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의 두뇌는 단기적이고, 비약적인 발전을 좋아한다. 등락과 빠른 변화, 선정적 뉴스에는 민감하게 반응하지만, 꾸준한 발전은 거의 지각하지 못한다. 그래서 우리는 아무것도 하지 않는 것보다는 무엇이라도 하는 것을, 우두커니 생각하는 것보다는 분주하게 움직이는 것을, 기다리는 것보다는 행동하는 것을 더 좋게 평가한다. 안타깝게도 우리 두뇌는 장기적인 안목으로 작용하는 기관이 아니다. 그래서 지수적 성장에 대한 감이 부족하다.
시대를 통틀어 가장 많이 팔린 책은 성경, 코란, 공산당선언, 반지의제왕, 어린왕자, 데미안 같은 책이다. 롱셀러라 부르는 이런 책들 없이는 출판사가 살아남을 수 없다. 장기간에 꾸준히 팔리는 무엇이 중요하다. 장기적 성공은 느리고, 지루하지만 최상의 결과를 도출한다. 이것이 꾸준함의 비밀이다.
조용한 삶일수록, 더 생산적이다. 소크라테스는 파티(향연)를 종종 했지만 대부분의 시간은 아내와 함께 했다. 칸트는 고향에서 10마일이상 벗어난 적이 없었고, 정확한 시간에 동일한 작업을 하였다. 다윈은 세계 일주에서 돌아온 뒤에는 죽을 때까지 조용히 집에 머물렀다. 위대한 사람들은 조용한 삶을 살았고, 그들의 삶에서 즐거움은 밖에서 볼 때 별것 아닌 소소한 것들이었음을 알 수 있다. 산만함과 좋은 아이디어, 분주함과 깨달음, 행동과 결과사이에는 긍정적인 상관관계가 존재하지 않는다.
능력의 범위가 생기면, 가능한 한 오래 그 안에 머물라. 인내와 꾸준함과 장기적인 안목은 굉장한 가치가 있지만, 상당히 과소평가되는 덕목이다. 찰리 멍거, “당신은 뛰어나지 않아도 된다. 다만 다른 사람들보다 평균적으로 조금만 더 영리하게 오래오래가면 된다.” 삶의 진리는 느리고, 지루한, 장기적인 과정만이 최상의 결과를 도출한다는 것이다.
<불행피하기 기술> 롤프 도벨리 지음 p107 투기와 투자의 차이를 이해하라_꾸준함의 비밀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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쉴틈없이 분주하게 업무를 수행하던 주니어 실무자들이 높은 직급으로 올라갈수록 연습해야할 것은 멈추기, 가만히 있기다. 직급이 올라갔으나 주니어 시절처럼 분주하게 무언가를 계속하는 행위는 '부지런함'의 미덕이 아니라 높은 직급에 대한 두려움 또는 불안의 외적 증표일 가능성이 있다. 높은 직급으로 올라갈수록 우리 팀이, 우리 부서가 '어떻게 목표를 달성할 것인가?'가 아니라 '무엇을 목표로 삼을 것인가?'에 대한 질문앞에 서있어야 하며, 찾고 선택해야 하는 책임이 있다. 찾고, 선택하고, 책임지는 과정은 일하기가 아니라 생각하기에 있으며, 생각하기는 일하기를 멈추고, 위임하지 않으면 일어나지 않는다. 하지만 대개 많은 조직원들은 직급이 올라가도 과거에 익숙했던 '일하기'로 모든 시간을 다 채워서 높은 직급이 감당해야할 '선택하고 책임지는 역량'은 빈약한 채, 다가오는 책임을 팀원들에게 돌리는 회피처세만 늘어갈 뿐이다. 가만히 있는 것은 무기력함이 아니라 과열된 심리를 냉각시키는 치유과정이며, 더 나은 도약을 위한 정비과정이며, 생명약동이다.
