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를 짓누르는 ‘해야만 한다’는 당위의 함정
비영리 현장에서 주민을 만나고 조직의 애환을 다루며, 소통해온 시간이 어느덧 강산이 두 번 바뀔 만큼 흘렀습니다. 그동안 수많은 사회복지사, 그리고 공익활동가들과 고락을 함께하며 목격한 가장 안타까운 풍경은 ‘숭고한 목적’에 스스로를 과하게 소모하고, 소홀히 관계하는 리더들의 모습이었습니다. 사회적 취약계층의 곁을 지키고 지역사회의 변화를 이끌어내는 일은 분명 고귀합니다. 하지만 그 고귀함이 리더 자신을 옥죄는 ‘당위’가 되는 순간, 조직은 서서히 생명력을 잃기 시작합니다. 우리를 가장 빠르게 소진시키는 것은 과중한 업무량이 아닙니다. 바로 ‘사회복지사니까’, ‘공익활동조직의 리더니까’ 마땅히 그래야 한다는 도덕적 당위감 또는 부채감입니다. 이 당위성은 때로 우리 내면의 솔직한 목소리를 검열하고 지워버립니다. 당위에 기반한 활동은 외부의 박수는 받을 수 있을지언정 내부의 동력은 고갈시킵니다. 이럴 때 질문의 방향을 바꿔야 합니다. “무엇을 해야 하는가”라는 공적 질문 이전에, “우리는 이 일을 통해 무엇을 얻고 싶으며 우리는 무엇을 하고 싶은가?"라는 사적인 질문앞에서 정직하게 직면해야 합니다. 조직의 미션과 개인의 욕구가 평행선을 달릴 때, 리더의 헌신은 결국 ‘자기 착취’의 부메랑이 되어 돌아옵니다.
헌신이라는 이름의 보이지 않는 감옥: 현장의 서사 1
마을 가드닝 모임을 3년째 이끄는 활동가 A씨의 사례는 우리 주변에서 마주하는 안타까운 단면입니다. 처음 시작은 달랐습니다. 흙을 만지는 감촉이 좋아서, 이웃과 마시는 차 한 잔의 여유가 달콤해서 시작한 일이었습니다. 하지만 지방자치단체의 ‘공익활동 지원사업’에 선정되면서 균열이 시작되었습니다. 매달 제출해야 하는 활동 보고서와 영수증 처리는 즐거웠던 가드닝을 숨 막히는 ‘행정 업무’가 되었습니다. 성과를 증명해야 한다는 압박에 A씨는 회원들에게 더 높은 수준의 참여를 요청하기 시작했습니다. “우리 모임이 마을의 귀감이 되어야 합니다”, “이 예산은 시민의 소중한 세금입니다”라는 말은 A씨의 전용 구호가 되었습니다. 회원들의 표정이 어두워진 것은 그 즈음부터입니다. 꽃을 심으며 나누던 소소한 수다는 ‘사업 목표 달성’을 위한 날 선 회의로 대체되었습니다. 회원들은 하나둘 “바빠서”, “몸이 안 좋아서”라는 핑계로 단톡방의 알림을 껐습니다. 지난주 회의에서 한 회원이 던진 질문은 A씨의 마음을 찔렀습니다. “대표님, 우리가 지금 즐겁자고 하는 건가요, 아니면 보고서 채우려고 하는 건가요?” A씨는 당황했습니다. 공익을 위해 뛰어온 자신을 몰라주는 회원들이 서운했습니다. 하지만 그날 밤, A씨는 거울 속 자신의 얼굴을 보았습니다. 보고서에 넣을 사진을 찍기 위해 억지 미소를 지어온 자신의 모습이 보였습니다. ‘마을을 위한다’는 명분이 오히려 그와 회원들을 옥죄는 보이지 않는 감옥이 되어가지 않은가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거대 담론의 추상과 ‘작은 효능감’의 심리학
