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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 [콩나물시루]

인생이라는 항해에 대한 고찰

강정모 소장 2020. 6. 21. 12:02

https://quotabulary.com/famous-quotes-about-sea-sailing

많은 사람들이 인생을 '항해'에 비유한다. 흰머리가 늘어나고, 광대에 기미가 번지고, 시린이가 늘어나 찬물을 들이키기가 꺼려지고, 아이들이 방구석에 박혀 있는 시간이 길어지는 삶의 시간을 접하며 '인생은 항해'라는 상투적 비유가 다르게 다가오기 시작했다.

 

배를 탔던 경험이 있다. 2009년 녹동에서 제주까지 승합차를 배 밑에 고박시키고, 4시간여를 그 '세월호'를 타고 갔던 경험이다. 그렇게 큰 배를 오랜 시간 탔던 경험은 그 때가 처음이었다. 그 전까지 비행기만 탔었던 제주행은 차를 몰고, 배를 타며 가는데만 꼬박 하루가 소요되고, 도착후 기진맥진 되면서 제주가 얼마나 먼 곳이었는가를 각인하게 된 시간이기도 했다.

 

4시간여만에 눈 앞에 제주항을 비롯한 섬라인이 부옇게 나타나기 시작했을 때 어릴적 보았던 만화 보물섬에서 선원이 섬이다!!!라고 기뻐하며 외치는 그 호들갑을 쬐금이나마 이해하였다. 바닷가 모래사장에서 본 바다와 바다 한 가운데서 접하는 바다는 전혀 다른 풍경과 느낌이었다. 항해에 대해서는 잘 모르지만 기본적으로 세 가지 정도는 추론할 수 있을 듯 하다.

 

첫째 항해를 위해서는 '기준'이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영화 캐리비안의 해적에서도 선장이 항상 차고 다니며, 선장을 선장답게 하는 물건이 '나침반'이었다. 어느 곳에서도 항상 같은 위치를 가리키는 것, 그것이 별자리든, 등대든 변하지 않는 '기준'이 있어야 비로서 항해가 가능하다. 기준확인 능력은 항해시작의 전제다. 사방이 바다인 광막함속에서는 지금 배의 위치가 확인되어야 한다.

 

인생도 바다만큼 막막하다. 막막함에 압도되면 당황하다가 우울과 두려움에 둘둘 말리게 된다. 그 때 필요한 것은 내 위치를 확인하는 것이다. 길을 잃었다 싶었을 때 내 위치와 목적지를 분명하게 가늠할 수 있는 '변하지 않는 나침반'과 같은 '원칙'이 있어야 한다. 수천년이 흘러도 변하지 않는 것을 우리는 '지혜'라고 한다. 하지만 우리는 원칙보다는 탈 것의 트랜드에 더 관심이 쏠린다. 배의 년식, 가격, 성능, 디자인 등등등. 그러나 결국 그것을 움직이고, 사용하는 건 '나'다.

 

둘째 목적지다. 모든 탈 것은 목적지가 있어야 움직인다. 목적지 없이 움직이는 건 기름만 소모할 뿐이다. 목적지가 분명해야 목적지를 가기 위한 중간기착지 즉 목표를 설계하고, 선택할 수 있다.

 

세번째는 '혼돈'에 대한 각오다. 육상교통수단은 딱딱한 표면을 가는 것에 비해, 해상교통수단은 '유동하고, 빠지는' 표면을 가는 것이다. 바다는 육상보다 훨씬 많은 변수가 많아 사람의 의도대로 되지 않는 함수들이 많다. 육상이동이 일차방정식이라면, 해상이동은 3차방정식 이상일 것이다.

 

항해처럼 '의도대로 되지 않음'은 사람을 성숙하게 한다. 비교적 인생이 의도대로 된 사람에게서 공통적으로 풍기는 냄새는 '나이브'하거나 '우물안'인 경우가 많다. 그 사람은 육지라인이 보이는 연안만으로 돌았을 가능성이 많다. 하지만 사방이 바다인 바다 깊은 곳까지 와보면 광막함, 무의미, 의도의 무색함이 심장을 쫄깃하게 할 것이다. 혼돈에 대한 각오를 하지 않을수록 심장쫄림은 더 하다. 그래서 어떤 사람이 경륜이 있다함은 바다 깊은 곳에 들어가기전 '혼돈'의 전제를 수용하는 역량이라고도 할 수 있다.

 

인생은 의도대로 되지 않는다. 솔로몬은 잠16:9에서 '사람이 아무리 자신의 계획을 세울지라도 그것을 인도하는 것은 신'이라고 했고, 노자는 '천지불인' 즉 '자연은 인간을 고려하지 않는다'고 했다. 솔로몬이나 노자나 둘 다 인간의 의도와 의지는 중요하지만 그것들대로 되지 않는다는 맥락이다.

 

그럼에도 갔던 것이 항해의 역사며, 인생이다. 수많은 너울과 바람, 암초 등의 변수가 작동되는 흔들리는 배를 타고, 길을 잃을 때 나침반을 붙잡고, 목적지를 잊지 않고, 목적지가 너무 멀어 항해 동기가 떨어질 때 중간 목표점을 경유하면서 다시 목적지로 갈 희망을 얻으면서 우리는 지금껏 항해를 해왔다.

 

남북평화라는 항해 그리고 코로나19 극복이라는 항해에서 우리는 '나침반', '목적지와 중간기착지' 마지막으로 '의도대로 되지 않음에 대한 수용'이라는 세 가지를 다시 가다듬어 보아야 하지 않을까 생각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