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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구소칼럼[콩나물시루]

지구가 보낸 서늘한 경고: ‘잠시 멈춤’이 일깨운 무위(無爲)의 연대

강정모 소장 2020. 4. 12. 11:59

 

 

 

잃어버린 봄과 낯선 하늘

코로나19는 세계를 멈춰 세웠습니다. 봄은 왔으나 봄 같지 않다는 '춘래불사춘(春來不사春)'이라는 말이 이토록 절실했던 적은 없었습니다. 사실 우리에게 봄은 이미 오래전부터 본래의 빛깔을 잃었습니다. 지난 10여 년간 한반도의 봄은 황사와 미세먼지로 얼룩진 회색빛이었습니다. 아이들은 머릿속에 부연 안개 속에서 피어나는 꽃들을 봄의 기본값으로 저장하며 자랐습니다. 부모로서 기성세대로서 아이들에게 이런 환경을 물려주었다는 죄책감은 매년 아지랑이처럼 피어오르곤 했습니다. 하지만 역설적이게도 바이러스가 창궐한 그해 봄, 창밖에는 유례없이 새파란 하늘과 눈부신 햇살이 펼쳐졌습니다. 다만 그 풍경 속에 사람의 온기만 사라졌을 뿐입니다.

멈춤이 가져온 생태계의 회복력

바이러스는 세계를 멈춘 것이 아니라 '세계의 사람들'을 멈춰 세웠습니다. 인간이 일시 정지하자 지구는 기다렸다는 듯 숨을 쉬기 시작했습니다. 멸종위기 생물이 다시 나타나고, 보이지 않던 고래들이 근해에서 포착되었습니다. 대기질 지표는 붉은색에서 푸른색으로 변했고 오염되었던 수질이 개선되었습니다. 인간의 경제는 어두운 전망을 내놓고 사망자는 늘어가는 비극 속에서, 지구 환경만큼은 경이로운 속도로 회복되었습니다. 지구가 휴식한 시간은 채 두 달이 되지 않았습니다. 회복의 속도는 인간의 파괴 속도보다 훨씬 빨랐습니다.

데이터가 증명한무위의 효과

실제로 이러한 변화는 과학적 수치로 증명되었습니다. 미국 항공우주국(NASA)과 유럽우주국(ESA)의 위성 관측 데이터에 따르면, 2020년 초 중국과 유럽 전역의 이산화질소(NO2) 농도는 전년 동기 대비 약 20~30% 급감했습니다(출처: NASA Earth Observatory, 2020). 베네치아 운하의 물이 맑아져 물고기 떼가 돌아오고, 인도의 일부 지역에서는 수십 년 만에 히말라야 산맥이 육안으로 확인되는 기적이 일어났습니다. 이는 거액의 기후 기금과 수많은 환경 보호 캠페인이 수십 년간 노력해도 도달하지 못했던 수치였습니다. 아무것도 하지 않음으로써 많은 것을 이루는 '무위(無爲)'의 역설이 전 지구적 규모로 실현된 셈입니다.

지구의 관점으로 바라본 치유의 서막

우리는 코로나19 퇴치를 위해 전례 없는 연대를 경험했습니다. 하지만 이 조치들은 동시에 기후 위기를 해결하는 가장 강력한 방법이 무엇인지 지구 스스로가 몸소 보여준 호소이기도 합니다. 한 기사의 댓글에는 '지구 시점'의 성찰이 담겨 있었습니다. "지구 입장에서는 인간이 바이러스일지 모른다. 코로나19는 인간 활동을 억제하여 스스로를 치유하려는 지구의 면역 반응이다."라는 시각입니다. 만약 우리가 이 신호를 무시하고 과거의 방식으로 회귀한다면, 지구는 억제가 아닌 박멸을 선택할지도 모릅니다. 지금의 서늘한 봄은 우리에게 근본적인 전환을 촉구하고 있습니다.

활동가와 복지 종사자를 위한 새로운 지혜의 수렴

이제 시민단체 활동가와 사회복지 종사자들은 이 '잠시 멈춤'의 경험을 공동체 복지의 새로운 동력으로 전환해야 합니다. 그동안 우리가 추구해온 성과 중심의 양적 팽창이 오히려 지역사회의 생태적 토대를 무너뜨리지는 않았는지 되돌아볼 때입니다. 주민 조직과 마을 복지의 핵심은 단순히 많은 프로그램을 운영하는 것에 있지 않습니다. 오히려 주민 스스로가 서로의 존재를 살피며 불필요한 욕망을 덜어내고, 자연과 공존하는 삶의 양식을 복원하는 '관계의 밀도'에 집중해야 합니다위기 상황에서 보여준 연대와 배려의 경험을 기후 위기 대응과 지역 복지 생태계 구축을 위한 집단지성으로 모아주시기 바랍니다. 인간과 자연이 공존할 수 있는 마을의 미래를 설계하는 일, 그것이 이 시대를 살아가는 우리 활동가들과 복지 전문가들이 마주해야 할 가장 품격 있는 책무일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