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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 [콩나물시루]

진보의 출발은 약자에게 "사과하기"

강정모 소장 2018. 11. 19. 16:03

진보는 어려운 일이다. 


내가 선택하지 않은 삶의 환경으로 구성된 것을 거부해야 하기 때문이다.

내가 선택하지 않은 삶의 환경이란 부모, 형제, 친족, 민족, 국가, 사회, 문화 등이 있다. 

특히 어릴적 부모는 신과 같은 존재다.

 

사실 우리가 언어로는 동일하게 신을 부르지만 

부르는 '신'에 투영하는 상상과 의미는 좋든, 싫든, 그리워하든, 두려워하든

내 부모의 환타지일 가능성이 크다. 


내가 선택하지 않은 부모에게 양육되어지는 것은 누군가에겐 축복이지만, 

누군가에겐 안타깝게도 저주다. 

또는 축복과 저주가 혼재되어 있다. 대개 많은 사람들에게는 혼재되어 있을 것이다. 

독립할 때까지 우리는 부모양육의 축복과 저주로 구성되어 진다. 


비극적인건 부모가 구성시킨 독립직전의 존재가 되어갈때 즈음 우리는 되돌아볼 겨를도 없이, 부모가 된다는 것이다. 우리는 겨우 구성된 존재에서 벗어나 내 '선택'으로 나를 구성해나갈 즈음에 내가 낳은 자녀들을 구성한다. 나도 내가 구성하지 못했는데, 누군가를 구성하는 현실에 놓이는 것이다. 그래서 진보는 어렵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인간은 진보하여 왔다. 

동물의 왕국에서 인간사회로 진보한 것은 한 걸음, 한 걸음씩 우리의 선택으로 직접 구성한 산물을 확보해왔고, "내 선택"으로 구성한 것을 기꺼이 "책임"져 왔기 때문이다.

즉 '변명하는 존재'에서 '책임적 존재'로 변화되어 갔다. 


일상에서 진보한다는 것은 

우리 자녀와 후배들에게 내 부모와 선배들에게 받지 못한 것을 전해주고

우리 자녀와 후배들에게 내 부모와 선배들에게 받은 것을 전달하지 않는 "선택"이다.

받지 못한 것에는 사과하기, 감사하기, 눈 마주치고 사랑한다고 말하기, 실패담 얘기하기

무엇보다 어려운 것은 자녀들의 고민을 진지하게 귀기울여 주기다. 

받은 것에는 무시하기, 자랑하기, 소리지르기, 자기 얘기만 하기다.

받지 못한 것을 전달하고, 받은 것을 되돌려주지 않을 때 그것을 용기라 하고

그러한 용기가 축적되면 진보가 이뤄진다. 


부모에게 받아본 적 없는 자녀와 후배에게 자신의 잘못을 '사과하기'라는 행위는 예수가 말한 거듭남(Re-born)에 가까운 행위다. 동료나 상사, 권위자가 아닌 자에게 사과하기 위해서는 자기존중감, 성장과정의 고찰, 사과의 언어, 사과의 유용성, 시대변화 인식의 토대가 함양되어야 가능하다. 

 

부모에게 받은 폭력, 무시를 자녀와 후배에게 멈추기 위해서도 내가 그 행위를 실행했을때 역겨움을 느낄수 있는 상상력을 발휘해야 가능하고, 자녀와 후배도 나와 동일한 인격의 "인간"으로 바라보는 성찰이 뒷받침되어야 가능한 산물이다. 


진보를 열망한다면 나보다 신체적, 사회적, 경제적 약자에게 '사과하기'로 출발해보자. 

시작은 많은 에너지를 필요로 하지만 한번의 실천은 중력권을 벗어나게 하여 그 다음부터는 쉽다. 

나보다 약자에게 '사과하기'의 삶의 유용성은 "나는 옳고, 나는 옳아야 해"라는 부담에서 홀가분해진다는 것이다. 이것을 해방이라 한다. 해방은 연대를 불러오고, 연대는 외로움의 고통을 치유한다. 


진보는 약자에게 사과하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