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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 [콩나물시루]

안전한 시행착오, '봉사학습'_청소년 시민참여

강정모 소장 2025. 12. 1. 17:57

같은 그림을 그려도 종이의 질감과 색이 다르면 전혀 다른 작품이 된다. 거친 한지에 그림을 그리면 듬성듬성 박힌 원료의 굴곡이 펜의 방향을 의도치 않게 바꾼다. 반면 매끄러운 A4 용지는 펜에 힘을 약간만 주어도 잉크가 흘러넘쳐 생각했던 것보다 그림이 확장되기도 한다. 나비를 그릴 때 노란 종이 위에 그릴 때와 파란 종이 위에 그릴 때, 나비는 종이마다 다른 계절을 날아다닌다.

 

마을의 아이들도 저마다 다른 질감과 색을 지닌 '종이'와 같다. 주민자치위원으로, 마을 활동가로 살아가는 이들이 때로는 아이들이라는 종이 위에 멋진 그림을 그려주고 싶다는 의욕에 사로잡힐 때가 있다. "마을 아이들에게는 이런 복지가 필요해", "청소년들에게는 이런 교육 프로그램이 제격이야"라며 자신이 쥔 펜과 구상을 들이민다. 하지만 종이의 특성을 무시한 채 펜을 움직이면, 얇은 종이는 찢어지고 거친 종이 위에서는 펜촉이 망가지고 만다. 어린이(자녀)라는 종이는 교체가 불가능하다. 그저 어른들 앞에 주어진 존재일 뿐이다. 내가 그리고 싶은 그림을 위해 종이를 바꿀 수는 없다. 오직 할 수 있는 것은 주어진 종이, 즉 아이의 고유한 결에 맞춰 자신의 '구상'과 '펜'을 바꾸는 것뿐이다. 선택한 종이에 마음대로 그리는 것이 아니라, 주어진 종이의 특성을 깊이 이해하고 그에 맞추어 그리는 것. 그것이 바로 기성세대가 감당해야 할 '그리기'의 본질이다.

 

blog.naver.com/ltk20/130121955764 / 사진출처

 

2025년의 대한민국, 마을 공동체의 역할은 무엇일까? 감히 제안컨대, 어른이 직접 아이라는 종이 위에 그림을 그려주려 하지 말고, 아이들 손에 스스로 그릴 수 있는 붓을 쥐여주어야 한다. 그 붓의 이름이 바로 '봉사학습(Service Learning)'이다. 봉사학습은 단순히 아이들을 동원해 마을 청소를 시키는 노력이 아니다. 아이들이 마을의 문제를 직접 발견하고, 해결해 보는 과정을 통해 배우는 '성장의 프로젝트'다. 이 과정에서 아이들은 필연적으로 실수를 하고 넘어진다. 어른들이 기획해 준 매끈한 행사에서는 경험할 수 없는 울퉁불퉁한 현실을 마주한다.

 

철학자 비트겐슈타인은 그의 후기 철학에서 "거친 대지(rough ground)로 돌아가라!"고 역설했다. 그에 따르면 이상적인 이론의 세계는 마찰이 없는 '미끄러운 얼음판'과 같다. 그곳은 흠집 하나 없이 완벽해 보이지만, 마찰이 없기에 사람은 한 발자국도 앞으로 나아갈 수 없다. 걷고 싶다면, 앞으로 나아가고 싶다면 누구에게나 마찰이 있는 '거친 땅'이 필요하다. 다음 세대를 키우는 양육의 최종 목적은 무엇인가? 영원히 부모와 어른이 만들어준 매끄러운 얼음판 위에서 보호받으며 서 있는 것이 아니다. 결국은 혼자 힘으로 거친 땅을 딛고 걸어가는 독립적인 시민으로 성장시키는 것이다. 봉사학습은 아이들을 이 '거친 대지'로 안내하는 가장 지혜로운 방법이다. 마을이라는 현실의 땅에서 이웃과 부대끼고, 갈등을 조정하고, 문제를 해결하며 겪는 '마찰'이야말로 아이들이 세상으로 힘차게 나아갈 추진력을 얻는 소중한 기회이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마을은 아이들에게 '안전한 좌충우돌의 실험실'이 되어주어야 한다. 인생을 독립적으로 살아간다는 것은 수많은 넘어짐을 딛고 다시 일어서는 과정의 연속이다. 어릴 때 마을 안에서, 믿을 수 있는 이웃 어른들의 따뜻한 시선 속에서 겪는 작은 '연습 게임'들은 아이들에게 마음의 맷집을 길러준다. 이 '내면의 근육'이 단단해야 훗날 더 거친 세상에 나갔을 때 쉽게 부러지지 않고 홀로 설 수 있다. 또한 봉사학습은 아이들이 자신의 '질감'을 발견하는 여정이다. 마을 어르신을 돕는 과정에서 누군가는 자신의 따뜻한 말재주를 발견하고, 환경 캠페인을 기획하며 누군가는 놀라운 추진력을 확인한다. 교과서가 알려주지 않는, 내가 어떤 종이인지 스스로 깨닫는 순간이다.

 

 

어른의 역할은 아이들을 뜯어고쳐 자신이 원하는 그림으로 만드는 것이 아니다. 거칠면 거친 대로, 고우면 고운 대로 그 종이의 결을 세밀하게 관찰하고 만져보며 "너는 이런 종이구나"라고 알아주는 것이다. 그리고 그들이 마을이라는 화폭 위에서 마음껏 시행착오를 겪으며 자기만의 그림을 완성해갈 때, 묵묵히 배경이 되어주고 기다려주는 일이다. 알수록 사랑하게 되고, 사랑하는 만큼 나의 고집스러운 펜을 내려놓을 수 있다. 아이들이 봉사학습을 통해 스스로 길을 찾고, 마을의 주인으로 성장해갈 때, 비로소 어른들은 안도하며 손을 뗄 수 있을 것이다. 그것이 진정한 마을 복지이자, 사람을 남기는 주민자치의 완성이 아닐까. 오늘도 마을 곳곳에서 아이들의 서툰 붓질을 지켜보며, 남몰래 응원의 박수를 보내고 계실 여러분의 그 따뜻한 기다림에 깊은 존경을 보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