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보이지 않는 토대, 정리정돈의 가치
뛰어난 성취와 고상한 활동은 거저 주어지지 않습니다. 그것은 반드시 일상의 단순하고 지루하며 반복되는 일들에 빚을 지고 있습니다. 명예로운 활동을 꿈꾼다면 그 이면을 살펴야 합니다. 누군가의 알아주지 않는 수고, 즉 ‘정리정돈’이라는 뒷받침이 있어야 비로소 빛나는 성과가 가능하기 때문입니다. 박수받는 일에만 몰두하다 보면 정작 중요한 것을 놓치기 쉽습니다. 정리정돈의 수고를 가볍게 여기고 겸손함을 잃는 순간, 우리가 쌓아 올린 명예는 오히려 깊은 수렁으로 변합니다. 명예가 크고 깊을수록 그 수렁의 깊이 또한 비례합니다. 일상의 기본을 소홀히 한 채 분주함만을 쫓는다면, 공들여 쌓은 모든 노력은 순식간에 물거품이 될 수 있습니다.
조직의 에너지를 다스리는 엔트로피 법칙
에너지는 늘 평형 상태로 돌아가려 합니다. 뜨거운 것도 차가운 것도 방치하면 결국 미지근한 상태가 됩니다. 이것이 엔트로피 법칙입니다. 훌륭한 일이란 타자에게 에너지를 부여하거나, 때로는 냉정한 비판으로 에너지를 조절하는 과정입니다. 행정, 기반 조성, 회계, 현장 준비, 사무실 청소와 같은 공통 조건이 없다면 어떤 훌륭한 사업도 성립되지 않습니다. 안타깝게도 일의 성과가 화려할수록 이 기반을 다지는 이들의 존재는 쉽게 잊히곤 합니다.
네덜란드 부르트조르그(Buurtzorg)의 지속가능성
세계적인 재가 요양기관인 네덜란드의 ‘부르트조르그’는 이 원리를 가장 잘 보여주는 사례입니다. 이들은 간호사들이 현장에서 대상자에게 집중하는 ‘의미있는 활동’을 펼칠 수 있도록, 복잡한 위계 대신 단순하고 명확한 행정 시스템을 구축했습니다. 설립자 요스 데 블록(Jos de Blok)은 현장 간호사들이 본질적인 업무에 충실할 수 있도록 ‘뒷일’에 해당하는 IT 기반의 행정 효율화를 했습니다. 화려한 마케팅보다 ‘기본적인 돌봄의 질’과 이를 뒷받침하는 ‘사무적 간결함’에 집중한 결과, 부르트조르그는 네덜란드에서 가장 신뢰받는 조직이 되었습니다. (출처: 프레데릭 라루, 『조직의 재구성』)
마쓰시타 고노스케의 '청소 경영'
일본 경영의 신이라 불리는 마쓰시타 고노스케(松下幸之助)는 '사소한 일'을 하찮게 여기는 조직 문화를 가장 경계했습니다. 그는 공장을 세울 때 화장실 청소 상태를 가장 먼저 점검한 것으로 유명합니다. 한번은 화장실이 지저분한 것을 보고 직접 청소 도구를 들었습니다. 그는 "자신이 사용하는 곳조차 정돈하지 못하는 사람이 어떻게 고객에게 감동을 주고 세상을 바꾸겠는가"라며 질책했습니다. 이는 단순한 위생 관리를 넘어, '뒷일'과 '기본'을 무시하는 오만함이 조직을 어떻게 망치는지를 경고한 사례입니다. 마쓰시타는 청소라는 반복적인 일을 통해 겸손을 배우지 못한 리더는 조직을 수렁으로 인도한다는 인식을 가졌습니다. (출처: 마쓰시타 고노스케, 『길을 열다』)
일상의 겸손함이 만드는 활동의 근육
훌륭함을 오래 유지하고 싶다면 일상의 정리정돈 앞에서 겸손해야 합니다. 밥을 먹고, 설거지를 하고, 주변을 청소하는 행위는 개인과 조직의 건강을 지탱하는 가장 정직한 토대입니다. 이는 시민단체 활동가나 사회복지사에게도 동일하게 적용됩니다. 거창한 담론과 거대 의제를 논하기에 앞서, 우리 조직의 행정 체계와 현장의 기본 준비를 살피는 마음가짐이 필요합니다. 현장의 활동가 여러분 우리의 역량은 화려한 담론이 아닌, 아무도 보지 않는 사무실의 행정 서류와 주민과의 사소한 약속을 지키는 뒷모습에서 성숙해집니다. 주민 조직과 지역 복지의 성패는 결국 ‘기본의 반복’을 대하는 태도에 달려 있습니다. 보이지 않는 곳에서 묵묵히 기반을 닦는 동료의 수고를 존중하고, 스스로 일상의 정돈을 수행할 때 우리의 활동은 비로소 단단해집니다. 수렁에 빠지지 않는 건강한 공동체를 만드는 힘은 바로 오늘 우리가 마주한 작은 정리정돈에서 시작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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