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변화하는 고통을 이겨내겠다는 의지가 없고, 성장하는 자녀에게서 배울 의사가 없는 부모는 부지불식간에 노망의 길을 택하고 있는 것이다. 그래서 그들의 아이와 세상은 그런 부모를 뒤에 남겨 놓을 것이다. 자녀에게서 배운다는 것은 대개의 사람들이 의미있는 노년을 보내기 위해 자신을 준비하는 가장 좋은 기회이다."
스캇 펙, <아직도 가야할 길>
배움을 멈춘 부모, 고립을 자초하다
스캇 펙은 저서 《아직도 가야 할 길》에서 "변화의 고통을 감내할 의지가 없고, 성장하는 자녀에게서 배울 마음이 없는 부모는 무의식적으로 노망(Senility)의 길을 선택하는 것"이라 얘기합니다. 부모가 고정관념에 안주하며 자녀의 세계를 거부할 때, 아이와 세상은 자연스레 그들을 뒤에 남겨둔 채 나아갑니다. 역설적이게도 자녀의 삶에 깊이 참여하고 그들로부터 배우는 태도는, 부모가 의미 있는 노년을 맞이하기 위해 자신을 준비하는 가장 고귀하고도 최선의 기회입니다.
거창한 기도의 이면에 숨은 공허함
중년에 접어든 지금, 노년의 부모님이 건네는 "너를 위해 기도한다"는 말은 종종 무거운 부채감이나 공허한 메아리로 다가옵니다. 특히 개신교적 전통 안에서 나라와 민족을 위한 거목이 되게 해달라는 부모님의 기도는 그 스케일만큼이나 거창하지만, 정작 자녀의 구체적인 삶과 고민에는 가닿지 못할 때가 많습니다. 이러한 기도는 자녀에 대한 진정한 이해와 관심을 대신하는 일종의 편리한 '의례'가 되어버린 것은 아닌지 돌아보게 됩니다.
기도의 진실은 '경청'이라는 태도로 증명된다
기도의 진정성은 유창한 수사나 간절한 목소리가 아니라, 삶을 대하는 태도에서 증명됩니다. 자녀가 부모를 뛰어넘는 인물이 되길 원한다면, 부모는 마땅히 자신보다 앞서가는 자녀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여야 합니다. 자녀의 세계를 배우려 하지 않고 귀를 닫은 채 올리는 기도는 결국 자기 욕망을 읊조리는 독백에 불과합니다. 삶의 태도가 수반되지 않는 기도는 사랑의 표현이 아니라, '나는 부모로서 도리를 다했다'는 무책임한 자기만족이자 응석일 뿐입니다.

사유의 해체, 사랑이라는 기꺼운 번거로움
진정한 사랑은 자녀의 소리에 경청하고, 그로부터 얻은 새로운 깨달음에 감사함을 표현하는 것에서 시작됩니다. 무언가를 배운다는 것은 내가 평생 쌓아온 견고한 사유의 틀을 스스로 허물어뜨리는 뼈아픈 과정입니다. 자녀를 사랑한다는 것은 바로 이러한 '번거로운 해체'를 기꺼이 감수하겠다는 의지의 표명입니다. 부모가 자신의 낡은 세계관을 고집하기보다 자녀의 새로운 시각을 수용할 때, 비로소 그 기도는 독백을 넘어 진정한 사랑의 대화가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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