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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 [콩나물시루]

내 안의 '이성, 격정, 욕망'의 삼각지대: 사회복지사의 영혼은 안녕하십니까?

강정모 소장 2025. 12. 14. 23:34

2025년, 대한민국은 명실상부한 선진국 반열에 올랐고, 복지 시스템은 그 어느 때보다 촘촘하고 고도화되었다. 그러나 그 화려한 시스템의 혈관을 흐르는 이들, 바로 사회복지사와 비영리 활동가들의 영혼은 과연 안녕한가? 우리는 매일 감정노동과 정신노동의 최전선에서 타인의 삶을 지탱하느라, 정작 자신의 내면이 어떻게 허물어지고 있는지조차 감각하지 못하는 경우가 허다하다. 나는 오늘, 고대 철학자 플라톤의 지혜와 우리에게 익숙한 영화 속 캐릭터들을 빌려, 현장의 활동가들이 겪는 '영혼의 불균형'을 진단하고 지속 가능한 헌신의 길을 모색해 보고자 한다.

 

플라톤은 『국가』에서 인간의 영혼이 '이성(Reason)', '기개(Spirit/Thumos)', '욕망(Appetite)'이라는 세 가지 요소로 구성된다고 보았다. 이 세 가지가 조화를 이룰 때 우리는 비로소 '정의로운 인간'이 되지만, 어느 두 가지가 결탁하여 나머지 하나를 억압할 때 영혼은 병들고 괴물이 된다. 현장에서 우리가 마주하는 위기는 바로 이 균형이 깨질 때 찾아온다.

 

https://www.catholicnews.co.kr/news/articleView.html?idxno=34336 / 사진출

 

첫째, '이성'과 '기개'가 결탁하여 '욕망'을 억압하는 경우다. 당신 안의 '자베르 경감(영화 <레미제라블>)'을 경계해야 한다. 자베르는 '법(이성)'과 '정의 실현에 대한 신념(기개)'으로 똘똘 뭉친 인물이다. 그에게 인간적인 연민이나 쉼, 사적인 욕망은 불순한 죄악이다. 사회복지 현장에도 수많은 자베르들이 있다. 이들은 투철한 윤리 의식(이성)과 뜨거운 사명감(기개)으로 무장한 채, 정작 자기 자신을 돌보고 싶은 '욕망'은 무시한다. "클라이언트가 당장 끼니를 걱정하는데, 사회복지사인 내가 어떻게 맛집을 찾아다니며 쉴 수 있어?" 이러한 태도는 겉보기에 숭고한 성자(Saint)처럼 보인다. 하지만 이것은 '자기 착취'다. 밥 먹고, 쉬고 싶고, 인정받고 싶은 지극히 인간적인 본능인 욕망이 거세된 상태에서, 이성과 기개만으로 달리는 마차는 전복된다. 억눌린 욕망은 반드시 번아웃이나 우울증이라는 부메랑이 되어 돌아오며, 활동가를 현장에서 떠나게 만든다. 자베르가 자신의 신념과 현실의 괴리를 견디지 못하고 파국을 맞이했음을 기억해야 한다.

 

https://www.civilreporter.co.kr/news/articleView.html?idxno=1801 / 사진출처

 

둘째, '이성'과 '욕망'이 결탁하여 '기개'를 죽이는 경우다. 영화 <내부자들>의 논설주간 '이강희'가 되어가고 있진 않은가. 그는 누구보다 스마트한 두뇌(이성)와 권력욕(욕망)을 가졌지만, 사회 정의나 공분에 대한 뜨거운 가슴, 즉 '기개'가 잃어버린 인물이다. 그는 자신의 안위를 위해 글과 논리로 대중을 현혹하며, 그 과정에서 어떤 양심의 가책도 느끼지 않는다. 현장의 매너리즘은 우리를 '소시민적 이강희'로 만든다. 반복되는 평가, 과도한 행정 업무, "어차피 세상은 안 바뀐다"는 냉소 속에서 처음 품었던 '세상을 바꾸겠다'는 기개는 차갑게 식어버린다. 남은 것은 "규정상 어쩔 수 없습니다"라는 차가운 논리(이성)와 "월급만 제때 나오면 되지"라는 생계형 안위(욕망) 뿐이다. 기개가 죽은 사회복지사는 유능한 행정가는 될지언정, 사람의 마음을 움직이는 치유자는 될 수 없다. 클라이언트는 '사례 관리 번호'로 전락하고, 복지는 영혼 없는 '서비스 거래'가 된다. 이것은 처음에 꿈꾸던 사회복지사의 모습이 아니다.

