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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구소칼럼[콩나물시루]

현장의 갈등은 '방법'의 차이가 아니라 '왜(Why)'를 잊었을 때 시작됩니다

강정모 소장 2020. 6. 17. 10:29

고통의 심연에서 만난 질문

2018년 어느 여름날이었습니다. 강화도의 한 식당 화장실에서 인생 최악의 통증을 맞닥뜨렸습니다. 비명을 지를 힘조차 없었습니다. 바닥을 기어 나오며 깨달았습니다. 허리디스크가 터진 것입니다. 직업병인지 유전인지 따질 여유는 없었습니다. 노인처럼 엉금엉금 기어 다니며 한의원을 전전했습니다. 2주가 지나자 다행히 허리 통증은 가라앉았습니다. 진정한 공포는 그때부터였습니다. 허리 대신 다리 뒤 근육이 찢어지는 통증이 시작되었습니다. 중력이 온몸을 잡아당기는 듯한 전기적 자극이 매일 이어졌습니다. 하루하루 죽고 싶다는 심정이었습니다. 아내는 묵묵히 제 신경질을 받아내며 출강 때마다 테이핑을 해주었습니다. 고통은 인간의 시야를 좁게 만듭니다.

동행의 시선과 새로운 길

지역 조사 현장에서 동료 위원들과 마을을 걷던 날이었습니다. 위원중에서 가장 젊고 건강했던 저는 200미터를 채 걷지 못했습니다. 앉을 자리만 보이면 주저앉았습니다. 보다 못한 동료 위원이 이유를 물었습니다. 허리디스크 증상을 털어놓자 그는 마치 자신의 통증을 직접 느끼는 듯 무릎을 치며 위로했습니다. 그 분은 소아마비 장애를 가졌고, 오랜 세월 허리디스크로 고통받았던 선배 위원님이셨습니다. 그 분이 수술 없이 나을 수 있었던 방법으로 '수영'을 제안했습니다. 저보다 깊은 고통의 시간을 보낸 이의 권고는 단순한 조언이 아닌 교시(敎示)로 다가왔습니다. 그날로 수영장에 등록했습니다. 초등학교 이후 20미터도 가보지 않았던 물속으로 들어갔습니다. 살기 위해 매일 물을 가로질렀습니다. 두 달이 지날 무렵, 기적이 찾아왔습니다. 어느 날 문득 깨달았습니다. 통증이 완전히 사라진 것입니다.

 

목적이 다르면 풍경이 다르다

이후 두 번의 재발이 있었지만 당황하지 않았습니다. 한 달만 참고 수영하면 회복된다는 믿음이 있기 때문입니다. 수영장은 지루한 반복의 공간입니다. 자유형으로 레인을 오가고, 물속을 걷습니다. 수영하기가 익숙해지고, 여유가 생기자 주변 사람들이 보였습니다. 노련한 어르신들이 멋진 폼으로 접영과 배영을 즐기고 있었습니다. 하지만 저는 한 번도 그들을 부러워하거나 그 영법을 배우고 싶지 않았습니다. 이유는 명확했습니다. 저와 그 분들의 '수영 목적'이 달랐기 때문입니다. 그분들에게 수영은 건강, 친목, 취미, 혹은 자기계발입니다. 하지만 저에게 수영의 목적은 오직 '치료'였습니다. 목적이 치료이기에 노인 전용 라인에서 엉성하게 걷고 움직여도 부끄럽지 않았습니다. 남을 의식할 필요도 없었습니다. 나의 허리디스크 통증이 좋아진다면 제 수영은 성공이었기 때문입니다.

목표는 목적의 궤적이다

우리의 모든 행동에는 목적이 있습니다. 사람들은 목적을 천명하지만, 정작 스스로도 그 본질을 모르는 경우가 많습니다. 혹은 진짜 목적을 숨긴 채 자신마저 속이기도 합니다. 명예를 말하지만 사실은 이익이 우선이고, 권력을 외치지만 실제로는 생존이 목적인 경우입니다. 이 괴리에서 모든 불행이 시작됩니다. 목표는 목적의 구체적인 궤적입니다. 한 사람의 행보를 역추적하면 그가 숨긴 진짜 목적이 드러납니다. 입으로는 명예를 말해도 행동이 이익에 기민하다면, 그의 진정한 목적은 이익 추구입니다. 목적이 다른 사람들이 모이면 결과는 필연적으로 갈등입니다. 동상이몽(同床異夢)의 끝은 언제나 파국입니다.

 

https://www.clemmergroup.com/blog/2018/07/10/the-purpose-motive-why-does-your-organization-exist/

목적의 전환이 가져온 혁신: 에덴 얼터너티브

목적의 힘을 보여주는 실제 사례가 있습니다. 1991년 미국 뉴욕주의 체이스 기념 요양원(Chase Memorial Nursing Home)의 사례입니다. 당시 요양원은 노인들이 죽음을 기다리는 무기력한 수용소와 같았습니다. 이곳에 새로 부임한 빌 토마스(Bill Thomas) 박사는 요양원의 목적을 '의료적 처치'에서 '생동감 넘치는 삶'으로 재정의했습니다. (출처: The Eden Alternative: Nature, Hope and Nursing Homes, William H. Thomas) 그는 '에덴 얼터너티브' 프로젝트를 통해 요양원에 100마리의 새와 개, 고양이를 들이고 식물들로 숲을 만들었습니다. 아이들이 매일 요양원을 방문하게 했습니다. 목적이 '관리'에서 '성장'으로 바뀌자 놀라운 변화가 일어났습니다. 약물 복용량이 38% 감소했고, 사망률은 15%나 떨어졌습니다. 삶의 목적을 회복하자 생명력이 되살아난 것입니다. 현장의 서사는 도구의 변화가 아니라 목적의 선언에서 시작되었습니다.

 

https://www.edenalt.org / 사진출처

활동가의 지혜, 다시 '왜' 앞에 서는 용기

지금 갈등을 겪고 있습니까? 그렇다면 잠시 멈춰 서십시오. 복잡한 논리와 관계의 실타래를 잠시 밀어두고 가장 원초적인 질문을 던져야 합니다. "도대체 나는 왜 이 일을 시작했는가?" 주민 조직화 현장에서, 마을 복지의 접점에서, 우리가 주민을 만나고 활동을 전개하는 진짜 목적이 무엇인지 자문해 봅시다. 현장의 사회복지사와 활동가 여러분, 전문성은 기술의 숙련도가 아니라 목적의 선명함에서 나옵니다. 주민들과 갈등이 깊어질 때, 동료와 손발이 맞지 않을 때, 우리는 서로의 '왜'를 공유해야 합니다. 목적이 투명해지면 해결의 실마리는 의외로 단순한 곳에서 드러납니다. 우리의 역량은 세련된 기술이 아니라, 본질을 꿰뚫는 질문을 멈추지 않는 용기에서 수렴될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