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또래의 어릴적 꿈 1~2위는 대통령과 과학자였다. 우리들이 고대한 대통령에 대한 시선은 져야하는 책임보다 그가 누리고, 휘두르는 권력에 있었을 것이다. 지금도 종종 사극을 보면 왕노릇한번 해보고 싶다는 달콤하고, 관능적 상상에 잠기곤 한다.
하지만 특히 조선의 왕은 우리가 상상하는 그런 존재가 아니었다. 한마디로 평생을 입시생처럼 살아야했다. 11시 취침 5시 기상, 눈비비고, 1시간동안 왕실 어른들을 차례로 돌아다니며 기상문안하고, 간식먹고, 2시간 공부, 점심먹고 공부, 저녁먹고 공부, 취침문안후 공부 나머지 시간은 보고 받고, 결재하는 시간으로 채워졌다. 기본적으로 결재일을 빼면, 공부공부공부로 자신의 권력이 '제대로' 사용되고 있는지 살피고, 살피고, 살펴야 하는 존재가 왕이었다. 뿐만 아니라 시험범위도 없는 각종 시험에 시달렸다.
이걸 알게되고서 왜 조선의 왕들이 그렇게 단명했는지 알게 되었다. 그리고 왜 그토록 히스테리컬했는지 이해하게 되었다. 주인으로 살아간다는 건 책임을 반드시 수반한다. 책임을 지려면 그에 걸맞는 능력을 갖춰야 하는 것이다. 프랑스 철학자 코르넬리우스 카스토리아디스는 "민주주의 사회는 하나의 거대한 교육기관으로서, 시민들이 끊임없이 자기 학습을 하는 곳"이라고 했다.
민주의 시대. 우리가 '나를 비추는 학습'을 평생습관으로 삼지 않으면 공동체는 책임 '표류'의 수렁에 빠지게 된다. 정치철학자 한나 아렌트는 현대사회는 "책임이 주인을 잃어버렸다"고 경고하였다. 우리는 책임이 주인없이 부유하는 일상을 살고 있다. 책임이 오랫동안 떠돌면 그 사회는 긴장을 견딜수 없어 소수자나 약자를 희생양으로 만들어 일시적 안정을 모색한다.
약자를 살리는 길. 책임을 적확하게 붙잡아 두는 길. 그건 '나를 비추는 공부'에 나있다. 그 길은 적어도 플라톤이 말한 '가장 저질스러운 인간들, 나(들)보다 못한 인간들'에게 책임을 정박시키는 짓을 저지르는 확률을 떨어뜨릴것이다.
총선이 얼마 안 남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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