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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 [콩나물시루]

[조직건강성] ‘아웃사이더’와 ‘인사이더’ 사이에서

강정모 소장 2019. 2. 12. 23:43

 

 

https://www.tlnt.com/how-to-reduce-the-risk-when-hiring-an-industry-outsider/(사진출처)

 

 

예수, 부처, 아인슈타인, 니체, 뉴턴, 스피노자, 톨스토이, 솔제니친, 고흐, 고갱 (이상, 김수영 등_원문에는 없음) 이들의 공통점은 무엇일까?

 

당대의 아웃사이더였다. 비주류 중에 비주류였으며, 시대와 불화했다.

 

그런데 아웃사이더들은 인사이더보다 더 빠르고 앞서가는 경향이 있다. 왜냐하면 이들은 조직을 위해 형식적인 문서를 작성하느라 시간을 뺏기지 않아도 된다. 친목도모 활동 같은 것도 할 필요가 없으며, 세련된 그래픽의 쓸데없는 파워포인트를 만드느라 아까운 지력을 허비하지 않아도 되기 때문이다. 신물나는 회의에 참석하여 신경줄을 마모시키는 파워게임을 할 필요도 없다. 번거로운 초대에 응하지 않아도 되고, 체면을 살리기 위해 이벤트에 참여하지 않아도 된다. 형식 같은 건 날려버릴 수 있고, 내침 당할 것을 우려해 정치적인 올바름에 신경쓸 필요도 없다.

 

그리고 체제 바깥에 있기 때문에 인사이더들에게는 보이지 않는 조직내 주류나 의사결정권자들의 결점이나 모순이 훤하게 들여다보인다 그래서 아웃사이더들은 더 예리하고, 깊게 보며, 현 상태에 대한 그들의 비판은 피상적이지 않고, 근본적이다.

 

이쯤되면 아웃사이더가 낭만적이고 멋지게 상상될 수 있겠다. 하지만 말이 쉽지 주류사회와 반목하는 것은 고달프다. 날카로운 역풍이 거세게 아웃사이더를 때릴 것이다. 거의 모든 아웃사이더들은 주류의 공격에 만신창이가 되어왔다. 아웃사이더로 사는 것은 영화소재로는 좋을지 몰라도 좋은 삶은 아니다.

 

그럼 어떻게 할까?

 

한 발은 기존질서에 굳게 담그고 있으라, 그러면 당신은 이너서클이 주는 온갖 유익을 보장받을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다른 한 발은 거기서 빼고 있으라. 그리고 아웃사이더들의 신선한 통찰을 받을 수 있다. 우리에게는 양발이 있다.

 

<불행피하기 기술> 롤프 도벨리 지음, p321 중 발췌 각색

 

중세 유럽인들은 고양이를 마법이나 주술과 관련된 동물로 여기면서 학살을 일삼았다. 그들이 보기에 개는 인간에게 순종하는 충직한 동물이었지만 고양이는 독립적이고 사악한 동물이었다. 14세기 중엽 페스트가 유럽을 휩쓸었을 때 유대인 공동체는 주위의 다른 지역들에 비해 피해를 훨씬 적게 입었다. 유대인들은 그 때문에 미움을 사서 페스트가 사라지고 난 뒤에 온갖 박해와 대학살을 당했다. 이제 우리는 알고 있다. 유대인 구역이 페스트의 피해를 덜 입었던 것은 쥐들을 몰아내는 고양이를 키웠기 때문이라는 것을...

 

1665년 런던에 또 다시 페스트가 돌았다. 시내에서 돌아다니던 고양이들을 대대적으로 학살하고 난 뒤의 일이었다. 1790년대 무렵에는 고양이를 악마와 연결짓는 미신이 완전히 사라졌다. 그 뒤로 유럽에서는 페스트가 창궐하지 않았다. 

 

<베르나르 베르베르 상상력 사전> p66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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읽으면서 롤프 도벨리가 제시한 에세이 중 가장 맘에 안드는 내용이었다. 특히 마지막 결론은 현실주의자의 잔머리제안같은 느낌이 들어서 싫었다. 그러나 개인적으로 잠시나마 과거 아웃사이더의 인근을 떠돌았던 고달프고 씁쓸한 기억이 떠올랐다. 아웃사이더 흉내조차 포기한 지금의 나는(그렇다고 주류도 아니지만) 도벨리의 양다리제안이 최선이라는 현실을 직시할 수 밖에 없었다.

 

아웃사이더가 멋지지만 낭만적 삶에 대한 대가는 크다. 하지만 인류의 역사는 아웃사이더들의 불꽃같은 삶에 큰 빚을 지고 있다. 나와 같은 평범한 사람들은 역사속의 아웃사이더들에게 늘 감사해야 한다. 그러면 평범한 일상을 살아가는 우리는 아웃사이더가 될 수는없지만 아웃사이더들과 관계를 맺을 수는있다.

 

특히 건강하고 지속가능한 조직을 운영하기 위해서 조직리더와 의사결정권자들은 조직내 아웃사이더가 하지않고 개기고’, 인사이더들이 시달리는요소들을 관찰하고, 추려서 적절하게 선택하여 정기적으로 제거하던지, 줄이던지 해야한다. 아웃사이더의 공통점은 몸은 조직에 있지만, 사고과 시선은 조직바깥에 있다. 그래서 늘 비판적이며, 불편한 진실을 거리낌없이 말한다. 많은 조직의 리더들과 의사결정권자들은 아웃사이더들의 이런 태도가 못마땅하다. 즉 리더들은 아웃사이더들이 옳고, 정확한 말을 싸가지 없이 한다고 받아들일 가능성이 있다. 그래서 옳고, 정확이라는 합리보다는 싸가지라는 감정으로 사안을 결정한다. 즉 아웃사이더들이 아무리 정확하게 비판해도 리더들은 듣고 싶지 않은 것이다.

 

하지만 아웃사이더들의 예언적 경고와 비판은 곧 조직의 현실이 된다. 그래서 싫어도아웃사이더들의 얘기를 정기적으로 감당할만큼은 들어야 하며, 일년에 한번은 싫어도이들의 본질적 혜안과 통찰을 감당할만큼은 실행해야한다.

 

아웃사이더의 선재적 통찰은 무엇을 하자는 것보다는 무엇을 하지말자는 것이 많다. 예수, 부처, 니체는 기존 질서의 비본질성을 고발하고, 허례와 허식들을 과감히 버리는 것부터 이들은 주목받기 시작하였다. 예수의 십자가 처형은 성전에 기생한 장사꾼들과 그들을 착취하는 종교기득권자들에 대한 상징적 도전행위에서 시작되었다.

 

이처럼 조직이 건강해지겠다는 진정성은 새로운 것을 하는시도가 아니라 하지 말아야 할 것들을 제거하는시도에서 나타난다. 하지 말아야 할 것들은 해야할 것보다는 언제나 더 구체적이다. 그래서 실행가능하다. 또한 하지 말아야 할 것들을 먼저 멈추지 않고서는 결코 새로운 것을 할 수 없다. 시간과 역량과 조건이 동일한데 자꾸 새로운 것을 하자고 하면, 그것은 새로운 일이 아니라 부담되는 일일뿐이기 때문이다. 어쩌면 정기적으로 빼는 것만 잘해도 건강한 조직이 될 것이다. ‘빼기에 대한 아이디어 논의의 장이 아웃사이더들과 호혜적으로 위험하지 않게 관계맺는 소통의 길일지도 모르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