비영리 조직은 '세상'을 바꾸겠다는 거대 담론을 사명과 비전으로 제시하곤 합니다. 국가를 넘어, 지구적 관점에서 사명을 내건 작은 단체도 많습니다. 하지만 구체적인 실천과 손에 잡히는 성과가 뒷받침되지 않는 담론은 점점 회원들을 지치게 합니다. 늦은 밤까지 비전을 토론하고 술잔을 기울여도 다음 날 아침 허탈함이 밀려온다면, 그것은 효능감이 결여되었기 때문입니다. 조직 운영의 핵심은 우리 조직이 이런 성취와 변화를 했다는 작고, 다양한 성공의 경험’을 설계하는 데 있습니다. 선진국으로 들어간 대한민국에서 비영리 조직은 이제 성과에 대한 기준을 발칙할 정도로 낮추어야 합니다. 거대한 사회 변화가 아니어도 좋습니다. 오늘 회의에서 평소 조용하던 주민 한 명이 자신의 의견을 조심스레 꺼냈다면, 그것으로 충분합니다. 함께 만든 콘텐츠 하나가 누군가에게 작은 미소를 주었다면 실패가 아닙니다. 리더는 구성원들이 각자의 자리에서 작은 성취를 맛볼 수 있도록 목표를 쪼개고 구체화해야 합니다. 다만 쪼개고 구체화되어 성취한 성과들이 어떻게 관계, 조직, 마을, 사회에 연결되는지 의미화를 위한 공부와 토론이 함께 연결되어야 합니다. 그러면 회원과 참여자들안에서 '공적 뒷담화'가 활성화되고, 많은 풀뿌리 조직들의 공적 뒷담화는 여론(輿論)이 되어 선출직 공무원들에게 영향을 미치게 됩니다. 이렇듯 작고, 다양한 활동의 효능감은 비영리 조직을 지탱하는 강력한 연료입니다. 손에 잡히지 않는 거창한 이야기에 구성원들은 금세 무력해지기 마련입니다. 하지만 손에 잡히는 작은 성공의 경험은 현장으로 다시 나설 재미와 용기를 북돋워 줍니다.
전문성의 벽 뒤에 숨은 불안의 얼굴: 현장의 서사 2
사회적 협동조합 B팀은 전문가 집단입니다. 각 분야의 유능한 강사들이 모여 공익적 가치를 전파합니다. 그러나 내면에는 보이지 않는 갈등의 실타래가 엉켜 있었습니다. 최근 신규 강사 영입 문제를 두고 벌어진 격론은 조합원들이 그동안 외면해왔던 조직의 본질적인 과제를 다시금 확인하게 했습니다. 기존 회원들은 ‘조합의 전문성 저하’를 명분으로 내세웠습니다. “우리가 쌓아온 브랜드 가치가 훼손되면 안 된다”는 주장이었습니다. 하지만 그 이면에는 실존적인 불안이 자리 잡고 있었습니다. 신규 강사가 들어오면 ‘내 몫의 강의가 줄어들지도 모른다’는 경제적 불안과, ‘내가 이 조직의 주류다’라는 인정 욕구가 복잡하게 얽혀 있었습니다. 회의실의 공기는 차가웠고, 침묵은 고함보다 무거웠습니다. 리더는 결단해야 했습니다. “우리 조합의 정체성은 무엇인가?”라는 질문으로 돌아갔습니다. 논의 끝에 그들이 발견한 것은 ‘전문성’이라는 방패 뒤에 숨겨진 ‘배타성’이었습니다. 리더는 ‘전문가 집단’이라는 당위를 잠시 내려놓고, 구성원들이 느끼는 불안을 솔직하게 꺼내놓게 했습니다. “나도 내 밥그릇이 걱정된다”는 고백이 용기있게 나온 후에야 진짜 대화가 시작되었습니다. 조직의 위상보다 개인의 생존과 성장이 우선임을 인정한 것입니다. 이들은 결국 교육 과정을 난이도별로 세분화하여 신규 강사와 공존하는 길을 택했습니다. 당위의 벽을 허물고 개인의 욕구를 정직하게 대면했을 때, 조직은 비로소 숨을 쉬기 시작했습니다.
