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판이 계급이 된 사회
2026년의 초입, 우리는 그 어느 때보다 '유능함'을 강요받는 시대를 살고 있다. 인공지능이 업무의 상당 부분을 대체하는 지금, 역설적으로 인간의 '능력'에 대한 갈증은 더 깊어졌다. 누구나 능력 있다는 평판을 갈구한다. 동시에 무능하다는 낙인이 찍힐까 전전긍긍하며 하루를 보낸다. 우리는 매일 능력 평판이라는 무성한 숲을 헤매는 중이다. 하지만 우리가 좇는 유능함의 실체는 모호하다. 겉으로는 화려한 경력과 매끄러운 업무 처리를 뽐내지만, 정작 중요한 결정의 순간에 신뢰를 저버리는 이들이 많다. 삶의 경험이 누적될수록 이런 당혹스러운 광경은 더 자주 목격된다. 이는 우리가 능력의 정의를 다시 생각해야할 때라고 생각한다.
'일 잘함'이라는 언어 뒤의 생략된 다양함
우리는 흔히 누군가를 '능력 있다'고 평할 때 '일을 잘한다'는 전제를 생략한다. 여기서 일이란 대개 눈에 보이는 성과나 효율적인 행정 처리를 뜻한다. 하지만 일만 잘하는 능력으로는 결코 일이 완성되지 않는다. 특히 공익 활동이나 공동체를 위한 현장에서는 더욱 그렇다. 한 지역 NGO 활동가는 탁월한 데이터 분석력과 기획력으로 많은 후원금을 유치했다. 조직 내에서 그는 '능력자'로 통했다. 그러나 정작 사업 추진 과정에서 반대하는 주민들의 비판이 거세지자 그는 무너졌다. 비판을 견디는 능력이 부족했던 그는 소통을 단절했고, 결국 사업은 중단되었다. 기술적 유능함은 비판과 때로는 굴욕을 견디는 근력과 결합해야 최종 성과를 얻을 수 있다.
보이지 않는 능력의 목록
이제 우리는 '능력 있음'의 범주를 넓혀야 한다. 능력은 산출물을 내놓는 기술만이 아니다. 고통을 견디고, 자신을 다스리며, 타인과 연결되는 '내면의 태도'도 능력이다. 실패를 정직하게 인정하고, 사과와 책임을 하는 것도 능력이다. 자신의 과오를 덮기 위해 거짓을 보태지 않는 것도 능력이며, 자제를 잘하는 것도 능력, 감정이 앞서는 순간에 멈출 줄 알고, 욕망이 앞서는 순간에 물러설 수 있는 것도 능력, 비판을 견디는 능력, 굴욕을 견디는 능력, 피곤을 극복하며 끝내 약속을 지키는 능력. 유머로 긴장을 해소하고 소통을 이어가는 능력. 이 모든 것이 능력이다. 현대사회의 능력이란 산출물을 내놓는 기능이 아니라, 갈등과 예상치 못한 상황에서 평정심을 유지하는 ‘비인지적 역량’을 포괄하는 개념으로 정의되어가고 있다. 실패를 객관적으로 인정하는 것은 인지적 유연성의 영역이다. 자신의 과오를 데이터로 수용하고 수정하는 능력은 학습 속도를 결정짓는다. 자제력 또한 핵심적인 능력 지표다. 감정의 과잉 반응을 억제하고 목표에 집중하는 힘은 조직의 안정성을 유지하는 핵심 변수다. 비판을 견디는 맷집, 굴욕적인 상황에서도 대의를 우선하는 태도, 피로 속에서도 업무의 질적 수준을 유지하는 지구력은 단순한 미덕이 아닌, 실질적인 ‘성과 유지 능력’이다.

질문으로 능력의 실체를 확인하라
누군가를 ‘능력 있는 자’라고 칭할 때 우리는 그 막연한 평판의 실체를 규명하기 위해 “그는 구체적으로 ‘무엇’에 능력이 있는가?”라는 질문을 던져야 한다. 특히 공익 현장에서는 단순한 행정적 신속함이나 지적 탁월함보다 갈등의 한복판에서 평정심을 유지하며 해법을 찾는 회복탄력성이 핵심적인 기제로 작동하기 때문이다. 비판적 피드백을 수용하며 공동체의 합의점을 찾아가는 심리적 근력, 그리고 실패를 성장의 동력으로 치환하며 반복되는 루틴을 견뎌내는 인내야말로 실질적인 변화를 만드는 진정한 전문성이다. 따라서 이러한 태도적 역량을 확인하지 않은 채 ‘유능함’에만 의존하는 것은 조직 운영의 리스크를 높이는 것이므로, 우리는 이제 관념적인 평판을 넘어 그 인물이 가진 내면의 메커니즘이 조직에 어떻게 기여하는지 객관적으로 구분할 필요가 있다. ‘일을 매끄럽게 처리하는 자’와 ‘어려움 속에서도 시스템을 유지하며 과업을 완수하는 자’가 동시에 '능력'이라는 범주에 들어가는 조직일수록 건강한 성과를 낼 것이다.
"여러분에게 지금 가장 필요한 능력은 무엇인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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