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빨래는 세탁기가 하고, 건조는 건조기가 한다." 10여년 전 나는 빨래의 고된 과정을 세탁기가 대신한다고 썼지만, 지금은 한술 더 뜬다. 세탁기에서 꺼내 건조대에 널어야 했던 수고로움조차 이제는 '건조기 이모님'이 대신해주신다. 설거지는 식기세척기가 뜨거운 스팀으로 뽀득뽀득 닦아주고, 바닥 청소는 로봇청소기가 구석구석 누비며 먼지를 흡입한다. 심지어 식사 준비마저 잘 손질된 밀키트와 배달 앱이 도마 칼질 소리를 앗아갔다.
기술의 발전으로 노동의 강도는 혁명적으로 줄어들었다. 과거 동네 아주머니들이 개울가나 수돗가에 쭈그리고 앉아 방망이질을 하던 시절에 비하면, 지금의 가사 노동은 노동이라 부르기 민망할 정도다. 그런데 아이러니하게도 우리는 여전히 "집안일이 힘들다"고 말한다. 기계가 '세탁과 건조'를 다 해주어도, 결국 건조기에서 옷을 꺼내 털고, 개고, 가족 구성원별로 분류해 서랍장에 넣는 일은 온전히 사람의 몫으로 남았기 때문이다. 로봇청소기가 다니도록 바닥의 전선을 치우고 의자를 올리는 일, 식기세척기에 그릇을 테트리스 하듯 쌓고 다시 꺼내 정리하는 일. 우리는 이 '준비와 마무리' 과정을 여전히 '빨래하기', '청소하기', '설거지하기'라고 퉁쳐서 부르며, 그 번거로움에 지쳐한다.

왜 우리는 버튼 하나면 되는 세상에서도 여전히 피곤할까? 이건 단순히 기분의 문제가 아니다. 과학적으로도 증명된 우주의 진리, 바로 '엔트로피(Entropy) 법칙' 때문이다. 열역학 제2법칙에 따르면, 우주의 모든 에너지는 질서 있는 상태에서 무질서한 상태로 자연스럽게 흐른다. 즉, 청소된 방(질서)이 어지러워지는 것(무질서)은 자연의 섭리요, 어질러진 방을 다시 깨끗하게 만드는 것은 자연을 거스르는 엄청난 에너지가 필요한 일이다. 이 거창한 물리학 법칙을 우리네 일상과 조직에 대입하면 명쾌해진다. "벌이는 일은 설레이고 주목받지만, 벌어진 상황을 다시 질서 상태로 돌리고 정리하는 것은 누구나 귀찮고, 힘들고, 인정받지 못할 가능성이 높은 일이다." 어지르는 건 우주의 흐름에 몸을 맡기는 '내리막길' 같은 쉬운 일이지만, 치우고 정리하는 건 우주의 법칙을 거슬러 올라가는 '오르막길' 같은 고차원적인 투쟁이기 때문이다.

이 지점에서 나는 우리 비영리 공익활동 현장의 모습을 겹쳐 본다. 우리의 조직에도 '세탁기'나 '건조기'처럼 소리를 내며 돌아가는 규모있는 사업들이 있다. 세상을 바꾸는 캠페인, 시민들을 만나는 교육, 화려한 축제와 집회 같은 것들이다. 이런 활동은 엔트로피를 폭발시키며 에너지를 발산한다. 눈에 잘 띄고, 역동적이며, 박수갈채를 받는다. 하지만 조직을 일상에서 건강하게 하는 건, 그 화려한 행사 뒤편에서 높아진 엔트로피(무질서)를 다시 질서로 되돌리는 '빨래 개기'와 같은 업무들이다. 행사가 끝난 후 수북이 쌓인 영수증을 풀칠해 정산하는 일, 매일 아침 사무실의 문을 열고 화분에 물을 주는 일, 후원자 DB를 정리하고 엑셀 칸을 채우는 일, 걸레를 빨아 공용 테이블을 닦고 탕비실의 커피 믹스를 채워 넣는 일, 모두가 퇴근한 사무실에 남아 쓰레기를 분리수거하고, 행사 때 쓴 현수막과 물품을 창고에 정리하는 일. 우리는 이 소소하고 반복적인 일들을 '관리'나 '행정'이라 부른다.
세탁기가 아무리 잘 돌아가도, 누군가 빨래를 개어 서랍에 넣지 않으면 그 옷은 거실 한구석에서 구겨진 채 쉰내를 풍기는 짐덩이가 된다. 마찬가지다. 아무리 훌륭한 공익사업을 펼쳐도, 누군가 전화를 상냥하게 받고, 회계 장부를 꼼꼼히 기록하고, 사무실의 먼지를 닦아내지 않으면 그 조직은 서서히 생명력을 잃는다. 곰팡이는 거창한 곳이 아니라, 관리되지 않은 사소한 틈새에서 피어나는 법이다. 조직에서 '빛나는 일'을 맡은 이들이 무대 위 주인공이라면, 이 '티 나지 않는 일'을 맡은 관리자들은 무대 뒤의 조명 감독이자 무대 장치다. 때로는 "나는 왜 매일 똑같은 영수증만 붙이고 있나", "나는 왜 남들 뒤치다꺼리만 하나"라는 자괴감이 들 수도 있다. 하지만 자부심을 가져도 좋다. 당신은 지금 단순히 청소를 하는 게 아니라, 무질서로 향하려는 우주의 거대한 힘에 맞서 조직의 질서를 사수하고 있는 '엔트로피 파이터'니까.
기억해주길 바란다. 당신이 묵묵히 수행하는 그 '빨래 개기'가 우리 조직의 존엄을 지키고 있다는 사실을. 당신이 매일 닦는 그 책상이 활동가들의 열정을 지탱하는 베이스캠프임을. 당신의 노동은 화려하지 않지만, 가장 필수적인 '살림(살리는 일)'이다. 오늘도 남들이 보지 않는 곳에서 묵묵히 우주의 법칙과 싸우며 영수증을 붙이고, 전화를 받고, 창고를 정리하고 있을 전국의 모든 비영리 살림꾼들에게 깊은 존경과 응원을 보낸다. 당신의 그 고단한 반복이, 우리 사회를 조금 더 깨끗하고 단정하게 '개어놓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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