 

https://www.nocutnews.co.kr/news/4647427 / 사진출처

 

셋째, '기개'와 '욕망'이 결탁하여 '이성'을 마비시키는 경우다. 영화 <베테랑>의 '조태오'라는 괴물이다. 물론 사회복지사가 조태오처럼 폭력적인 범죄를 저지르지는 않는다. 하지만 그 메커니즘, 즉 감정과 충동(기개/욕망)을 통제할 이성이 결여된 상태는 현장에서 다른 형태의 위험으로 나타난다. 자신의 인정 욕구(욕망)와 과도한 열정(기개)이 결합할 때, 우리는 '전문적 경계(Boundary)'를 무너뜨린다. 클라이언트에게 과도하게 감정을 이입하거나, 조직의 원칙과 매뉴얼(이성)을 무시하고 독단적인 판단으로 개입한다. "내가 저 사람을 구원해야 해"라는 맹목적인 믿음은 종종 클라이언트의 자기 결정권을 침해하는 결과로 이어진다. 이성이 배제된 열정은 '선의'로 포장된 독이 될 수 있다.

 

https://namu.wiki/w/%EC%A1%B0%ED%83%9C%EC%98%A4 / 사진출처

 

그렇다면 2025년을 살아가는 우리는 어떻게 이 세 가지 괴물과 싸워 균형을 잡아야 하는가? 플라톤은 영혼을 마차에 비유했다. 우리는 이 세 가지 말이 이끄는 마차를 모는 마부다. 이성이라는 고삐를 쥐고, 기개라는 사자와 욕망이라는 괴물을 적절히 달래며 목적지를 향해 가야 한다. 가장 시급한 것은 '건강한 욕망의 복권'이다. 우리는 너무 오랫동안 활동가의 욕망을 죄악시해왔다. 맛있는 것을 먹고, 좋은 곳에서 쉬고, 정당한 보상을 바라는 것은 속물이 아니라, 내 영혼을 지키는 최소한의 안전장치이자 '지속 가능성'의 토대다. 내 안의 엄격한 자베르(이성)가 쉴 틈을 주지 않을 때, "나도 사람이다, 쉬어야 돕는다"라고 외치며 스스로에게 쉼을 허락해야 한다.

 

동시에 '기개(Thumos)'의 재발견이 필요하다. 기개는 단순히 화를 내는 것이 아니다. 그것은 부당함에 맞서는 용기이자, 지치지 않고 나아가게 하는 에너지다. 행정 서류 더미 속(이성)에서도 사람을 향한 따뜻한 관심(기개)을 잃지 않도록, 스스로 가슴 속에 장작을 넣어야 한다. 영혼 없는 이강희가 되지 않기 위해, 우리는 부당함에 분노하고 사람을 연민하는 그 뜨거운 마음을 지켜내야 한다

 

마지막으로, 조태오가 되지 않기 위해 끊임없이 '성찰의 거울(이성)'을 닦아야 한다. 나의 열정이 맹목적인지, 나의 개입이 나의 만족을 위한 것인지 끊임없이 묻고 점검해야 한다오늘, 거울을 보며 스스로에게 질문해 보자. "나의 이성은 차가운가, 따뜻한가?" "나의 기개는 살아있는가, 타버렸는가?" "나의 욕망은 숨 쉬고 있는가, 질식해 있는가?" 2025년의 사회복지사는 희생하는 성자(Saint)도, 영혼 없는 기능인(Functionary)도 아니어야 한다. 우리는 내 안의 '자베르'에게 휴식을, '이강희'에게 정의감을, '조태오'에게 냉철함을 선물해야 한다.

 

머리는 차갑게(이성), 가슴은 뜨겁게(기개), 그리고 배는 든든하게(건강한 욕망). 이 세 박자가 어우러질 때, 우리는 비로소 소진되지 않고 현장을 지키는 진정한 '베테랑'이 될 수 있을 것이다. 이것이야말로 이 복잡하고 고단한 시대에, 당신과 내가 오랫동안 웃으며 이 길을 걸을 수 있는 유일한 생존법이다.

 

 

[함께 읽고 보면 좋은 텍스트]

  • 책: <국가(Politeia)>, 플라톤, 영혼의 조화를 다룬 고전의 정수.
  • 영화: <인사이드 아웃>, 내 안의 다양한 감정들이 어떻게 협력하여 '나'를 지키는지 보여주는 훌륭한 심리학적 보고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