조직의 중력: 경제적 자립과 자원의 외교술
비영리 조직도 결국 지상의 중력 법칙을 따릅니다. 여기서 중력은 ‘먹거리’와 ‘자원’입니다. 의미와 가치만으로 사람을 묶어둘 수 있는 시간은 생각보다 길지 않습니다. 특히 경제적 활동이 수반되는 조직의 리더는 현실적인 생존 전략을 세워야 합니다. 리더는 조직 내부의 살림만 챙기는 관리자에 머물러서는 안 됩니다. 외부 거버넌스와 끊임없이 소통하며 가치를 자원으로 환산해오는 ‘외교관’이 되어야 합니다. 이러한 리더의 고뇌는 인류 역사의 오랜 숙제이기도 합니다. 2,500년 전, 비영리 조직의 리더와 유사한 위상으로 천하를 주유했던 맹자 역시 전국시대라는 난세를 평화롭게 바꾸기 위해 치열하게 분투했습니다. 그는 이상적인 평화의 시대를 꿈꿨지만, 그 영향력을 유지하기 위해 수많은 제자와 동지를 조직하며 차가운 현실과 정면으로 마주했습니다. 그 과정에서 탄생한 통찰이 바로 그 유명한 ‘무항산 무항심(無恒産 無恒心)’입니다. 맹자는 "경제적 안정(恒産)이 없으면, 선한 마음(恒心)을 지키기 어렵다"고 설파했습니다. 이는 단순히 배부름을 논한 것이 아닙니다. 숭고한 가치를 실천하려는 구성원들이 생활의 궁핍함 때문에 자신의 철학을 꺾지 않도록, 리더가 그 토대를 마련해야 한다는 준엄한 책임의 목소리입니다. 먹거리가 해결되지 않은 상태에서 구성원에게 희생과 고귀한 정신만을 요구하는 것은 책임 있는 리더의 자세가 아닙니다. 비영리 리더는 조직의 비전이라는 ‘하늘’과 생존이라는 ‘대지’ 사이에서 균형을 잡는 사람입니다. 경제적 자립은 단순히 돈의 문제가 아닙니다. 우리가 세상에 필요한 가치를 생산하고 있으며, 세상이 그 가치에 응답하고 있다는 증거입니다. 중력이라는 현실을 이해하고 이용하는 리더는 조직을 안전한 궤도 위에 올려놓을 가능성이 높습니다.
시간과의 싸움, 벨던 펀드의 찬란한 일몰
비영리 조직의 건강한 수명을 논할 때 주목할 비영리 조직은 미국의 '벨던 펀드(The Beldon Fund)'입니다. 창립자 존 헌팅(John Hunting)은 1990년대 후반, 환경 위기가 가속화되는 것을 지켜보며 깊은 고뇌에 빠졌습니다. 재단을 영구적으로 운영하며 조금씩 지원하는 방식으로는 '지구라는 집의 불'을 끌 수 없다는 결론에 도달했습니다. 그는 재단의 영속성이라는 비영리 조직의 성역을 깨뜨리는 파격적인 결단을 내립니다. 바로 10년 안에 재단의 모든 자산을 쏟아붓고 문을 닫겠다는 '일몰(Sunset)' 선언이었습니다. 이 결정 이후 재단의 분위기는 180도 달라졌습니다. '언젠가 하겠지'라는 안일함은 사라지고, '지금 아니면 안 된다'는 절박함이 조직을 채웠습니다. 직원들은 조직의 소멸을 앞두고 불안해하기보다, 자신들이 역사의 한 페이지를 쓰고 있다는 효능감에 고취되었습니다. 존 헌팅은 이 과정에서 리더가 보여줄 수 있는 최고의 배려를 실천했습니다. 해산 3년 전부터 직원들의 재취업과 커리어 전환을 위한 전문 컨설팅을 제공했고, 마지막 퇴직금까지 꼼꼼히 마련하여, 지급했습니다. 2009년, 벨던 펀드가 공식적으로 문을 닫던 날, 리더와 직원들은 눈물 대신 환희 섞인 박수를 쳤습니다. 조직을 유지하느라 에너지를 낭비하지 않고, 미션의 완성을 위해 열정을 바쳤기 때문입니다. 벨던 펀드의 사례는 우리에게 묻습니다. 당신의 조직은 생존을 위해 존재합니까, 아니면 미션의 완성을 위해 존재합니까? (출처: Beldon Fund, "The Beldon Fund: A Case Study in Foundation Suns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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척 피니의 빈 가방: 죽기 전 다 주는 즐거움
