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민교육콘텐츠연구소

사무실 번호 : 070-4898-2779 / 대표메일 : streamwk@gmail.com

칼럼 [콩나물시루]

주민이 움직이지 않는 이유가 무엇일까? '손님'에서 ‘파트너’로 맞이하기

강정모 소장 2025. 11. 30. 21:41

약자 중심의 민주주의, 모두를 위한 행복으로 나아가다

 

사회복지 현장에서 매일같이 사람을 마주하고 지역사회의 변화를 꿈꾸는 우리 동료들에게 한 가지 근본적인 질문을 던지며 이야기를 시작하려 한다. 인간 사회와 동물의 왕국은 과연 무엇이 다른가? 너무나 당연한 질문 같지만, 그 답을 '작동 원리'에서 찾아본다면 꽤 묵직한 울림이 있다. 동물의 세계를 지배하는 원리는 명확하다. 바로 '약육강식'이다. 약한 자는 강한 자에게 잡아먹히고, 그것이 생태계의 순환을 유지한다. 하지만 인간 사회가 이 원리대로 작동한다면, 우리는 그것을 '문명'이라 부를 수 있을까? 인간다움, 즉 인성(人性)은 야생의 본능을 넘어 약자에 대해 어떤 태도를 취하느냐에서 비로소 결정된다. 우리가 꿈꾸는 선진 복지국가는 강자가 약자를 지배하는 곳이 아니라, 약자를 보호하고 그들이 안전하게 살아갈 수 있도록 시스템을 설계하는 곳이다. 흔히 민주주의를 다수결의 원칙으로만 오해하지만, 진정한 민주주의의 깊이는 사회적 소수자와 약자를 기준으로 삼을 때 드러난다.

 

https://stock.adobe.com/kr/images/democracy-pillars-or-4-pillars-of-democracy-free-press-4th-pillar/523617369 / 사진출처

 

경사로와 저상버스: 약자의 기준이 모두에게 편리함을 선물한다.

 

우리 지역사회를 한번 돌아보자. 모든 공공건물에 계단 대신 경사로가 설치되고, 모든 버스가 휠체어가 탑승 가능한 저상버스로 바뀐다면 어떤 일이 벌어질까? 장애인만 편리해질까? 아니다. 무릎이 시큰거리는 어르신, 유모차를 끄는 부모, 무거운 짐을 든 청년, 그리고 잠시 다리를 다친 우리 자신까지 모두가 편리해진다. 또 다른 사례로 최근 복지관들이 마을 곳곳에 확산시키고 있는 '알기 쉬운 정보(Easy Read)' 'AAC(보완대체의사소통)' 사업을 들 수 있다. 본래 이것은 발달장애인이나 뇌병변 장애인의 의사소통을 돕기 위해 복잡한 안내문을 그림(픽토그램)과 쉬운 단어로 바꾸는 시도였다. 그런데 이 변화가 일어나자 놀라운 일이 벌어졌다. 작은 글씨가 침침한 어르신, 한국어가 서툰 다문화 가정의 이웃, 그리고 난해한 행정 용어에 지쳐있던 일반 주민들까지 "이제야 무슨 말인지 알겠다"며 반색한 것이다. 장애인이라는 사회적 소수자의 기준에 맞춰 물리적, 심리적 턱을 낮췄더니, 결국 사회적 다수자까지 혜택을 누리는 '모두를 위한 사회'가 되는 것이다. 물론 여기에는 많은 비용이 든다. 이 공공의 비용을 기꺼이 지불하겠다고 다수가 동의하는 사회, 약자의 불편함을 해소하는 것이 곧 나의 행복과 연결됨을 아는 사회, 그 합의를 이끌어내는 과정이 바로 우리가 현장에서 실천하는 주민조직화이자 지역복지의 핵심이다.

 

 

존엄성: 가격을 매길 수 없는 가치

 

우리는 자본주의 사회 속에서 무의식적으로 "나는 얼마짜리 사람인가?"를 묻곤 한다. 하지만 사회복지사는 이 질문의 위험성을 누구보다 잘 아는 사람들이다. '가치' 있는 것은 가격을 매겨 교환할 수 있지만, '존엄'한 것은 가격을 매길 수 없기 때문이다. 우리의 전문성, 경력, 노동력은 평가받을 수 있어도, 우리 존재 자체와 우리가 만나는 주민 한 분 한 분의 삶은 결코 숫자로 환산될 수 없다. 이 존엄성의 토대 위에 민주주의가 피어났고, 그 꽃을 피우기 위해 우리는 주민들을 만나고 그들의 참여를 독려한다.

 

 

주민을 '손님'에서 '주인'으로

 

지역사회에서 '주인'으로 산다는 것은 무엇일까? 주인의 반대말은 권리가 없는 '노예', 혹은 책임이 없는 '손님'이다. 우리가 만나는 주민들이 지역 문제에 대해 권리만 주장하거나, 혹은 방관자로 머물지 않도록 돕는 것이 우리의 사명이다. 최근 종합사회복지관들의 성과는 이러한 철학이 증명된 사례들이다. 주민이 단순히 복지 수혜자가 아니라, 지역 내 상점을 발굴하고 이웃을 돕는 '온스토어' 사업이나, 기후 위기에 맞서 직접 환경 실천을 주도하는 주민 모임들은 주민을 지역사회의 진정한 주인으로 세우는 과정이다. 주민이 객체에서 주체로, 손님에서 주인으로 변화할 때 지역복지는 비로소 생명력을 얻는다.

 

사회복지사, 행복의 권리를 지키는 민주주의의 파수꾼

 

헌법 제10조는 "모든 국민은 인간으로서 존엄과 가치를 가지며, 행복을 추구할 권리를 가진다"고 선언한다. 우리는 과학적으로 이 땅에 태어난 이유를 설명할 수 없지만, 헌법적으로는 명확히 말할 수 있다. 우리는 행복하기 위해 태어났다. 사회복지사 여러분, 여러분의 업무는 단순한 서비스 전달이 아니다. 윤동주 시인이 노래한 '모든 죽어가는 것들을 사랑하는 마음'으로, 약육강식의 차가운 논리를 걷어내고 따뜻한 상생의 숲을 가꾸는 일이다. 약자의 목소리가 기준이 되고, 주민이 주인이 되어 참여하는 그 길목에, 우리 사회복지사들이 가장 든든한 파수꾼으로 서 있기를 소망한다. 오늘도 지역 곳곳에서 사람의 존엄을 지키고, 민주주의의 뿌리를 내리고 있는 여러분의 뜨거운 실천을 응원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