우리는 아무것도 하지 않는 것보다는 무엇이라도 하는 것을, 우두커니 생각하는 것보다는 분주하게 움직이는 것을, 기다리는 것보다는 행동하는 것을 더 좋게 평가한다. 이것은 우리의 진화적 과거 때문이다. 우리 조상들은 가만히 앉아 부단히 기다리고, 인내하기보다는 즉각 행동을 취함으로써 살아남았다. 기다리며 생각하기보다는 한 번이라도 더 실행하는 편이 나았다. 그리하여 불확실한 상황에서 무조건 행동하고 보려는 행동편향(action bias)이 생겼다.
<성공하는 사람들의 7가지 습관>의 저자인 스티븐 코비는 <습관1>에서 할 수 있는 것에 집중하기와 <습관3>에서 "중요하지만 긴급하지 않은" 것을 도출하였다면 그 다음 과제는 천천히(Slow) & 꾸준히(Steady) 그것을 행동하는 것 뿐이라고 했다. 즉 스티븐 코비는 조직의 변화와 성장을 위해서는 중요하지만 긴급하지 않은 것 중에서 지금이라도 할 수 있는 것들을 골라내는 전략을 세웠으면 그것을 '천천히' 하되 '꾸준히' 하라는 실천을 제시했던 것이다. 이것은 특별히 스티븐 코비가 얘기한 것이 아니라 동서고금의 성인과 고전이 우리에게 공통적으로 전하는 지혜다. 하지만 영화 <매트릭스>의 모피어스의 대사처럼 "길을 아는 것과 그 길을 걷는 것은 분명히 다르다"
영국의 철학자 버트란트 러셀은 <게으름에 대한 찬양>이라는 책을 썼다. 이 책에서 러셀은 "아이들에게 가르쳐야 할 것은 대부분의 인생은 지루한 것들로 채워져 있다는 사실을 가르쳐야 한다"고 했다. 사실 그렇다. 우리 삶의 대부분은 사건과 사건이 아니라 사건과 사건을 잇는 '평범한 일상'으로 채워져 있다. 사건이 의미가 있으려면 사건과 사건 사이의 일상이 튼튼해야 한다.
또한 러셀은 영국의 사회주의 운동의 하나인 “페이비언 사회주의”는 카르타고의 한니발을 무찌른 한 로마장수(스키피오 아프리카누스)에서 유래되었다고 했다. '지구전'을 펼친 로마장수가 결국 승리했다는데 근거가 있다. 페이비언이란 '느릿느릿, 천천히'라는 의미가 있다. 버트란트 러셀이 적으로 삼은 것은 적대적이었던 공산주의와 파시즘(국가사회주의)이다. 두 이데올로기는 소련과 독일이라는 나라로 대표되는 현상적으로는 적대적이었지만 둘 다 급진적이며, 속도를 강조한다. 모든 급진적이고, 속도를 강조하는 것들은 파괴적이며, 비인권적이며, 비도덕적일 가능성이 있다.
특히 비영리조직에서 "천천히와 꾸준히"가 적용되어야 할 지점은 사명과 비전에 대한 내재화다. 조직의 최고리더부터 부서장까지 과연 일년에 몇 번이나 조직의 사명과 비전의 의미를 새기고, Contextualization(상황화, 사명과 비전의 현재적 적용과 해석)에 대해 고민하고, 팀원들과 논의하는 시간을 '업무시간'에 가지려고 노력하는가? 긴급하고,중요한 일들에 우선순위가 늘 밀려있지는 않은가? 사명과 비전에 대한 조직원들의 내재화가 취약해지면 컨베이어 밸트의 노동자들처럼 활동은 노동이 되고, 점차 노동마저도 자신과는 상관없는 일이 된다. 조직은 건강함을 잃고 '가성비'만 남게 된다.
건강한 비영리조직을 유지하려면 조직과 부서의 리더는 정기적으로 일을 멈추고, 팀원들에게 사명과 비전을 체화하도록 시간을 확보하고, 요청되는 일이 어떤 의미에 연결되는지, 왜 하는지, 팀원의 분주함은 사람과 사회에 무슨 기여를 하고 있는지 조망할 수 있는 시야확보를 위한 리듬을 익혀야 한다. 이러한 천천히 꾸준히 체화한 리듬감은 갑자기 폭풍처럼 몰아쳐오는 기회를 붙잡아 내 앞에 패대기칠수 있는 '악력'을 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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