두 번째 사례인 '애틀랜틱 필란트로피(The Atlantic Philanthropies)'의 설립자 척 피니(Chuck Feeney)는 리더의 '소유욕'과 '당위'로부터의 해방을 보여줍니다. 그는 세계적인 면세점 DFS의 공동 창업자로 막대한 부를 쌓았습니다. 그는 "죽어서 기부하는 것은 아무런 의미가 없다. 살아 있을 때 내 돈이 세상을 바꾸는 것을 보는 것이 가장 큰 즐거움이다"라는 'Giving While Living' 철학을 몸소 실천했습니다. 척 피니는 자신의 기부 사실을 비밀에 부쳤습니다. 재단 직원이 기부처에 자신의 이름을 발설하면 지원을 끊겠다고 협박할 정도였습니다. 그는 2020년, 마침내 80억 달러(약 9조 원)에 달하는 재산을 사회에 환원하고 재단을 공식적으로 해산했습니다. 재단 해산식 날, 그는 자신의 이름이 적힌 건물 하나 남기지 않은 채 텅 빈 가방을 들고 활짝 웃었습니다. 그는 조직을 영속시켜 자신의 영향력을 남기려는 욕심에서 해방되었습니다. 덕분에 재단은 관료주의에 빠지지 않고 인권 보건, 교육 등 가장 시급한 현장에 자원을 집중할 수 있었습니다. 조직을 유지하려는 관성이 오히려 미션의 방해물이 될 수 있음을, 그리고 리더가 내려놓을 때 비로소 자유와 기쁨을 얻을 수 있음을 척 피니는 실천했습니다. (출처: The Atlantic Philanthropies, "Final Reports: 1982-2020")
조직과 권위로부터의 해방: ‘성공적인 소멸’을 선택한 리더들
비영리 리더들이 가장 내려놓기 힘든 것 중 하나가 바로 ‘조직 그 자체’입니다. 조직이 커지고 영향력이 생길수록, 리더는 조직의 존속을 자신의 유능함과 동일시하게 됩니다. 그러나 진정한 리더십은 조직의 생존이 아니라 ‘미션의 완성’에 집중할 때 빛납니다. 여기 조직을 과감히 해산하는 용기를 실행하면서 가치를 더 빛나게 한 한국의 사례가 있습니다.
승리 후 축제: 호주제 폐지 시민연대의 결단
국내 사례 중 가장 감동적인 마침표는 '호주제 폐지 시민연대'에서 찾을 수 있습니다. 1950년대부터 시작된 호주제 폐지 운동은 한국 사회의 가장 견고한 가부장적 벽에 도전하는 험난한 여정이었습니다. 수많은 활동가가 수십 년간 고초를 겪었고, 갈등과 대립은 극한에 달했습니다. 마침내 2005년, 헌법재판소의 헌법불합치 결정과 민법 개정안 통과로 호주제는 역사 속으로 사라졌습니다. 승리의 순간, 리더들은 놀라운 결정을 내립니다. 이 거대한 승리의 동력과 네트워크를 이용해 새로운 여성 운동 조직을 만들거나 재편하는 대신, '시민연대'라는 조직을 즉시 해산하기로 한 것입니다. "우리의 목표는 달성되었고, 이제 각자의 자리로 돌아가 새로운 일상을 살자"는 선언이었습니다. 이들의 해산식은 장례식이 아니라 축제였습니다. 활동가들은 서로의 노고를 격려하며 기쁘게 이별했습니다. 조직을 유지하려 했다면 그 과정에서 주도권 다툼이나 미션의 왜곡이 발생했을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이들은 '박수 칠 때 떠나는' 용기를 냈습니다. 조직은 사라졌지만, 그들이 남긴 연대의 경험과 승리의 기억은 한국 시민사회의 토양이 되었습니다. 이는 조직의 수명이 다했음을 인정하는 것이 패배가 아니라, 오히려 가장 명예로운 승리의 완성임을 보여줍니다.


존재의 이유를 증명한 ‘아름다운 소멸’: '학벌없는 사회'의 선택
조직의 존속보다 가치의 실현을 우선시한 또 다른 상징적 장면은 2016년 '학벌없는사회를 위한 시민모임(이하 학벌없는사회)'의 자발적 해산입니다. 2000년 출범 이후 16년간 대한민국 사회의 성역이었던 학벌 카르텔에 균열을 내며 '대학 서열화 해체'와 '학벌 차별 금지'라는 화두를 사회적 상식으로 끌어올린 이들은, 역설적으로 그 운동의 성과가 절정에 달했을 때 스스로 '아름다운 소멸'을 기획했습니다. 이들이 해체를 선택한 이유는 조직의 노쇠화나 재정난 때문이 아니었습니다. 오히려 운동이 관료화되어 '단체 유지'가 목적의 하나로 되는 과정에서 발생된 다양한 갈등과 긴장에서 생명력을 잃는다는 엄중한 경계심, 그리고 전통적인 학벌 권력이 자본과 결합해 '금수저 담론'으로 진화한 시대적 변화를 읽어낸 자기 객관화의 결과였습니다. '우리가 사라짐으로써 우리의 메시지가 더 선명해지길 바란다'는 활동가들의 고백처럼, 과감하고, 경쾌한 해산을 통해 그 정신을 시민 개개인의 의식 속에 심는 '민주적 확산'을 단행했습니다. 비록 본부는 해산했으나 그 맥은 광주 지역의 독자적인 활동으로 이어지며 현장 중심의 역동성을 남겼고, 이는 오늘날 효율성과 성과에 매몰되어 조직 유지에 급급한 사회운동 조직에 '박수 칠 때 떠날 수 있는 리더십의 용기'가 무엇인지 깊은 울림을 전해주고 있습니다.

