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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구소칼럼[콩나물시루]

성과라는 종교와 결별하기: 코로나19가 남긴 '발전'의 재정의

강정모 소장 2020. 6. 7. 09:32

우리 시대의 지배적 종교, 발전

코로나19가 우리 사회의 일상을 멈춰 세웠던 기억이 선명합니다. 당시 우리는 사스나 메르스처럼 위기가 금방 지나가리라는 희망을 품었습니다. 하지만 바이러스는 인류의 기대를 비웃듯 장기화되었습니다. 이 과정에서 우리가 마주한 사실은 명확합니다. 진보와 보수를 막론하고 우리 사회가 '발전'이라는 가치에 비정상적으로 집착해 왔다는 점입니다. 어제보다 오늘이 더 생산적이어야 한다는 강박은 우리 시대의 거대한 종교가 되었습니다.

성과와 죄책감의 굴레

발전 이데올로기는 양적, 질적 성과를 끊임없이 요구합니다. 설령 절대적인 성과가 넘쳐나도 타인과의 상대적인 비교에서 뒤처지면 우리는 즉각 죄책감을 느낍니다. 누군가 죄를 묻지 않아도 스스로 '상대적 발전'을 이루지 못한 자신을 처벌합니다. 이러한 구조 속에서 우리는 발전하는 존재, 혹은 발전하지 못하는 존재라는 이분법적 틀에 갇힙니다. 코로나19는 이 굴레에 멈춤 신호를 보냈습니다. 그리고 우리에게 본질적인 질문을 던졌습니다. 우리가 쫓는 발전의 실체는 무엇입니까?

성장 너머를 바라보는 시선, 암스테르담의 도넛

발전의 정의를 새롭게 정립하려는 시도는 이미 세계 곳곳에서 일어나고 있습니다. 대표적인 사례가 네덜란드 암스테르담의 '도넛 경제 모델' 도입입니다. 2020년 4월, 암스테르담 시정부는 팬데믹 이후의 회복 전략으로 경제학자 케이트 레이워스(Kate Raworth)의 이론을 채택했습니다. 이 모델은 무한한 GDP 성장을 목표로 삼지 않습니다. 사회적 기초(보건, 교육, 주거 등)를 충족하면서도 지구의 생태적 한계를 넘지 않는 '균형'에 집중합니다. 암스테르담은 이를 통해 시민의 삶의 질을 높이고 환경을 보호하는 것이 진정한 의미의 발전임을 증명하고 있습니다. 이는 숫자로 치환되는 성과보다 구성원의 존엄과 공존이 우선임을 시사합니다. (출처: Amsterdam City Government, "The Amsterdam City Doughnut", 2020)

 

도구적 인간에서 존재적 인간으로

발전에 매몰된 세계관은 인간을 도구로 전락시킵니다. 확진자 숫자의 추이에 일희일비하며 통제의 대상으로 스스로를 가두기도 했습니다. 이제는 '발전을 해야만 하는 나'라는 강박에서 벗어나야 합니다. 사회적 가치를 지향하는 이들에게 필요한 것은 속도가 아닌 방향입니다. 단순한 기능적 성장에 매몰되지 않고, 우리 공동체가 지향해야 할 가치가 무엇인지 대답해야 할 때입니다. 코로나19는 우리에게 '발전'이란 무엇인가?라고 묻고자 왔는지도 모르겠습니다. 발전한 사람들, 발전하지 못한 사람들, 발전을 해야만 하는 사람들, 그렇게 발전에 시달리는 인간들이여 너희들은 도대체 누구인가?라고 말입니다. 

 

현장의 지혜를 모으는 새로운 연대

선진국은 선진국만의 특징이 있습니다. 민주주의의 토대인 개인주의(자신의 문제는 자신이 결정하고, 책임지는 문화) 향상되기에 외로움과 사회적 고립이 심화되어 가게 됩니다. 많은 선진국들은 외로움을 다루는 중앙정부부처 장관을 신설하고 있으며, 특히 펜데믹 시기에 더욱 고려를 하고 있는 중입니다. 국가는 외로움, 고립, 공동체 문화형성에 많은 세금을 투여해야 합니다. 그 과정에 시민단체 활동가와 사회복지 종사자 여러분, 그리고 지역복지의 최일선에 계신 분들의 역할은 더욱 엄중해졌습니다. 주민조직화와 마을복지는 단순히 사업의 규모를 키우는 과정이 아닙니다. 이웃과 이웃이 연결되고, 소외된 이들이 자신의 목소리를 내며, 서로의 안녕을 살피는 '관계의 복원'이 핵심입니다. 이제 한국의 사회복지는 '생존' 중심의 사고에서 '행복'중심의 가치로 전환되어야 합니다. 우리는 숫자로 증명되는 성과 너머의 가치를 발견하는 전문가들입니다. 주민의 삶 속에서 진정한 발전의 의미를 길어 올리고, 이를 정책과 실천으로 전환하는 역량을 발휘해야 합니다. 각자의 현장에서 쌓아온 지혜를 수렴하여, 속도에 지친 우리 사회에 새로운 이정표를 제시해 주시길 기대합니다. 진정한 발전은 함께 걷는 걸음 속에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