 않음'이 사람을 성숙하게 만듭니다. 평생 연안만 돌았던 배는 큰 파도를 알지 못합니다. 그런 인생은 나이브하기 마련입니다. 반면 사방이 바다뿐인 깊은 곳까지 가본 사람은 광막함과 무의미함이 주는 심장의 떨림을 압니다. 혼돈을 기꺼이 받아들이는 것, 그것이 바로 우리가 말하는 '경륜'입니다. 솔로몬은 계획을 인도하는 신의 섭리를 말했고, 노자는 자연이 인간을 특별히 배려하지 않는다는 '천지불인'을 논했습니다. 인간의 의지가 중요하지만, 세상이 반드시 그 의지대로만 흘러가지 않는다는 수용의 지혜입니다.

현장의 항해사들을 위한 지혜의 매듭

시민단체 활동가와 사회복지사 여러분은 지금 가장 깊고 거친 바다 위에 떠 있습니다. 주민조직과 마을복지라는 현장은 정답이 정해진 육지가 아니라, 매 순간 유동하는 해수면과 같습니다. 사람의 마음은 의도대로 움직이지 않고, 공들인 사업이 예기치 못한 암초에 걸려 좌초되기도 합니다.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세 가지입니다. 첫째, 트렌드에 휘둘리지 않는 나침반 같은 '현장의 철학'입니다. 둘째, 우리가 도달하고자 하는 '주민의 행복'이라는 명확한 목적지입니다. 셋째, 우리 뜻대로 되지 않는 현장의 혼돈을 실패가 아닌 '항해의 본질'로 받아들이는 역량입니다. 거센 너울이 배를 흔들 때, 우리는 다시 나침반을 붙잡아야 합니다. 목적지가 너무 멀어 동력이 떨어질 때는 이웃의 작은 변화라는 중간 기착지에서 희망을 얻읍시다. 의도대로 되지 않는 세상을 탓하기보다, 그 혼돈 속에서 새로운 길을 그려내는 여러분의 지혜가 곧 우리 사회의 항로가 됩니다. 우리는 그렇게 오늘도 함께 항해하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