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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 [콩나물시루]

[주민자치칼럼] “돈도 안 되는 일을 왜 하냐고요?” : 당신의 삶을 확장하는 ‘사회적 자본’

강정모 소장 2025. 12. 7. 18:58

주민자치 교육 현장에 서면, 위원님들께 종종 이런 질문을 던집니다. “주변에서 이런 말 들어보신 적 없으세요? ‘거, 돈도 안 되는 일 뭐 하러 그리 열심히 하러 다니나?’” 그러면 십중팔구 객석 여기저기서 씁쓸한 웃음과 함께 고개가 끄덕여집니다. 우리는 자본주의 사회를 살고 있고, 많은 이들이 ‘돈’을 행복의 척도로 여기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정말 돈만이 우리를 움직이는 유일한 동력일까요? 

 

경제학자 브루노 프레이(Bruno Frey)는 흥미로운 실험을 통해 인간의 마음이 단순히 돈으로 계산되지 않음을 증명했습니다. 그는 ‘동기 혼잡 이론(Motivation Crowding Theory)’을 통해, 사람들이 자발적인 즐거움이나 도덕적 의무감(내재적 동기)으로 행하는 일에 섣불리 돈(외재적 동기)을 개입시키면, 오히려 의욕이 꺾이는 현상을 발견했습니다. 예를 들어, 자원봉사자에게 소액의 수고비를 지급하면 “내가 겨우 이 돈 받으려고 이 고생을 하나?”라는 생각이 들며 숭고한 봉사 정신이 사라져 버리는 것이지요. 아이리스 보넷(Iris Bohnet)과 함께한 실험도 마찬가지입니다. 낯선 사람에게 돈을 나눠주는 실험에서, 금전적 보상을 받은 그룹이 보상을 받지 않은 그룹보다 오히려 더 인색한 태도를 보였습니다. 돈이라는 프레임이 씌워지는 순간, 인간은 ‘관계’보다 ‘이익’을 먼저 계산하게 되며 신뢰를 잃어버린다는 것입니다.

 

이러한 경제학적 통찰은 제가 강연장에서 위원님들과 함께 진행한 ‘봉투 실험’을 통해 더욱 생생하게 증명되었습니다. 저는 브루노 프레이와 아이리스 보넷이 입증한 ‘소통과 식별이 협력을 이끌어낸다’는 원리를 확인해 보고자 했습니다. 실제로 서로 칸막이를 치고 얼굴도 모르는 A그룹과 B그룹에게 10만 원을 주고 나누라고 했을 때, 사람들은 평균 2만 5천 원 정도만 봉투에 넣으며 나눔에 소극적인 모습을 보였습니다. 하지만 두 학자의 이론대로 칸막이를 치우고 서로 얼굴을 마주 보며 “어디 사세요?”, “취미가 뭐세요?” 같은 가벼운 대화를 나누게 하자 놀라운 일이 벌어졌습니다. 봉투에 넣은 금액이 평균 5만 원으로 두 배나 껑충 뛴 것입니다. 단지 서로의 눈을 맞추고 존재를 확인했을 뿐인데, 나의 이익을 기꺼이 타인과 나누려는 마음이 생겼습니다. 이것이 바로 경제학이 증명한 ‘네트워크가 돈이 되는 순간’이며, 우리가 주민자치 활동을 통해 만들어내는 ‘사회적 자본(Social Capital)’의 실체입니다.

 

강연장에서 저는 위원님들께 기습적으로 질문을 던지곤 합니다. “돈 많은 사람이 훌륭한 사람입니까?” 간혹 “네”라고 대답하고는 이내 겸연쩍게 웃으시는 분들도 계십니다. 물론 돈이 많으면서 훌륭한 사람일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반드시 그런 것은 아닙니다. 사회도 마찬가지입니다. ‘돈 많은 사회’가 곧 ‘훌륭한 사회’를 의미하지는 않습니다. 우리가 꿈꾸는 선진국, 우리가 살고 싶은 마을은 돈(자본)과 신뢰(사회적 자본)가 균형을 이루는 곳입니다. 사회적 자본이 풍부한 마을은 약자를 배려하는 방식부터 다릅니다. 제가 강연 중 보여드린 방문 손잡이를 기억하십니까? 둥근 손잡이를 아래로 내리는 레버형 손잡이로 바꾸는 것은, 손을 쓰기 불편한 장애인을 위한 배려에서 시작되었습니다. 하지만 그 결과 양손에 짐을 든 비장애인도 편리하게 문을 열 수 있게 되었습니다. 우리가 매일 걷는 거리의 ‘횡단보도 경사로도 마찬가지입니다. 휠체어를 탄 장애인의 이동권을 보장하기 위해 보도블록의 턱을 낮춘 이 작은 변화는, 유모차를 미는 아이 엄마, 무거운 짐가방을 끄는 여행객, 손수레를 끄는 어르신까지 모두의 발걸음을 가볍게 만들었습니다. 누군가의 ‘불편함’을 우리의 ‘문제’로 인식하고 해결하려는 공동체의 노력이, 결과적으로 구성원 모두에게 이익으로 돌아오는 것. 사회적 소수자를 위한 배려가 결국 공동체 구성원 모두의 삶을 윤택하게 만드는 것, 이것이 바로 사회적 자본이 선물하는 ‘연대의 마법’입니다.

 

 

은퇴 후, 혹은 중년의 나이에 접어들어 주민자치 활동에 참여한다는 것은 내 삶의 울타리를 확장하는 일입니다. 아파트 옆집에 누가 사는지도 모른 채 고립되어 살아가는 ‘단절의 시대’에, 내가 위기에 처했을 때 나를 보호해 줄 수 있는 공동체, 내가 긍정적인 에너지를 주고받을 수 있는 이웃을 만드는 일입니다. 이는 100세 시대를 행복하게 살아가기 위해 통장 잔고만큼이나, 아니 그보다 더 중요한 ‘관계의 잔고’를 쌓는 과정입니다. 그러니 누군가 “돈도 안 되는 일을 왜 하냐”고 묻거든, 이제 당당하게 말씀하십시오. “우리는 우리 마을을 돈만 많은 동네가 아니라, 신뢰받고 지속 가능한 ‘훌륭한 마을’로 만들기 위해 ‘사회적 자본’을 생산하고 있습니다.”

 

 

주민자치위원 여러분, 여러분은 단순한 자봉사자가 아닙니다. 우리 마을의 민주력을 깨우고, 사람과 사람을 이어 신뢰라는 자산을 쌓아가는 ‘사회적 자본의 촉진자’입니다. 여러분의 활동이 쌓일수록 우리 마을은 더 안전해지고, 더 따뜻해지며, 결국 더 살기 좋은 곳으로 변모할 것입니다. 그것이 바로 우리가 주민자치를 하는 진짜 이유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