리더의 자발성과 ‘사회화된 자아’의 성찰
리더 역할을 수행하는 당신은 지금 진심으로 즐겁습니까? 이 질문에 선뜻 답하지 못한다면 당신은 지금 ‘사회화된 자아’에 갇혀 있을 가능성이 큽니다. 리더라는 직책이 주는 무게와 타인의 시선 때문에 현재를 견디고만 있지는 않은지 돌아봐야 합니다. 사회복지와 공익활동 현장의 조직 경영자들은 지속적이고, 습관적으로 자기 검열앞에 매일 서있을 가능성이 높습니다. 도덕적 완벽주의는 욕구와 감정을 억압합니다. 하지만 리더가 행복하지 않은 조직에서 주민과 이용자가 행복할 가능성은 낮습니다. 리더 또한 조직의 부품이 아니라 자기 삶을 주체적으로 살아가는 한 인간입니다. 리더가 즐겁지 않다면, 그 활동은 이미 공익의 궤도에서 벗어난 것일지도 모릅니다. 리더의 해방이 곧 조직의 해방입니다.

사람이라는 풍경을 만드는 사람들
마을복지와 주민조직화를 담당하는 사회복지사와 공익활동가는 사람과 사람 사이에 길을 내는 사람입니다. 그 길은 때로 험난하고 잡초가 무성합니다. 주민들은 마음 같지 않고 행정은 결과물을 재촉합니다. 하지만 여러분이 만드는 것은 보고서의 숫자가 아니라 사람이라는 풍경입니다. 주민 한 사람이 마음을 열고 이웃에게 손을 내미는 순간이 우리 업의 본질입니다. 주민들과 회원들이 스스로의 욕구를 발견하고 이를 공적인 가치로 전환할 수 있도록 곁을 지키는 촉진자가 되어야 하고, 기다려야 합니다. 엉성해도 스스로가 할 수 있도록 촉진하고, 인내하다가 도저히 감당이 어렵다면 아름답게 출문(出門)하고, 해산해도 됩니다. 비록 해산되었다고 하나 그 과정과 경험은 소중한 기억으로 없어지지 않습니다. 그 소중한 기억은 새로운 시도를 할 수 있는 토대가 될 것입니다. 리더분들이 주민 속에서 지치지 않고, 효능감을 느낄 때 지역사회는 비로소 변화합니다.
다시 현장의 리더들에게 건네는 격려와 응원
오늘도 현장에서 이름 없이 활동하는 비영리 경영자 여러분. 여러분의 어깨가 참 무거워 보입니다. 예산을 맞추고 인력을 관리하며 하루하루를 버텨내는 그 치열함의 눈빛을 느낄때가 많습니다. 때로는 왜 이 일을 시작했는지조차 잊어버릴 만큼 지칠 때도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여러분은 충분히 잘하고 있습니다. 여러분이 지켜온 그 현장 덕분에 누군가는 오늘을 살아갈 희망을 얻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가장 중요한 것은 조직의 존속이 아니라 여러분의 영혼입니다. 이제 스스로에게 조금 더 관대해지십시오. 완벽한 리더가 되려 하기보다 솔직한 리더가 되기를 바랍니다. 조직의 수명이 다했다면, 혹은 당신의 에너지가 고갈되었다면 멈춰 서도 괜찮습니다. 그것은 포기가 아니라 다음 스텝을 위한 명예로운 마침표입니다. 벨던 펀드처럼, 척 피니처럼, 그리고 호주제 폐지 시민연대와 학벌없는사회처럼 아름답게 마무리 해도 됩니다. 여러분이 먼저 해방되어야 여러분의 조직도, 그 조직이 만나는 주민들도 비로소 해방될 수 있습니다. 여러분의 여정에 늘 응원의 마음을 보냅니다. 여러분은 결코 혼자가 아닙니다. 함께 해왔던 수많은 동료가 다시 일어서는 여러분 곁에 다른 시공간에서 함께 하게 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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